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212화 (21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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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아무튼 저희들은 당신들의 힘과는 별계로 에덴의 신에게서 계시 같은 것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희가 반드시 거치고 통과해야 할 하나의 시험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 게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분의 계시를 통해 우리가 직접 그 시험을 주관하기도 했었고. 물론 다른 세상에 우리들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약속 때문에 큰 도움은 주지 못했지만 말이야.

“그 계시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사탄은 부활했고, 그를 통해서 이곳으로 곧 악마들이 오게 될 겁니다.”

-……그런가. 그렇게 된 거였나?

신들은 사탄의 이름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해온 이들인지는 몰라도, 고위 신정도 되는 이들이라면 사탄과 에덴의 관계를 알고 있을 법도 했다. 그를 통해 악마들이 이곳 에덴에 발을 들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막지 못했군.

-애초에 막을 수 없는 일이었지.

-그래도 이들까지 악마와 싸우게 해야 하는 건가?

-생각이 있으시겠지.

신들은 아무래도 악마들의 목적이 사탄이었던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크게 당황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는 건가?

그 때, 황금색으로 빛나는 신이 승한의 앞으로 나섰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이었지만, 승한은 그가 지금 나타난 신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곳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라니요?”

-너에게 힘을 준 붉은 천사 말이다. 그녀를 비롯한 천사들은 이곳에 오지 않을 생각인가?

“그녀는 에덴에 있지 않은 겁니까?”

-모든 악마들이 하나가 되지 못한 것처럼, 신들 역시 각자의 세상이 존재하지. 때로는 자신이 만들지 않은 다른 신들의 세상에 몸을 담고 있는 신들도 있고. 하지만 그녀를 비롯한 천사들은… 애초에 어느 세상도 아닌 에덴의 신에게 속해있는 존재. 당연히 이곳을 지키고자 나설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녀가…….”

승한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에덴의 신에게 속한 존재라고요?”

**

“실망하는구나.”

에덴의 신은 여전히 같은 곳에서 승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넓고 넓은 에덴의 모든 곳을 살폈다. 또한, 승한을 비롯한 헌터들과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신들의 표정과 손짓 하나까지도 그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의 뒤로는 각양각색의 날개를 가진 천사들이 고개를 숙인 채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네 명의 천사들은 바로 붉은 천사와 단죄의 천사, 수호의 천사, 자비의 천사였다.

“아무래도 저 아이는 나에게 원한이 큰 모양이다.”

“당신께서는 잘못하신 것이 없으십니다.”

“그렇다 하여도 저 아이가 나를 미워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초한 것은 바로 나의 선택이지. 저 아이가 나쁠 것 없다.”

승한은 에덴의 신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조건적인 미움이나 증오는 아니었지만 작은 원망은 가지고 있었다. 에덴의 신으로 하여금 이 일이 생겨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다그치겠습니다.”

단죄의 천사가 고개를 들었다. 붉은 천사와는 달리, 다부지고 강인한 눈을 가진 천사였다. 붉은 천사와 비슷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그녀의 날개는 황금색이었고 눈매와 눈동자는 그 누구보다 강인했다. 그녀는 에덴의 신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승한을 곱게 보지 않았다.

“됐다. 이 정도로 다그쳐서야 되겠느냐.”

에덴의 신은 씁쓸하게 웃었다.

“어쩌면 저 아이는, 평생을 나를 원망하며 살지도 모르는 것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이 방법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 또한, 반드시 저 아이만이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괜찮을지도 모르고. 저 아이의 희생을 강요한 것은 나의 선택이다. 이 정도면 원망할 만도 하지.”

단죄의 천사는 에덴의 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그의 의지가 그러하다면 따른다. 그것이 바로 그를 따르는 천사들의 다짐이었다.

“저희는… 나서지 않아도 됩니까?”

네 명의 천사들은 에덴의 신이 최초로 탄생시킨 존재들이었다. 태초부터 그를 옆에서 보좌했으며, 다른 신들과는 달리 그 어느 땅에도 속하지 않고 오직 그에게만 속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녀들은 에덴을 자신들의 고향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에덴이 아니라도 괜찮았다. 애초에 그곳이 아니더라도 어느 세상이든 에덴의 신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으니까.

“인간들과 관련이 없는 너희는 관여를 하지 않는 편이 낫겠구나. 아델, 너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아델. 그것은 바로 붉은 천사의 진짜 이름이었다. 그녀를 신처럼 떠받드는 종족인 천족들조차 알지 못하는 이름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 두고 보자꾸나.”

에덴의 신은 다시금 세상을 돌아보았다.

“저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

승한은 붉은 천사가 에덴의 신에게 속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껏 그녀를 천족들의 신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승한이었다.

‘그러고 보면… 하나의 세상의 종족을 여러 명의 신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것부터가 이상하긴 했지.’

네 명의 천사는 천족들에게 함께 신드로 추앙받고 있었다. 네 명의 신들이 함께 힘을 모아 하나의 세상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승한은 어딘가 모르게 찝찝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천족들을 만든 천사는 아마 한 명의 천사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네 명의 천사들을 모두 동등하게 자신들의 신으로 모셨다. 아마도 계시 같은 것으로 그들 네 명의 천사가 하나된 존재임을 천족들에게 알렸을 것이다.

그들 모두가 에덴의 신에게 속한 존재. 승한이 가진 성화라는 능력은, 애초부터 에덴의 신으로부터 기원한 것이었다.

‘혹시 나에게 이 능력을 주게 한 것도 당신입니까?’

승한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마도 저 멀리서 에덴의 신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와, 바로 방금 전에 만났을 때와 느낌이 너무 달랐다. 처음에는 그가 자신들의 세상을 망쳐놓은 주범이라 생각했지만, 방금 전 그와의 대화에서 그런 느낌이 꽤나 사라졌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일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

승한은 아직까지 그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손에 잡힐 듯 말듯 하건만, 정작 잡히지는 않았다.

‘일이 다 끝나게 되면 알게 되겠지.’

승한은 아무렇지 않은 척 눈앞에 있는 신들에게 말했다.

“에덴에 있는 신들이 얼마나 됩니까?”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사탄의 이름을 아는 신들은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 같군.

그 말에 승한은 주위를 둘러봤다. 처음 주위로 몰려들었던 신들을 비롯해, 신수를 닮은 수많은 신들이 이 자리로 모여들어 있었다. 덩치가 레드 드래곤과 비견되거나 더 거대한 신도 있었고, 토끼나 쥐처럼 작은 신들도 있었다.

대체 그 수가 얼마나 될까? 그들은 승한과 다른 신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신들의 귀는 천리 밖까지 닿아서 아주 멀고 먼 곳에 있는 신들까지도 승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럼 악마들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마찬가지로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악마들 중 꽤 많은 이들이 이곳 에덴을 노리겠지.

에덴은 신들의 땅이지만, 영원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담비와 같은 곳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악마들은 에덴의 땅을 노려왔다. 애초에 사탄을 부활시킨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 에덴의 땅에 대해 알고 있는 악마들 대부분이 사탄을 따르고 있을 것이다.

“한 시라도 빨리 신들을 모아야 합니다. 악마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는…….”

-아무래도 늦은 것 같군.

대화를 나누고 있던 신이 승한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그리고 그 순간, 승한의 시선이 뒤편 하늘로 향했다.

쩍, 쩌저적-.

거대한, 아주 거대한 균열이었다. 승한의 세상에 나타나던 균열과 닮았지만, 그 크기는 결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다.

승한은 그것을 바라보며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가느다란 선처럼 그어진 균열은 하늘을 뒤덮을 정도였다. 곧이어 균열은 누군가 양 손으로 잡아 벌리는 것처럼 쩍, 하고 입을 열었다.

쩌억-.

-왔구나.

**

-드디어 이 날이 왔구나.

-에덴은 어떻게 생긴 곳일까?

-아름다운 곳이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한데 모여있는 곳이지.

-마치 가 본 것처럼 이야기 하는군.

-가 봤어. 가 봤다고. 그래서 더 잊지 못해.

-다들 닥치고 있어 봐. 들뜬 기분 망치지 말고.

-이 좋은 날 너무 그렇게 날 세우지 말라고.

-이제 곧 신들을 도륙해야 하는데, 날을 세우지 말라고? 너 제정신이냐?

빛이라고는 한 점 없는 어둑한 공간에서 그들을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는 젊잖게 격식을 차리고, 누군가는 경망스럽게 말을 막 하기도 했다. 공통점이라고는 한데 없어 보이는 그들의 공통점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어둠 속에서 함께 웃고 있다는 것.

그들은 기뻐서 춤이라고 싶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왔던 것이다. 심심하고 무료한, 영원한 삶 가운데서 죽음을 택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살아남아 있었다.

악마.

그들은 그 이름 하나로 같은 존재였다. 신의 어두운 이면이자, 선과 악의 기준에서 악에 속하는 존재들이었다. 정의에서 쫓겨나 에덴의 땅에서 배척받고 땅을 얻지 못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늘 어두운 곳에서 살았다. 빛을 보지 못하고, 행복을 알지 못했다. 영원한 삶 가운데서 낙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악마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죽지 못해 살았고, 에덴의 땅을 빼앗기를 원했다.

그래서 부활시켰다.

사탄을.

-그런데 사탄 저건 왜 저래?

-글세.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긴 하군.

-난 최초의 악마라고 해서, 우리보다 훨씬 더한 놈일 줄 알았는데.

-나와 좀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단 말이지.

-우리들 중 저렇게 과묵한 놈이 있던가? 내가 기억하기로는 없는데.

악마들은 어둠 가운데서도 사탄의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사탄이라는 악마는 악마들 가운데서도 이야기가 많았다. 어느 누구는 아포피스와 같이 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 했고, 어느 누구는 수백 개의 뿔이 달린 괴물일 것이라고 했다.

악마들조차 알지 못하는 악마. 그것이 바로 사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가 무성했던 사탄은 두 개의 뿔을 가진 인간의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신과 가장 가까운 모습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악마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는 김이 새버렸다. 기대했던 것에 훨씬 미치지 못했던 것이었다.

-저놈이 진짜 에덴의 신의 반쪽이야?

-반쪽이 아니라 어두운 면이다. 우리들을 신의 반쪽이라고 부를 순 없지.

-하긴, 에덴의 신이라는 작자에게 어두운 면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

사탄에 대한 악마들의 평가는 단지 ‘열쇠’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악마들을 에덴의 땅으로 인도할 수 있는 열쇠. 그것이 바로 악마들이 사탄을 부활시킨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이만한 크기의 균열을, 그것도 에덴에 만들 수 있도록 허락된 악마는 사탄뿐이니까.

-두근거리는군.

-이제 곧…….

쩌저저적-.

사탄의 앞으로 환한 빛이 들어왔다. 거대한 균열이 열리며, 에덴의 빛이 균열 안으로 들어왔다.

그 균열 속에 있던 수많은 악마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온갖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는 악마들은 벌어진 균열을 통해 에덴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이자 환호했다.

그 속에서, 사탄은 나직이 말했다.

“드디어 이 땅을 빼앗으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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