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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저 녀석이 아포피스인가? 몇 번 귀동냥으로 들어본 적은 있는데…….
승한의 듀란달의 검신에 그려져 있던 글자들이 검신 위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아롤은 듀란달 속에서 웃음을 흘렸다.
-생각보다 별 것 없네.
그의 자신감이 승한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덩달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포피스에게 눌려서 기죽어 있던 승한은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함께 얻었다.
승한은 듀란달을 위로 들어올렸다. 아포피스는 그런 승한을 향해 입을 벌리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겠군.
우드드드득-.
점차 거대해지던 아포피스의 몸에서 손이 뻗어져 나왔다. 가죽을 뚫고 나온 두 개의 새하얀 뼈에는 빠르게 살이 붙었다. 검은 손아귀에는 시커먼 손톱이 길게 돋아나 있었다.
캬아아아아아-!
두 개의 손을 좌우로 벌리며 아포피스가 거대한 입을 벌려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포피스의 입에서는 진득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고, 양 손은 승한을 당장에라도 찢어 발길 듯했다.
승한은 그런 아포피스를 피하지 않았다. 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에 아포피스의 마기가 몸을 덮쳐왔지만, 무섭지 않았다.
‘벨 수 있어.’
아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쩌어어어어억-!
높게 들어올린 듀란달이 아래로 떨어지며, 세상이 반으로 갈라졌다. @@@
**
쏴아아아아아-.
쩍, 쩌저적-.
바다가 갈라지고, 세상이 갈라졌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좌우가 어긋났다. 승한은 자신이 휘두른 일검에 세상이 반으로 갈라지자, 막상 휘두르고 스스로가 놀랐다.
“이게…….”
[강림]으로 아롤의 힘을 이어받고, 그의 검술을 완전하게 이어받은 승한은 아롤의 검술을 직접 자신의 두 손으로 펼치고는 땀을 쥐었다. 붉은 천사의 성화의 힘을 완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붉은 천사의 힘과는 다른 의미로 놀라웠다.
검으로 바다를 가른다는 것. 그 정도라면 이해할 수는 있었다. 당장 [올림포스]라는 능력으로 승한은 흐르는 물을 반으로 가를 수 있었으니까. 홍해의 기적과 같이 바다를 완전하게 반으로 가르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롤의 검술은 바다를 완전하게 반으로 갈랐다. 갈라진 바다는 중력이라는 힘을 무시한 채 떨어져야 할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무엇보다, 공간이 베어지고 그 공간이 사라졌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다. 어긋난 두 개의 공간은 한쪽으로 흘러 내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어긋난 공간의 사이에는, 아포피스라는 거대한 뱀이 있었다.
‘죽은… 건가?’
승한은 거대한 머리가 반으로 베어진 아포피스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하나의 작은 섬처럼 거대한 머리는 아롤의 검술에 의해 반으로 베어져 서로 다른 공간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조금씩이지만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 걸 보면 죽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런 꼴을 당하고도 살아있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재미있는 기술이군.
그르르륵-.
두 개의 거대한 눈동자가 아래로 내려와 승한을 내려다보았다. 승한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금 힘을 일으켰다. 역시나 아포피스는 죽지 않았다.
아포피스의 손이 두 개로 나누어진 공간을 손으로 잡았다. 공간을 검으로 나눈 것도 기행이었지만, 그 공간을 맨 손으로 잡아 붙이는 것도 만만치 않은 기행이었다.
쩌저저적-.
갈라진 두 개의 공간이 다시 이어 붙었다. 그리고 그 순간, 승한의 몸이 서 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쉬이이이익-.
사악-, 화르르르륵=.
승한의 검이 아포피스의 몸을 베어내며 베어낸 자리를 성화로 태웠다. 어느새 승한의 등에는 붉은 천사와 같은 성화의 날개가 피어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승한은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었다.
촤아아악-!
아포피스의 몸에서 피가 튀어 바다로 떨어졌다. 아무리 아포피스가 고위 신과 같은 악마라고는 하지만, 그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무기일 뿐이었다. 그 몸에 아포피스라는 악마의 힘과 영혼을 모두 담았다 한들, 몸 자체를 완전히 뒤바꿀 수는 없었던 것이다.
승한의 검은 짧았지만, 이상하게도 검상은 깊었다. 아포피스의 몸이 조금씩 재생되었지만,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성화의 힘이 아포피스의 몸이 회복되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내 몸을 인간의 도구가 벨 수 있을 줄은 몰랐군. 보통 검은 아닌가 보지?
“그래. 보통 검은 아니지.”
승한은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다시금 아포피스의 머리 위로 뛰어들었다. 아무리 의연하게 반응한다고 한들, 첫 일격에 아포피스는 적잖은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강제로 공간을 이어 붙였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강제로 행한 일일 뿐. 뱀의 머리를 닮은 아포피스의 머리에는 베어졌다 이어 붙여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어디 베였던 곳을 또 베여도 멀쩡한지 볼까?”
화르르르륵-.
콰아아아-.
승한의 듀란달을 거대한 성화가 감쌌다. 바알과 싸울 때 사용했던, 거대한 성화의 거검이었다.
승한은 수십 미터의 거검을 위로 들어올렸다. 성검 듀란달에 성화의 거검. 그리고 아롤의 기술이 더해졌다. 아무리 아포피스라 하더라도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발악을 하는군.
“발악은, 네가 이제 곧 해야겠지!”
촤악-!
쩌억-!
성화를 머금은 검격이 직선으로 날아갔다. 아롤의 검술은 성화의 힘을 흩뿌리며 공간을 좌우로 갈라갔다. 그대로 아포피스의 몸 전체를 반으로 가를 것처럼 말이다.
으적-.
쩌저저저저정-.
그 순간, 아포피스의 거대한 입이 벌어졌다. 아포피스는 피하지 않고 승한의 검격에 몸으로 부딪혔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공간을 두 개로 벌리며 날아가던 검격을 아포피스가 먹어치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벌어진 입을 다물며 공간이 벌어지기 전에 다시금 닫아버리고 있었다.
으적-.
쿠르르르-.
검격이 사라지고, 살짝 벌어지던 공간이 닫혔다.
“진짜 별 짓을 다 하네…….”
이 싸움은 단순히 승한과 아포피스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승한의 몸에 들어와 있는 고위 신 붉은 천사와 아롤, 그리고 악마들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와의 싸움이었다.
공간을 베고, 태우고 그 공간을 다시 닫는다. 승한과 아포피스는 이러한 기행을 가능케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저 녀석, 원래는 얼마나 거대했던 거야?’
‘지금 아포피스는 본래의 모습이 아니에요. 지금이라면… 다시 아포피스의 힘을 봉인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롤과 붉은 천사의 목소리에 승한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조용히 좀 해 봐요.’
화르르륵-.
검격와 함께 날려보냈던 성화의 거검이 다시금 듀란달을 통해 나타났다. 공간을 베어내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면, 직접 베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승한의 몸이 잔상을 남기며 아포피스의 몸을 휘감았다. 워낙에 빠르게 움직이는 터라 잔상이 남았던 것이지만, 아포피스는 그런 승한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가진바 힘은 인정하나, 실력은 형편 없구나.
콰드드득-.
단숨에 목을 베어낼 생각으로 휘두른 검격을 아포피스가 손으로 잡아냈다. 손이 찢겨지고 타들어갔지만, 아포피스는 고통을 모르기라도 하듯 태연하게 그 손을 휘둘렀다.
쉬이이이익-.
촤아아아-.
던져진 승한의 몸이 바다 아래로 빠져들었다. 그 직후, 승한이 빠져든 바다 아래에서 수십 가닥의 검격이 뿜어져 아포피스르 향해 날아갔다.
사사사사사삭-.
수십 가닥의 검격은 아포피스의 몸에 자잘한 검상을 남겼다. 아포피스의 얼굴에 상처들이 생겨났고, 팔의 한 부분이 베어져 너덜거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아포피스는 미처 방어를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건방진…….
“이제 슬슬 이것도 익숙해 져서 말이야.”
아포피스는 자신의 머리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온 몸에 퍼져있던 마기를 일으켰다. 아포피스의 몸을 검은 안개가 뒤덮은 순간, 작게 뭉쳐진 성화의 힘이 아포피스의 머리 옆에서 터졌다.
콰과과과과광-!
-크윽.
마기를 두껍게 덮어 충격을 줄이긴 했어도 완전히 보호하지는 못했는지 아포피스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거대한 몸체가 움직이자 태평양의 수면 위가 함께 흔들렸다.
‘검술은 증폭이 안 되지만… 손을 떠난 검격은 증폭이 가능하단 말이지.’
승한은 성화와 [성검], [증폭]의 힘을 적절하게 사용했다. 힘의 부담도 이전보다 훨씬 덜하게 느껴졌다.
‘[영생]덕분인가?’
이전에는 [강림]을 사용하고 성화를 사용할 때마다 몸에 무리가 가는 게 느껴졌다. 당장은 큰 무리가 아니더라도 점차적으로 수명이 깎여나가던 것이었다.
하지만 [영생]을 얻고, 육신이 신에 가까워진 지금은 성화와 [성검]의 힘을 큰 무리 없이 다루고 있었다. 물론 이제 막 신에 도달한 몸으로 고위 신의 힘을 둘씩이나 받아들인 것인지라 아주 멀쩡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바알에게 감사해야겠군.’
아롤와 붉은 천사, 두 신의 힘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이전에 자신이 신의 힘을 여럿 몸으로 받아들이려 했던 것이 얼마나 허황된 생각이었는지를. 아마 그 당시에 그런 짓을 벌였다면 몸이 힘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바알 덕분에 [불굴의 육체]의 레벨을 올릴 수 있었고, [영생]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그 때 [영생]을 얻지 못했다면, [강림]을 사용했다고 해도 아포피스를 상대로 제대로 싸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 이제… 끝을 봐야지.’
시간을 길게 끌어서 좋을 것 없었다. 아포피스와는 달리, 승한의 힘을 빌려온 힘이었다. 언제 시간이 다할지 모르고, 더 이상 [강림]을 사용할 만한 타임 포인트도 남아있지 않았다.
쉬익, 쉬이익-.
성화의 검격이 아포피스의 몸을 휘감으며 날아갔다. 아포피스는 두 개의 거대한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같은 방법이 계속해서 통할 것 같으냐!
크어어어어엉-!
뱀의 입에서 거대한 맹수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성화를 머금은 검격이 흩어지며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태평양 한 가운데에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하지만 승한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애초에 휘두른 검격은 눈속임에 불과했다. 아포피스는 사라진 승한이 어디로 갔는지를 찾다가, 자신의 바로 밑에 있음을 눈치 챘다.
우우우우우우웅-.
듀란달을 중심으로 성화와 함께 막대한 양의 힘이 모여들었다. 검신이 깨어질 듯이 떨리고, 승한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바다가 퍼지고 있었다.
[512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증폭’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1024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증폭’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2048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증폭’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증폭]의 레벨이 오를 때마다 듀란달을 감싸고 있던 떨림은 더더욱 심해졌다. 성화의 힘과 듀란달이 가지고 있던 신성한 기운, 이 모든 것들이 뒤섞이며 빠르게 증폭되어갔다.
가지고 있던 타임 포인트가 바닥을 두드렸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아포피스를 잡지 못한다면 있으나 마나 한 포인트였다. [증폭]의 레벨이 오르자, 승한은 가지고 있던 모든 힘들을 있는 힘껏 폭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