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함선 메티스(1)
쾅!
라피스가 탄 스크래퍼가 거칠게 드라칸을 밀쳐냈다.
육중한 기가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녀석이 그대로 밀려 나갔다.
재차 달려들려는 드라칸의 갑각에 총알 세례가 퍼부어졌다.
뒤편에 선 군인들로부터 쏘아진 지원 사격이었다.
그들은 라피스가 시간을 끄는 사이 뒤편에서 총을 쏴 갈겼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드라칸의 갑각질에 큰 피해조차 주지 못했다.
저 거대한 드라칸에게 평범한 총기 따위로는 별다른 데미지조차 입히지 못하는 것이다.
[■■■■!]
그때 재차 달려들려는 드라칸의 머리가 순간 퍽, 하고 날아갔다.
함선 메티스에서 쏘아진 포격이었다.
라피스는 그런 식으로 지상을 돌아다니는 드라칸들을 막고 있었다.
그녀가 기가스를 움직여 드라칸의 공격을 막는 사이.
군인들과 함선 메티스가 드라칸을 쓰러뜨리는 식으로 상황이 이어졌다.
지직!
그때, 라피스가 탄 스크래퍼에 통신이 연결되었다.
함선 메티스로부터온 것이었다.
[함선 메티스 : 여기는 함선 메티스. 메티스다. 미확인 기가스의 파일럿, 들립니까?]
한창 격한 전투 상황 도중이었던 라피스다.
그녀는 드라칸을 세게 밀쳐내고는 급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예, 들립니다!”
그녀는 함선 메티스가 먼저 물어볼 새도 없이 빠르게 자신을 밝혔다.
“저는 셀라스터 아카데미의 2학년 생도 라피스 엘 바이어스라고 합니다!”
[라피스 생도. 지금 상황이 많이 급박합니다. 당장 함선 메티스에 들어오셔야 합니다!]
“네? 그게 무슨?!”
라피스는 난데없는 함선에서의 요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참 시민들의 대피를 돕기 위해 드라칸을 막아내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함선에 올라타라니?
“그, 그렇다면 지금 함선에 탑승 중인 시민들은 어떻게……?”
하지만 함선 메티스 쪽에서는.
그런 의문을 해소해 줄 겨를조차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면.
의문을 풀어 주기보다는 오히려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다급한 어조로 소리칠 뿐이었다.
[함선 메티스 : ……일단 함선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지금 바로!]
“시민들이 아직 한참 남아 있……!”
하지만 라피스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눈앞에서 경악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쿠구궁-!
순간, 콜로니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뒤흔들렸다.
마치 온 세상이 무너지려는 것처럼.
위태롭게 버티던 건물들이 무너지고, 콜로니의 바닥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꺄아악-!”
“살려 줘어!”
……그것은 생무덤이었다.
함선 메티스에 타기 위해 몰려들었던 사람들의 발밑이 쩍 갈라지더니.
그 많던 수의 사람들이 그대로 땅 밑으로 꺼졌다.
“아…….”
라피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
수십만이 넘는 사람들이 그대로 무너지는 땅속으로 잡아먹혀 버린 것이다.
[함선 메티스 :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셨습니까? 라피스 생도! 지금 타지 않으면 늦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얼마 없었다.
함선 메티스에 올라타기 위해 가까이 붙어 있었던 이들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무너져 버린 지면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라피스는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사람들이 떨어져 내린 까마득한 심연을 차마 내려다보지 못했다.
그 많던 사람들이 한순간 땅 아래로 꺼지며 내지르던 비명 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훤히 들리는 듯했다.
“……알겠, 습니다.”
라피스는 힘없이 대답하곤 함선 메티스의 안으로 움직였다.
그녀가 함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함선 메티스의 문이 서서히 닫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칼 같은 반응이었다.
쿠우웅-.
닫히는 문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콜로니의 소음과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곧 완전히 차단되었다.
“하아, 하아.”
라피스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부릅뜬 두 눈동자에서 푸른빛이, 흐릿해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그와 함께 스크래퍼와의 연결 또한 희미해졌다.
그녀는 짙은 패닉에 점차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삐-.
귀에 이명이 들리듯, 점차 귓가로 들려오던 온갖 소음들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귓가에 흐릿한 음성이 들려왔다.
[함선 메티스 : ……피스 생도! 라피스 생도! 들립니까!]
함선 메티스로부터의 통신이었다.
“……아.”
그제야 라피스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흐릿해져 가던 두 눈에 다시금 빛이 돌아왔다.
그녀는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흐려지던 정신을 다잡은 라피스가 이내 침을 삼키곤 대답했다.
“드, 들립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함을 깨달았다.
‘어…… 그런데 유성은 어디 있지?’
유성이 타고 있던 기가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함선의 내부 격납고에 있는 것은.
오로지 그녀가 탄 스크래퍼가 전부였다.
“유성……?”
* * *
고오오-!!
함선 메티스가 이륙을 시작했다.
무너져 내리는 콜로니를 빠져나가기 위해 서서히 떠오르는 와중.
유성은 여전히 무수히 달려드는 드라칸에게 발이 묶여 있었다.
“미치겠군, 이 빌어먹을 벌레 자식들.”
그는 낮게 욕설을 뇌까렸다. 온 사방이 드라칸으로 가득했다.
놈들은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달려들고 있었다.
움직이기 시작하는 함선 메티스에 시선이 집중되는 드라칸들을 막기 위해, 유성은 일부러 놈들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제 그에게 마나는 충분했다.
보관함에는 여분의 마나 포션이 존재했다.
[■■■■!]
그때, 빠른 속도로 무언가가 그를 노리고 쏘아졌다. 놈은 정확하게 유성을 노리고 있었다.
“큭.”
유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녀석은 전투를 목적으로 태어난 전투체 등급의 드라칸이었다.
놈은 다른 드라칸들보다 한층 더 빨랐다.
긴장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위협적인 수준일 정도로.
다만 그것은.
“스크래퍼에나 탔을 때의 이야기지.”
이미 전투용 기가스 EF-05에 탑승한 그에게, 고작 전투체 드라칸의 위협 따위로는 아무런 위협조차 되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전투용 기가스는 산업용의 기가스인 스크래퍼보다 월등했다.
운동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관절과 아머 등, 힘의 단위부터가 압도적이었으니까.
유성은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드라칸을 정확하게 인지했다.
새파랗게 빛나는 그의 두 눈에는, 놈의 모든 것이 꿰뚫듯 보였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관절들의 잔동작과, 갑각질의 거칠한 표면 질감까지도.
마나 사용자인 그의 눈은 먼 거리의 것들조차 뚜렷하고 분명하게 포착했다.
대검을 번개처럼 내지르자, 놈의 갑각이 깨진 유리처럼 금이 가며 산산조각으로 터져 나갔다.
사방으로 파란 체액과 딱딱한 갑각 물질이 튀었다.
“할 만하다.”
단지 마나량의 한계선에서 해방되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유성은 터무니없을 정도의 무위를 내보였다.
그는 화면을 조작했다. 반대편의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쿠구구구-!!
함선 메티스의 거대한 동체가 하늘에 몸을 띄우고 있었다.
콜로니 시민들의 반의 반절도 채 태우지 못했음에도 저런 식으로 요란하게 움직인다는 의미는.
“이제는 정말 여길 벗어나야 한다는 거군.”
과연 유성의 중얼거림처럼, 곧 그에게도 통신이 날아들었다.
[함선 메티스 : 탑승하도록, 파일럿. 설마 이대로 콜로니에 남은 채로 우주의 먼지가 될 생각은 아니겠지?]
[기가스 EF-05 : 알았다.]
짤막한 답변을 보낸 그는 지상 쪽을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균열이 쩍 갈라지더니 지상이 훅 무너져 내렸다.
사람들과 무너지는 건물의 파편이 송두리째 가라앉아 버리고 있었다.
콜로니 전체가 붕괴하고 있었다.
함선 메티스를 향해 몰려들던 백만 명의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한순간에 그 모두가 새카만 심연 속으로 집어 삼켜졌다.
그 광경을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유성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도 아직까지 살아남은 일부 생존자들이 있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그들은 유성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절망과 공포가 가득 차올라 있었다.
이미 함선 메티스의 문은 완전히 닫혔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을 터였다.
이곳에서 빠져나가지도 못한 채 무너지는 콜로니와 함께 죽을 것임을.
닥쳐올 죽음을 알면서도 결코 피할 수 없음을 말이다.
수백, 수천, 그 이상의 사람들이 오로지 그 자신만을 바라보며 아우성치고 있다.
“…….”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
유성은 어떠한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외면하듯, 화면을 돌리곤 전황을 살필 뿐이었다.
‘나는 저들을 구할 수 없다.’
그는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다.
모두를 구할 힘 따위는, 처음부터 주어지지도 않았다.
누군가는 비난할 수도, 욕할 수도 있다.
어째서 저들을 살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직접 그 상황을 경험조차 해 본 적이 없는 이가 말만을 내세우는 것일 뿐이지.’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둘 중 하나를 살려야 한다면.
생판 남인 타인과 자신의 가까운 지인 중, 지인을 택하는 게 당연할 테니까.
유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선을 다해도 안 된다면, 오로지 가까운 사람만을 살릴 뿐이었다.
그것은 전생에도 그러했고, 이번 생에서도 그러할 것이었다.
그는 전능한 신 따위가 아니었으니.
그렇듯 유성은 매정하게 아래를 응시하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이 와중에도 단 한 사람만을 찾았다.
“라피스는, 괜찮겠지?”
라피스가 타고 있을 스크래퍼의 위치부터 찾았다.
저 멀리 스크래퍼가 함선 메티스에 막 올라타고 있는 게 보인다.
유성은 쓰게 웃었다.
“다행이로군. 저 녀석, 제대로 탔어.”
함선 메티스에 타지 못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겨우 한 사람만을 걱정한다니.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게 인간이었다.
일면식조차 없는 이들보다, 가깝고 친한 이들부터 걱정하기 마련이니까.
……설령.
방금 전과 같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죽는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유성은 스크래퍼 쪽으로 통신을 시도했다.
뚜-. 뚜-. 뚜-.
몇 차례의 연결음이 이어졌다.
통신이 연결되는 동안에도 유성은 움직였다.
그저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해냈다.
함선 메티스의 갑판 위에 올라탄 채로, 달려드는 드라칸의 양산체들을 베어 넘겼다.
마치 기계라도 되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고 차분하게 말이다.
그러는 사이, 마침내 통신이 연결되었다.
그는 다소 지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라피스, 너 괜찮…….”
[스크래퍼 : 야!!!]
유성이 물으려고 하는 순간, 통신 저편에서 라피스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고막이 웅웅대며 울려댈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였다.
유성은 팍 인상을 찌푸렸다.
“…….”
[스크래퍼 : 유성? 유성이야?!]
“귀 아프다, 라피스.”
[스크래퍼 : 미, 미안.]
그의 주의에 금세 사과하고 목소리를 줄인다.
역시 마나 사용자라서 그런지, 목청도 좋았다.
그런 라피스를 향해, 유성이 물었다.
“너 지금 함선 메티스에 탔지?”
[스크래퍼 : 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너 거기에서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어.”
[스크래퍼 : 어, 어? 그게 무슨……! 야!]
삑.
유성은 더 이상 듣지 않고 통신을 껐다.
다급하게 소리치는 라피스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어차피 할 말만을 전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