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95화 (19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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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이라지만, 아침 7시 정도면 해가 뜰만도 한 시간이었다. 한겨울이라 하더라도 해가 고개를 들이밀 시간이었는데, 해는커녕 달빛 한 점 없었다.

승한은 집 앞을 서성이다 공원 한 가운데로 나와 있었다. 일찍 잠이 들기도 했고, 잠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새벽부터 나와서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되었음에도 해가 뜨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해가 뜨지 않자 승한은 불길함에 중얼거렸다. 공원 한 가운데 서서 승한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7시가 조금 넘었다. 해가 뜨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괴물이 나타날 만한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해가 뜨지 않는 현상은 분명 평소와는 다른 징조였다.

‘그러고 보니 달도 뜨지 않았군.’

해가 뜨지 않는 경우는 없지만 달이 뜨지 않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햇빛은 먹구름으로 완전히 가릴 수 없었지만 달빛은 두꺼운 먹구름으로 완전히 가려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승한은 별과 달이 뜨지 않은 하늘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 가로등만 하더라도 충분히 밝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긴 있어.”

승한은 허공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근처에 있는 건물 중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까지 올라간 승한은 도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검은 균열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며칠 동안 검은 균열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승한이 느끼기에도 그랬다.

‘검은 균열은 문제가 없고…….’

승한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까지 언뜻 보며 지나쳤던 때와는 달리, 조금 더 유심히 지켜봤다.

이제 보니 먹구름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달과 별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달과 별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아니… 태양이 사라진 건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승한은 무섭다기보다는 의문스러웠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원인을 따지자면 괴물들의 출현이나 악마들과 관련이 있을 텐데, 그저 낮이 오지 않는 것만으로 무얼 하려는가 싶었다.

“대체 뭘 하려는 거냐.”

승한은 경계했다. 혹시라도 어딘가에서 괴물들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승한은 전음구를 꺼내 안석환에게 연락했다.

“혹시 지금 연락 가능하십니까?”

시간이 꽤 이르긴 했지만 상황이 급했다. 잠을 깨우는 한이 있어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한시 바삐 알려두는 편이 나았다.

안석환은 마침 잠을 자고 있었는지 조금 뒤에 답이 돌아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해가 뜨지 않습니다. 해가 뜰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말이죠.”

-지금 시간이…….

안석환은 금방 시간을 확인했는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이군요.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기는 있는 모양입니다. 다른 헌터들에게도 연락을 돌려주세요. 아마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위험한 놈들이 나타날 테니까요.

늘 괴물들은 한 단계씩 점점 더 강한 녀석들이 나타났다. 평범한 괴물들은 물론이고, 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헌터들 역시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괴물들이 나타나는 시기였다. 헌터들은 저마다 불침번처럼 깨어서 괴물들이 언제 나타나든 대항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지만, 긴장을 풀고 있는 헌터들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해가 뜨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 당황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보스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돌아오면 바로 알려 주십시오. 이전에는 한국과 미국, 이렇게 두 곳에 나타났지만 이번엔 한 곳만 나타날지도 모르니까요. 어디에 나타날지도 모르고.”

세계 헌터 연맹의 구축 이후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정보의 공유였다. 전음구라는 물건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서로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는데, 세계 각국의 헌터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덕분에 어느 나라의 어느 헌터에게라도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음구의 사용 조건은 서로의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얼마 전의 자리는 그것을 만족시켰다.

특히 이번에 승한은 미국에서 온 순간이동 능력을 가진 헌터 해리슨과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 어디서 보스가 나타나더라도 승한이 곧장 갈 수 있도록 그의 능력을 빌리기 위함이었다.

-알겠습니다. 승한씨도 몸조심하십시오.

승한은 안석환과의 연락을 끊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듀란달은 언제든지 꺼내들 수 있었지만, 갑옷과 방패는 집에 두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승한은 집으로 가던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간에 비해 어둡기만 한 밤하늘이었다. 구름도,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하늘을 바라보던 승한의 눈이 꿈틀거렸다.

“저게 뭐지?”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승한은 눈을 가늘게 좁히고 자세히 보았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본 건가?’

그 뒤로도 줄곧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승한은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

승한은 윤재와 만났다. 시간은 벌써 오전 10시에 가까웠다. 여전히 해는 뜨지 않았고, 하늘은 검었다. 대피소 밖으로 나왔던 일부 사람들은 헌터들의 지시로 모두 대피소로 돌아갔다.

승한과 윤재는 호계 체육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내에 있었다. 괴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기도 했으면서 가능한 가족들이 대피해 있는 호계 체육관과 가까운 곳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두 사람이 애초에 맡은바 구역이기도 했기에 문제 될 건 없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지?”

벌써 두 시간이 넘도록 기다리고 있던 윤재가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잠결에 서둘러 나온 터라 괴물이 나타나지 않으니 다시 잠이 쏟아지는 모양이었다.

“언제까지든요.”

“오늘은 토요일이잖아?”

“지난주에도 괴물이 나타났던 건 토요일이었잖아요?”

“그건 그렇지.”

윤재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단지 따분해서 해본 말일 뿐이었다. 언제 어떤 괴물이 나타날지 모르는 이상, 항시 긴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안석환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니 다른 곳도 전부 밤인 모양이던데?”

“저도 들었어요. 신기한 건 인공위성에 찍힌 지구의 모습도 온통 시커멓다는 거고요.”

안석환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타국의 헌터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 결과 알게 된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에 낮이 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것은 인공위성에 찍힌 지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온통 시커먼 지구. 그것이 인공위성에 찍힌 지구의 사진이었다.

“세상이 아니라 지구가 망하려는 건가.”

“그게 그거 아니에요?”

두 사람은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가 할 말이 떨어지고는 입을 다물었다. 윤재는 졸음이 오는지 옆에서 쩍쩍 하품을 했다. 벌써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루해서 죽을 것 같았다. 주위에는 검은 균열들이 남아있었지만 아직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두 손으로 머리를 받친 승한은 가로등에 기대 누웠다. 계속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는 조금 더 편했다.

“응?”

그 때, 승한의 눈에 시커먼 하늘이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하늘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였다.

“……역시 뭔가 있어.”

“뭐?”

“형, 저거 안 보여요?”

승한은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윤재는 승한의 손가락 끝이 향하는 곳을 빤히 바라보다 대답했다.

“뭐가 보인다는 거야?”

“저기 꿈틀거리는거요.”

“안 보이는데?”

윤재는 승한이 뭘 가리키고 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승한은 자신의 눈에는 보이는 것을 윤재는 보지 못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못 보는 거지?’

언뜻 지나갔을 때면 모를까, 자세히 본다면 못 볼 것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시커먼 하늘에 더욱 검은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승한은 자신이 잘못 보고 있는 것인가 싶다가 그게 아님을 확신했다. 꿈틀거리고 있는 무언가가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뭔가 있어.”

경각심이 생겼다. 편안한 자세로 드러누워 있던 승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금방 무슨 일이 벌어질 것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윤재는 승한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달라진 승한의 표정을 보고는 그가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승한의 눈에는 무언가가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윤재는 승한을 믿었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고, 승한의 눈에 보인다면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승한은 그에게는 없는 비범한 무언가가 있었다.

“형.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줘요.”

“어디 가려고?”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승한은 그렇게 말하고는 옆에 놓아두었던 방패를 집어 등에 메었다. 그러고는 지면을 튕기듯 박차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퉁-.

쏴아아아아아악-!

승한의 몸이 허공을 미끄러지듯 올라갔다. [귀신]을 이용해 허공을 밟는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었다.

“와, 빠르네…….”

윤재는 멀어져가는 승한을 보며 감탄했다. 지금껏 승한이 움직이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아왔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달라지긴 달라졌단 말이지.’

요 며칠 동안 승한을 만나며 윤재는 그가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무언가 하나를 콕 찝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말투나 성격, 무엇보다 눈빛이 전혀 달라졌다.

그것이 이질적이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큰 변화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윤재는 승한과 눈을 마주하거나 그와 몇 마디 대화를 하거나 하면 마치 자신보다 훨씬 오랜 삶은 살아온 어떤 현기어린 느낌을 받았다.

그 변화는 비단 윤재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안석환을 비롯한 그를 아는 모두가 그랬다. 하지만 그 변화가 크지 않고, 어떤 변화인지를 명확히 표현할 수 없기에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뭘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뭔가 거하게 하나 하려는 모양이구나.”

승한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빨리 날아갔는지 이미 작은 점처럼 보였다.

윤재는 점점 더 멀어져가는 승한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거야?”

**

승한은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구름이 있었다면 진작 지나쳤을 것이다. 워낙 높은 곳으로 올라오다 보니 아래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 작게만 느껴졌다. 안양시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역시, 안 추워.’

꽤나 높이 올라왔음에도 승한은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라고 하는데 숨도 편안했다. 이보다 낮은 곳에 올라와도 추위는 조금씩 느껴지곤 했는데, 완전히 달라졌다.

‘진짜 보통 사람의 몸은 아니군.’

승한은 자신의 변화를 확실하게 인지했다. 이 상태면 얼마나 높이 올라가든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보통 사람이 수천, 수만 미터씩 맨 몸으로 올라와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대체 저건 얼마나 높이 있는 거야?’

승한이 윤재를 두고 무작정 날아 오른 이유.

그것은 하늘 높이서 꿈틀거리는 것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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