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기가스에 탑승하다(1)
하늘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드라칸들이 지상의 사람들을 낚아채고 있었다.
군인들이 놈들을 향해 총을 쏴 갈기고 있다고는 하나,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제대로 총알도 박히지 않는 판국에 놈들은 하늘까지 날아다니고 있었으니까.
그깟 탄환으로는 놈들의 단단한 갑각을 꿰뚫을 수도 없을뿐더러, 제대로 적중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수가 압도적이었다.
그 때문에 군인들의 입장에서는 한시가 급했다.
지금 당장 민간인의 손을 빌려야 할 정도로.
그런 만큼, 기가스에 탑승한 유성이 돕는다고 하면 그들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죽하면 군에서는.
한쪽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총기까지 지급하고 있었다.
유성 또한 거기에 시선이 닿았기에 내린 대답이었다.
‘민간인들에게까지 총을 지급할 정도라면, 이미 이곳에 여유 따위는 완전히 없다는 거겠지.’
사실상 드라칸을 막을 수 없다는 의미다.
유성과 라피스.
둘이 탄 기가스 스크래퍼는 행렬의 옆을 함께 이동했다.
군인들도 함께였다.
콰앙!
그때, 저편에서 건물을 깨부수며 드라칸 하나가 나타났다.
“으아악!”
“꺄아악!”
쩍 벌린 놈의 입안으로 사람들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놈은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죄다 짓뭉개고 삼키며 유성이 있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퍼버벅!
군인들이 놈을 향해 총알을 퍼부었다.
[■■■■!]
하지만 드라칸은, 총알이 박혀 파란 체액을 흘리면서도 미친 듯이 달려왔다.
섬뜩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도, 도망쳐!”
“으아아아!”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다급히 뛰었다.
그들의 앞으로, 스크래퍼가 내달렸다.
유성의 두 눈이 푸른빛을 발했다.
스크래퍼가 앞으로 넘어지듯 무게 중심을 내리며, 순간적으로 급가속해 드릴을 찔러 넣었다.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드릴이 놈의 머리에 박혔다.
마치 거짓말처럼, 머리부터 몸통까지 순식간에 갈려 나갔다.
‘말도 안 돼!’
유성의 바로 옆에서 그의 싸움을 보고 있던 라피스는 경악했다.
터무니없는 마나 운용 능력이었다.
라피스는 생각했다.
‘대체, 대체 어떻게 마나를 프레임 단위로 끊어서 사용하는 거지?’
유성의 바로 옆에서, 그의 전투를 보고 있었기에 느낄 수 있었다.
유성의 말처럼 정말로 그는 이제 막 마나 능력을 각성하기라도 한 듯 라피스에 비해 턱없이 적은 마나량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라피스에 비한다면.
반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을 만큼 적은 양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마나를 가지고서도, 유성은 라피스 그녀가 기가스를 움직일 때보다 더욱 강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나를 프레임 단위로 끊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이게 가능한 일인 건가?’
그의 조종을 보고 있는 라피스였기에.
이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실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정신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
그때, 하늘에서 드라칸의 포효가 울렸다.
황급히 고개를 올리자 드라칸의 날카로운 촉수에 전투용 기가스가 당하는 광경이 보였다.
하필이면 그곳은 파일럿이 있었을 조종석 쪽이었다.
파일럿이 당한 것인지 축 늘어진 전투용 기가스가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유성은 놀라 눈을 부릅떴다.
‘이런 젠장!’
운이 나빴다.
하필이면, 저 기가스가 추락하는 바로 아래에 유성이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휩쓸려 버릴 상황.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던 유성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지하층과 연결된 지하도였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유성은 그쪽을 향해 내달렸다.
시민들과 군인들마저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꺄악-!”
조종석이 지진이라도 난 듯 뒤흔들렸다.
라피스가 놀라 소리를 내질렀지만, 거기에 정신이 팔릴 틈은 없었다.
그가 탄 스크래퍼가 몸을 날리자마자, 기가스가 추락했다.
쾅!!
땅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뒤흔들렸다. 스크래퍼마저 흔들림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잠시 후.
시야 가득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다급해서 인정사정없이 지하도로 몸을 내던졌던 탓이었다.
“으윽.”
신음을 흘리면서도, 눈앞의 시야를 확인했다.
눈앞에 떨어진 것은 기가스였다.
“아야야…….”
라피스 또한 아픈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듯 신음을 흘렸다.
유성은 그런 라피스를 불렀다.
“라피스!”
“으, 응?”
뒤늦게 정신을 차린 라피스에게 유성이 말했다.
“잠시만 스크래퍼를 맡아 줘.”
“뭐……?”
라피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뜬금없이 스크래퍼를 자신에게 맡기겠다니?
곧 말뜻을 이해한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유성의 눈은 반대편의 쓰러진 전투용 기가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설마.”
“그래.”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말을 이었다.
“저게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야겠어.”
그 말을 끝으로, 말릴 새조차 없이 해치를 열었다.
날렵한 움직임으로 땅에 내려앉은 유성이 전투용 기가스 쪽으로 내달렸다.
[■■■■!]
그런 유성을 발견한 드라칸이 하늘에서 날아들었다.
쾅!
[유서엉-!!]
그때, 힘찬 고함과 함께 반대편에서 라피스가 탑승한 스크래퍼가 달려들어 드라칸들을 후려쳤다.
쾅! 정확하게 적중한 드라칸이 볼링공처럼 반대편으로 튕겨 나갔다.
스크래퍼가 유성의 앞을 지키듯이 막아섰다. 라피스가 소리쳤다.
[달려, 유성! 여긴 내가 막을게!]
“알았어!”
유성은 쓰러진 전투용 기가스를 향해 내달렸다.
치익.
해치를 열자, 조종석 안에는 파일럿이 죽어 있었다.
조종석은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어지간히도 격렬했나 보군.’
오죽했으면 지금도 파일럿의 몸에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릴 지경이었다.
눈이 찌푸려질 만큼 처참한 광경.
하지만 일일이 감상 따위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
[이 자시익-!]
지금 이 순간에도 유성을 대신해 라피스가 싸우고 있었다.
드라칸과 스크래퍼가 서로 맞붙은 채 힘 싸움을 하고 있다.
라피스는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눈에 띄게 힘 싸움에서 밀리는 게 보였다.
스크래퍼가 뒤로 죽죽 밀려 나갔다.
라피스로서는, 고작 가장 밑바닥에 위치하는 단계인 양산체 등급의 드라칸을 상대로도 힘겨워 보였다.
당연한 거다. 애당초 저 정도 수준의 괴물 놈들이기에 인류가 그토록 철저하게 내몰렸던 거다. 오히려 한낱 생도의 신분으로 놈을 상대하는 라피스의 쪽이 대단한 축에 속했다.
유성은 대충 시신을 옆에 걷어내고는, 전투용 기가스의 조종석에 앉았다.
조종석의 천장에서부터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과 바지를 적시는 핏물에 몸이 젖는 게 느껴진다.
“후-.”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하게 심호흡을 했다.
급박한 상황이지만, 먼저 거칠어진 숨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거칠었던 숨을 가라앉히고, 심박수를 낮췄다.
순식간에 복잡한 머리가 비워졌다.
‘괜찮아. 기본적인 방식은 과거와 동일하다.’
무려 수백 년이나 지난 탓에, 기가스는 많은 부분에서 변화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과거 그대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비슷했다.
바뀐 것은 조작하는 인터페이스 정도뿐이었다.
나름대로 잠금장치도 되어 있었지만, 유성이 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비록 흉내 내기에 불과할 뿐일지라도, 스스로 기가스마저 만들었던 유성이었다.
그는 기가스에 관해서라면 적지 않은 지식을 가졌다.
‘할 수 있다.’
유성은 굳은 표정과 함께 마나를 끌어 올렸다.
지금 이 순간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혼란스러운 눈앞의 상황도, 미래에의 걱정도 아니었다.
그가 전념하는 것은 오로지 기가스와 일체화하는 것뿐.
번-쩍!
그의 눈이, 마력의 발현과 함께 새파란 빛을 뿜어냈다.
기가스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쓰러져 있던 기가스의 두 눈에 불이 켜졌다.
* * *
유성이 전투용 기가스에 탑승하는 사이.
라피스가 탄 스크래퍼와 드라칸이 서로 맞서고 있었다.
카가각!
힘 싸움에서 밀린 스크래퍼가 사정없이 뒤로 밀렸다.
스크래퍼의 발바닥에 부착된 강철이 사정없이 갈리며 불똥이 튀었다.
힘겹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라피스는 이를 악물었다.
[이익! 나도 한다면 한다고!]
두 눈의 푸른빛이 점차 강해지자, 그에 따라 스크래퍼의 출력 또한 강해졌다.
푸른빛을 뿜어내며, 기가스의 드릴이 드라칸의 머리에 박혔다.
놈의 살점이 드릴의 날에 의해 사방으로 찢겨 나가며 튀었다.
[■■!]
드라칸이 고통에 발버둥 쳤다.
놈의 비명 소리가 귀가 아플 정도로 날카롭게 울려댔다.
[그만 죽…… 어!]
그런 놈을 향해, 고속으로 회전하는 드릴이 박혀 들었다.
단단한 갑각질이 푸른 체액을 뿜어내며 갈려 나갔다.
곧, 완전히 죽음을 맞이한 드라칸의 몸체가 주저앉았다.
죽은 드라칸의 시체에서, 푸른 체액이 주룩 흘러나왔다.
마치 핏물처럼.
[하아, 하아!]
순식간에 진이 다 빠진 라피스가 숨을 내쉬었다.
거칠어진 숨소리가 기가스 너머로 들려왔다.
[■■■■!]
그때, 하늘에서 또 다른 드라칸이 날아들었다.
[읏……!]
당황한 라피스가 황급히 공격을 방어하려 할 때.
전투용 기가스가 그녀 앞을 가렸다.
바로 유성이었다.
그는 번개처럼 손에 든 방패를 휘둘러 놈을 튕겨냈다.
떵-!
묵직한 충돌음과 함께, 놈의 몸이 밀쳐나갔다.
유성의 눈이 옆에 쓰러진 드라칸 시체 쪽으로 향했다.
그는 스크래퍼의 드릴에 흥건한 푸른 체액을 보고는 생각했다.
‘설마 라피스 혼자서 이 녀석을 쓰러뜨릴 줄이야.’
놀라울 지경이다. 하지만 지금은 감탄에 젖어 있을 순간이 아니었다.
유성은 라피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다시금 눈앞의 드라칸에게로 눈을 돌렸다.
[■■■■!]
놈은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음을 인지한 듯했다.
유성과 라피스를 번갈아보던 놈이, 곧 하늘을 향해 날카로운 괴성을 내질렀다.
그에 응답하듯 근방의 하늘을 날아다니던 드라칸 둘이 날아들었다.
“…….”
유성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하지만 굳은 그의 표정에서,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돌겠군. 산 넘어 산인가.’
유성은 라피스에게 말했다.
“라피스! 내가 둘 맡을 테니, 네가 하나를 맡아!”
[어, 어? 알았어!]
대답과 함께 라피스가 탄 스크래퍼가 한 녀석의 앞에 섰다.
잠시 라피스 쪽을 응시하던 유성이 정면을 향해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앞에는 두 마리의 드라칸이 있었다.
‘후. 미치겠군.’
유성은 아직 전투용 기가스를 조종할 수준의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
단지 걸음을 옮기고, 기가스의 팔다리를 가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해야 했다.
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은 그들이 될 터였다.
유성은 대치한 드라칸들을 노려보면서도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는 화면을 바쁘게 조작했다.
양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이미 방금 전의 동작으로 전투용 기가스가 아직 움직인다는 건 확인했다. 나머지 조작 시스템은 싸우면서 배워야 해.’
유성은 차분한 눈으로 앞의 두 놈을 응시했다.
전투용 기가스의 왼손에 잡힌 방패가 강렬한 푸른빛을 띠었다.
‘일단은 기가스의 조작에 빠르게 적응부터 해야 한다.’
삑.
그의 시야에 전투용 기가스의 조작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기가스 시리즈, 넘버링 EF-05.]
화면에 떠오른 기가스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 녀석의 이름은 EF-05인가.’
지구 시절, 유성이 아닌 이시혁이었던 과거.
그가 사용했던 전투용 기가스는 EF-02로, 2세대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그사이에 벌써 세대가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따지고 보면 5세대나 되는 셈이었다.
‘평화로운 것을 감안했어도 나름대로 신경을 쓰긴 썼나 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