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함선 메티스(4)
유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라피스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내었다.
그 과정에서 비록 불법으로 기가스를 탈취해 탑승했다고는 하더라도, 그것은 필수불가결한 것에 불과했다.
제아무리 군이라도 그 사실을 가지고서 문제를 제기하진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듯 라피스는 슬쩍 웃었다.
“웃차!”
그러더니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볍게 기지개를 편 그녀는 몸을 돌렸다.
“그럼 난 가볼게.”
“가려고?”
“응. 별것 아닌 내용을 가지고 숨기기는.”
“고마워, 라피스.”
유성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라피스는 대답 대신 밝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곤 밖으로 나섰다.
끼익-.
문이 닫힌 후.
“…….”
라피스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바닥만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곧 라피스는 반대편의 자신이 배정받은 숙소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조금 섭섭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 정도는 얘기해 주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 * *
“……미안, 라피스.”
문 뒤편의 유성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마나 사용자였던 그는 라피스의 목소리를 모두 들었다.
* * *
쏴아아-!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
유성은 한창 샤워 중이었다.
물줄기가 달궈졌던 몸의 열기를 식혀 주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군.’
유성은 생애 처음으로 마력을 끌어 올린 부작용을 맛보고 있었다.
그것도 장시간 동안 없는 마력을 쥐어짜다시피 해 가며 적들과 싸웠다.
그 후유증은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몸이 무겁다는 수준이 아니라, 현기증이 일어 정신을 놓으면 곧장 쓰러질 정도였다.
아마도 지금 누군가가 유성의 얼굴을 보았다간 아마도 깜짝 놀랄 터였다.
“…….”
거울을 통해 비치는 유성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시퍼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색이었기 때문이다.
휘청!
실제로 그는 순간적으로 몸을 가누지 못해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간신히 벽을 붙잡고 선 그는 생각했다.
‘괜찮아. 버틸 만하다.’
머리가 어지럽기는 해도 이 정도는 예상했다.
‘어차피 이 정도는 단순한 성장통일 뿐이야.’
마나. 마력. 그것은 단순히 이름뿐인 에너지가 아니다.
마나 사용자와 함께 성장하는, 기량을 가진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육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자극을 받으면 받을수록.
한계까지 쥐어짜면 짜낼수록.
마나 능력은 더욱 늘어나고, 유연해지기까지 할 것이다.
유성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성은 만 하루 동안 이어진 산발적인 전투로 인한 자신의 성장치만을 생각했다.
육체에의 부담감 따위는 일절 생각하지 않았다.
정작 그의 몸이 지금도 이렇게 생고생을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후우.”
간신히 샤워를 끝마친 그는, 곧 쓰러지듯 쇼파에 앉았다.
이 간단한 행위를 끝마치는 것조차 힘겨웠다.
아직 함장과 부함장, 그들의 호출이 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다.
그렇기에 유성은 잠시간 앉아서 쉬기로 했다.
최소한, 몸을 조금이라도 회복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을 테니.
* * *
그로부터 한 시간여가 지난 이후.
유성은 문을 열고 나섰다.
그는 군인의 안내를 받아 통제실 쪽으로 향했다.
“음?”
저 멀리 군인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군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째서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건가!”
“함장님의 명령이십니다.”
군인은 남자의 고함에도 꿋꿋이 대답했다.
유성은 그들의 실랑이에 어떠한 상황인지를 알아차렸다.
‘콜로니에서 대피해 온 이들 중 하나인가.’
아무래도 저 남자가 안으로 들어서기 위해 난동을 부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문득.
유성은 남자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익숙한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유성은 금세 남자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콜로니의 부 막리스 의원이로군.’
지금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지만.
콜로니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던 만큼, 정치 세력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남자는 그곳에 속한 이였다.
부 막리스 의원. 나름대로 콜로니에서는 인지도가 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군인의 태도는 이전과 같았다.
“지금은 전시 상황입니다. 메티스 함내의 최고 통솔자는 어디까지나 라프티리아 함장님으로, 콜로니에서 어떤 지위이셨던 간에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실 수는…….”
군인은 정당한 규율을 내걸며 말하고 있었지만, 도통 의원이라는 남자는 들어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귀찮겠군, 저 군인도.’
유성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저런 인물이야 어디에나 있으니까 말이다.
‘무시하고 가는 게 좋겠어.’
유성은 앞장서서 그를 안내하는 군인을 따라 이동했다.
하지만 곧 그는 의외의 말을 들었다.
“그 파일럿 대체 누구야! 왜 있었으면서 마지막까지 내보내지 않은 거야, 자식들아!”
멈칫.
파일럿. 지금 저 의원이라는 남자는 유성 그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하지만 유성이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군인의 뒤를 따랐다.
그런 유성의 귀에 남자가 내지르는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이 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릴 거다! 네놈들이 그 파일럿을 진작 내보내지 않은 탓에 콜로니가 터져 버린 거라고! 있었으면 미리 내보내던가!”
‘정신이 나간 놈이로군.’
유성은 대충 한 귀로 흘리며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거슬리기는 했지만, 흘려 넘기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럴 의도가 없던 모양이었다.
그는 그러한 유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야! 그럼 저 꼬맹이는 뭐야?! 내가 저 꼬맹이보다 못하다는 거야, 뭐야?!”
“……저 학생은 현재 중요한 이유로 인해…….”
그 말을 들은 유성은 자신을 손가락질해대는 남자를 힐끗 보았다.
이제 그는 유성을 꼬투리 잡고 있었다.
참 저런 끈질긴 인물에게 걸려 버린 군인이 안타깝게 되었다.
하지만 유성은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었다.
그대로 무시하고 지나치려는데, 그를 멈춰 서게 만드는 한 마디가 있었다.
“저 어린 새끼가 뭐 하는 놈이길래 나보다 중요하다는 거야!”
‘……어린 새끼?’
순간 유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유성이 뒤를 돌아보자, 그는 남자와 서로 눈이 마주쳤다.
딱히 시선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남자가 대놓고 윽박질렀다.
“저 새끼가, 어른이 보는데 눈빛이 저게 뭐야?!”
“…….”
유성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대신 표정을 풀지는 않은 채 남자를 응시할 뿐이었다.
군인들은 그저 그 모습을 보며 침만 삼켰다.
그들은 이미 유성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침을 들었다.
다는 모르지만, 분명 중요한 인물이니 참고하라는 것 정도는 말이다.
[소년이 어디에, 무엇을 하려하건 간에 결코 건들지 말라는 지침이 있으니, 참고 바란다.]
쉽게 말해 그것은, 불가침이었다.
그 말은 저 소년이 그저 그런 평범한 생도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지금 그들의 앞에서 소리를 내지르는 남자보다도 더.
유성이 기가스를 직접 조종하는 것을 보지 못했기에 파일럿이라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하더라도, 그 정도를 유추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건들기 어려운 것은 남자 쪽도 마찬가지였다.
무려 콜로니의 의원을, 일개 군인들이 어떻게 제지한다는 말인가.
“뭐야, 인마!”
남자, 부 막리스 의원은 대놓고 소리를 내질렀다.
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마력을 끌어 올렸을 뿐이다.
고오오-.
끌어 올린 마력이, 두 눈에 모이며 새파란 빛을 발했다.
서늘한 기운이 쏘아지듯 남자를 덮쳤다.
“우, 웃?”
그것은 섬뜩하기 그지없는 안광이었다.
마치 온몸의 털이 쭈뼛 솟아오르는 듯한 감각.
남자는 저도 모르게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
잠시 그를 응시하던 유성은 이내 마력을 가라앉혔다.
시퍼런 안광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흥.”
고작 저 정도로 겁을 집어먹을 거면서 시비를 걸다니.
유성은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는 자신의 옆에서 멀뚱멀뚱 눈만 뜨는 군인에게 말했다.
“가시죠. 안내 다시 부탁드립니다.”
“어, 어? 아, 알겠습니다.”
유성은 앞장서는 군인의 뒤를 따랐다.
“이익.”
남자는 멀어지는 유성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콜로니에서 높은 지위를 누렸던 의원이 바로 그였다.
그런 그가 고작 학생의 눈빛에 놀라 뒤로 물러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자는 이미 멀어진 유성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귀찮군.’
유성은 미간을 찌푸리는 것만으로 그를 무시했다.
그는 자신의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전생의 그였다면, 뒤에서 거슬리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면 안 되었다.
사람 하나하나의 인권이란 게 존재하는 시대다.
폭력을 휘두르면 마땅한 처벌을 받고, 목숨이 존중받는다.
대전쟁이 벌어지던 시절의 지구에서와는 정반대였다.
당시는 일반인 천 명보다 마나 사용자 하나에 더 가치를 두던 시대였다.
기가스를 움직여 드라칸과 싸울 마나 사용자는 희소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에 마나 사용자의 존재 가치란.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인권이란 건 없었으며, 설령 언제 어디서 마나 사용자가 사람을 죽이더라도 말이 튀어나올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런 시대였다.
……전쟁이란 건 어디에나 죽음이 있게 했다.
인권 따위는 휴지 조각보다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유성은 이 조용한 시대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었다.
* * *
함선 메티스의 함교. 통제실.
“……그럼 다음 안건입니다만.”
“말하도록.”
함장 라프티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그에 부함장 아스트라는 모니터 화면을 함교 중앙에 띄우곤 말을 이었다.
“네. 현재 콜로니에 대피한 인원의 수는 정확히 9만 7,237명으로, 그들의 식사와 지낼 소비물품 등 고려할 안건이 산더미입니다.”
“정신없군. 부함장.”
당장 신경 쓸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점은 사람이었다.
대피한 인원이 10만 명도 안 된다니, 턱없이 적었다.
함선의 한계치 정원은 총 20만 명이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도 위험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그 절반밖에 채우질 못하다니.
나머지 인구는 콜로니의 붕괴와 함께 몰살당했다는 의미였다. 90만 명이 넘어가는 인구가 모두 말이다.
“하아. 피곤하군.”
라프티리아 함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무거운 눈두덩을 매만졌다.
그 모습에 부함장 아스트라가 쓰게 웃었다.
“그럴 수밖에요, 라프티리아 함장님. 많은 일이 있었지 않습니까.”
“…….”
고작 하루였다.
그 하루라는 시간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긴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400년 전의 영상 기록에서나 볼 수 있었던 드라칸이 나타났으며, 콜로니는 완전히 붕괴했다.
그로 인한 피해는 이로 말할 데 없을 정도로 막대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짙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콜로니에서부터 도주에 가까운 이동을 시작한 지는 고작 수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겪은 일이 많았던 탓인지 정신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