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기가스에 탑승하다(2)
‘아무리 평화로운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나름대로 신경을 쓰긴 썼나 보군.’
4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전투용의 기가스 또한 나름대로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모양이었다.
과거 그가 사용했던 기가스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조금씩 성능이 상향된 게 느껴졌다.
하긴 그 당시 드라칸의 공포를 조금이나마 기억하고 있는 인류라면.
암담한 미래를 걱정하며 기가스를 발전시키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기껏해야 그 성능이란 게 대부분 편의성의 발전인가.’
처참한 수준의 발전이었다.
실질적인 성능은, 거의 제자리나 다름없다는 말이었다.
400년이나 지난 미래의 지금 시점에서조차, 다른 기술력은 활발하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으면서도 기가스만큼은 여전히 발전이 거의 없었다.
[■■■■!]
[■■■!]
그때, 드라칸들이 달려들었다.
유성이 탑승한 기가스 EF-05가 가슴팍 가까이 방패를 끌어당겼다.
놈들과 충돌하자, 거센 진동과 함께 그가 탄 기가스가 뒤로 죽 밀려 나갔다.
이를 악문 유성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큭, 무기는?’
전투용 기가스 EF-05에게는 무기가 없었다.
아무래도 땅으로 떨어지던 충격 탓에 손에서 무기를 놓친 모양이었다.
그는 곧 무기가 떨어진 방향을 찾아내었다.
땅에 수직으로 박힌 거대한 대검이 보였다.
‘찾았다!’
그는 방패를 현란하게 움직이며 놈들을 밀쳐냈다.
그러고는 신중하게 놈들을 응시했다.
지금 당장 움직여 대검을 가지러 갈 수는 없었다.
두 마리가 양쪽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었기에, 무턱대고 움직였다간 당할 터였으니.
고작 방패 하나가 기가스의 무장 전부였지만 드라칸들은 쉽사리 파고들지 못했다.
철저하기 그지없는 방어였다.
[■■■!]
놈들의 몸에서 촉수가 일어났다.
마치 의지라도 가진 양 죽 늘어난 촉수가 유성을 노렸다.
유성은 방패를 풍차처럼 회전하며 모든 공격을 차단했다.
그는 전투를 이어가는 동시에, 전투용 기가스의 인터페이스를 빠르게 습득하기 시작했다.
‘방식은 좀 바뀌었지만 별거 아냐. 나라면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
유성은 빠르게 눈앞의 전투에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조금 삐거덕거리던 전투용 기가스 EF-05의 움직임이, 점차 매끈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크……!”
유성은 버거운 신음을 흘렸다.
역시 전투용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정신이 혼미하다.
기가스 EF-05는, 그가 제작했던 스크래퍼보다도 훨씬 월등한 마력을 잡아먹었다.
잠시 잠깐 움직였는데 벌써 등에 식은땀이 축축하게 맺힐 정도.
“하아. 하아.”
유성은 가쁜 숨을 애써 정리했다.
시야가 어지러운 와중에서도 쓰게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부터 마나 능력이라도 키워둘 걸 그랬군.’
그의 표정에는 쓰라린 아쉬움이 서려 있었다.
적어도 그랬다면, 이렇게 형편없이 당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긴 이렇게 마음을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과연 어느 누가 드라칸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낼 거란 것을 알았겠는가.
그것도 까마득한 미래에서 말이다.
그동안 인류는 드라칸이란 존재를 떠올린 적도 없을 정도였다.
놈들은 그저 머나먼 과거의 영상에서나 나오는 생물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이 시대의 인간들에게 드라칸이란 건 사실상 공상 속의 생명체나 다름없었겠지.’
인간이란 원래 그렇다.
당장 코앞에 직면한 현실이 아니라면, 신경 쓰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것은, 당장 놈들에 의해 죽었던 유성조차 마찬가지였다.
그조차도 그러했을진대, 다른 인간들이야 오죽했을까.
아마 처음 수십 년 동안에만 경계를 하다 이후로는 드라칸이란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겠지.
유성 그 또한 놈들의 존재를 끝끝내 의심하는 척 지내왔으면서도 평화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그 회의감과 의심마저도 이제는 끝이라 이건가.’
유성은 그 생각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 그는, 무너져 가는 콜로니의 한가운데에 있었으니까.
콰득.
드라칸의 머리에 검 날이 박혔다.
“죽겠군.”
유성은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힘겹지만, 쓰러뜨리는 데에 성공했다.
마나가 밑바닥까지 치달은 탓에, 극도로 움직임을 최소화해 역공을 취했다.
그러한 싸움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면 유성은 이미 진작 쓰러졌을 것이다.
콰직.
유성은 새파란 마력이 깃든 주먹으로 옆에 달린 카메라를 부쉈다.
전투용 기가스에는 저마다 파일럿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카메라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녹화하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라피스는.”
유성은 힐끗 멀리 라피스가 있는 방향을 보았다.
그녀가 탄 스크래퍼 또한 한창 분전 중이었다.
[이 자시익-!]
근방에 떨어져 있던 대 기가스용 방패를 손에 들고, 드라칸을 막아내고 있었다.
라피스는 힘겨워 보이는 듯하지만 나름대로 잘 막아내고 있었다.
애초에 유성 그보다 압도적인 마력량을 가진 라피스였다.
하지만 갈수록 무너져 내리는 콜로니의 지형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기압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맨몸으로는 순식간에 휩쓸려 날아가 버릴 만큼 강력한 돌풍이 불어댔다.
단적으로 말할 수 있었다.
이 도시는 이미 끝났다.
머잖아 이 우주를 부유하는 콜로니 행성 전체가 괴멸할 것이다.
‘길어야 여기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을 채 못 넘기겠군. 아니, 어쩌면. 그보다 짧을 수도.’
함선 메티스는 이제 주변의 상황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달려드는 드라칸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포화는 놈들에게 적중하고 있었지만, 일부 빗맞은 것들은 그대로 콜로니의 지상과 천장에 직격했다.
그것들 하나하나가 합치고 합쳐져 콜로니의 붕괴를 가속시켰다.
콜로니의 거대한 외벽과 천장, 그리고 지상에 크고 작은 균열이 일었다.
커다란 균열의 틈은 손쓸 틈이 없었다.
구멍이 뻥 뚫린 탓에, 우주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버려 콜로니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그런데 지금 남아 있는 기가스는 대체 몇이나 있는 거지?’
유성은 함선 메티스의 주변을 호위하는 기가스의 수를 확인했다.
그리고 곧,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뭐? 전부 전멸이라고?’
황당하게도 남아 있는 전투용 기가스의 수는 고작 유성이 탄 것뿐이었다.
유성이 한창 전투를 치르는 사이, 죄다 격추당했다는 소리였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가뜩이나 콜로니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 이 모양이라니.
유성은 다시금 화면을 빠르게 조작했다.
최소한 콜로니에 침입한 드라칸의 수는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삑.
그때 화면이 전환되고, 콜로니 전역에 퍼진 붉은 점이 표시되었다.
붉은 점들은 모두 드라칸들이었다.
[콜로니 내부에 확인된 드라칸의 수 : 218 개체.]
[콜로니 외부 : 개체수 확인 불가.]
“하.”
유성은 순간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욕설을 뇌까렸다.
“이런 미친 벌레 새끼들…… 아무리 수가 많아도 그렇지, 수가 이백을 넘는다고?”
드라칸은 서로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군체 생명체였다.
때문에 등장할 때는 언제나 최소 수십 단위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하지만 그 수가 수십도 아니고 수백이나 된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만도 했다.
심지어 당장 확인한 놈들의 수는 당장 콜로니 안에서 설치고 있는 놈들의 수만 포함한 거였다.
그러니 콜로니의 바깥쪽, 그러니까 아직까지 우주 공간에서 날뛰고 있을 놈들의 수까지 생각한다면…….
그 수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많다는 거다.
‘이러니까 콜로니가 버텨 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건가.’
쿠궁-!
그때, 유성이 탑승한 기가스 EF-05의 발아래에 균열이 일어났다.
유성은 황급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가 자리를 비우기가 무섭게, 벌어진 틈에서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빨아들이는 돌풍이 불어 닥쳤다.
근방의 사람과 자동차, 심지어는 건물들까지 송두리째 빨려가기 시작했다.
강한 흡입력을 버티다 못한 드라칸 중 일부마저 빨려 들어갈 정도였다.
“큭, 기가스가……!”
드드득, 하늘로 날아오른 유성의 기가스가 말을 듣지 않았다.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장난이 아닌 수준이었다.
조금만 자리를 피하는 게 늦었다면, 그대로 휩쓸릴 뻔했다.
제아무리 기가스라도 이만한 수준의 흡입력을 버틸 리가 만무하다.
지금 붕괴하는 이 대지는 엄연히 하나의 작은 행성이라 부를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가진 콜로니의 지상이었다.
그것이 실시간으로 뒤틀리며 왜곡되고 있으니, 그들이 머물고 있는 지상에 가해지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삑.
그때, 모니터 화면이 전환되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힐끗 확인하는데 누군가의 얼굴이 비춰졌다.
[프레일 소위? 설마 프레일 소위인가?! 살아 있었나!]
“…….”
유성은 걸려온 통신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조차도 거슬린다는 듯 곧장 꺼 버렸다.
당장 주변의 상황을 신경 쓰기조차 벅찰 지경이었다.
그러자 다시금 화면에 통신이 켜지더니 경계심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녀석, 프레일 소위가 아니군. 정체를 밝혀라!]
단지 한순간의 무시만으로 대번에 정체를 알아차리다니.
상대방의 눈치 또한 제법이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런다고 밝힐 리가 있나.’
유성은 속으로 코웃음을 흘렸다.
기가스란 건 오로지 전쟁을 목적으로 한 병기다.
일반인이라면,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탑승할 경우 그것만으로도 중죄였다.
심지어 유성은 지금 그것을 타고 아예 전투 행위까지 하고 있었다.
그것이 설령 인류의 적이라는 드라칸을 상대하는 것이라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유성은 통신을 재차 꺼 버렸다.
그는 다시금 통신을 걸어올까 하는 생각에 틈틈이 모니터를 확인했다.
‘통신을 다시 걸지는 않는군.’
아무래도 통신을 연결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
그런 유성을 향해 하늘을 날아다니던 드라칸 하나가 달려들었다.
펑-!
그때 멀리서 날아든 포격이 정확하게 드라칸에게 적중했다.
그것도 유성에게 접근하던 놈에게로 말이다.
‘포격?’
유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이.
짤막한 메시지가 모니터 화면에 떠올랐다.
[……지원하겠다.]
‘지원?’
그 메시지를 통해 유성은 대번에 군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내가 누구인가는 상관없이, 지금 당장의 급박한 상황부터 타개하겠다, 이건가.’
현재 유성은 기가스의 잠금을 해킹하고 탑승한 상태였다.
이것은 평시라면 군법 위반이나 다름없는 중대한 반역 행위였다.
정체도 밝히지 않은 신원 불명의 탑승자가 전투병기인 기가스를 제멋대로 조종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메시지는 전혀 유성 그를 적대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신원 불명의 탑승자인 유성보다, 현 상황을 더 급하게 받아들였다는 의미.
물론 충분히 이해가 가는 판단이었다.
‘내가 누구인지보다 당장 저 괴물 놈들을 처리하는 게 시급할 테니까.’
그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군부에게는 그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력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이건 지금 그들이 탑승하려는 함선 메티스의 함장이 직접 내리는 지시일지도 몰랐다.
[■■■■!]
유성은 달려드는 드라칸을 가볍게 회피하곤 손에 든 대검을 휘둘렀다.
퍽! 하는 소음과 함께 놈의 머리통이 짓뭉개졌다.
머리를 잃은 드라칸의 몸이 힘을 잃고는 지상으로 추락했다.
놈의 처리는 그야말로 찰나나 다름없었다.
유성은 차오르는 예리한 감각을 느꼈다.
‘할 만하다. 나쁘지 않아.’
단지 기가스를 갈아탄 것만으로 모든 게 급변했다.
당장 움직임부터가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도 그를 애먹였던 드라칸을 한 방에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심할 틈은 없었다.
당장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을 정도로 많은 드라칸들이 콜로니 내부로 침입한 상황이었다.
고작 한둘 죽인 정도로는, 티조차 나지 않는다.
여전히 함선 메티스는 전투 중이었고 드라칸들은 사람들을 낚아채고 있었다.
유성은 무장을 확인했다.
하지만 화면에 표시되는 무장이라고는, 기껏해야.
기껏, 해야.
“방패와 대검뿐인가. 원거리 공격 무장이 없어. 제기랄, 뭐 이딴…….”
빈약하기 짝이 없는 두 무장이 전부였다.
유성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전쟁이 없었던 평화가 계속되었다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이것은 정말이지.
욕이 튀어나올 정도로 어수룩한 대처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