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218화 (218/223)

0218 / 0223 ----------------------------------------------

23. 죽은자

“그래서, 그분은 직접 나서시기보다는 이런 인간을 통해 날 다시 막으시려는 건가?”

“그렇습니다.”

“이 녀석을 반쪽짜리 신으로 만든 것도, 널 비롯한 다른 신들의 힘을 빌릴 수 있도록 한 것도… 다 그분의 계획이시겠군.”

사탄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께서 이런 실수도 하시던 분이었나?”

쿠구구구구구-.

에덴의 땅이 울렸다. 하늘과 땅이 흔들렸고, 그와 동시에 서로 싸우던 신과 악마들이 멈췄다. 그들의 시선이 온통 승한과 사탄에게로 향했다.

“아델, 너와 함께 그분의 계획을 부수고 이곳 에덴을 더럽히마. 그분께서 움직이지 않으신다면, 나는 그분의 뜻에 반해 이곳 땅을 악마들의 땅으로 만들겠다.”

사탄의 음성이 에덴의 전역에 울려 퍼졌다. 목소리만으로 하늘과 땅을 뒤집는 그 힘과 에덴의 땅을 빼앗겠다는 선언에, 악마들이 울부짖었다.

크하하하하하하-.

그와 동시에, 사탄을 바로 앞에서 마주한 승한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

‘이건… 너무하잖아.’

단지 목소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승한은 사탄이 처음으로 보인 힘을 바로 앞에서 마주한 순간, 지금까지 부여잡고 있던 희망을 놓아버렸다.

어떤 힘을 사용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사탄이 입을 여는 순간, 이 거대한 에덴의 땅과 하늘이 순간적으로 거꾸로 뒤집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불가이한 기적이었다. 아무리 여러 신들의 힘을 손에 넣은 승한이라 하더라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적. 그것을 사탄은 단순히 말 한 마디만으로 이루어내고 있었다.

사탄은 단순한 악마가 아니었다. 에덴의 신에게서 최초로 태어난, 악마들의 결정체였다. 그저 조금 강한 악마 정도로 생각했던 승한은 사탄의 힘을 제대로 경험하자 절망에 빠졌다.

‘정신 차려. 땅과 하늘을 뒤집긴 뭘 뒤집어? 착각하지 말고 제대로 봐.’

아롤은 승한을 야단쳤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겁을 집어먹은 승한을 향해 이번엔 아델이 말했다.

‘아롤님의 말이 맞아요. 승한씨가 느낀 건 어디까지나 착시일 뿐이에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힘을 처음 눈앞에 마주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을 뿐, 에덴의 하늘과 땅을 뒤집을 만한 능력이 사탄에겐 없어요.’

착각. 아롤과 아델의 말처럼 그것은 승한의 착각에 불과했다. 물론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사탄의 힘이 강하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승한은 아롤과 아델의 말에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거세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승한이 사탄을 향해 검을 겨눴다.

“생각보다 담이 강한 인간이군. 아직 정신까지 신이 되지는 못했을 텐데.”

사탄은 승한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의 말처럼 승한은 어디까지나 반쪽짜리 신에 불과했다.

[불굴의 육체]라는 능력의 레벨을 올려, [영생]을 능력이라는 형태로 얻었다. 그 결과 승한의 몸은 영원한 삶을 얻어 신에 가까워졌지만, 정신은 그렇지 못했다.

다른 신들은 육신과 정신이 함께 신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승한은 능력이라는 형태로 정신이 아닌, 육신만이 신이 된 경우였다.

사탄이 승한을 반쪽짜리 신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 때문이었다. 고작 몇 달 정도 빠르게 힘을 얻었다 한들, 정신까지 신이 될 수는 없었으니까. 승한이 진짜 신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담력 하나는 자신 있거든.”

“그게 네 명을 재촉할 텐데, 후회하진 않겠느냐?”

“어차피 날 죽일 생각 아니었나? 네가 보기엔 발버둥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발버둥은 쳐 봐야지. 그리고 혹시 알아? 그러다 널 죽일 수 있을지.”

승한의 물음에 사탄은 피식 웃었다.

“지렁이가 발버둥을 친다고, 너희 사람이 죽겠느냐?”

“……지렁이가 아니라 독을 품을 뱀이라면?”

“넌 지렁이다.”

“그건 아직 모르는 거지.”

승한은 그렇게 말하며 듀란달을 위로 들어올렸다. 성화가 검신에 맺히는 순간, 승한은 그것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쐐애애액-!

성화를 머금은 검격이 사탄을 향해 날아갔다. 검격은 금방이라도 사탄의 몸을 반으로 베어낼 것 같았지만, 그것은 한 순간이었다.

검격은 사탄의 몸에 작은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애초에 검을 한 번 휘두른 것만으로 사탄을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승한은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자 몸을 조금 더 뒤로 물렸다.

화악-!

그리고 그 순간, 사탄의 몸에서 검보라 빛의 마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뭉쳐 승한을 향해 날아왔다.

“그럼, 어디 네가 지렁이인지 뱀인지 알아보도록 하마.”

사탄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승한을 향해 덮쳐왔다. 색이 있고, 형태가 보였다. 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스스스슥-.

승한의 몸이 그림자처럼 허공에 녹아들었다. 방금 전까지 승한이 있던 자리를 마기가 덮쳐들었다가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그곳에는 승한이 있었다.

“칫.”

화르르륵-.

승한은 자신을 집요하게 쫒아오는 마기를 향해 성화를 쏘아냈다. 성화로 마기를 흩어내고 곧장 사탄을 향해 달려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승한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파스스스스-.

성화와 마기가 부딪힌 순간, 승한이 쏘아낸 성화가 색을 잃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승한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금 빠르게 다리를 움직여 마기를 피했다.

‘제가 가진 성화만으로는 사탄의 마기를 흩어내지 못해요.’

지금껏 성화는 만능에 가까운 힘이었다. 어떤 힘이든 성화를 통해 막아낼 수 있었다. 성화가 악마들의 상극이 되는 힘이었던 만큼, 악마들의 마기를 성화로 정화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만능에 가까웠던 힘이 지금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사탄이 부리는 마기는 성화의 힘으로 정화시키니는커녕, 오히려 성화의 힘이 마기에 썩어 소멸되어버렸다.

‘방금 전 검격이 통하지 않았던 것도 이것 때문인가?’

승한은 성화를 담아낸 검격이 통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성화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 해도, 검격까지 사라진 것이 걸렸던 것이다.

‘사탄의 마기는 애초에 형태를 가리지 않아요. 성화란는 힘은 물론, 승한씨가 휘두르는 검격과 [올림포스]의 힘까지. 사탄의 마기는 그가 원하는 것을 지워내는 힘이에요.’

‘……무슨 그런 사기적인 능력이 다 있습니까?’

원하는 것을 지워내는 힘.

그것은 힘이라기보다는 권능에 가까웠다. 애초에 형태를 가지지 않은 불과 검격, 그리고 중력에 가까운 [올림포스]의 힘까지. 그 모든 것을 원래 없던 것처럼 만든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그 말은 즉, 저 마기가 닿는 순간 승한의 존재 역시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뜻이었다. 막을 수도 없고, 뚫어낼 수도 없었다. 방법은 피하는 것뿐.

그래도 다행인 건 피해내기가 아주 어렵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승한을 쫒아오는 마기의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색과 형체가 없는 것도 아니라서 눈으로 보고 피할 수도 있었다.

‘사탄을 직접 노린다!’

승한은 움직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바로 뒤에서 승한을 향해 다가오는 마기를 피해 그 반대편의 사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씨익-.

승한의 눈에 사탄이 미소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섬뜩함을 느낀 승한은 급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자 뒤에서 마기가 덮쳐왔다.

“젠장.”

승한의 몸이 불길로 변했다. 승한이 있던 자리로 피어오른 성화를 마기의 무리가 덮쳤다. 순식간에 성화가 검보라 빛으로 변하더니 그 자리에서 소멸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성화가 크게 일어나며 승한이 나타났다. 승한은 검과 방패를 꽉 움켜쥐며 사탄을 멀리서 지켜봤다.

“아쉽군.”

작은 중얼거림이었지만, 그 목소리는 승한의 귓가에 또렷이 들렸다. 긴장으로 바짝 마른 입술을 깨물며 승한이 중얼거렸다.

“저걸 어떻게 잡으란 거야?”

무엇이든 소멸시키는 권능. 그 힘은 승한을 쫒아오고 있었다. 승한을 소멸시키기 위해서.

당연하게도 사탄은 그 힘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아주 옅어서 제대로 색이 보이지 않았지만, 사탄을 공격하기 위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 순간 승한은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옅은 마기를 볼 수 있었다.

만약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면 그 힘은 곧장 승한을 공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승한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어떻게 하지?’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사탄의 몸에서 다시 한 줄기 마기가 뿜어졌다. 넘실거리는 마기는 수십 가닥으로 흩어졌다.

그것을 보며 승한은 혀를 내둘렀다.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마기를 보던 승한은 다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산 넘어 산이군.”

수십 가닥의 마기. 빠르진 않았지만, 수가 워낙 많아서 피하기는 이전보다 훨씬 어려웠다. 게다가 감히 사탄을 향해 다가갈 만한 엄두도 나지 않았다.

‘피하기만 해서는 답이 없어.’

승한은 이를 악물었다. 무작정 저 힘을 두려워하고 피하기만 해서는 결국 승한의 힘이 먼저 바닥날 것이다.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도박을 해야 하나?’

사탄에게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고, 계속해서 도망만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쯤이야 빤히 보였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 거라면 조금이라도 도박을 해 보는 편이 나았다. 승한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마기를 향해 성화를 담은 검격을 뿌려냈다.

화르르르륵-.

파팡, 스스스스-.

성화의 힘이 검격과 함께 사라졌다. 덮쳐온 마기를 피하며 승한은 계속해서 검격을 날렸다.

치이이이이이-.

아무리 검격을 쏘아내도, 성화는 그 자리에서 즉시 소멸되었다. [증폭]을 통해 힘이 강화되었다지만 사탄의 마기가 가진 권능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화르르르륵-.

듀란달의 검신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승한은 성화의 힘을 검신에 가득 끌어 모았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승한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모은 것이다.

마기의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온 승한의 몸이 위로 치솟았다. 순간적으로 사탄의 머리 위로 올라온 승한은 그대로 검격을 사탄을 향해 내리쳤다.

화아아아아악-!

치이익-.

하지만 의미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승한을 쫒아오던 마기가 승한과 사탄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승한이 휘두른 검격은 성화의 힘과 함께 그대로 소멸되었다.

‘뭘 할 생각이냐?’

아롤은 승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승한의 공격은 의미 없는 발버둥이었다. 이런 식으로 아무리 검격을 날려 봤자 사탄이 흘려보낸 마기에 소멸될 뿐이었다.

물론, 아롤 역시도 자신의 질책이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역시 뾰족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는 승한의 행동이 현명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너는 지렁이인 것 같구나.”

사탄은 감정 없는 눈으로 승한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정말로 벌레를 바라보는 것처럼 아무런 감정이 없어보였다. 처음에 생겼던 흥미조차 이제는 식어버린 모양이었다.

스스스스스스-.

다시금 마기의 무리가 승한을 향해 뻗어왔다. 승한은 눈을 부릅뜨며 몸을 움직였다. 그림자처럼 허공에 녹아들었지만, 마기는 귀신같이 그런 승한을 찾아냈다.

사사사사사삭-.

승한은 사탄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마기는 끝없이 분열하며, 덩치를 불려갔다. 처음에는 거대한 한 가닥이었지만, 이제는 그보다 조금 작은 마기의 무리가 수십 가닥으로 변했다.

‘시간을 끌면 불리해.’

점점 마기를 피해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렇게 승한이 마기를 피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사탄이 그를 얕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심이 되기 전에…….’

화악-.

승한의 몸이 불길로 변해 사라졌다. 성화의 힘을 통해 순간적으로 몸을 가속시킨 승한은 뒤따라오던 마기를 따돌리며 사탄을 향해 다가갔다. 듀란달이 황금색으로 물들어 거세게 떨렸다.

사탄은 가소롭다는 듯 정면에서 달려드는 승한을 향해 마기를 뿌렸다. 승한은 사탄이 뿌려낸 마기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