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217화 (217/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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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사탄… 이라고요?’

승한은 사탄이 자신을 스스로 찾아오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쩐지, 다른 악마들과 다르다는 느낌이 틀린 게 아니었다. 확실히 사탄은 다른 평범한 악마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존재였다.

“아델은 잘 지내나 보지? 성화라는 그 힘, 오래간만에 보는군.”

아델이라는 이름이 생소했던 승한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사탄이 성화의 힘에 관심을 가지자 그 이름이 붉은 천사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긴, 에덴의 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존재라면 그를 보좌하는 아델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승한은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답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검을 휘둘러, 사탄의 목을 베어내면 된다.

그렇게만 하면, 이 길고 긴 지겨운 일들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무서워 죽겠군.’

쉬지 않고 싸우면서도 흘리지 않았던 땀이 양 손에 흥건하게 맺혔다. 사탄을 눈앞에 마주한 순간, 승한은 긴장감으로 얼어붙었다.

‘저 녀석을 어떻게 죽여야 하지?’

사탄의 덩치는 왜소했다. 승한과 비교해도 조금 더 작다 싶을 만큼. 검을 한 번만 휘둘러도 곧 죽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를 바로 앞에서 마주보고 있는 승한은 알 수 있었다.

사탄은 그 주위에 있는 다른 악마들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승한이 만나본 악마들 중 가장 강하다 싶은 아포피스와 비교해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악마들이 그로 인해 파생되었다 해도 믿을 정도였다.

바로 앞에서 마주보는 승한의 눈에는 사탄이 거대한 산, 그 이상으로 보였다. 모든 악마들의 총체. 또한, 마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마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사탄이었다.

‘겁먹지 말아요.’

“너무 그렇게 무서워하지 말아라.”

아델과 동시에 사탄의 목소리가 승한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거의 비슷한 말이었지만,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아델은 승한에게 힘을 주기 위함이었고, 사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탄은 승한의 적이었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 다른 말로는 승한을 적으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전혀 위해를 가할 수 없다고.

그리고 그것은 승한에게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었다.

“……너만 죽이면 다 끝나는 거겠지?”

승한은 이를 악물며 입을 열었다. 사탄은 승한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

“그럼 당장…….”

“너무 서두르지 말거라. 주위에 아직 방해꾼들이 많으니까.”

그 말에 승한은 눈을 굴려 주위를 살폈다. 그의 말대로 승한과 사탄의 주위로는 수많은 악마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멀리서는 신들이 싸우고 있었지만, 사탄의 등장에 수많은 악마들이 그의 옆으로 모여든 것이다.

-사탄. 네 멋대로 행동하지 마라.

-네놈이 죽으면 우리도 이곳에 있을 자격이 사라진다는 것을 모르진 않겠지?

그 말과 함께 나타난 악마들은 승한을 긴장시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나같이 고위 악마들. 그 중에서는 아포피스와 같은 힘을 가진 악마도 섞여있었다.

‘이거 상황이 좋지 않은데.’

아롤 역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는 긴장했다.

이곳은 에덴이었다. 승한과 아롤은 영혼을 공유하고 있었고, 아롤의 원래 육신과 영혼이 있던 곳에서 승한의 죽음은 곧 아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했다. 가뜩이나 사탄 하나만 해도 상대할 수 있을까 말까인데, 고위 악마들이 여럿 나타난 지금 상황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악마들은 승한을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시선은 승한이 아닌 사탄에게로 향해있었다.

-멋대로 행동하지 마라, 사탄. 우리는 너희를 왕처럼 생각하지 않으니까.

한 악마의 말에 사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난 너희들의 왕이 아니지.”

사탄은 그렇게 말하고는 피식 웃었다.

“난 너희들의 신이다. 이 버러지들아.”

스스스스스-.

사탄의 몸에서 마기가 흩어져 나왔다. 승한은 흠칫 놀라며 몸을 성화로 감쌌다. 하지만 승한의 걱정과는 달리, 사탄의 마기는 주위에 모여든 악마들에게로 향했다.

퍼석-.

으드드드득-.

악마들의 몸이 썩어 문드러지고, 몸이 우그러졌다. 승한은 그 광경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사탄은 자신에게 반하는 악마들을 손수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들의 존재가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내가 너희들의 가장 첫 모습이고, 나로 인해 너희들이 있을 수 있었다. 너희가 이곳 에덴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것도 내 덕이고.”

고위 악마들은 어떻게든 사탄의 마기로부터 저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제대로 움직이기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고, 그렇다고 사탄을 공격할 수도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가 사탄이 죽기라도 한다면 에덴에 두 번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할 수도 있었으니까.

“날 공격하지 못하는 것이 내가 죽을 것 같아서인가? 그것 참 유감스러운 이야기군. 너희는 날 죽이지 못해.”

-사탄…….

크아아아아아-!

그 때, 참다못한 악마 하나가 사탄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냈다. 아무리 에덴의 땅이 중요하다 해도 당장 자신이 죽을 판이었고, 악마들은 애초에 자신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는 족속들이었다.

사탄은 자신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드는 악마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악마 역시 고위 악마에 속하는 존재였다.

용을 닮은 거대한 머리가 사탄을 향해 덮쳐오고, 곧 날카로운 두 개의 송곳니 사이에 사탄이 들어왔다.

으적-.

살육이 터지는 소리. 악마는 사탄을 이 사이에 끼우며 낮게 울었다. 서슬퍼런 안광을 주위에 뿌리던 악마가 입안에 들어온 사탄을 잘게 씹었다.

‘이걸로… 끝?’

말도 안 된다. 이걸로 끝일 리가 없었다.

그 증거로, 아직까지 악마들은 에덴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사탄을 씹어먹은 악마 역시도 그것을 깨달았는지 당황스러운 듯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되기는.”

푸악-!

그 순간, 사탄을 씹어먹은 악마의 얼굴이 터지며 사방으로 피를 튀었다. 승한은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피를 성화로 흩어내며 상황을 지켜봤다.

“이렇게 된 거지.”

사탄은 멀쩡했다. 악마의 얼굴을 터뜨리며 밖으로 나온 그는 오연한 모습으로 다른 악마들을 훑어봤다.

얼굴이 터져 나간 악마는 잠시 숨이 붙어있는 듯 몸을 허우적거리다 아래로 떨어졌다. 다른 악마들은 그 모습을 보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너희는 날 죽일 수 없다. 너희는 모르고 있었겠지만 그것이 약속이고, 법칙이다. 너희들의 존재가 나로 인해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지.”

악마들의 반응은 이전과는 달랐다. 이전까지는 사탄을 단순히 에덴에 머물기 위한 열쇠로서 싸고 감싸야 했던 존재로 보았다면, 지금은 그들보다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볼 수밖에 없었다.

악마는 사탄에게 해를 가할 수 없다. 그 말뜻을 악마들은 바로 이해했다. 사탄은 주위로 모여든 수많은 악마들이 자신에게 겁을 먹었음을 알아차리고는 말했다.

“다들 꺼져라.”

악마들은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주춤거렸다. 사탄의 눈살이 조금 찌푸려졌다.

“꺼지고, 신들을 죽여라. 난 이 인간에게 흥미가 있으니, 시간을 좀 가져야겠다.”

사탄은 승한을 바라봤다. 그의 말에 다른 악마들은 하나 둘 신들과 싸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주위로 모여 들었던 악마들이 모두 사라졌다.

곧 주위로는 승한과 사탄만이 남았다. 승한은 그가 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악마들이 사라진 게 자신에게는 유리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여간 시끄러운 것들이란 말이지. 그렇지 않나?”

“……나에게 궁금한 게 뭐지?”

“궁금한 건 없어.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지. 네 몸속에 있는 아델과 말이야. 넌 그녀의 대리인이지 않나?”

승한은 사탄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아델의 대리인 정도로 착각하고 있었다.

‘아니, 착각이 아닌가?’

사실 승한도 헷갈렸다. 그녀의 힘을 빌리고, 그녀와 에덴의 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만큼 대리인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사탄이 자신을 아델의 대리인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무엇이 궁금한 거지?”

“왜 너 같은 인간에게 힘을 줬는지, 그분은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인간들을 들여놓았는지. 그리고 왜 너 같은 녀석에게 영생을 허락했는지. 궁금한 거야 많지.”

사탄의 궁금증은 곧 승한의 궁금증이기도 했다. 승한은 아는 바가 없었다. 결국 그는 성화를 일으켜 아델을 성화의 형태로 바깥으로 불러냈다.

곧 승한과 비슷한 크기의 성화로 이루어진 아델이 나타났다. 성화의 날개를 가진 그녀는 마치 진짜로 살아있는 존재처럼 사탄과 승한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오래간만이군요, 사탄.”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대체 내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거지? 몇 만년? 몇 억년?”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군요. 저 또한 시간이 지나가는 걸 세어보지 않은 지도 꽤 오래 됐거든요.”

사탄과 아델은 태초가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해왔던 진정한 영생의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보내온 시간을 세어보자면 에덴의 역사와 같을 것이다.

사탄은 다른 악마들을 보았을 때와는 달리 조금 들뜬 표정이었다. 그 정도로 아델과의 만남이 기쁜 듯했다.

“궁금한 게 많으신 모양이네요.”

“그래. 많지. 넌 모를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떤 것인지. 그곳에서 또렷한 의식을 부여잡으며 세상 밖으로 나올 날만을 기다리고, 이곳 에덴의 땅을 밟게 될 날만을 기다렸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입은 은은하게 웃고 있지만 두 눈에서 뿜어지는 안광은 그렇지 않았다. 잔잔한 목소리와는 달리, 그의 눈에서 피어나고 있는 안광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궁금하더구나. 왜 나를 그런 곳에 묻어야 했는지. 아델, 너라면 알고 있겠지?”

아델은 말이 없었다. 승한은 사탄이 봉인되어야만 했던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해 함께 그 답을 기다렸다.

“당신이 그리 된 이유는 당신으로 인해 인간들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뭐 잘못 된 것이냐? 신이 있으면 악마가 있고, 선이 있으면 악이 있다. 그 당연한 수순을 그분이 이해하지 못하실 리 없을 텐데?”

“그걸 당연하다 여기는 것은 당신뿐입니다. 사탄, 당신의 존재는 있어선 안 되는 것이에요.”

악(惡)이라는 존재가 나타난 이유는 사탄의 등장 때문이었다. 그는 최초의 악이었고, 그의 존재로 인해 파생된 존재가 바로 다른 악마들이었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는 어두운 면이 심어졌다. 에덴의 신은 그것을 안타까워했고, 사탄을 세상 아래에 묻었다.

그것이 바로 사탄이 봉인되었던 이유였다. 사탄 또한 알고 있었고, 모르는 신들이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탄은 그것이 자신이 봉인 될 만한 이유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고작 그런 것이었나?”

“고작이 아닙니다. 당신이 있다면, 선악의 경계가 무너져버리니까요.”

“그건 그분이 세상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나? 그분께서 관여하게 된다면……!”

“그분은 그러실 생각이 없습니다. 사탄, 당신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도 그분께서 움직일 이유가 되지는 못해요.”

아델의 말에 사탄은 눈으로 분노를 터뜨리다 이내 고개를 숙였다. 웃음기를 지워버린 사탄은 아델과 함께 승한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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