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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1화 (11/200)

11화. 함선 메티스(3)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

긴 대화 끝에 유성은 부함장 아스트라라고 하는 인물로부터 풀려났다.

그는 숙소를 배정받았다.

군인의 안내를 받아 따라간 그는 어느 숙소의 앞에 서게 되었다.

군인은 강철 문으로 이루어진 숙소를 두드리며 말했다.

“당분간은 이곳을 사용하면 되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부함장님으로부터 호출이 올 걸세.”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난 이만.”

유성이 고개를 숙이자, 군인은 자신의 할 일을 마쳤다는 듯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유성은 말없이 멀어지는 군인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러다 곧 몸을 돌린 그는 숙소의 문을 열었다.

내부는 함선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잘 되어 있었다.

방도 넓고 깔끔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유성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꽤 괜찮은데?”

그는 침대에 앉았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금세 피로가 몰려왔다.

‘피곤하군.’

고작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의 두 눈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마치 수명이 다 되어가는 전구와 같이, 몇 차례 푸른빛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유성은 자신의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 아직은 완전하지 않음을 알았다.

‘역시 마력을 다루는 데에는 아직 연습이 좀 필요한 건가.’

능력이 불완전하다.

새로운 세상에 환생을 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능력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제아무리 전생에서 숨 쉬듯 사용했던 능력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그가 깃든 육체는 줄곧 능력을 발전시키지 않은 평범한 육체였다.

그 탓에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벌써 몇 번이나 위기를 겪었다.

유성 그가 아직까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운 덕분이었다.

뿌득.

유성은 자신의 오른손을 꽉 쥐었다.

마력이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맺혔다.

말없이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던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운 따위를 믿을 수는 없겠지.”

곧, 그는 눈을 감았다.

‘역시 불안함을 내면에 담아둘 필요는 없다. 다시금 힘을 키워야만 해. 이번에는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처할 수 있도록.’

드라칸 놈들은 몸을 돌려 사라졌다.

함선 메티스를 보고서도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얌전하게.

유성은 그의 능력이 필요한 경우가 더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불안감이 마음속 한편에 싹텄다.

‘아니. 정말로 그럴까. 이미 모습을 드러냈던 놈들이, 이대로 완전히 자취를 감출까.’

두 가지의 상반된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의미였다.

뭐든지 처음 한 번이 어려울 뿐이다.

하지만 여왕체는 함선 메티스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여 완전히 사라졌다.

그 많던 자식들을 모두 이끌고 있었으니, 어쩌면 그것은 대이주 도중이었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드라칸이 무리를 이루는 군체 종족이라고 할지라도 그만한 수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경우는 적었다.

무리 전체를 움직이는 대이주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그저 정말로 우연의 일치로 콜로니에 도달한 것일지도 모르지.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을지도.’

그대로 쭈욱, 여왕체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을 계속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인류의 행성 테라와는 완전히 멀어지게 될 터다.

드라칸의 여왕체는 이 세상에 무수하게 존재한다. 그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유성의 전생이었던 이시혁 시절.

당시 그가 지구에서 보았던 여왕체만 하더라도 한둘 수준은 아니었다.

그 여왕체들은 하나같이 제각각 다른 행동 양식과 성격을 지녔었다.

그들의 행동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정말로 극히 희박한 확률로 인해 유성이 있는 콜로니에까지 나타나게 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일은 벌어졌고 유성은 움직여야 했다.

‘단시간 내에 최대한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 내 육체가 기가스에 탑승해도 버틸 수 있도록.’

생각에 생각이 계속해서 꼬리를 물 무렵.

깊어지려던 그의 상념을 누군가가 깨뜨렸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익숙한 목소리를 한 이가 그를 불렀다.

“나야, 유성.”

“라피스?”

유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문을 열자, 복도에서 라피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유성. 여기에 있다고 들었거든. 지금 들어가 봐도 괜찮지?”

그 말에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라피스에게 손짓했다.

“그래. 들어와.”

“하하…… 그럼 허락도 얻었으니까-.”

어색한 웃음을 흘린 라피스는 유성의 숙소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 먼저 복도의 양쪽 통로를 살폈다.

마치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는 듯한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곤 곧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라피스는.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슬그머니 주먹을 쥐었다.

“음?”

유성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뜬금없는 행동의 이유를 몰랐던 탓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유성 그 자신을 노린 것이었음은.

당한 직후에서야 알았다.

라피스의 불끈 움켜쥔 주먹이,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퍽!

“컥?!”

정확하게 복부를 노린 공격에 유성은 손쓸 도리 없이 얻어맞았다.

기습적인 일격을 허용한 유성은 배를 움켜쥐었다.

“자, 잠깐!”

그가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런 유성을 향해, 라피스가 주먹을 재차 휘둘렀다.

“죽어! 이 새끼야!”

유성은 이유조차 모른 채 일방적으로 당해야 했다.

* * *

실랑이는 그 후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래서.”

유성은 얼얼한 볼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내가 널 속였다고?”

“그래!”

“……속이기는 무슨.”

유성은 차마 아니라고는 하지 못했다.

투덜대는 그의 얼굴은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얻어맞은 유성의 입장에서도 딱히 좋은 반응이 나올 순 없었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괜히 이 상황에서 불만을 말해 봐야 한 대 더 맞을 게 분명했다.

지금 보이는 라피스의 표정과 주먹을 본다면 말이다.

라피스의 주먹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미약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위협적이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저 주먹은 바위조차 깨부순다.

물론 유성도 그녀의 반응이 영 이해 가지 않는 것만도 아니었다.

‘하긴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내가 마나 사용자였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으니 라피스의 입장에서는 속았다는 느낌이 들 법도 하겠지.’

사실 그간 라피스는 몇 번이나 유성 그가 마나 사용자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 왔었다.

아카데미에서도 유명할 정도의 검술 실력과 기가스 스크래퍼를 제작할 정도의 공학적 지식까지.

부족한 것은 마나를 다루는 능력뿐이었다.

아마 유성이 마나 능력자였다면 얼마든지 더 좋은 진로가 열렸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유성은 그러지 않았다.

줄곧 쥐 죽은 듯이 마나 능력자임을 숨겨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라피스를 속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의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하지만 예상외로.

라피스는 한 번 눈을 감아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언제 말해 줄 건데?”

“……뭐야.”

유성은 눈을 깜빡였다.

“라피스. 화난 거 아니었어?”

“화야 조금 나기는 했지. 우리 사이에 그런 것도 말을 안 해 주나 해서. 그래도 네가 말을 안 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게 아니야?”

“어…….”

유성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말을 흐리는 그의 모습에, 라피스가 눈을 번뜩였다.

“아니야?”

“어, 어. 아. 맞아. 적당한 때에 말해 주려고 했었어.”

순간적으로 일렁이는 푸른빛에, 유성은 황급히 대답했다.

등 뒤로 식은땀이 맺혔다.

그건 분명 사실이었다.

적어도 유성은 이번 생에서만큼은 자신이 마나 사용자가 아니었으면 했으니까.

그의 이유는 합리적이었다.

마나 사용자는 희소하다.

그것은 과거든 400년이나 지난 미래인 지금이든 여전했다.

그렇기에 모든 마나 사용자들은 언제나 확실하게 확인이 되어야 했다.

정보는 군부에 전달되며, 그 위치는 그들에게 공개된다.

설령 군인이 아닌 일반 민간인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유성은 쓰게 웃곤 말했다.

“모든 걸 말해 줄 순 없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이해가 갈만한 대답 정도는 해줄 수 있어. 난 내가 마나 사용자인 게 드러나길 원치 않았어.”

“……그게 신경 쓰였던 거야?”

“결정적으로는 말이지.”

마나 사용자는 초인이다.

그렇기에, 그만큼 관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유성만큼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가 마나 사용자이기까지 했다면.

아마 진즉 기갑 파일럿의 후보에 거론되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더더욱 관리는 철저하게 이뤄졌을 터다.

기갑 파일럿은 싫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 결과 진로는 확고하게 보장받지만, 대가로 유성은 발이 묶이는 것이다.

군부에 의해서 말이다.

짧게 설명하면 그 정도가 그의 고민이었다.

하지만 길게 풀자면, 유성 그는 자신의 전생마저 말해 주어야 했다. 자신의 재능이 어디에서부터 유래하였는가.

그는 라피스에게 이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흠.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라피스는 표정을 풀었다.

그녀는 유성의 말이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나만 해도 한때는 그게 싫었으니까.”

라피스 엘 바이어스.

그녀는 엘 바이어스라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능력이 보장된 마나 사용자들이 매 세대마다 태어나는 가문.

마나 사용자라는 건 세대가 지날수록 능력이 강해지는 탓에, 라피스는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감시 아닌 감시를 받았다.

그 덕분인지 라피스는 쉽게 유성의 마음을 이해한 듯했다.

진로를 보장받고, 그 대가로 자유를 뺏길 바에야.

차라리 그녀라도 능력을 숨기는 쪽을 택할 터였다.

물론 신분이 확실했던 라피스는 절대 그러지 못했지만 말이다.

라피스는 씩 웃더니 팔꿈치로 옆을 쿡쿡 찔렀다.

“유성. 그래도 나한테는 알려줬어야 하는 거 아냐? 이거 섭섭했어.”

“하하…….”

유성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는 라피스의 표정을 살폈다.

장난기 섞인 저 밝은 얼굴을 보니, 벌써 평소의 라피스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물었다.

“그런데 정말이야?”

“뭐가.”

“이제까지 마나 사용자가 아니었다는 말. 불과 방금 전에 능력을 각성했다면서?”

그 말에 유성은 피식 웃었다.

“내가 거짓말을 해서 뭐 하겠어?”

“하아. 진짜 황당하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유성의 대답에 라피스는 한숨과 함께 침대에 털썩 누웠다.

어지간히도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이해는 충분히 갔다.

보통 마나 사용자라는 건 오랜 시간에 걸쳐 능력을 발전시키는 훈련이 필요한 이들이었다.

전투용 기가스를 조종하는 파일럿쯤 되려면, 정말로 긴 시간이 필요했다.

기가스와 동화하는 것은 실시간으로 감각을 공유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작업이기에 단순히 재능만 가지고서는 불가능했다.

긴 시간 동안의 꾸준한 훈련은 필수적인 전제였다.

라피스 또한 그랬던 덕분에 기가스 스크래퍼를 탈 수 있었던 거였다.

재능과 꾸준한 노력, 두 가지의 전제로써 말이다.

하지만 유성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고작 하루아침에 이곳에 있었던 어떤 기갑 파일럿보다도 뛰어난 조종 실력을 선보였다.

라피스가 보기에, 그것은 너무도 사기적인 재능이었다.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이것이 가능한가, 아닌가는 구태여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당장 유성이 실재하는 산물로서 이곳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유성은 대번에 군사시설로 끌려가지 않을까.

아니, 이미 함선 메티스에 신원이 공개되었으니 그럴 가능성이 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라피스가 물었다.

“그런데 유성. 함선 메티스에서는 뭐라고 해? 그 사람들은 이미 네 조종 실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대단하다는 걸 모두 봤잖아.”

“별말은 아직까지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에는 나에게 뭐라고는 못 하겠지. 전투용 기가스를 탄 게 유일한 문제점이기는 하지만, 문제 될 일은 딱히 없을 거야.”

“그럴까?”

“그래. 확신은 못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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