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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193화 (19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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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안철환은 화안 그룸에 있는 헌터들과 경호원들을 데리고 여의도 공원을 찾았다. 볼 일은 당연하게도 승한과 안석환을 찾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따지러 온 것이었다.

왜 연락을 받지 않고 일을 이렇게 벌였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대로는 화안 그룹에서 안철환의 아들인 안석환을 밀어주는 꼴이 되어버린다.

“안석환-!”

안철환의 외침에 주위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안철환은 그 시선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닫았다. 노기가 치밀어 꾹 닫은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 사람, 화안 그룹 회장 아니야?”

“안철환?”

“안석환씨가 안철환 회장 아들이라고 하더니, 아들을 보러 온 건가?”

“그런데 무슨 아들 이름을 이렇게 살벌하게 부르지?”

주위의 쑥덕거림이 그대로 들렸다. 해외에서 온 헌터들이나 정부 인사들도 있었는데, 영어로 대화를 나누거나 해도 안철환의 귀에는 그대로 들렸다. 그 역시 각국 언어는 거의 통탈하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안철환은 자신을 사이에 두고 쑥덕거리는 목소리에 이를 악물었다. 그는 조용히 안석환을 찾아 움직였다.

“당장 안석환 찾아서 끌고 와라.”

“모셔오겠습니다.”

“끌고 오라고 했다.”

안철환은 불가능한 요구를 강요했다. 안철환에게 고용된 헌터와 그의 비서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안석환을 찾는 것까지야 어찌 가능할지 몰라도 그를 끌고 고은 건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였다. 승한만큼은 아니어도 그 역시 한국에서 손꼽히는 헌터였으니 말이다.

“뭐 이리 시끄럽게 구십니까?”

그 때, 헌터들 사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헌터들이 좌우로 갈라지자 목소리의 주인이 안철환의 눈에 들어왔다.

“안석환…….”

“어서 오십시오, 아버지.”

안철환이 눈을 부릅떴다. 그는 안석환의 눈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지금껏 그를 보고서 이렇게까지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안석환은 지금껏 안철환을 ‘아버지’가 아닌, ‘회장님’으로 불렀다. 안철환은 그에게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간혹 실수로라도 아버지라는 말을 밖으로 내뱉거나 하면 크게 꾸짖었다.

하지만 지금, 안석환은 그를 고의로 아버지라 부르고 있었다. 그를 조롱하기 위해서 말이다.

안철환은 속에서 치미는 노기를 잠시 누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이 자리에서 무작정 욕설을 내뱉고 평소처럼 안석환을 대할 수는 없었다. 안철환은 최대한 누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잠시 이야기 좀 하자꾸나.”

“하하, 보시다시피 좀 바빠서요. 돌아가서 이야기 하면 안 될까요?”

안석환은 느물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예의도 지키고, 달리 문제 될 것도 없는 대답이었다. 아들이 일을 하는 중이니 집에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철환이 여기서 당장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석환은 승한에게 세계 헌터 연맹의 일을 일임받아 사람들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안석환 개인의 입장으로도 헌터 연맹을 이끌어가던 헌터였으니 충분히 자격이 있었다. 그는 지금 무척 중요한 자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안철환 회장이 아무리 화안 그룹의 회장으로서 높은 자리에 있다고는 하나 이 자리의 주인공은 안석환과 승한이었다. 그는 안석환이 순순히 이야기에 응하지 않자 속으로 이를 갈았다.

“급한 일이다.”

“제 일도 급합니다, 아버지. 먼저 돌아가 계시죠.”

안철환과 안석환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안철환은 알 수 있었다.

안석환은 그를 놀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안철환이 화가 나도록 말이다.

“……지금 뭐 하는 것이냐?”

“뭐가 말입니까?”

“왜 네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냐는 말이다. 여긴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닐 텐데?”

안철환의 말에 주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안석환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따라오세요.”

안석환은 그렇게 말하며 등을 돌렸다. 안철환도 마찬가지지만 안석환 역시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안철환은 안석환의 뒤를 따라갔다. 여의도 공원의 한적한 공간에는 승한과 윤재가 쉬고 있었다.

승한과 안석환, 안철환.

세 사람이 자리에 모였다. 지금 이 자리를 만들게 된 원인들이었다.

안철환은 승한을 보자 다시 눈을 부릅떴다. 가장 분노가 치미는 대상은 안석환이었지만, 승한 역시 괘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승한은 윤재와 한가롭게 쉬며 이야기를 하다가 안석환이 안철환을 데리고 오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가 말입니까?”

“왜 안석환에게 권리를 넘겼냐는 말입니다. 이건 약속과 다르지 않습니까?”

“약속이라니요? 전 분명 약속을 지켰습니다. 전 분명 세계 헌터 연맹을 이끌 생각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안석환에게……!”

“그럼 안철환 회장님께 일임해 드릴까요? 헌터도 아니신 당신에게?”

승한은 말도 되지 않는다는 듯 피식 웃었다.

“전 단지 세계 헌터 연맹을 만드는 중심 역할이 될 뿐, 거기에 대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불안을 일부나마 해소하고 세계 헌터 연맹을 만들어 운영하는 건 화안 그룹 내에서 알아서 할 일이었지요. 전 거기에 대한 적임자가 안석환씨라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승한은 안석환을 손으로 사리켰다.

“안석환씨는 안철환 회장님의 아들 아닙니까? 그러니 화안 그룹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게다가 헌터이고, 실력도 뛰어납니다. 무엇보다 안석환씨는 이미 한국에서 헌터 연맹을 이끌고 있었을 정도의 수완을 가지고 있죠. 안철환 회장님의 수완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가장 적임자는 안석환씨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니, 구구절절 옳은 소리였다.

승한은 실력이 뛰어나지만 많은 사람들을 이끌 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강한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배우고, 사람들을 대하는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해를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안철환은 그것을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을 진행한 승한의 행동이 괘씸했다. 아니, 그보다는 승한과 안석환이 이 모든 일을 짜고 계획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기만하는 것입니까?”

“기만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석환이 녀석과 제 관계에 대해 다 알고 이러시는 게 아니냐는 말입니다.”

안철환의 눈은 한 평생 수많은 사람들을 아래에 두고 살아온 이답게 제법 강단이 있었다. 그의 이름과 지위, 그가 가진 권력을 생각하면 어느 누구라도 기가 눌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헌터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승한은 안철환과 눈을 빤히 마주치다가 피식 웃었다. 그의 눈에서 그가 가진 탐욕을 읽었고, 그의 삐뚤어진 감정을 읽었다. 그는 한 기업의 회장으로서는 최고일지 몰라도 인간으로서는 아직 덜 되었다.

“그걸 회장님 입으로 말 하실 줄은 몰랐군요.”

“역시…….”

“지금 화를 내실 분이 회장님입니까?”

승한의 물음에 안철환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입니까?”

“화를 낼 사람은 회장님이 아니라 여기 있는 안석환씨이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그저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더 가지지 못해 화를 내는 것뿐이지만… 안석환씨는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승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안석환을 대신해 말하고 있었다.

“안석환씨가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전 여기서 손 뗄 겁니다. 애초 그게 저희들 간의 약속이고, 계약이었습니다. 저는 회장님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고작 그런 이유입니까?”

“고작이라……. 회장님께는 고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회장님께는 당신이 싸질러 태어난 아들이 별 것 아니게 느껴지실 수 있고, 이미 채운 배를 조금 더 불리기 위한 이 일이 중요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죠.”

“세계 최고의 기업을 세우는 일입니다. 한낱 정에 이끌려 그르칠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거야 서로간의 가치관 문제 아니겠습니까? 누구에게는 평생을 일궈온 가게와 기업보다 가족이 더 중요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돈과 권력이 최고일지도 모르죠. 회장님에게 중요한 것이 있듯이, 저 역시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선택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승한은 잠시 안석환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회장님이 애초부터 안석환씨를 아들로 인정하셨다면,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을 겁니다.”

안철환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안석환의 어머니를 죽이고, 안석환을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안석환을 다시 찾은 이유는 그가 쓸모가 있기 때문이었지 가족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안석환을 버리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 그가 헌터로서 각성하고 난 뒤라도 그를 아들로서 인정해 주었다면 그는 안철환을 적대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업자득.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안철환의 업보였다.

“이놈들…….”

승한의 말에도 안철환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미 까마득히 먼 옛날 일이었고, 누군가의 기분을 신경 쓸 만큼 그는 이해심이 깊은 사람은 아니었다.

안석환은 혹시라도 안철환이 미안하다는 말을 할까 싶다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안철환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아버지.”

안철환의 시선이 안석환에게로 돌아갔다.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러했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

“이제 그만 하시죠.”

“네가 내 뒤를 때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구닥다리 같은 말 하지 마시고요. 여긴 이제부터 제 자리입니다.”

“거긴 너 같은 놈이 있을 자리가 아니다!”

“하하하. 저 같은 놈이 어떤 놈인데요?”

안석환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그 모습은 어딘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안철환이 흠칫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아무리 그가 한 평생 화안 그룹을 이끌어온 회장이라고는 하나, 안석환은 헌터였다. 그것도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손꼽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닌 헌터.

그가 뿜어내는 기세는 일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안철환 회장이 받아내기 힘든 것이었다.

“말해 보십시오. 저 같은 놈이 어떤 놈이냐는 말입니다.”

“너는…….”

안철환은 첫 마디를 시작으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안철환은 안석환을 원하지 않았던 자식이라는 이유로 배척했을 뿐, 그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그저 안철환이 안석환을 좋아하지 않을 뿐.

“왜 대답을 못 하십니까?”

안석환은 하얗게 웃으며 천천히 안철환을 향해 다가갔다.

“설마하니 제가 천한 년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당신이 싸질러놓은 애새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겁니까?”

할 말이 없었다. 그것이 사실이었으니까. 다만 말도 안 되는 억지임을 알기에 그것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안석환은 안철환의 침묵이 긍정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안석환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하, 하하…….”

바람 빠진 웃음. 안석환은 손으로 눈을 가리고 고개를 위로 젖혔다. 그 웃음소리가 소름이 끼쳐 안철환을 따라온 사람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진짜 쓰레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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