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200화 (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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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악마라니요?”

-아무래도 보스인 것 같습니다. 현재 발견된 바로는 한둘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장 한국에만 하더라도 두 마리의 악마가 나타났습니다.

“혹시 8스테이지에서 보았던…….”

-바알이라는 악마는 아닙니다. 천사들과 싸웠던 악마들 수준이지요.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헌터들의 피해는 클 겁니다.

하급이라고는 하지만 악마들을 막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헌터가 필요했다. 이전에는 승한 외에는 악마를 상대할 만한 실력을 가진 헌터가 없었지만, 이제는 헌터들의 수준이 높아져 힘을 합친다면 하나쯤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승한은 그 때서야 왜 이렇게 나가들의 수가 부족한지 알 수 있었다. 나가들의 수가 적은 대신, 다수의 악마들이 나타난 것이다. 오히려 그 편이 더욱 위험했다.

‘8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들이야 힘을 합쳐 상대할 수는 있겠지만, 그 외에는…….’

8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능력의 레벨이 높고 실력이 뛰어나다. 그들이라면 힘을 합쳐서 악마 하나를 쓰러뜨리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 외의 다른 헌터들이었다. 현재 나가들을 상대하고 있는 건 8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실력이 부족한 헌터들도 많았고, 그들은 악마를 상대할 만한 능력이 부족했다. 결국 악마를 상대로 그들은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헌터들의 수는 부족했다. 승한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는 혼자였다. 대피소에 피신해 있는 사람들은 그곳을 지키는 헌터와 군대가 뚫리면 그대로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확인된 악마는 몇이나 됩니까? 장소는요?”

-확인된 장소는 서울과 워싱턴, 도쿄, 파리 등 각국 의 수도에서 주로 출몰했습니다. 대략 확인된 바로는 서른 마리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승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서른. 만만치 않은 수였다. 8스테이지에서 만났던 악마들보다는 적지만, 일전에는 한 마리밖에 나타나지 않았던 하급 악마가 수십 마리씩이나 떼를 지어 나타난 것이다.

‘큰일이군.’

현재로서 승한이 알기로 하급 악마를 상대할 만한 수준의 헌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윤재만 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진 헌터라지만 하급 악마와 1대1로 싸우는 건 힘들었다. 현재로서 하급 악마와 맞서 싸울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헌터는 승한과 루이즈, 그 외에 몇몇 헌터들뿐이었다.

“위치를 다 불러 주십시오.”

-서울, 워싱턴, 도쿄, 파리, 베이징, 오타와…….

안석환은 자신이 아는 선에서 수도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곳은 모두 하급 악마가 출현한 도시의 이름이었다.

-이 중 서울에 하급 악마가 셋, 미국 워싱턴에 두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승한은 안석환과 연락을 급히 끊고는 다른 사람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해리슨씨, 저 승한입니다.”

-승한씨?

해리슨의 대답은 곧장 돌아왔다. 아무래도 나가들과 싸우거나 하는 급한 상황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승한은 해리슨의 능력이 필요했다. 그의 실력은 8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들 치고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그가 가진 능력의 범용성은 승한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승한은 해리슨에게 현 상황을 설명했다. 나가들의 출현과 함께 나타난 하급 악마들. 그것을 이야기 했을 때, 해리슨은 승한이 부탁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승한씨를 각국의 수도에 있는 악마들에게 데려다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부탁드립니다.”

“그거라면 당연히 도와 드려야지요.”

대답은 전음구를 통한 목소리가 아닌,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승한은 씩 웃으로 뒤를 돌아봤다. 윤재와 함께 있던 레드 드래곤의 머리 위로 어느새 해리슨도 모자를 푹 눌러쓰며 와 있었다.

“전에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승한씨의 요청이라면 언제든 능력을 빌려 드리겠다고요. 이미 상부에서도 명령이 전달된 만큼, 부담스러워 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제 제 일이거든요.”

해리슨의 능력은 신체적 접촉을 한 대상이 있는 곳으로 한 순간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미 승한과는 악수를 나눴던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승한에게로 날아왔다.

“또 급하게 가야 하는 거냐?”

승한과 해리슨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윤재가 물었다. 자세한 건 승한이 하는 말밖에 듣지 못해서 모르지만, 그는 하급 악마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대강 눈치 채고 있었다. 그리고 승한이 그들을 잡기 위해 해리슨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는 것도.

“네, 형. 여긴 좀 부탁 할게요.”

“……하긴. 너 아니면 그런 놈들을 어떻게 잡겠냐. 다녀와라.”

나가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헌터들은 나가들을 잡으며 획득한 타임 포인트로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아마 나가들 정도는 처리하는 게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안양 시 내에 있는 나가들은 모두 정리가 되었다. 승한이 싸우는 동안 윤재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고, 체력도 꽤 회복한 상태였다. 윤재라면 다른 지역에 있는 나가들을 정리하는데 꽤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출발하도록 할까요?”

“가까운 곳부터 가지요.”

“당연한 말씀을.”

해리슨이 승한의 어깨를 잡았다. 다음 순간, 승한이 나타난 장소는 전혀 다른 풍경의 도시였다.

‘강남?’

익숙한 모습이었다. 이따금씩 오곤 하는 강남역 주변의 풍경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곳곳에 건물들이 부서져 있고, 나가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다는 점이었다.

“뭐, 뭡니까?”

승한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중년의 남자였는데, 어디에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승한은 해리슨을 통해 도착한 주위를 살폈다. 중년의 남자 외에도 그 주위로는 꽤 많은 헌터들이 흩어져 있었다. 한 지역을 담당하는 헌터는 많게는 세 명이 전부였는데, 이 지역에는 거의 스무 명에 가까운 헌터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실력이 꽤 뛰어나.’

대부분이 8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들. 그 중 몇몇은 7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였는데, 그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만한 전력이 모여들어 있다는 것은 하나를 뜻했다.

‘악마와 싸울 생각이었나 보군.’

하지만 정작 악마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승한이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던 때, 해리슨이 입을 열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실례했군요, 정환씨.”

“해리슨씨아닙니까? 여긴 어쩐 일로…….”

정환이라고 불린 중년의 남자는 해리슨을 알아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두 명의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던 모양이었다.

정환은 바로 이번 세계 헌터 연맹이 결성되는 자리에 함께 참여했던 헌터였다. 승한이 그의 얼굴이 낯이 익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친분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스치듯이 인사를 나눴던 사이였던 것이다.

해리슨은 세계 헌터 연맹이 결성되는 자리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다. 신체적인 접촉을 하고, 이름과 얼굴을 외웠다. 그 덕분에 해리슨은 따로 공간을 열지 않고도 승한을 데리고 곧장 서울로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혹시 이 근처에 악마가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승한의 물음에 정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승한이 그를 언뜻 기억하는 것과는 다르게 정환은 승한의 얼굴의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스, 승한씨 아닙니까? 승한씨까지 어떻게 여기에…….”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가능한 피해를 줄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울 지역에 있는 헌터들의 수준은 결코 낮지 않다. 특히 강남 지역은 안양 지역에 있는 헌터들 다음으로 수준이 높은 헌터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8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들도 수십 명은 훌쩍 넘었다.

아마 그들이라면 하급 악마 하나쯤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서울 지역에 있는 악마는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안석환에게 듣기로 서울 지역에 나타난 악마만 하더라도 무려 셋이었다.

‘이상해. 마기가 거의 느껴지질 않아.’

승한은 주위에서 마기가 느껴지지 않자 눈살을 찌푸렸다. 악마가 나타났다면 분명 그 기척이 느껴져야 할 텐데, 주위에는 옅은 마기가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악마라면… 여기 없습니다.”

“네? 없다니요?”

“사라졌습니다. 그 전까지 헌터들과 싸우고 있던 녀석들이, 불과 십여 분 전에 사라졌어요.”

“사라지다니, 대체 어디로 말입니까?”

승한의 물음에 정환은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로서는 쫒아갈 만한 힘도 없었고요.”

“방향은 어디로 간 겁니까?”

“이 쪽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환은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강남역에서 사당으로 가는 방향. 대체 그곳에 뭐가 있기에 그러는가 싶어 승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방향이면…….’

안양이 있다. 승한은 설마 싶었다. 그들이 자신을 노리고 안양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오히려 그런 거라면 다행이었다. 성화를 느끼고 여기서 이동한 거라면, 승한이 다시금 성화를 사용했을 때 돌아오려고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아닐 텐데?’

안양에서 강남까지의 거리는 상당했다. 승한이 악마들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악마들 역시 승한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당장 나가들만 하더라도 안양시 내에 있는 나가들은 대부분 몰려들었어도, 그 범위가 안양시 범위 밖에까지 미치지는 못하지 않았던가?

‘뭔가… 역시 뭔가 있어.’

악마들이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를 알아야한다. 승한은 주위에 남아있는 마기의 작은 잔재를 느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어디로 가시려고요?”

“악마들을 따라가 봐야죠. 금방 연락드리겠습니다.”

승한은 악마들이 남긴 마기의 흔적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움직이는 방향은 안양을 향해있었다.

**

마기의 흔적은 희미했다. 승한은 악마들이 움직인 희미한 마기의 흔적을 따라 움직였다. 시간이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아서인지 그저 움직이기만 했는데도 흔적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어디로 가는 거지?’

승한은 악마들의 흔적을 따라가다 익숙한 거리가 보였다. 지리를 잘 알지는 못해서 무작정 흔적을 따라가기만 하던 것이었는데, 어느새 안양권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설마… 진짜로 날 따라서?“

승한은 혹시나 싶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자신은 여기까지 오면서 성화의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만약 악마들이 승한이 가진 힘을 따라서 온 것이라면 진즉에 다시 방향을 돌렸을 것이다.

‘그럼 왜 여기에를……?’

졸지에 다시 안양으로 오게 된 승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악마의 흔적은 이전보다 훨씬 더 진해져 있었다. 이 정도면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승한은 악마가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마치 어디론가 가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어딜 간 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승한은 계속해서 악마의 뒤를 쫒아갔다. 흔적은 안양천으로 이어져 있었다. 승한이 사는 집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여긴……?”

승한은 악마의 흔적이 안양천 아래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안양천은 그렇게까지 깊은 강이 아니었다. 수질이 좋지 않아서 그렇지, 보통 사람들이 물장구를 쳐도 될 정도로 얕은 강이었다. 물론 조금 더 올라가면 수심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악마들의 덩치는 작지 않다. 강속에 몸을 숨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악마의 흔적은 계속해서 이어지다가 강에 들어가는 것으로 끊어졌다.

‘이 밑에 뭔가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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