18화. 각성자(3)
드라칸의 무리를 통솔하던 여왕체의 사망이자 최후였다.
허무할 정도로 깔끔한.
그는 연이어 총구의 방향을 돌렸다.
그 직후부터, 드라칸들은 명백하게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
놈들은 적인 유성을 앞에 두고서도 괴성을 지르고 주변을 공격하는 등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왕체는 드라칸의 구심점이다.
그것은 단순히 부모 자식 관계라서가 아니라, 여왕체가 정신적으로 모든 드라칸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지주의 총합체.
그것이 바로 여왕체다.
때문에 드라칸들은 여왕체가 죽은 직후부터 그것을 느끼고는 완전히 공황 상태가 되어 버렸다. 구심점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여왕을 잃은 충격에 빠진 드라칸들을 차갑게 응시하며, 유성은 재차 총구를 겨누었다.
그러곤 드라칸 놈들의 머리를 정확하게 날려 버렸다.
마나가 떨어지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줄지어 마나 포션을 마셔대며, 계속해서 기계적으로 마력탄을 날렸다.
그리고 마침내.
푸른 마력탄의 불꽃이 멈추었을 때.
전투는 끝나 있었다.
“이, 쯤 하면 되겠지.”
그 직후, 유성의 목소리는 마치 가뭄이라도 든 듯이 메말라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시야가 제멋대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나 포션을 계속해서 들이켜며 과도하게 마나를 사용하여 생긴 역효과였다.
유성은 설마하니 이러한 부작용마저 또다시 경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망, 할. 이 경험을 다시 하기는 싫었는데.”
나지막한 욕설을 끝으로, 유성은 정신을 잃었다.
* * *
“하아, 하아.”
라피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저 달려드는 드라칸들과 정신없이 뒤엉켜 싸우던 그녀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드라칸들의 반응이 지극히 이상해졌다.
라피스를 노리고 달려들던 놈들이 뚝, 하고 움직임을 멈추더니 경련이라도 일으키듯 몸을 비틀기 시작한 것이었다.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라피스를 앞에 두고도 전혀 반응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뭐, 뭐야?”
라피스는 당황했지만, 어찌 되었거나 그 덕분에 상황은 쉬워졌다.
놈들이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직후부터 처리는 일사천리였다.
함선 메티스의 포탑과, 라피스가 탄 기가스 스크래퍼가 쏘는 마력탄이 드라칸들을 격추하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놈들은 빠르게 소탕되었다.
“끄, 끝난 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침내 라피스는 헬멧을 벗었다.
삑.
그러곤 통신으로 유성을 불렀다.
“유성? 이 녀석들 봤어? 뭔가 이상한데?”
[…….]
“유성? 왜 대답이 없어?”
여전히 대답이 없는 유성의 반응에, 미간을 구긴 라피스가 고개를 돌렸다.
유성이 타고 있는 EF-05가 있는 방향이었다.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어…….”
EF-05가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어지러이 우주의 한복판을 떠다니며 부유하는 드라칸의 부서진 파편들 사이로.
그저 정지한 듯이 가만히 소행성을 향해 총구를 겨눈 자세 그대로 멈춰 서 있다.
잠시 멍하니, 유성의 기가스를 바라보던 그녀가 중얼거렸다.
“유성?”
* * *
……그로부터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함선 메티스는 꾸준히 행성 테라를 향해 이동을 계속했다.
전투는 다행스럽게도 함선 메티스에 큰 피해가 없이 끝이 났다.
유성이 제대로 선전했던 덕분이었다.
함장 라프티리아가 서류로부터 고개를 들곤 부함장을 향해 물었다.
“유성 생도는 어떻게 되었죠?”
“지금은 잘 회복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왜 그러죠, 아스트라 부함장?”
그녀의 물음에 아스트라는 잠시 시간을 확인하더니 답변했다.
“슬슬 유성 생도가 깨어날 시간이 되었겠군요.”
이제 그를 만나러 갈 시간이 되었다.
* * *
유성은 곧 눈을 떴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자신의 방의 천장이었다.
유성의 옆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라피스?’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니 라피스가 침대에 엎드린 채로 잠들어 있었다.
침까지 흘리면서 곤히 자고 있던 라피스를 본 유성은.
두어 번 눈을 깜빡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꽈악.
힘을 주어 주먹을 쥐어 보았다.
육체가 가볍다. 온몸에 힘이 충만했다.
분명 마지막 순간 기절하듯 눈을 감았는데도 기운이 넘쳤다.
마나 능력을 각성하기 이전과는 감히 비할 바가 없는 강건함이 끓듯이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더할 나위 없이 개운하군. 푹 자기라도 한 것처럼.’
유성은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힘을 느꼈다.
마나 능력을 각성한 탓에 이전의 부작용 따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나 사용자들은 이러한 장점이 크게 두드러지는 이들이었다.
회복 능력에 지극히 뛰어난 탄성을 지닌 탓에 웬만한 부상이나 상처 정도는 금세 털고 일어선다.
유성은 라피스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났군그래.”
기잉-.
부드러운 소음과 함께 열리는 자동문.
복도로 나오자, 앞에는 부함장 아스트라가 있었다.
한창 커피를 마시고 있던 그는 유성과 눈을 마주치자 미소 지어 보였다.
“기다리고 있었네, 유성 생도.”
부함장 아스트라는 커피잔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런 그를 향해, 유성 그 또한 마주 대답하듯 짤막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깨어날 걸 알고 있었나 보군요.”
“물론일세. 그야, 뭐. 모를 수가 없겠지.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언제쯤 깨어날지 정도는 미리 알 수 있으니.”
기계가 사람의 뇌파를 읽어 깨어날 때를 미리 알려준다.
때문에 부함장 아스트라는 미리 유성이 일어날 때를 맞춰 이곳에 나타났다.
“…….”
그 모습에 유성은 잠시간 그를 응시하다 말문을 열었다.
“궁금한데, 혹시 도청 중입니까? 그도 아니라면 주변에 총을 든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다거나.”
“둘 다였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어서 말이지. 도청만일세. 지금 당장은 말이야.”
“그럴 만하군요.”
유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납득했다.
그 자신이 생각해 봐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마나 사용자는 맨몸으로도 충분히 일반인 대여섯은 문제없이 때려눕힐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그것이 유성과 같이 뛰어난 마나 사용자라면.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학살전을 치룰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쉽게 말해, 각성자란 건.
‘인간의 형태를 한 드라칸’ 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어쨌거나 더욱 풀어서 설명하자면.
그만큼이나 강한 존재라는 거다.
인간의 규격이라면 진작에 벗어났다고 해도 될 정도로.
싱긋 웃은 그, 부함장 아스트라는 말했다.
“무엇보다 유성 생도 자네가 군인 몇 정도를 감당하지 못할 거란 생각도 들지 않고.”
“…….”
유성은 침묵했다.
때때로, 침묵은 무엇보다도 강한 긍정의 표현이기도 했다.
부함장 아스트라는 그로 인해 유성이 정말로 그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말로 자신이 있나 보군.’
후룩-.
부함장 아스트라는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아마 눈앞의 이 유성이라는 소년이라면 코앞에서 쏘아지는 총알조차 피할 수 있겠지.’
그는 유성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마나 사용자임을 분명하게 보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함선 내의 모두가 똑똑히 목격했다.
전투 당시 그가 사용했던 것은 각성기임이 확실했다.
마나 사용자 중에서도 손에 꼽힌다고 하는 각성자는, 불가능해 보이는 움직임조차 아무렇지 않게 재현하는 존재들이다.
마나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본능적으로 최적화된 천재들.
초인이라 칭해지는 마나 사용자들마저 한낱 일반인처럼 내려다볼 정도로 뛰어난 자들.
그것이 바로 각성자였다.
눈으로 총구의 방향을 보고 그 궤적을 회피할 수 있다는 말이,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실제로도 뛰어난 마나 사용자들은 그러한 움직임 따위, 너무나도 간단히 내보인다.
부함장 아스트라는 그러한 생각을 내색하지는 않은 채, 그저 미소 지은 얼굴을 보이며 물었다.
“그러니 가능하면 협조를 부탁하겠네.”
“알겠습니다. 그러니-.”
“음? 왜 그러지?”
대답과 함께, 유성은 아무것도 없는 옆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이 옆의 분들 좀 치워주시죠. 제가 알아서 갈 테니.”
“아, 하하. 그러지.”
아스트라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손짓했다.
우웅-.
그러자 유성의 양옆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곧 은밀하게 모습을 숨기고 있던 자들의 형태가 드러났다.
“…….”
“…….”
투명하게 위장하는 은폐 기술, 스텔스.
그를 통해 이제껏 유성의 옆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것은 두 명의 군인이었다.
유성은 그들의 손에 들린 총기를 힐끗 보았다.
총기의 안전장치가 풀려 있었다.
언제든 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잠시 그것을 응시하던 유성이 이내 그것을 지적했다.
“말과 행동이 다르군요.”
“미안하네. 사과하지.”
부함장 아스트라는 그 즉시 꼬리를 내렸다.
그는 여전히 무심한 눈빛의 유성을 보며 생각했다.
‘설마 투명화 기술인 스텔스마저 꿰뚫는 건가. 마나 사용자라도 그건 힘들 텐데. 각성자라서 그런가?’
아스트라는 여전히 움직임이 없는 군인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 자네들은 이만 돌아가게.”
끄덕.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군인들이 뒤로 빠졌다.
멀어지는 군인들을 바라보던 부함장 아스트라가 말했다.
“일단은, 배가 출출하니 같이 식사나 하지.”
“좋습니다.”
유성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눈을 뜬 시점부터 극심한 공복을 느끼던 찰나였다.
위장이 한창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무려 이틀간이나 위장에 그 무엇도 때려 넣질 못했다.
식사라면 오히려 유성 쪽에서 나서서 환영하는 바였다.
* * *
“…….”
유성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의 앞에 차려진 식사는 진미라고 해도 좋을 만큼이나 호화롭게 차려져 있었다.
식사를 앞에 두고서도 그저 말도 없이 응시하는 유성의 모습에.
아스트라는 미소 짓고는 말했다.
“자, 어서 들게. 배고프지 않나.”
“식사가 꽤나 성대하군요.”
“그저 그런 기갑 파일럿도 아니고 무려 각성자인데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일이지. 고위 장교급이 아닌가.”
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아스트라에게 더더욱 확신만을 안겨 줄 뿐이었다.
그 나잇대의 소년답지 않은 무거움은 부함장, 그의 내면에 있는 유성에 대한 점수를 오히려 상향 조정하게 만들고 있었다.
유성은 묵묵히 수저를 들곤 식사를 시작했다.
잠시 그가 달그락거리며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부함장 아스트라는.
곧 깍지를 끼고는 차분한 음성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자네의 말이 일리가 있긴 하더군. 제 자신의 능력의 뛰어남을 알고 있으니 역으로 숨긴다니. 특히나 각성자라면 더더욱 그럴 만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