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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7화 (17/200)

17화. 각성자(2)

마나는 걱정이 없었다.

어차피 포션으로 회복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느긋하게 볼만한 것이 아니었다.

놈들의 수는 줄여도 줄여도 끝이 없었으니.

그의 무장은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 일변도의 쌍검이었다.

사실상 함선 메티스의 자동포탑 공격으로 상대할 수 있는 수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놈들은 포탑에 관통당해 하나둘 죽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놈들의 공격에 의해 함선의 장갑이 파괴되는 속도가 빨랐다.

“음?”

그때 눈앞의 모니터 화면에 알람이 떴다.

무장이 추가되어 있다는 메시지였다.

[추가 무장 소지 확인.]

[무장명 : 마나 입자 집약탄, SVC 17.]

“SVC 17?”

유성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무장 상태를 확인했다.

그는 화면이 전달해 주는 정보를 보며 낮게 읊조렸다.

“마력탄을 쏘는 방식의 원거리형 무장인가. 쉽게 말해 돌격 소총이로군.”

이제야 제대로 된 수준의 무장이 탑재된 건가.

‘하긴 그럴 만할 때도 되긴 했지.’

유성은 그에 쓰게 웃었다.

이전의 그가 무장이 빈약한 탓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화력은 물론이고 사거리도 늘어났다. 심지어 과거보다 몇 단계는 발전한 타입이군. 하긴 400년이나 지났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하지만 그 대신인지 그만큼 마력의 소모 또한 늘어난 듯했다.

아마 수십 발 정도를 쏘면 유성은 마나를 모두 소모하게 되어 탈진할 터였다.

이전에 그가 사용하던 라이플은 어디까지나 지상전을 위해 만들어진 거였다.

애초에 중력이란 게 거의 존재하지 않는 우주에서 싸우기 위해선, 전혀 다른 기반의 원거리 무장이 필요했다.

마나 입자 집약탄 SVC17은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무장이다.

유성은 시스템이 알려주는 대로 원거리 무장인 SVC 17, 돌격 소총을 꺼내 들었다.

그는 드라칸들이 활개를 치는 전투의 중심에 파고들어 있었다.

“후-.”

유성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간, 그가 탄 EF-05가 정지한 듯이 멈췄다.

불길처럼 들끓던 그의 안광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요한 정적이었다.

유성은 그를 향해 달려드는 드라칸들에게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하던 그가 다시금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은 찬란한 빛을 발하는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사고가속(思考加速).’

그 순간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시야 아래에 놓였다.

세상이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한다.

포효하며 함선 메티스를 공격하던 드라칸들도, 그러한 놈들을 노리던 자동 포탑들의 공격도.

그리고 유성 그 자신의 육체 또한 말이다.

모든 것이 마치 정지하기라도 한 듯이 느려졌다.

그러한 세계 속에서, 오로지 그의 정신만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후-.]

두근. 두근.

유성 그 자신이 내쉬는 숨소리가, 마치 태풍 소리처럼 크게 확대되어 들려왔다.

심장의 박동과 기가스의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음까지도.

뚜렷하기 그지없었다.

그 누구도 이 세계에 간섭할 순 없다.

오직, 오직 그만이.

사고가 한없이 가속한 지금의 유성 그만이.

느려진 이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였다.

스스스.

유성은 느려진 신체를 천천히 움직여 놈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슬로우 모션만큼이나 느려 보였지만, 그 또한 실제로는 아주 빠른 움직임이었다.

유성은 자신을 향해 입을 쩍 벌린 채로 달려드는 드라칸들을 마주 보았다.

그러곤 사나운 표정으로 저주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죽어라, 망할 벌레 자식들.]

콰-아-앙-.

총구에서 쏘아진 탄환이,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발사되어 놈들을 향해 느린 속도로 날아갔다.

그 직후, 빛을 발하던 황금빛의 눈동자가 다시금 원상태로 돌아왔다.

멈춘 듯이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금 빨라지기 시작했다.

콰과광!

함선 메티스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십여 마리의 드라칸들이 일제히 폭사했다.

마치, 동시에 죽기라도 한 것처럼.

* * *

콰과광!

통제실의 인원은 동시다발적으로 죽어 나가는 드라칸들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드라칸이라 표시된 적색 신호들이 빠른 속도로 줄어나갔다.

정말로 거짓말 같은 광경이었다.

심지어 방금 전, 조금의 시간차조차 없이 동시에 죽어 나간 드라칸들의 죽음은.

명백하게 상식을 넘어선 것이었다.

“……뭐야, 이건? 지금 거, 뭐였지?”

“맙, 소사.”

통제실의 모두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절로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그들 모두가 이것이 명백하게 유성 그가 벌인 일임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이전의 전투로 이미 그가 정말 대단한 수준의 파일럿이란 건 알았지만,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마저 벌어질 거라고는 또 몰랐다.

정말 모두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전방위의 드라칸들이 지워져 버린다고? 조금의 시간차조차 거의 없을 정도로 일시에?

이런 일은, 상식적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어날 수도, 그럴 리도 없는 것이다.

“방금 전의 공격은 대체 뭐지?”

함장, 라프티리아과 부함장 아스트라.

마나 사용자인 그들마저 놀람으로 인해 얼굴이 굳었다.

다른 이들처럼 그 비정상적인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은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찰나의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

충격적인 광경에 잠시간 입을 벌리고 있던 부함장 아스트라.

그는 조심스럽게 함장 라프티리아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놀란 표정만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것이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부함장 아스트로는, 굳은 표정과 함께 유성이 탄 기가스 EF-05 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건 설마…….’

그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것은 분명 오로지 각성자들만이 가능하다는 능력인 각성기(覺醒技)가 분명해 보였다.

* * *

“크윽.”

유성은 머리를 찌르르 울려대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각성기를 사용한 반작용의 대가였다.

마나 능력을 각성한 지 채 하루가 되지 않은 그였다.

그 때문에 능력의 사용 또한 최소한으로 억제하였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무리는 무리였다.

‘미치겠군. 역시 아직은 부담을 버틸 수 없는 정도인 건가?’

머리가 지진이라도 난 듯이 울려댔다.

다급한 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사용했던 대가는 컸다.

당장에라도 정신을 잃을 듯 시야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 과실은 분명하게 그에게 돌아왔다.

덕분에 간신히 함선 메티스에 달라붙어 있던 놈들만큼은 어떻게든 죄다 격추하는 데에 성공했으니까.

‘불과 1초를 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는 건가.’

과거에는 자유자재로 사용했던 각성기.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눈 감았다 뜰 찰나 정도의 시간을 사용하고서도 부담이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물론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이 능력은 사용자의 정신에 부담을 어마어마하게 가져다주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그러한 반동을 감내하고 각성기를 사용하였음에도, 여전히 드라칸 놈들의 수는 많았다.

[■■■■!]

유성은 달려드는 놈들을 차근차근 제거했다.

알아서 접근해 오는 놈이라면 구태여 마력을 소비할 필요조차 없이, 초진동검을 스윽 내리긋는 행위만으로 끝이었다.

놈들은 전투용 기가스의 앞에서 미약하다.

그의 눈이 빠르게 전장을 훑었다.

‘놈들의 여왕은 어디에 있는 거지?’

지금 나타난 이 드라칸 무리에는 단 한 마리의 전투체조차 없었다.

죄다 양산체뿐이었다.

그 말의 의미는, 여왕이 무리를 이룬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군체라는 소리였다.

전투를 목적으로 한 전투체를 뽑아낼 능력조차 없을 정도의 군체 말이다.

‘분명 여왕은 제 자신을 제대로 지킬 힘조차 없을 거다. 멀지 않을 거야.’

때문에 자식들인 드라칸 놈들이 여왕과 멀어지려 할 리가 없었다.

분명 여왕은 이 근방에 있을 터였다.

“오퍼레이터.”

[……아, 네. 말씀하십시오, 유성 생도.]

‘쯧, 넋이 나갔군.’

유성은 미간을 미약하게 찌푸렸다.

전투가 한창인데 얼이 빠져서 한발 늦게 대답하는 오퍼레이터라니.

물론 어느 정도 이해는 가기는 했다.

방금 전 자신이 보였던 무위를 목격했다면, 그녀만이 아니라 마나 사용자였어도 놀랄 것은 다르지 않았으니.

“혹시 이 근방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의 드라칸들이 한데 모여 있는 지점이 있습니까?”

[아. 있습니다. 지금 바로 위치 지도 보내 드리겠습니다. 유성 생도가 있는 지점을 기준으로 정확히 20여 킬로미터 거리입니다.]

삑.

동시에 화면상에 빨간 선이 죽 이어지듯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 말에 유성이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를 돌린 지점에는 작은 소행성이 있었다.

‘설마 저긴가?’

유성이 카메라를 확대해 자세히 살피려던 순간.

[■■■■!]

그때 뒤쪽에서 달려드는 드라칸의 고함이 들려왔다.

유성은 놈에게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총구만 향하여 단번에 격추했다.

원거리 무장이 있는 지금의 그에게는 저 정도 상대는 따로 확인을 할 필요조차 없다.

고작 유성체 등급의 드라칸은 움직이기만 할 뿐인 떨거지에 불과하니까.

해당 지점에 시선을 집중한 그는 카메라를 확대했다.

소행성. 그곳에 빼곡하게 달라붙어 꾸물거리는 드라칸 놈들이 보였다.

그중, 유독 비상식적으로 거대하여 언뜻 전투체처럼 보이는 덩치의 드라칸이 하나 있었다.

목표를 찾은 유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찾았다.’

분명 여왕체였다.

저 중에서도 유독 많은 양의 마나를 지니고 있었다.

여왕체는 산란을 위해 보통의 드라칸에 비해 수배 이상의 마력량을 지녔다.

“라피스. 여긴 부탁해.”

[어, 어? 뭐라고?]

유성은 채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곧장 EF-05를 조작했다.

등에 달린 제트팩에서 새파란 마력이 불꽃처럼 점화하며 쏘아졌다.

단숨에 거리를 좁혀 소행성으로 접근했다.

소행성에는 정말이지 바글바글할 정도로 많은 드라칸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

[■■■!]

놈들은 여왕이 머무르는 소행성까지 접근한 불청객 유성의 등장에 사납게 소리쳤다.

명백한 적대감의 표시였다.

드글거리는 놈들을 응시하며 유성은 생각했다.

‘좋아, 아직 여유분은 충분하다.’

마력이 바닥까지 떨어지려던 찰나, 유성은 미리 준비되어 있던 포션을 단숨에 삼켰다.

다시금 마력이 빠르게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어차피 마나 포션은 잠깐의 일시적인 회복의 효과를 가진 게 전부였다.

결국에는 제 것이 아닌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기에, 몸에 부담이 쌓이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일시적으로나마 부족한 마나를 채우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후-.”

긴 한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유성은 총구를 정확하게 여왕의 미간을 향해 겨누었다.

그를 향해 포효하며 적대감을 표시하는 녀석을 바라보며.

유성이 말했다.

“죄다 사라져라, 이 지긋지긋한 것들.”

여왕의 머리가 날아갔다.

강한 에너지를 머금은 마력탄이, 여왕의 머리를 산산조각냈다.

산산이 부서진 파편이 온 우주로 느리게 퍼져 나가는 것이.

똑똑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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