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기가스 사출(2)
위잉-! 위잉-!
유성은 곧장 기가스가 보관되어 있을 격납고로 향했다.
보호 복장을 입을 시간조차 없었다.
그는 복도를 빠른 속도로 뛰다시피 하며 대충 걸쳐 입었다.
격납고에는 기가스 EF-05와 스크래퍼가 대기 중이었다.
이미 한창 작업에 열중 중인 기가스 엔지니어들이 보였다.
유성은 한눈에 그것이 출격 준비를 위한 조정 작업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연결되어 있던 복잡한 관을 한창 뽑아내며 마무리 작업 중이었다.
급박함을 느꼈던 유성이 그들에게 물었다.
“준비는 다 되어가는 겁니까?”
“여어!”
“음?”
그런 그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아무렇게나 기른 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의 엔지니어였다.
그는 유성을 향해 손을 들었다.
“소년! 바로 네가 파일럿인가?”
“네, 맞습니다.”
“흠!”
그는 팔짱을 끼고는 유성의 이모저모를 훑고는 감상을 표했다.
“다른 녀석들이 어리다고 해서 그런 줄은 알았지만 이건 생각 이상으로 더 어린 녀석이잖아? 정말 네가 그 대단한 실력을 보인 파일럿이 맞는 거냐?”
“복장만 봐도 알 것 같습니다만. 당장 이곳에 저 말고는 파일럿이 없지 않습니까.”
지금 유성은 기갑 파일럿의 복장을 착용한 상태였다.
착용자의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복장이기에, 남들보다 눈에 띄는 것은 당연했다.
인상을 구긴 유성이 물었다.
“그보다 준비는 언제 끝나는 겁니까?”
“지금 보고 있으니 알겠다만 한 이삼 분 정도만 더 기다리라고. 우리도 최대한 빠르게 작업 끝마치고 있으니까.”
“……바깥 상황은 꽤나 심각한데요. 바로 끝낼 수는 없는 겁니까?”
“안 그래도 거의 다 끝났어. 조금만 참아.”
유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 유성은 꽤나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드라칸이 한둘 수준도 아니고 무려 세 자릿수였다.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대화나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바깥에서는 이 순간에도 드라칸이 함선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는 도중이었다.
남자는 작업을 마무리하는 기가스 엔지니어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만 우리도 서두르고 있는 거야. 기가스 EF-05의 관절 전체가 삐거덕거리더군. 그 상황에서 무작정 내보낼 수는 없잖아?”
‘그러고 보니.’
그제야 유성은 자신이 조금 전 콜로니의 전투에서 기가스의 상태를 전혀 생각지 않고 싸웠다는 것을 상기했다.
‘내가 기가스에 신경을 쓰지 않기는 했었지.’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마나가 바닥이 난 탓에 그만큼을 다른 것으로 때워야만 했다.
기가스의 관절이 닳아 망가지는 것 따위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상황도 급박했으며, 여유는 그 이상으로 없었다.
그는 유성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이왕이면 숨 좀 가라앉히라고, 소년.”
“…….”
남자의 두터운 손길에 문득 유성은 자신이 조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오래간만이라서 그런 건가.’
정신을 가라앉혀야 할 필요성을 느낀 유성이 눈을 감았다.
지난 삶의 전쟁 이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너무 조급해져 있었다.
유성은 복기라도 하듯 숨을 정리했다.
그런 유성에게 남자가 말을 건네었다.
“그나저나 콜로니에서 도망 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드라칸이 공격을 해 오는 거야? 심지어 이번 놈들은 다른 무리라면서?”
그 말에 유성은 고개를 끄덕이듯 동의했다.
“아예 다른 무리라는 건 분명합니다. 규모 자체가 아예 다르니까요.”
아직 반나절은커녕 수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시금 드라칸을 맞닥뜨린 상황이었다.
심지어 이 녀석들은 나타난 방향조차 전혀 다르다.
아예 다른 무리인 것만은 확실했다.
쿠구궁-.
바깥에서는 연신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에 남자의 미간에 짙은 골이 파였다.
“끄응. 진짜 드라칸의 수가 어지간히도 많은가 보네. 콜로니에서 도망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이 난리인지.”
그의 불평에 유성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방금 전 통제실에서 듣기로는 정확하게 102마리의 드라칸이라더군요.”
유성의 말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뭐, 뭐?! 드라칸이?”
“네. 이건 몰랐나 보군요. 어쩌면 물론 드러나지 않은 놈들도 있을 수 있을 테니 수는 그보다도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허어-.”
그러한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답변에 남자는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런 그를 놔두고, 유성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방향은 명백하게 수리를 끝마치고 있는 기가스, EF-05를 향해서였다.
이제 준비 작업은 완전히 끝났다.
막 작업을 끝마치고 멀어지는 기가스 엔지니어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설마 쟤가 파일럿이라고? 학생으로 보이는데?”
“진짜야. 내가 조금 전에 봤다고. 저 소년이 내리는걸.”
유성은 놀라는 그들에게 조금의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고작 수 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이런 반응은 귀찮을 정도로 많이 본 탓이었다.
유성은 눈앞의 기가스 EF-05를 올려다보았다.
그때였다.
기잉-.
옆에 서 있던 스크래퍼가 푸른빛을 발하며 고개를 들었다.
스크래퍼의 고개가 유성 쪽으로 향했다.
[유성!]
“뭐야.”
스크래퍼로부터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유성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라피스. 벌써 타 있었어?”
[응. 미리 와 있었지.]
하긴 상황이 상황이었다.
유성보다 라피스가 먼저 와서 준비를 끝마칠 만도 했다.
그러다 문득, 겨를이 없었던 유성은 스크래퍼에 눈길이 갔다.
그는 제트팩이 추가로 장착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간도 없었을 텐데 수리를 하면서 용케도 기체에 제트팩까지 장착한 건가.’
스크래퍼는 온전히 그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녀석에게 제 맘대로 장비까지 달다니…….
‘미치겠군, 내 기가스에다가 뭔 놈의 장비를 이딴 식으로…….’
유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의 기가스는 이미 예전의 모습을 잃고 있었다.
몸체는 그대로였지만, 팔다리의 부품은 거의 대부분 전투용 기가스의 것으로 교체해 버렸다.
등판과 다리 쪽에는 제트팩까지 장착한 모양이었는데, 그것은 척 보기에도 이미 산업용 기가스의 모습을 아주 엇나간 뒤였다.
유성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줄곧 뼈대부터 완성까지 직접 해내었던 기가스였다.
그렇기에 나름대로의 애정 또한 큰 기가스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해는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기야 별수 없는 일이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상황이 상황이었으니, 불만을 가지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었다.
지금은 더 급한 과제가 먼저였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네가 직접 만든 물건이라지?”
“……네.”
옆에 따라붙은 중년의 엔지니어는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는 유성의 어깨를 위로라도 하듯 툭툭 두들겼다.
“너무 미련 가지지는 말고, 일단 잊어.”
“알겠습니다.”
그는 멀어지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조심히 타라고!”
“네.”
대답과 함께, 유성은 기가스의 조종석에서 길게 늘어진 줄을 잡았다.
접촉을 감지한 줄이 위로 올라가며 그를 조종석으로 올려 주었다.
털썩!
유성은 익숙하게 조종석에 안착했다.
쿠웅. 쿠웅.
그 사이, 라피스가 탄 기가스 스크래퍼가 먼저 움직였다.
스크래퍼가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사출로로 이동했다.
오퍼레이터의 음성이 시끄럽게 격납고를 울려댔다.
[기가스 스크래퍼. 사출 준비. 이상 무.]
[사출로 레디. 셋(Set).]
[진로 이상 무. 클리어.]
[기가스 스크래퍼 사출 세팅 올 클리어(All Clear).]
삑.
유성은 모니터를 켜 스크래퍼와의 통신을 연결했다.
그러곤 딱딱한 얼굴로 조작하고 있는 라피스를 응시하며 말문을 열었다.
“라피스.”
[……응? 왜, 왜?]
라피스의 대답은 한 발 느렸다.
그것이 척 봐도 잔뜩 긴장한 탓임을, 유성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도 한때는 경험했던 일이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라고.”
[설마 날 걱정해 주는 거야?]
“그보다는, 내 스크래퍼 쪽이 걱정되어서.”
[……아. 뭐야, 그게!]
라피스의 반응은 격렬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발끈한 것이 어째 잔뜩 실망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잠시간 말없이 응시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어때, 한결 편해졌어?”
[어? 어.]
그래도, 그 덕분인지 긴장이 풀린 게 한눈에 보였다.
말짱한 눈으로 돌아온 그녀의 모습에, 미약하게나마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린 유성이 화상 연결을 껐다.
전투에서 몸이 굳으면 반응할 것에도 반응하지 못하고 당한다.
오로지 통신 채널만을 연결한 채로, 유성이 말했다.
“그럼 조심하라고.”
[알겠, 어어억-?!]
콰앙-!
그녀가 채 대답을 마치기도 전, 스크래퍼가 굉음을 터뜨리며 사출로에서 발사되었다.
[으아아!]
라피스의 비명으로 보아 익히 그 부담감을 알 만했다.
당연한 거였다.
사출로는 기가스를 대포처럼 쏘아 우주 공간으로 날려 보내는 역할을 했다.
당연히 그 순간의 압박감은 말로 표현될 게 아니었다.
파일럿에게는 온몸을 짓누를 듯 어마어마한 압력이 동반되었다.
하지만 라피스는 무사히 압박을 견디고는 사출로에서 쏘아져 우주로 나갔다.
[기가스 EF-05. 사출 준비. 이상 무.]
그리고 이번엔 유성, 그의 차례였다.
오퍼레이터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출로 레디. 셋.]
[진로 이상 무. 클리어.]
[기가스 EF-05 사출 셋팅 올 클리어(All Clear).]
위잉! 위잉!
시끄러운 소음이 그를 괴롭혔다.
그 속에서, 그는 조종간을 붙잡은 채 긴 한숨을 토해내었다.
“후-.”
숨을 내쉬자 머리에 쓴 헬멧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긴장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상에 빠지게 되는 것은 제아무리 감정의 절제가 뛰어난 그라도 어쩔 수는 없었다.
그는 우주 공간과 이어진 사출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설마 이 사출로에 다시금 서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과거에는 수도 없이 반복했던 일이다.
하지만 현생에서는 아니었다.
이전의 그였었다면 농담으로도 믿지 못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꽈악.
그는 조종간을 붙잡으며, 마력을 불어넣었다.
번-쩍!
두 눈의 안광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믿지 못할 일이라도, 지금 이건 분명 현실이다.’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
죽지 않으려면 싸워야 한다.
싸우려면 언제나 필사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렇기에 유성은.
그는, 오로지 이 순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파일럿이라도 전투에서 한눈을 팔면 당하는 것은 순식간이니까 말이다.
그가 조종간을 통해 마력을 기가스에 불어넣는 순간, 기가스의 등 뒤에 달린 제트팩이 불을 뿜었다.
쿠아아!
급가속하며 그의 EF-05가 사출로를 타고 쏘아졌다.
‘큭.’
사출로에서 쏘아진 그 순간, 그는 말도 못 할 수준의 거대한 압력을 받았다.
마력을 통해 강화한 신체로 버텨내며, 그는 사출로의 가속을 기가스와 함께 받아 내었다.
순식간에 우주 공간으로 쏘아지듯 나아간 그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
‘드라칸!’
그가 사출되는 정면에 드라칸이 있었다.
잔뜩 커진 두 동공이 드라칸의 모습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문제없어.’
유성은 달려가던 자세 그대로 두 팔을 엑스자로 끌어당겼다.
우웅!
그러자 EF-05의 두 팔에서 진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마력이었다.
기가스의 양손에는, 총이 아닌 푸른빛을 흩뿌리는 광검이 들려 있었다.
새파란 마력을 날카로운 입자로써 분출하는 초진동검이었다.
그는 사출로에서 가속해 쏘아진 속도를 이용해 그대로 놈을 스치듯 지나쳤다.
서걱!
섬뜩한 감각이 기가스의 두 팔을 타고 그에게로 전해졌다.
“일단 한 놈.”
확인을 할 필요는 없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