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97화 (197/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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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쿵-.

레드 드래곤이 나가의 몸을 짓밟았다. 거대한 다리가 육중한 무게를 실어 나가의 몸을 짓밟고 또 다른 하나의 손이 나가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콰직-.

레드 드래곤의 손톱이 나가의 머리를 터뜨렸다. 이어서 입에서는 뜨거운 화염이 머금어지며 그것을 거세게 토해냈다.

화르르르륵-.

레드 드래곤의 정면에 있던 나가들이 브레스에 휩싸였다. 윤재 역시 레드 드래곤과는 별개로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뜨거운 백염이 바다가 되어 대지를 감싸고, 비가 되어 아래로 떨어졌다. 벌써 삼십 분이 넘도록 윤재는 레드 드래곤과 함께 싸우고 있었다.

“후우, 빡세라.”

윤재는 길게 숨을 내쉬며 주위를 살폈다. 레드 드래곤의 덩치 때문인지 나가들은 멀리서부터 레드 드래곤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승한의 성화처럼 넓은 범위에 걸쳐 나가들의 이목을 끌지는 못하지만 윤재의 능력도 충분히 화려했다. 더군다나 나가들은 윤재가 가진 백염의 힘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들, 어마어마하게 끈질기네.’

나가들은 어지간해서는 잘 죽지 않았다. 야초에 총화기류는 거의 통하지 않았고, 윤재의 백염도 쉽게 통하지 않을 정도로 불에 대한 내성도 강했다. 덩치에 비해 민첩하기도 해서 레드 드래곤을 향해 창을 계속해서 찔러오고 있었다.

푸욱-.

크르르르르르-.

레드 드래곤은 나가의 창이 자신의 발등을 찍자 고통에 울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뒤쪽으로 발을 날려 자신의 발등을 창으로 찌른 나가를 걷어찼다.

“끝이 없군.”

나가들은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꽤나 많은 수의 나가들을 죽인 것 같은데도, 시야에 보이는 나가들만 하더라도 백 마리는 훌쩍 넘어보였다. 아무리 쓰러뜨려도 계속해서 어디선가 나타나는 탓이었다.

슬슬 윤재도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혼자서 싸우려다 보니 힘을 아낄 수가 없었다. 나가들이 새로 나타날 때마다 계속해서 능력을 퍼 부었고, 능력을 사용해도 나가들은 쉽사리 죽지 않았다. 쉬지 않고 능력을 쏟아내다 보니 금세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불굴의 의지 레벨이라도 올려놓을 걸 그랬나?’

윤재는 새삼 불굴의 의지의 레벨을 올려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지금까지는 승한이 앞에서 싸워주었기에 힘을 조절해가며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승한이라는 든든한 방패가 사라지자 레드 드래곤과 함께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능력을 사용하는데 주저할 수가 없었다.

‘몇 마리나 죽였지? 백 마리는 죽였나?’

윤재는 획득한 타임 포인트를 확인하고는 그것을 전부 불굴의 의지에 쏟아 부었다. 나가는 한 마리에 31250타임 포인트를 주었다. 보통 괴물이 주는 타임 포인트 치고는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난번에 나타났던 괴물이 6250타임 포인트를 주었으니 정확히 5배였다. 물론 강하기는 10배 이상 강한 느낌이었지만 말이다.

윤재는 획득한 타임 포인트를 이용해 불굴의 의지의 레벨을 두 개씩이나 올릴 수 있었다. 아직까지 다른 능력에 타임 포인트를 투자하기는 어려웠지만, 조금이나마 힘이 더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조금 더 버틸 수 있겠군.’

윤재는 계속해서 모여드는 나가들을 향해 다시금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 그러는 한 편, 한 번씩 승한에게 전음구로 연락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체 언제 오는 거지?’

삼십 분이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승한은 꽤 오래도록 연락이 없었다. 돌아왔다면 윤재를 비롯해 나가들이 뭉쳐있는 것을 느끼고는 곧장 왔을 텐데 말이다. 전음구를 잃어버렸다면 하나 사면 될 테고.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그런 의문이 들 때쯤, 나가들이 다시금 레드 드래곤을 덮쳐왔다. 윤재는 눈을 번뜩이며 레드 드래곤의 주위로 불의 장막을 둘렀다.

콰아아아아-!

나가들이 창을 내지를 때면 윤재는 거기에 맞춰 불의 보호막을 씌워주었다. 그것은 불의 방패가 각성한 형태의 능력이었는데,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나가들의 창의 위력을 어느 정도 상쇄시킬 정도는 되었다.

더군다나 레드 드래곤 자체의 방어력도 만만치 않았기에 레드 드래곤은 수백의 나가들을 상대로도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었다. 물론 윤재에게 모든 나가들의 공격을 간파할 만한 능력은 없었다. 가끔씩이지만 레드 드래곤은 나가들의 공격을 허용했고, 그 자잘한 상처들이 몸에 조금씩 쌓여나가고 있었다.

“브레스!”

윤재의 외침에 레드 드래곤은 다시금 입에 머금고 있던 브레스를 뿜어냈다. 나가들은 좌우로 흩어지며 브레스를 피했는데, 몇몇은 피해내지 못하고 정면에서 얻어맞기도 했다.

‘죽은 녀석이 없다.’

타임 포인트 획득 메시지가 들려오지 않았다. 브레스를 정통으로 얻어맞고도 죽지 않은 것이다. 윤재는 뿌득 이를 갈았다.

스스스스스-.

윤재가 한눈이 팔린 틈을 타 레드 드래곤의 몸을 휘감으며 몇 마리의 나가들이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레드 드래곤은 그런 나가들을 떼어내려 몸을 털었지만 나가들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윤재가 다급히 나가들을 떼어내려 능력을 사용하려 했지만 이미 한 발 늦은 후였다.

푸욱-.

츄릅, 츄웁-.

나가들이 두꺼운 어금니로 레드 드래곤을 물어뜯었다. 그들의 어금니에 묻어있던 극독이 레드 드래곤의 몸속으로 스며들고, 나가들은 레드 드래곤의 몸속에 있는 피를 빨아먹었다.

퍼퍼퍼퍼펑-!

곧이어 레드 드래곤의 몸에 붙어있던 나가들이 윤재가 쏘아낸 능력에 얻어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윤재는 나가들만을 노려 그들의 몸에 불길을 휘감아 그것을 폭발시켰다.

“젠장…….”

크르르르르-.

윤재는 레드 드래곤의 울음소리에 힘이 많이 빠져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가의 어금니에 물린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나가에게 당한 독이 꽤나 쌓인 모양이었다.

아무리 윤재가 힘을 회복했다 하더라도 레드 드래곤은 윤재와는 별계의 존재였다. 윤재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힘을 받고 있었지만, 레드 드래곤 역시 상처를 입으면 치유해야하고 독이 퍼지면 움직이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윤재는 레드 드래곤 덕분에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이지, 혼자서 나가들을 모두 막아내기는 힘에 부칠 것이 분명했다.

“승한이는 대체 언제…….”

-형!

그 때, 윤재는 머릿속으로 들려온 승한의 목소리에 활짝 웃었다. 주머니에서 냉큼 전음구를 꺼내든 윤재가 소리쳤다.

“야! 너 어디 갔었어?”

-죄송해요. 얼른 갈게요. 몇 분만 버텨 주세요.

승한의 말에 윤재는 눈에 보이지도 않건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계속해서 버티라면 언제까지 버틸지 알 수 없지만, 몇 분 정도 버티는 거라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몇 분이란 말이지?”

윤재는 씩 웃으며 양 손에 순백의 불길을 피워 올렸다. 방금 전까지는 힘에 부쳤지만, 불굴의 의지의 레벨을 올린 덕분에 남아있는 힘이 제법 되었다.

몇 분. 윤재는 그 시간 동안 있는 힘껏 힘을 퍼부을 생각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가들은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지만, 승한이 온다는 생각에 두려운 게 모두 사라졌다.

“죽어봐라, 이것들아!”

힘을 아끼지 않은 윤재의 불길이 땅을 휩쓸기 시작했다.

**

화르르르르륵-.

타닥, 타다닥-.

거대한 백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하얗게 타 버린 나가들이 남아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나가들도 있었지만, 몇 분 사이 쉬지 않고 능력을 쏟아낸 윤재의 힘은 나가들의 질긴 명줄을 끊어놓기에 충분했다.

“허억. 허억.”

윤재의 숨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어깨가 위아래로 들썩거리며 숨을 쉬었다. 아직 싸울 힘은 남아있었지만, 윤재는 이렇게까지 단기간 내에 빠르게 힘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후우, 이거 힘드네.”

주위를 보니 살아있는 나가들이 꽤 있었다. 대충 모여들어 있던 나가들 중 절반 정도는 죽인 듯했다. 불과 몇 분 사이 수백 마리의 나가들을 반으로 줄인 것이다.

“대, 대단하군.”

“저게 헌터…….”

“보통 헌터가 아니지. 한국 내에서도 최상위권으로 꼽히는 헌터잖아?”

알게 모르게 군인들 내에서도 승한과 함께 다니는 윤재의 이름은 꽤 알려져 있었다. 그 역시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진 헌터였고, 헌터들 사이에서는 물론 군부대 내에서도 그들의 활약을 전부터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귀로 듣던 것과 직접 눈으로 그 실력을 확인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일부 군인들 사이에서는 헌터의 가치를 낮게 판단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헌터의 능력을 실제로 본 적이 없고, 심지어는 영상구를 통해서도 헌터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지 못한 이들이었다. 더군다나 아무리 강해도 총을 맞으면 죽는 것은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저 밑에는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강동훈 소령의 밑에 있던 일부 군인들 사이에서도 있었다. 헌터들이 거액의 돈을 받고 괴물들을 사냥한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사실인지라 그들은 헌터들을 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바로 눈앞에서 경이로운 힘을 보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저게 가능한가?”

작은 도시 하나를 뒤덮을 만한 어마어마한 불길. 그것이 윤재가 보여준 힘이었다. 아무리 헌터들 사이에서도 최상위로 꼽히는 실력자라지만, 그의 능력은 확실히 보통 사람들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손에서 작은 불덩어리만 쏘아내도 기겁할 것이다.

“괜히 헌터, 헌터 하는 게 아니지.”

강동훈 소령은 여전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심지어는 총을 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부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저들은 우리들의 영웅이다.”

다소 과장된 면이 없잖아 있지만 꼭 틀린 말도 아니었다. 실제로 헌터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세상은 괴물들에 의해 망해도 진작에 망했을 것이니 말이다.

“저, 저 자가 이렇게 강하면 대체 김승한 헌터는 얼마나 강하다는 겁니까?”

한 부대원의 물음에 강동훈 소령은 미간을 좁혔다. 그 역시 승한이 세계 최고의 헌터로 불리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싸우는 모습은 보지 못한 상태였다. 8스테이지에서 승한이 활약했던 영상은 아직 외부로 유출되지 않은 상태였다.

“글세…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강동훈 소령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빛냈다. 그의 눈에는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오고 있는 한 명의 사람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곧 볼 수도 있겠군.”

그의 말에 부대원들의 시선이 강동훈 소령을 따라갔다. 윤재 역시 같은 곳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늦었잖아!”

타박을 하지만 그 목소리 속에서는 반가움이 먼저 드러났다. 그만큼 이번 싸움에서 승한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윤재였다.

화르르르르륵-.

하늘에서 빠르게 내려오던 승한이 듀란달을 뽑아 성화를 일으켰다. 성화는 윤재의 백염과는 달리 하늘을 찬란한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어둡게 내려앉은 땅거미에 노을이 비춰진 듯한 모습이었다.

성화의 검격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 검격은 순식간에 검격이 닿는 모든 나가들을 베어냈다.

“미안해요, 형!”

강동훈 소령은 다시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고의 헌터의 등장이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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