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함선 메티스(2)
쿠웅.
유성이 탄 기가스 EF-05가 함선 메티스의 갑판에 천천히 내려섰다.
단단한 갑판 위에 내려서자, 조종석이 충격으로 한 차례 들썩였다.
그런 그에게 이번에는 함선 메티스 쪽에서부터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함선 메티스 : 함선을 호위해 주기 바란다. 해당 무장은 갑판 도크에 있다.]
[EF-05 : 알았다.]
짧게 대답한 유성은 통신이 알려준 대로 갑판의 한쪽에 다가섰다.
그러자 발아래의 갑판이 열리더니 안에서 무장이 튀어나왔다.
“이건?”
유성은 눈을 살짝 치켜떴다.
무장의 모습이 꽤나 익숙했다.
거대한 사이즈의 라이플과 기가스의 발아래에 장착하는 추진기였다.
유성은 그것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400년이나 지났어도 이 무장들은 여전히 거의 그대로로군. 조금 생김새가 변화한 걸 제외하고는.”
심지어 기가스를 움직여 손에 쥐어 보니 느껴지는 무게감마저도 비슷했다.
거의 과거와 동일하다는 의미였다.
설마 이것을 다시금 사용하게 될 줄이야.
유성은 꽤나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흡사 과거의 전장에 복귀한 듯한 느낌이 일었다.
유성이 익숙하게 무장을 장착하는 사이.
고오오오-!
함선 메티스가 마침내 콜로니를 떠나 이륙을 시작했다.
엔진이 푸른 불을 뿜기 시작했다.
* * *
함선 메티스는 빠른 속도로 붕괴되는 콜로니를 벗어났다.
순식간에 그들은 우주 공간으로 진입했다.
“아아…….”
“우리들의 집이…….”
거대한 인공 행성, 콜로니가 사람들이 바라보는 창밖에서 서서히 갈라지며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그저 허망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함선 메티스는 콜로니로부터 빠르게 멀어져 갔다.
모두들 창문에 손을 댄 채, 그저 무너져 가는 콜로니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중에는 어린 남자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던 한 어머니 또한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하염없이 창문 너머를 응시했다.
어머니의 눈에는 짙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부모의 불안감을 읽은 것일까.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으, 응?”
“우리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그 말에 아이의 어머니는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글쎄.”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들도 몰랐다.
일단 지금 당장의 행선지는 정해져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본 행성인 테라로 갈 터였다.
하지만 그곳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껏 콜로니를 자신들의 집으로 여겨왔다.
저곳이야말로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터전은 이제 완전히 무너졌다.
이제 집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마 자식에게만큼은 불안감을 전해 주기 싫어, 어머니는 애써 의연하게 말했다.
“이제 새로운 집을 찾아야지.”
“새로운 집?”
“……응.”
대답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옅게 떨려왔다.
말문을 열자 다시금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게 느껴졌다.
감정을 이겨내지 못한 어머니는 아이 몰래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어머니의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한순간에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 절망과 슬픔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 아이는.
그저 별다른 의문을 가지지 않고 다시금 창문으로 돌렸다.
“와아-.”
창문으로 보이는 광경을 보며.
아이는 그저 순수하게 감탄했다.
“멋지다.”
쿠구궁-!!
저 멀리, 콜로니가 붕괴하는 모습이 아이의 눈에 담겼다.
그 광경이란.
마치 형형색색이 어우러진 호화찬란한 빛의 불꽃이었다.
거대한 불꽃놀이를 하는 것만 같았다.
“어?”
하지만 곧 아이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자신의 어머니를 잡아당겼다.
아이는 손가락으로 창문 너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엄마! 엄마, 저거 봐! 저거!”
“……으, 응?”
눈물이 맺힌 채 조심스럽게 눈길을 돌린 어머니의 눈에.
너무도 거대한 것이 보였다.
“어, 어…….”
아이의 어머니는 천천히 입을 벌렸다.
슬픔조차 잊은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너무도 놀라 경악을 한 듯한 표정이었다.
“야, 야. 저거 뭐야?”
“설마 저것도 드라칸이야……?”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저 멀리 보이는 광경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터무니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
놈의 포효에 우주 공간이 옅게 진동한다.
그것은, 먼 거리에서조차 확연히 분별이 될 정도로 거대한 ‘생명체’였다.
* * *
우우웅-.
대기가 진동한다.
동시에, 피부의 털이 쭈뼛 솟는 게 느껴졌다.
마치 몹시도 사나운 어떠한 존재를 앞에 둔 듯한 감각.
드라칸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살기였다.
“……이건.”
유성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거대한 존재가 보였다.
붕괴해 가는 콜로니의 파편 사이로, ‘그것’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인다.
타오르는 듯한 수십 개의 적색 눈빛.
유성은 놈과 시선을 마주하며, 얼굴을 굳혔다.
“……여왕체인가.”
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것이야말로.
바로 드라칸의 여왕이었다.
유성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치겠군. 설마 여기에 여왕마저 있었던 건가?”
어쩐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아무리 콜로니에 기가스가 적다고는 해도, 단지 드라칸 놈들이 많다는 것만으로 붕괴하는 것은 말이 안 되었으니까.
최소한 콜로니가 완전히 붕괴하려면 그에 준할 만큼 막대한 충격이 외부에 가해지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
결국 처음부터 이 사태의 모든 원인이란.
저 터무니없을 정도로 거대한 여왕체가 콜로니의 외부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다.
유성은 굳은 표정으로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존재를 응시했다.
너무도 거대해, 생명체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이라고 연상될 만큼의 존재.
드라칸의 여왕.
놈의 시선은 정확하게 함선 메티스 쪽을 향해 있었다.
불에 타오르는 듯한 적막한 시선.
그것을 마주 보며, 그는 일말의 불안을 느꼈다.
혹시 이대로 함선 메티스를 쫓아오는 게 아닐까 하고.
펄-럭.
여왕체의 날개가 천천히 펼쳐졌다.
너무도 거대한 탓에, 날개를 펴는 것조차도 아주 느리게 보였다.
실제로는 상당한 속도겠지만 크기 탓에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마침내 겉과 속의 여덟 장에 달하는 날개가 모두 펼쳐졌을 때.
여왕체가 날갯짓을 시작했다.
우우웅-.
단 한 번의 날갯짓에 거대한 힘을 담고 있던 콜로니의 붕괴한 파편들이 우주 공간으로 훅 밀려 나갔다.
몸을 띄운 여왕체가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함선 메티스가 아닌,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곧이어 멀어지는 여왕체를 따라서 수없이 많은 점처럼 보이는 것들이 콜로니를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여왕체의 자식인 드라칸이었다.
드라칸들은 날개를 펄럭이며 멀어지는 여왕의 뒤를 따랐다.
유성은 멀어지는 그들을 응시했다.
“쫓아오지는 않는 건가…….”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온몸에 힘이 탁 풀렸다.
방금 전까지 극도로 긴장했던 그였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마지막까지 드라칸들을 응시했다.
놈들이 완전한 점이 되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경계 어린 시선은 전혀 가치가 없었다는 듯, 드라칸들이 다시 나타날 기미는 보이질 않았다.
정말로 가 버린 것이다.
마치. 이제 그들에게는 조금의 미련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째서?’
유성이 가장 먼저 느낀 의문은 그것이었다.
방금 전, 여왕체는 분명하게 함선 메티스를 인지했었다.
‘그런데도, 쫓아오지 않는다?’
그토록 철저하게 콜로니를 파괴했던 놈들이었다.
어째서 함선 메티스는 봤으면서 그대로 놔둔다는 말인가.
하지만 고민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찌 되었든 결론은.
단 하나뿐이었다.
“살았다는 건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행이지 않을 수 없었다.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만큼은 피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유성은 조종석의 뒤편에 몸을 기대었다.
긴 한숨을 내쉬며, 그는 눈을 감았다.
그는 살아남았다.
* * *
함선 메티스의 후면부에 위치한 내부 시설.
기가스를 보관하는 용도의 장소인 격납고.
현재 이곳에는, 다수의 군인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전투용 기가스 EF-05가 있었다.
다들 저 기가스를 이유로 이곳에 모였다.
왜냐하면 저 기가스의 안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은 정체불명의 파일럿이 들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모두가 크게 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전투용 기가스 EF-05를 바라보았다.
개중에서도 일부 군인들은 뒤편에서 총기를 들고 서 있었다.
척 보기에도 경계심이 역력했다.
[…….]
기가스 EF-5는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기가스의 두 눈은 여전히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아직까지 기가스 파일럿이 기가스와의 동조를 끊지 않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 무언의 압박에, 곧 부함장 아스트라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파일럿. 슬슬 내려서 모습을 보이는 게 어떤가.”
그러더니 한 손을 들어 주변 군인들의 자세를 풀었다.
부함장 아스트라는 말을 이었다.
“안위는 보장하겠네.”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반응이 일었다.
기가스 EF-05로부터 흘러나오던 푸른빛이 완전히 꺼졌다.
동조를 푼 것이다.
부함장 아스트라는 속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역시. 저기 타고 있던 파일럿도 이쪽을 경계하고 있었나 보군.’
곧이어 기가스의 해치가 열리고, 안에 타고 있던 파일럿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들은.
곧 기가스에서 내리는 파일럿을 보고는 놀람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같이 입을 벌린 채 믿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저 녀석.”
“지, 진짜야 저거? 지금 저렇게 어린 놈이 이 기가스를 조종했다고?”
내리는 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어려 보이는 소년이었다.
기가스를 조종했던 소년.
소년은 함부로 기가스에서 완전히 내려오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먼저 좌우로 보이는 다수의 군인들을 훑었다.
그러더니 소년치고는 너무도 무심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물었다. 그의 눈빛은 푸른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지금 그 말은, 확실한 겁니까?”
소년의 물음에 부함장 아스트라는 직감했다.
저 소년은 여느 동년배 소년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아스트라는 곧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지.”
“좋습니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기가스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탁.
해치에서부터 바닥까지는 족히 15미터가 넘어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년은, 아무렇지 않게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했다.
들려오는 소리조차도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소년은 주위의 수많은 시선들을 무시하곤 곧장 부함장 아스트라의 앞에 섰다.
그러더니 대뜸 말을 건넸다.
“아마도 정체불명의 파일럿과의 첫 대면이니만큼 함장이 직접 나오신 것은 아니실 테고. 그렇다면 당신은 부함장님이십니까?”
“……그, 렇네.”
그 말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부함장 아스트라였다.
함선의 함장은 언제나 신변을 생각해야 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확실하지 않은 상대와의 대면은 가능한 피하기 마련.
부함장은 그러한 때에 대신 움직이는 직급이었다.
위험하거나 꺼려지는 상황을 함장 대신 마주하는 역할 말이다.
소년은 대번에 그러한 부함장의 정체를 꿰뚫었다.
예리하기 그지없었다.
곧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제 이름은 유성입니다. 콜로니의 아카데미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