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210화 (210/223)

0210 / 0223 ----------------------------------------------

23. 죽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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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

어디선가 시계 초침 달리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승한은 눈을 감고 저도 모르게 시간을 세고 있었다. 일초, 일초가 지나갔다. 어느 때보다도 시간이 더디게, 하지만 착살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그런 생각이 든 순간, 굳이 메시지를 떠올려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1시간.

이제 딱 1시간이 남았다. 9스테이지가 끝이 나는 제한시간까지. 그 시간이 지나간 후에는, 모든 것이 결정지어질 것이다.

승한은 다시 눈을 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안양시의 어느 한복판이었다. 가장 처음 승한이 능력을 사용하고, 스컬레톤들과 싸웠던 시내.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승한은 무작정 이곳을 찾아왔다.

‘사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겠고.’

사탄이 어디서 나타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서울의 어느 곳일지도 모르고, 중국의 어느 도시일지도 모른다. 혹은 어느 때처럼 보스가 나타났던 안양시일지도 모르고.

확신은 없었기에 승한은 무작정 안양을 찾아왔다. 그나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포피스의 본체였던 이무기 역시 처음에는 안양천에 잠들어 있었다. 같은 악마라고 할 수 있는 사탄 역시 이번에도 안양에 나타날 가능성이 컸다.

“이제 한 시간 남았네.”

승한과 함께 있던 윤재 역시 꽤나 떨리는 모양이었다. 반면, 승한은 오히려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점점 더 차분해졌다.

“정확히는 오십오 분 삼십 초 남았어요.”

“계속 확인하고 있냐?”

“……그냥 시간이 세어지네요.”

잠을 자지 않은지도 꽤 오래 된 느낌이었다. 가만 보면 윤재의 눈가에 옅은 다크 서클이 보였다. 꽤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은데다가, 쉬지 않고 싸웠기 때문이었다.

반면 승한은 생각보다 쌩쌩했다. 잠을 자는 행위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힘을 과하게 사용했던 것도 몇 시간 정도 쉬었더니 금세 돌아왔다.

‘지금 있는 타임 포인트가…….’

승한은 남아있는 타임 포인트를 확인했다. 동남아에 남아있던 나가들을 잡고 획득한 타임 포인트가 대략 3천만. 이것으로 승한이 가진 타임 포인트는 1억 4천만이 넘었다.

‘황당하군.’

500만 타임 포인트에 쩔쩔매던 게 불과 이틀 전이었다. 그런데 지금, 승한은 500만 타임 포인트가 우습게 여겨질 정도의 점수를 가지고 있었다.

나가들이 많은 수치의 타임 포인트를 준 것도 있지만 그 수가 이전보다 더 많은 이유가 가장 컸다. 더군다나 쉬지 않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나가들을 잡아댔으니, 이 정도 타임 포인트를 획득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걸 어디에 쓰느냐인데.’

이제 결정을 내릴 때였다. 다른 능력에 사용하기는 아까웠다. 어차피 성화나 [올림포스], [성검]은 [강림]을 통해서 레벨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물론 일시적이라는 제한이 있지만, 상대가 사탄이라면 이번 싸움이 마지막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최후의 스테이지가 뭘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번 스테이지부터 넘겨야겠지.’

세 가지 능력을 제외하면 남은 것은 [영생]과 [귀신], [증폭], [강림]이었다. 이 중 [영생]과 [강림]은 더 이상 레벨을 올릴 수 없는 능력이었다.

결국 신이 정해져 있지 않은 능력은 [귀신]과 [증폭], 이렇게 두 가지 뿐이었다.

‘가만. 신이 정해져 있지 않아?’

승한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다른 능력들과는 달리, [귀신]과 [증폭]은 신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 걸렸던 것이다.

‘그럴 리가 없잖아?’

승한은 [귀신]과 [증폭]이라는 능력을 지금껏 배제시키고 있었다. 그 능력과 관련된 신을 본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 하지만 다른 헌터들의 경우, 자신의 능력과 연관된 신을 직접 만난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당장 옆에 있는 윤재만 하더라도 자신의 신을 직접 만났던 건 레드 드래곤 뿐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귀신]과 [증폭]에도 관련된 신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어떤 신일지는… [강림]을 사용하면 알 수 있겠지.’

막상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영생]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럼… [영생]의 신은 누구지?’

풀 수 없는 의문이었다. 다른 능력과는 달리, [영생]의 영역은 이른바 신들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신의 조건이 바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육체라고 했으니 말이다.

신이 신을 만들어낸다? 모순 아닌 모순이었다. 평범한 신이 이러한 일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설마……?’

문득 떠오른 생각에 승한은 피식 웃었다.

‘아니겠지?’

여전히 혹시나 싶긴 했지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결국 승한은 고민하던 끝에 타임 포인트를 조금 더 아껴두었다. 정말 자신의 생각대로 [귀신]과 [증폭]에도 신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 타임 포인트를 하나에 투자하는 건 썩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모든 능력에 [강림]을 사용하려면 당장 타임 포인트를 아껴두는 게 낫겠지.’

그렇게 생각한 승한은 다시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가도록.

**

한 시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일초 일초를 세어가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사실 오지 않았으면 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막상 일 분 전으로 그 시간이 다가오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형, 진짜 괜찮겠어요?”

“나 혼자 도망가라고? 그건 좀 그렇지 않아? 어차피 여기서 네가 죽으면 나도 죽을 건데.”

승한은 윤재가 가능하면 도망가길 원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안양시 내에 사탄이 나타날 확률이 가장 컸다.

하지만 윤재는 승한의 말을 듣지 않고 그의 옆에 있기를 자처했다. 물론 그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사탄이라는 악마가 나타나고, 승한이 그를 막지 못한다면 어차피 윤재도 언제고 사탄과 싸우게 될 것이다. 차라리 지금 승한을 돕는 게 미력하게나마 힘이 될 수도 있었다.

“그 말은 이제 그만 하지. 너랑 여기 앉아있으면서 벌써 세 번째 듣는 말인데.”

“……알았어요.”

그 대화를 끝으로, 시간이 되었다.

[스테이지 9.1을 실패하였습니다.]

[스테이지 9.2로 넘어갑니다.]

[스테이지 9.2]

달성 조건 : 에덴의 신들을 도와 사탄과 악마들을 막아라. 에덴의 땅이 악마들에게로 넘어가는 순간, 세상의 선과 악이 뒤집힐 것이다.

제한시간 : --

남은시간 : --

성공 : 최종 스테이지로의 이동.

실패 : --

머릿속에 다음 스테이지의 진행 상황이 떠올랐다. 당연하게도 지금 자신들이 있는 이곳에 사탄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던 승한은,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에덴……?”

의문이 막 시작되는 순간.

슈슈슉-.

나란히 서 있던 승한과 윤재의 몸이 잔상이 되어 사라졌다.

**

몸은 사라졌지만, 정신은 온전히 남아있었다. 승한은 자신의 몸이 흐릿해지며 잔상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혼란에 빠졌다.

시야가 사라지고, 몸도 함께 사라졌다. 정신만이 남아 아득히 멀고 먼 곳으로 향했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느낌이 사라지고 정지한 시간에서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머리로 알 수 있었다.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싶었지만, 사실상 시간은 얼마 흐르지 않은 상태였다. 승한의 몸이 서서히 다시 반투명해지며 나타나고, 눈과 함께 시야가 다시 나타났다.

그렇게 시야에 드러난 세상을 보며, 승한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긴는…….’

“어서 오거라.”

승한은 바로 자신의 옆에서 태연히 앉아있는 노인을 바라봤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는 얼굴이 없었지만 자신의 앞에서는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에덴의 신이었다. 또한, 승한이 서 있는 곳은 바로 에덴의 높은 곳이었다. 에덴의 신과 승한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에덴의 넓은 세상을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또 다시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래. 하지만 이번엔 너만 부르진 않았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승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던 중, 사탄과 관련된 스테이지를 떠올리고는 물었다.

“설마… 헌터들 전부가?”

에덴의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에덴을 내려다볼 뿐. 승한은 그 침묵이 긍정임을 알 수 있었다.

“이유가 뭡니까?”

“이야기나 좀 하자꾸나.”

그의 말에 승한은 옆으로 나란히 앉았다. 세상과 함께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에덴의 신은 말이 없었다. 이야기를 하자고 했으면서,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여 에덴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결국 참다못한 승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간은 많았다. 아니, 그의 옆에서 시간은 무한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승한과 단둘이서 멈춰있는 시간에 있었다.

에덴에는 신들과 함께 헌터들이 와 있었다. 그 헌터들은 승한과 함께 8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들이었다. 승한의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헌터들 중,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헌터들 중에서도 에덴의 신과 마주한 사람은 결국 승한이었다. 에덴의 신은 승한을 따로 불렀다. 그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게 아니라, 네가 궁금한 게 많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 거 없습니다.”

승한은 단호하게 말을 잘라냈다. 승한은 자신의 세상에 벌어진 일들이 에덴의 신으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에덴의 신에게 조금 반감 같은 것을 가진 상태였다.

“정말 없느냐?”

하지만 에덴의 신은 승한의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물었다. 그때서야 승한은 기억해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신은, 정말로 자신의 속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을.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승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앞에서는 괜한 반발심에 튕겨봤자 득을 볼 것도 없었다. 사실 궁금한 것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저를 비롯한 사람들을 에덴으로 부른 이유가 뭡니까?”

“알려주지 않았느냐? 에덴의 신들을 도와, 악마들을 몰아내라고.”

에덴의 신은 생각보다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스테이지의 주 내용이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에덴으로 날아오는 바람에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린 승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악마들을 에덴에서 몰아내다니요? 에덴은 신들의 땅이잖습니까?”

신들의 땅, 에덴. 그곳은 에덴의 신이 최초로 만들어낸 세상이자, 지금은 영생을 얻은 신들만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신성한 땅이었다.

얼마 전에만 해도 승한은 인간의 몸으로 에덴에 발을 들여놓았다. 물론 [영생]이라는 힘을 능력의 형태로 얻은 지금에야 에덴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신이 아닌 인간, 게다가 신과 정 반대의 존재라 할 수 있는 악마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승한이 알고 있는 에덴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 신들의 땅이지. 하지만 악마들은 결국 신들의 반쪽이다. 그들이 에덴에 발을 들여놓을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

“악마들은… 에덴을 원했던 겁니까?”

“영생을 얻으면, 행복할 것 같으냐?”

승한의 물음에 에덴의 신은 뜬구름 잡는 질문으로 답했다. 승한은 그 질문이 자신이 던진 질문과 관련이 있다 생각하고는 고민했다.

영생. 말 그대로 영원한 삶이었다. 수천, 수만, 수억년이 지나도 죽지 않는.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는 이상, 그 삶은 말 그대로 무한하다.

“……행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승한은 금세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런 삶이 행복할 리 없었다. 지루하고, 따분하고, 외로울 것 같았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고,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새로움이라는 설렘이 없다. 인간의 행복은 유한하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승한의 대답에 에덴의 신은 옅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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