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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199화 (19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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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윤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만큼 아포피스라는 악마의 이름이 가진 무게는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아, 아포피스?”

“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보고 왔어요. 아니… 정확히는 만나고 왔어요.”

승한은 멀리 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승한은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시험했다. 위험하다 싶으면 뒤로 돌아가면 될 테고, 여차하면 해리슨을 불러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다. 해리슨과 악수를 나눴던 적이 있으니 해리슨이라면 자신이 있는 곳까지 금방 와 줄 수 있을 것이다.

십 분 정도 올라가자 승한은 지구를 거의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전체, 그리고 멀리 바다 건너까지가 한 눈에 보였다. 너무 높은 곳으로 올라와서 그런지 슬슬 몸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지만, 그런대로 버틸 만 했다.

‘숨도 아직은 참을 만하고…….’

[영생]이라는 능력 덕분일까? 주위에 공기가 거의 없음에도 승한은 별로 숨이 차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대로라면 우주까지 올라가도 끄떡 없을 것만 같았다.

‘여차하면 [올림포스]도 있으니까.’

[올림포스]는 물리적 충격뿐만이 아니라 승한에게 가해지는 모든 피해로부터 몸을 지켜주는 능력이었다.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조금 더 올라가 보자.’

계속해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무언가에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씩 꿈틀거리는 무언가도 커져가고 있었고, 곧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했더니… 이거 오래간만이군.

구구구구구-.

승한은 머릿속을 파고드는 음성에 흠칫 놀랐다. 터질 듯이 웅웅 울리는 목소리에 승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냐?”

-날 향해 오고 있던 것 아니었나? 그보다 기억하지 못한다니 안타깝군. 난 한 시도 네놈을 잊은 적이 없는데 말이지.

자신을 아는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승한은 곰곰이 그 목소리의 주인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원한이 있는 것 같았다.

“……설마?”

-기억났나보군.

“진짜로… 아포피스인가?”

목소리로 기억하는 게 아니었다. 아포피스의 목소리는 고저가 없었고, 메아리와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승한에게 원한이 있고, 이만한 위압감을 풍기는 존재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대악마 아포피스. 그는 승한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족들을 구워삶아 자신을 봉인하고 있던 성화를 꺼뜨리고자 했다. 하지만 난데없이 나타난 승한에 의해 다 꺼져가던 성화는 살아났고, 그를 따르던 마족들은 몰살당하고 말았다.

승한에게는 그저 하나의 스테이지에 불과했지만, 아포피스에게는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길고 긴 세월 동안 성화에 봉인당해 있던 그는 언제고 다시 부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망쳐버린 게 바로 승한이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그거야 네가 알 필요가 없는 일이지. 그보다 기다려지는구나. 그곳에서 조금만 기다려라. 조금 뒤에 너희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갈 테니. 하하하하하하하.

아포피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승한의 머릿속을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멀리 보이던 꿈틀거림이 거세졌다. 그때서야 승한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포피스.’

그 자리는 본래 태양이 있어야 할 자리였다. 그리고 아포피스는 바로 그 태양을 가려버렸다. 일식이 일어나기라도 하듯. 그리고 그것은 하나를 뜻했다.

‘아포피스가 태양신을 잡아먹는 날, 일식(日食)이 일어나며 태양이 가려진다.’

승한은 아포피스에 대해 알게 된 후, 그에 대한 자세한 신화를 찾아보았다. 아포피스는 이집트의 신 태양신 라와는 적대적인 악마로, 태양신을 잡아먹고 일식을 일으키곤 했다.

그리고 그 현상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포피스는 태양신을 잡아먹고 태양을 가렸다. 그리고 승한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다음 대상은 바로 승한을 비롯한 모두라고.

‘온다.’

아포피스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어떻게 아포피스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봉인을 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태양신을 잡아먹을 정도라면 그는 이전과는 달리 봉인이 모두 플린 완전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었다.

‘붉은 천사라면…….’

승한은 머릿속에서 붉은 천사를 떠올렸다.

아포피스를 봉인시킨 신이 바로 그녀였다. 봉인의 매개채인 성화 역시 붉은 천사의 힘. 그렇다면 그녀의 힘을 온전하게 받아들인 성화의 힘이라면 아포피스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준비해야 돼.’

아포피스가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었다. 신화속 이야기처럼 아포피스가 진짜 태양을 가릴 정도로 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그렇게 묘사될 만큼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승한은 아포피스의 덩치를 적어도 바알 정도로 생각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가진바 힘 또한 아포피스를 능가하는 악마는 전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승한이 알고 있는 악마들 중 최강의 악마였다.

‘저 혼자만으로는 불가능해요.’

화륵-.

승한의 옆으로 성화가 피어올랐다. 7레벨에 이른 성화의 힘은 어느덧 붉은 천사의 의지를 밖으로 꺼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불가능하다니요?’

‘아포피스를 봉인할 수 있었던 건 단죄의 천사와 힘을 합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럼에도 아포피스를 봉인하는데서 그칠 수밖에 없었죠.’

단죄의 천사는 붉은 천사와 함께 천족들 사이에서 창조주의 일인으로 추앙받는 신이었다. 지금껏 아포피스의 봉인을 붉은 천사 혼자만의 힘으로 알고 있었던 승한은 깜짝 놀랐다.

‘혼자 한 게 아니었습니까?’

‘아포피스는 수많은 악마들 중에서도 최고의 반열에 올라있는 존재에요. 최고신 라에게서 탄생한 악마인 만큼, 가진바 힘은 그에 못지 않지요.’

아무리 고위 신과 고위 악마라 하더라도 그들 사이에서 엄연히 힘의 차이는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포피스는 고위 악마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존재였다.

붉은 천사 역시 결코 약하다고 볼 수 없었지만, 그녀는 홀로 아포피스를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그녀는 단죄의 천사와 힘을 합쳤고, 아포피스를 봉인하는데 성공했다.

‘단죄의 천사와 힘을 합쳤지만 저희는 아포피스를 죽이지 못했어요. 그는 절대 죽지 않았어요. 결국 봉인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다는 건…….’

‘아무리 승한씨가 [증폭]이라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바알을 상대로 보여준 그 정도 힘만으로는 아포피스를 어찌할 수는 없을 거예요.’

-이거 그쪽도 오래간만이군. 잘 됐어. 내가 싫어하는 연놈들이 모여 있으니.

아포피스는 금세 붉은 천사의 존재를 알아보았다. 꽤나 거리가 멀 텐데도 아포피스는 승한의 존재와 붉은 천사의 존재를 코앞에 있는 것처럼 여겼다. 마치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는 벌레처럼 말이다.

-거기서 기다려라. 내가 네 앞에 나타난 순간, 너희는 종말을 맞을 테니.

‘……돌아가야겠군.’

승한은 다급함을 느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아포피스를 쓰러뜨릴 수 없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패를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승한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패가 떠올랐다.

‘[증폭]. 그리고 [강림]을 두 번 사용하게 되면…….’

승한이 가진 능력 [증폭]의 레벨은 고작해야 2레벨. 그나마 하나 늘어난 레벨도 8스테이지를 완료한 덕분에 오른 것이었다. 지금껏 승한은 [증폭]에 전혀 타임 포인트를 투자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강림]을 통해 [증폭]의 효율이 꽤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대적으로 [증폭]의 레벨을 올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 [증폭]의 레벨이 더 오르면 [강림]을 통해 붉은 천사를 비롯한 신들의 힘을 빌려왔을 때 더욱 강한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승한은 [강림]을 통해 붉은 천사뿐만이 아닌, 다른 신의 힘을 빌릴 생각이었다.

이미 예전에 [강신]을 통해 붉은 천사와 아롤의 힘을 빌려왔던 승한이었다. [강림]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미 성화와 듀란달의 힘을 함께 사용하고 있던 승한은 붉은 천사와 아롤의 힘을 동시에 가져오게 되면 어떤 힘을 발휘할지 사뭇 기대가 되었다.

“얼른 와라. 누가 죽게 될지는 이따 보자고.

승한은 점차 가까워지는 아포피스를 보며 말했다. 승한은 그 순간, 아포피스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위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자, 윤재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잠시 생각하던 윤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네.”

“네. 아마도요.”

“아마도가 아니라 사실이지. 바알이란 녀석보다도 강하다며? 수만 명의 헌터들이 생채기 하나 못 낸 놈보다 강하다면, 우린 있으나 마나지.”

윤재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자괴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가 약한 게 아니라, 승한이 강한 것뿐이었다.

“어떻게 할 거냐?”

“일단… 타임 포인트를 모아야죠.”

[강림]을 두 번 사용하기 위해서는 1000만 타임 포인트가 필요했다. 영구적으로 능력의 레벨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일시적으로 소모해 버리는데에는 아까운 포인트였지만 [강림]이 아니면 아포피스를 어찌 막을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한 번만 [강림]을 사용할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다음, 그 다음에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증폭]의 레벨도 올려야 하니, 가능한 타임 포인트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아포피스가 언제 도착할지 몰라요. 가능한 빨리… 타임 포인트를 모아야 해요.”

“하아, 그래. 알았다. 아주 싹 쓸어버리자고.”

크르르르르-.

윤재의 의지를 받은 레드 드래곤이 눈을 번쩍 뜨며 울기 시작했다. 레드 드래곤은 몸을 뜨겁게 달궈 나가의 독을 태우고 있었다. 어느 정도 움직일 만해지자 레드 드래곤은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럼 몰이사냥을 시작해 보자고.”

**

사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아-!

불에 타들어가며 비명을 지르는 나가들을 보며 승한은 주위를 둘러봤다. 남아있는 나가들은 거의 없었다. 꽤 넓은 지역에 걸쳐서 나가들을 모았는데, 그 수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승한과 윤재, 두 사람은 안양 지역 내의 모든 괴물들을 맡기로 되어있었다. 승한은 이미 안석환에게 성화를 통해 괴물들을 멀리서부터 끌어 모을 수 있음을 알려주었고, 안석환은 승한의 능력을 듣고는 그 혼자서 안양 지역을 모두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존에 안양 지역을 담당하고 있던 헌터들은 지방으로 내려간 상태였다. 안양시 내에 있는 헌터들은 타 지역의 헌터들보다 실력이 뛰어난 편이었다. 게다가 수도 그렇게 적은 편이 아니었으니 헌터가 부족한 지방은 큰 도움을 받은 셈이었다.

‘이게 안양 지역 내의 괴물의 전부인가?’

안양 지역 내에 있는 나가의 전체 수는 채 삼백이 되지 않았다. 물론 가장 처음 윤재와 승한이 쓰러뜨린 나가들까지 더한다면 오백은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수가 너무 적었다.

‘타임 포인트는 부족하지 않지만… 이건 좀 이상한데.’

그런 생각이 들 즈음, 안석환에게서 연락이 왔다.

-승한씨! 악마가 나타났습니다!

머릿속으로 들려온 안석환의 목소리에 승한은 급히 전음구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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