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207화 (207/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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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승한씨와 싸우던 악마는… 죽은 겁니까?”

“네. 타임 포인트 획득 메시지도 분명 확인 했습니다. 죽었습니다.”

해리슨은 승한의 승리 소식에 환하게 웃었다. 걱정하고 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승한이 패하게 되면 거대한 악마를 다른 헌터들이 상대해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나저나 승한씨, 눈이…….”

“아, 이거 말입니까?”

승한의 눈은 한쪽은 검고, 한쪽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강림]을 통해 승한의 눈이 변한 것을 처음 보는 만큼, 해리슨은 그의 변화를 낯설어 하고 있었다.

“그냥 제가 사용한 능력의 효과일 뿐입니다. 능력의 지속이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겁니다.”

“그, 그렇습니까?”

해리슨은 승한을 눈앞에 두고는 잔뜩 긴장했다. 조금 전만 해도 자신들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지금 승한의 모습은 인간이라는 느낌조차 들지 않을 정도였다.

승한은 붉은 천사와 아롤과 하나가 되어있었다. [영생]을 얻은 이후, 승한의 변화는 주위 사람들이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 명의 신들과 하나가 된 이후에는 그 변화가 더욱 도드라졌다.

해리슨은 수면 아래로 거의 다 가라앉은 아포피스를 내려다보았다. 그 거대한 몸체를 가까이서 확인한 해리슨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아무튼… 이 녀석이 보스인 건 확실하겠지요?”

“이 녀석이 보스가 아니라면, 또 어떤 녀석이 보스겠습니까?”

“그럼 이제 남은 괴물들만 마저 처리하면 되겠군요.”

해리슨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나저나 지금도 이 정도인데, 대체 다음에는 어떤 녀석이 나타날지 막막하군요. 지금이야 막연하게 승한씨에게 기대고 있지만,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그게 아닐 겁니다.”

승한은 고개를 저었다. 해리슨과는 달리, 승한은 다른 헌터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잡힐 듯 말듯 멀게만 느껴졌던, 끝이라는 것이 이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이제 슬슬 끝이 보입니다. 물론…….”

승한의 황금색 안광이 번뜩이며 손에 들고 있는 듀란달을 바라봤다.

“끝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

승한은 해리슨의 도움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타국에 남아있는 악마나 보스는 없었다. 한국에 남아있는 괴물들도 다 처리하지 못한 이 때, 승한이 바로 다른 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승한은 다른 사람들과 작별을 한 후, 안양시 내의 한적한 도시 한복판에 멍하니 서서 중얼거렸다.

“……아직도 이야기 하지 않으실 셈입니까?”

승한의 황금색 안광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그 안광은 그리 밝지 않았다. [영생] 덕분인지 이전보다 [강림]의 지속시간이 더 길게 남아있었지만, 그마저도 이제 슬슬 끝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며 승한은 듀란달을 바라봤다. 아롤 역시도 대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분명 그 역시도 승한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텐데도.

“아롤님도 아시는 게 전혀 없습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짜증난다는 투로 돌아온 대답이었지만 그나마도 승한에게는 다행으로 느껴졌다. 대화를 완전히 거부하고 있는 붉은 천사보다는 나았다.

‘아포피스가 했던 말, 무슨 뜻입니까?’

‘네가 속고 있다는 말?’

‘네. 그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승한은 악마인 아포피스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붉은 천사와 아롤, 그 두 존재 역시도 아포피스의 말이 거짓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 녀석은 천사가 너를 속이고 있다고 말했지. 그건 거짓이 아니야. 하지만 반대로… 나와 그녀, 그리고 모든 신들은 너에게 거짓을 말한 적도 없어.’

‘그럼 속았다는 건 대체 뭡니까?’

‘관점의 차이지. 신과 악마, 이 두 존재는 완전 걷는 길과 생각하는 게 다른 존재니까. 그 녀석은 네가 천사에게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그걸 속고 있다고 말하는 거고.’

‘……이해하기 어렵군요.’

승한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누군가는 자신이 속고 있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 쪽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말 모두가 진실이었다.

‘그래서, 당신들이 제게 원하는 게 뭡니까?’

승한은 이미 악마들이 원하는 바가 사탄이라는 악마의 부활이라는 것과 헌터들의 역할이 바로 그런 악마들을 막아내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붉은 천사와 아롤은 그것 이외의 어떠한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그래서 물었다. ‘헌터들’이 아닌, ‘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아직 몰라도 돼.’

‘……이러시깁니까?’

‘결국 네가 원하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같을 거야. 불안해하지 마라. 우린 널 속이고 있지 않아. 단지 감추고 있을 뿐이지.’

‘그게 그거 아닙니까?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잖습니까?’

‘……그렇기도 하지. 하지만 어쩌겠냐? 우리도 전지전능하지는 않아. 단지 조금 강하고, 영원한 삶을 허락받았을 뿐이지. 바로… 너처럼 말이야.’

아롤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씁쓸하게 들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승한은 자신이 수명을 초월한 삶을 허락받았음을 완전하게 자각할 수 있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죽지 않는 이상, 영원히 살 수 있다. 승한은 어딘지 모를 고독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이 원했던 영생이라는 축복은 승한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이만 말을 줄이지. 더 말하다간 우리 고명하신 천사께서 난리를 치실 것 같으니.’

스스스스스-.

듀란달에 적혀있던 검은 글자들이 서서히 사라졌다.  [강림]의 지속시간이 다 끝난 것이었다.

‘그럼, 다음에 또 불러 달라고.’

그 말을 끝으로 아롤은 사라졌다. 동시에 승한의 황금색 눈이 원래의 검은 눈동자로 돌아오며 붉은 천사의 힘도 함께 사라졌다.

‘……죄송해요.’

마지막으로 남긴 붉은 천사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처연했다. 사과할 만한 일이 있었던가? 그녀는 승한을 위해 힘을 빌려주었다. 비록 능력이라는 형태로라지만, 그녀가 없었다면 바알을 쓰러뜨리지도 못했을 테고 아포피스와도 싸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 확실히 그들은 승한을 위해 힘을 빌려주었고 같은 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승한을 속일 이유가 없었고, 승한에게 피해를 줄 이유도 없었다.

‘생각하지 말자.’

아포피스에게 들은 말에 너무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승한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앞으로 다가올 일들만 신경 쓰기에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으니까.

-승한씨!

그 때, 승한과 함께 안양으로 돌아온 안석환에게서 전음구를 통해 연락이 돌아왔다. 방금 헤어진 안석환이 바로 다급하게 연락을 취해오자, 승한이 의아해하며 전음구를 들었다.

“무슨 일이십…….”

-괴물들이… 대피소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

**

화르르르르르륵-.

퍼퍼퍼퍼퍼펑-!

새하얀 백염이 일대를 휩쓸었다. 하늘 높이 치솟은 백염의 불기둥은 호계체육관을 둥그렇게 감싸며 근처로 나가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크르르르르르-.

한 층 더 거대해진 레드 드래곤은 나가들을 노려보며 낮게 울음을 흘렸다. 그 위에 타고 있던 윤재는 양 손에 새하얀 불길을 머금은 채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들은 또 어디서 나타난 거야?”

윤재는 안양 시 내에 나가들이 나타났다는 보고들 듣고 바로 안양으로 돌아왔다. 그런 그의 눈에 밟힌 것이 바로 호계 체육관을 공격하고 있는 나가들의 모습이었다.

만약 윤재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호계 체육관에 대피해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호계 체육관을 지키고 있던 군인들만으로는 나가들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 나가들은 설령 미사일이 떨어지더라도 쉽게 죽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갑작스럽게 안양 시 내에 나타난 나가들의 수만 해도 수백 마리에 가까웠다. 땅에서 솟았는지, 하늘에서 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들이 노리는 것이 대피소라는 점이었다.

‘헌터들이 아니고 대피소를 공격한다?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이야?’

지금껏 괴물들이 공격해 온 것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능력을 가진 헌터들이었다. 헌터들이 가진 능력은 정도는 다르나 대부분이 괴물들에게서 적대시 되는 힘이었고, 그 힘 때문에 괴물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먼저 헌터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나가들은 그와는 반대였다. 헌터들이고 보통 사람들이고 가릴 것 없이 무작정 공격을 가하기라도 하듯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대피소를 향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윤재는 물론이고, 대피소를 지켜야 할 모든 헌터들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황이었다.

“젠장. 역시 지키는 게 몇 배는 더 힘든데…….”

차라리 윤재 자신을 공격했다면 싸우기는 한결 편했을 것이다. 아무리 나가들의 수가 많다지만 윤재는 방금 전까지 나가들을 쓰러뜨려 획득한 타임 포인트로 능력의 레벨을 꽤나 높인 상태였다. 스스로의 몸을 지키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지금 눈앞에 나타난 수백의 나가들과도 한 번 싸워볼 만도 했다.

하지만 나가들이 윤재만이 표적이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윤재는 일반인들은 물론, 군인들까지 함께 지켜야 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두두두두두두-.

쉬이이익-. 쾅-!

군인들이 쏘아낸 총알은 나가들의 몸은 뚫지 못했고, 수류탄과 같은 폭발 화기 또한 조금 상처를 입힐 뿐이었다. 그나마도 금방 몸을 재생해버렸다.

오히려 그 공격은 나가들의 이목을 끌 뿐이었다. 기껏 공격을 퍼부어 나가들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모았던 윤재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젠장, 도움 안 될 거면 가만히라도 있어요!”

화악-!

윤재가 손짓하자 군인들을 향해 달려들던 나가들의 앞으로 새하얀 불기둥이 생겨났다. 군인들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평소라면 가능한 점잖게 타이르겠지만, 윤재는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사상자가 없었지만 자신이 언제까지고 계속 다른 사람들을 지키며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신들도 대피소 안에 들어가 있어요! 방해하지 말고!”

윤재는 대놓고 그들을 방해꾼으로 취급했다. 다소 과한 언사일지도 모르나 명백한 사실이었다. 강동훈 소령을 비롯한 군인들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들은 윤재의 보호를 받으며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호계 체육관은 나가들로 빙 둘러싸인 상태였지만, 그 넓은 범위를 전부 윤재가 홀로 보호하고 있었다. 거기에 사용되는 힘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이대로는 안 돼. 지원이 필요해.’

나가들을 막기 시작한지 몇 분 되지 않았지만, 윤재는 금방 한계가 드러날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넓은 공간을 지키면서 싸우기에는 윤재의 능력이 부족했다.

‘승한이는… 아직인가?’

악마들을 잡겠다며 떠난 승한이었다. 악마들이 세계 곳곳에 나타난 만큼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릴 것이다. 아직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승한의 도움을 바란다는 건 어려웠다.

“역시 나 혼자 막는 수밖엔 없나?”

무모한 결심을 굳히며 윤재가 막 다시금 백염을 쏘아내려던 순간이었다.

사사사사사삭-.

촤아아아악-!

윤재가 막 백염을 쏘아내려던 나가들의 몸에 가는 혈선이 그어지며 피분수를 뿜어냈다. 동시에 그들의 몸 위로 익숙한 황금색의 불길이 타올랐다.

“이건…….”

윤재가 활짝 웃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새하얀 검신의 듀란달을 한 손으로 휘두르며 다른 나가들을 공격하고 있는 승한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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