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각성자(1)
“일단 한 놈.”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확실했다.
확인을 할 필요는 없었다.
유성은 힐끗 뒤쪽으로 주었던 눈길을 거두곤, 다시금 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스치듯 완전히 지나쳐 가자마자, 정지한 듯 멈춰서 있던 드라칸의 몸체가 쩍 벌어지더니 그대로 갈라졌다.
퍽!
곧이어 놈의 몸체에서 새파란 체액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출격과 동시에 한 놈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유성이 거기에 연연하는 일은 없었다.
대신 유성은 이미 방금 전 그가 쓰러뜨렸던 드라칸을 완전히 잊어버리고서, 다음 먹잇감을 찾을 뿐이었다.
적이라면 이 순간에도 넘치도록 많았다.
스각!
그는 종횡무진 놈들의 사이를 날아다녔다.
중력이라는 게 거의 존재치 않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도 그에게는 아무런 방해조차 되지 못했다.
[■■■!!]
“쯧, 요란하기는.”
유성은 사납게 달려드는 드라칸의 포효에도 그저 낮게 혀를 찼다.
그에게 긴장감은 조금도 보이질 않았다.
드라칸의 발톱과 이빨은 그에게 닿지 못한다.
하나같이 생김새는 제각각이라도, 놈들의 공격에는 공통점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놈들이 원시적이라는 점이었다.
특히나 드라칸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축에 속하는 양산체라면 더더욱.
양산체는 전투형이 아니라 자원 채취를 목적으로 찍어내듯 만든 종류였다. 그런 탓인지 모든 드라칸 중에서도 가장 원시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죽어.”
기가스 EF-05의 두 팔에서 뻗어 나간 길고 예리한 초진동검이 달려드는 드라칸의 몸체를 찢어 버렸다.
원래부터 그의 전장은 우주였다.
쐐액-!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각도로 급작스럽게 꺾이며 공격과 쇄도, 이탈을 반복했다.
유성 그가 한 번의 가속과 쇄도를 자행할 때마다, 반드시 한 놈의 몸체가 두 갈래로 나뉘었다.
그야말로 한 줄기의 섬전 같은 살육전이었다.
“어…….”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라피스가 입을 벌렸다.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니, 쟤 진짜. 정말 마나를 처음 사용하는 게 맞는 거야?”
하도 황당해서 의심이 들 정도였다.
당장 마나 사용자인 라피스조차도 오랜 시간 마나를 다루는 연습을 해 왔다.
그것은 마나를 깨달은 직후.
그러니까 아주 어린 시절부터였으므로 족히 10년에 달할 정도였다.
그나마도 라피스는 뛰어난 마나 사용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스크래퍼를 통한 연습을 해 왔었기에 그나마 이 정도였다.
타고난 인재라는 의미다.
그런데…….
지금 유성이 보이는 저력과 움직임은, 그러한 것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상회? 아니, 이건 그 수준으로 표현될 것 정도가 아니다.
차라리 무쌍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이었다.
라피스는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건 말이 안 되잖아? 거기다 우주전은 또 언제 배운 건데?”
유성은 우주에서도 마치 새처럼 자유롭게 움직였다.
이건 이미 말이 가능한 수준을 벗어난 지가 오래였다.
지금 이곳은 중력이 존재하는 지상이 아니었다.
분명 난생 처음으로 마주하는 게 분명한 우주 환경이었다.
그런데도 저토록 자유로운 움직임이라니?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녀의 귓가에, 유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라피스. 주의 놓지 마.]
“뭐, 뭐?”
쾅!
스크래퍼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뒤흔들렸다.
“아윽!”
그녀는 드라칸과 맞부딪힌 충격으로 인해 반대편으로 튕겨 나갔다.
우주 공간인 탓에 위아래 없이 시야가 뒤죽박죽이 되어 마구 뒤흔들렸다.
“뭐야!”
고개를 들자 어느새인가 머리 위에 드라칸이 접근해 있었다.
[■■■■-!]
녀석은 날카로운 괴성과 함께 그녀를 향해 입을 쩍 벌렸다.
“이 자식!”
드라칸의 흉포한 모습에 인상을 팍 찌푸린 라피스가 이를 악물었다.
‘기가스의 조종이 어려워!’
그녀의 기가스, 스크래퍼가 양팔을 크게 허우적거렸다.
우주는 중력이란 게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당연히, 떠밀면 떠미는 대로 튕겨 나가기 마련이고 상하좌우는 물론, 위아래마저 신경 써야 하는 공간이었다.
완벽한 입체 조종을 신경 써야만 하는 것이다.
라피스는 오로지 콜로니의 중력이 존재하는 지상에서만 스크래퍼를 움직여 왔기에, 그러한 움직임에만 익숙해 있었다.
이런 위아래도 없는 상황에서 움직여야만 하는 우주 공간에서의 조종 따위를 그녀가 생각해 본 적이 있을 턱이 만무했다.
당황해서 스크래퍼에 등과 다리에 장착된 제트팩을 아무렇게나 마구 눌렀다.
‘당황했군, 저 녀석.’
유성은 그러한 스크래퍼의 동작을 보곤 라피스가 당황했음을 알았다.
그는 차분한 음성으로 통신을 전달했다.
[라피스. 등 부위의 제트팩을 먼저 켜고 후순위로 왼발의 제트팩을 축으로 켜라. 주의해야 할 건 아주 느리게, 부드럽게다.]
“부, 부드럽게?”
기이잉-.
그 말에, 라피스는 조종간의 제트팩 레버를 아주 느리게 끌어당겼다.
그러자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하던 스크래퍼의 움직임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지, 진짜네.”
라피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천히 움직이니 기가스의 조종이 한결 쉬웠다.
금세 중심을 잡은 라피스가 엉거주춤하게 자세를 잡았다.
물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버릇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인간인 이상에야 당연하게 가질 수밖에 없는 본연의 버릇이었으니.
“돼, 됐다.”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라피스에게 유성은 덧붙였다.
[라피스. 그 상태에서 드라칸이 먼저 달려들기를 기다려. 절대로 먼저 달려들지 마.]
공격과 방어는 자세부터가 다르기 마련이었다.
공격은 자신의 자세에서부터 상대방의 동작마저 신경 써야 하지만, 방어는 오로지 상대방만을 신경 쓰면 되었다.
상대적으로 쉬운 것은 자명했다.
게다가 라피스는 지금 어떠한 기초조차 없이 우주에 튀어나온 초짜 중의 초짜 파일럿이었다.
제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하는 것은 파일럿의 기본 과제였다.
물론 드라칸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조차 어려운 것은 분명하지만, 상대적으로 그러하다는 의미다.
[■■■!]
그녀는 달려드는 드라칸의 모습에 초진동검에 마력을 집중했다.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놈의 위험한 모습에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놈이 라피스가 탄 스크래퍼를 물어뜯기 위해 입을 쩍 벌린 순간.
스크래퍼의 초진동검이 놈을 향해 전력으로 휘둘러졌다.
콰득!
드라칸은 달려들던 제 자신의 가속으로 인해 피하지도 못하고 공격에 머리를 관통당했다.
즉사였다.
“잡았다!”
라피스는 차오르는 성취감과 함께 소리쳤다.
[그래.]
하지만 그 와중에도 유성은 흡사 푸른 빛줄기처럼 움직이며 함선 메티스를 노리는 드라칸을 도륙내고 있었다.
무미건조한 대답을 하면서도 벌이는 광경은 흡사 무쌍이나 다름없었다.
그 모습에 라피스는 이젠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와아, 저 사기캐…….”
이 이상 놀라봐야 자신만 머리 아파질 터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떠오르는 생각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놀랐어. 설마 유성이 남을 가르칠 정도라니.’
고작 유성의 말 한마디만으로 상황이 급속도로 쉬워졌다.
그것은 물론 당연한 사실이었다.
라피스는 모르는 사실이지만, 유성은 어떠한 파일럿보다도 절대적인 수준의 출격 횟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였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를 데리고 전장에 참여한 경우도, 결코 적지 않았다.
과거의 전장은 지금 이상으로 열악했기 때문이다.
갓 각성한 마나 사용자마저 데리고 전투에 임해야 했을 정도로.
“하아, 하아!”
라피스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는 역시였다.
경험이 부족한 파일럿인 탓에 마나를 순간적으로 초진동검에 너무 많이 쏟아부었다.
그에 따라 호흡이 급격하게 가팔라졌다.
‘하지만, 나도 가능해.’
그녀는 우주 공간에서조차 드라칸의 첫 격추를 성공해 내었다.
라피스는 무수히 많은 콜로니의 생도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기갑 파일럿 적성 판정을 받은 인재 중의 인재였다.
어떻게든 기합을 담아 필사적으로 기가스를 움직여 놈을 쓰러뜨리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드라칸은 지금 그녀가 쓰러뜨린 놈이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드라칸은 많고도 많았다.
삑.
유성의 통신이 그녀의 귓가에 꽂혔다.
[라피스. 머리 위쪽이다.]
‘위라고?’
그녀가 다급히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이미 드라칸 한 놈이 코앞까지 짓쳐들어온 상황이었다.
라피스가 이를 아득 악물었다.
갓 마나 사용자가 된 유성조차도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선전하는 와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라피스만 이렇게 뒤처져 있을 순 없었다.
그녀는 마나 사용자로 유명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또한 어린 시절부터 누구보다 긴 시간 동안 마나 사용을 배워 왔다.
자존감은 물론이고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본인의 능력에 대한 믿음 또한 충만하다.
어린 시절부터 영민했던 그녀는 그러한 재능마저 뒷받침할 능력까지 출중했다.
번쩍.
이를 악문 그녀의 두 눈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내가 당할 성 싶으냐아아!”
그녀는 반발심 가득한 고함과 함께 달려드는 놈을 맞상대했다.
* * *
그러한 라피스의 상황을 힐끗 살핀 유성은.
“후.”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라피스가 발끈해서 어떻게든 달려드는 드라칸을 틀어막고 있었다.
‘최소한 쉽게 당하지는 않겠어, 저 녀석.’
하지만 웃을 시간은 없었다.
지금 그는 전장에 있었다.
금세 표정을 지운 그는 전방을 주시하며 자신의 상황을 두 눈에 담았다.
유성, 그의 두 동공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상하좌우를 모두 살폈다.
‘앞에 둘, 좌우로 하나씩.’
총 네 마리의 드라칸이 시간차를 두고 그를 향해 덤벼들었다.
많은 수였다.
갓 마나 사용자가 되어 마력량조차 얼마 되지 않는 그였기에 쉽지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촤악!
거의 동시에 차례로 베어 넘겨 버렸다.
드라칸 놈들이 내민 발톱과 이빨 따위는, 조금도 그에게 닿지 못했다.
그 움직임이란 마치 날카로운 분쇄기와도 같았다.
[■■■■-!]
그의 등장을 알아챈 드라칸들이 고개를 돌렸다.
놈들이 포효와 함께 달려들었다.
사뭇 맹렬한 기세였지만, 유성의 기가스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놈들을 상대했다.
푸른 검날이 놈들을 훑고 지나칠 때마다 여지없이 한 놈씩 썰려 나갔다.
드라칸들을 도륙 낸 유성이 시선을 돌렸다.
화면을 조작해 주변을 살폈다.
“후.”
유성은 여전히 함선 메티스를 둘러싸고 돌아다니는 수많은 드라칸들의 광경에 인상을 찌푸렸다.
상황은 급박하다는 말로도 모자랄 만큼 촉박했다.
“정말 더럽게도 많군.”
놈들은 온 사방에 있었다.
심지어 그에게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는 놈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함선 메티스의 크기가 워낙 큰 탓에 시야에 담기지 않은 놈들도 있었다.
키잉.
유성의 기가스 EF-05의 양팔에서 두 자루의 초진동검이 푸른 입자를 방출했다.
검날이 뿜어내는 빛의 세기가 한층 강렬해졌다.
마력량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증이었다.
‘마나야 부족하면 다시금 회복하면 그만이지, 하지만 함선은 파괴되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들러붙은 놈들은 무리해서라도 모조리 떼 내야 해. 지금 당장.’
지금 급한 것은 마나량의 문제가 아닌 드라칸 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