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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191화 (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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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결국 자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존재가 필요해서 그를 불렀다는 뜻이었다. 아들이 아니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라도 그리했을 것이다.

승한은 문득 안철환 회장이 안석환을 대하던 태도가 떠올랐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안석환의 존재를 무시하며 승한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철저하게 필요에 의해서 안석환을 대했던 것이다.

그는 가족을 무엇이라 생각하는 걸까? 안철환이라는 사람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니 안석환에게만 그런 취급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마도 다른 자식들에게도 가족간의 정 같은 건 나누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안석환은 원하지 않은 피붙이라는 이유로 한 평생 얼굴조차 보지 않았다.

승한은 안철환 회장이 안석환을 대하던 태도가 떠올랐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안석환의 존재를 무시하며 승한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철저하게 필요에 의해서 안석환을 대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안석환은 아들이 아니었다.

“헌터가 되고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그분이 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참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나를 이렇게 버려둔 아버지를 미워해야할까. 아니면 나를 원한다는 사실에 고마워해야할까. 미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나를 버려두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들을 저주하곤 했으니까요.”

“이유가 뭡니까?”

“뻔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원하지 않았던 자식인 거지요. 아버지와는 달리, 저희 어머니는… 천한 년 취급을 받았으니까요.”

안석환의 차가 느리게 움직였다. 빨리 달리면 몇 분 되지 않아 도착할 거리였다. 그는 승한과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아버지를 위해 능력을 사용하는 대신 물었습니다. 왜 저를 버려두었냐고.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고, 뭐 하는 사람이었냐고. 돌아온 대답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승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구하고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 안석환은 헛웃었다.

“너희 어머니는 사창가의 천한 년이다. 내 아이를 가지고 협박을 해오고, 돈을 요구하더구나. 그래서 샀다. 괜히 입방아에 오르내리니, 돈 몇 푼 쥐어주고 떨어뜨려 놓는 게 나았으니까.”

안석환이 하는 말이 아니었다. 안철환 회장이 안석환의 질문에 내놓았던 대답이었다. 그 말을 승한에게 하고서, 안석환은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는 어디에 있냐고 물었습니다. 모른다고 하더군요. 찾아 달라고 했습니다. 못 찾을 거라고 합니다. 무슨 뜻일 것 같습니까?”

“……설마?”

“그 설마가 사실일 겁니다. 이래 보여도 저, 눈치는 꽤 빠르다고 자신합니다.”

비극이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다니. 평범한 가정에서 살아온 승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저 높은 곳에 태연히 앉아있는 안철환이라는 사실에 대한 경멸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처음 든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에 대한 모멸감? 아닙니다.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버린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다른 형제들보다 훨씬 낫다고.”

끼이익-.

안석환은 거칠게 핸들을 돌렸다. 그는 희번득한 눈으로 정면을 주시했다.

“그래서 노력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새로운 에너지 기술을 완성시키고, 헌터 연맹을 만들고, 최고의 헌터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제 뜻대로 되는 것 같았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안석환은 승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에는 어느새 광기가 어려있었다.

“승한씨. 세상은 제가 아닌,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

“승한씨는 누가 뭐래도 최고의 헌터입니다. 그건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진 세계 헌터 연맹 또한, 승한씨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겁니다. 더 이상 제 자리는 없습니다.”

“그게 부럽다는 겁니까?”

“네. 부럽습니다. 그 자리가 제 것이었다면… 저는 아버지께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중요하냐고요?”

안석환의 입매가 뒤틀렸다. 웃고 있지만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잔뜩 삐뚤어진 어린아이 같은 웃음기였다.

“네, 중요합니다. 아마 승한씨는 모를 겁니다. 제가 아버지를 만나고, 당신이 나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를.”

“그래서 묻는 겁니다. 안석환씨의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 안철환 회장의 인정을 받기 위해 그렇게까지 노력하는 게 전 이해가 되지 않거든요.”

그의 말은 모순이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동시에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자 한다. 승한의 눈앞에 있는 안석환은 지금껏 보아온 냉정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건… 그저, 작은 복수심일 뿐입니다.”

“복수심?”

“전 아버지께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버릴 만큼 난 쓸모없는 자식이 아니라고. 이만큼 대단한 녀석이었다고. 당신은 잘못된 선택을 한 거라고. 날…….”

안석환은 울부짖었다.

“날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는 거의 실성한 것처럼 보였다. 가슴에 응어리 진 것을 토해내듯 했다.

“전 아버지께 인정받을 겁니다. 난 이만한 능력이 있고, 다른 어느 형제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줄 겁니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놓은 것들, 그리고 당신께 도움이 되었던 나라는 사람까지 모두 다시 빼앗아 올 겁니다. 당신이 뼈저리 후회하도록.”

승한은 그때서야 안석환이 왜 그토록 안철환의 인정을 받기를 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두 가지를 원했다.

혈육에 대한 가치 증명, 그리고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에 대한 작은 복수.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함으로서 인정을 받고, 그런 자신이 아버지를 버림으로서 받은 대로 되갚아 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안석환이 바로 최고의 헌터가 되었어야 한다. 그가 헌터들의 중심이 되어 화안 그룹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끌어 올릴 중요한 장치가 되었어야 한다.

안석환이 승한이 부럽다고 한 까닭이 바로 이것이었다. 안석환이 그토록 바랐던 그 중요한 장치가 바로 승한이었으니까. 그가 되지 못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바로 승한이었으니까.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안석환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승한의 표정을 살피다 물었다.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바라본 것인데, 오히려 그것이 안석환에게는 상처가 된 모양이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볼 필요 없습니다. 승한씨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런 거지요. 하하하.”

억지로 웃는 것이 눈에 보였다. 승한은 마찬가지로 입가에 쓴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요. 사실 길을 잃어버린 기분입니다. 처음 헌터가 되어 헌터 연맹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잘 되는가 싶더니, 역시 세상일은 마음대로 되질 않더군요.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겠습니다.”

“포기할 생각은 없는 겁니까?”

“글쎄요. 그러고 싶지는 않군요. 적어도… 아버지에게 후회는 남기게 하고 싶습니다. 그 정도만 되어도 만족합니다.”

조금 감정을 추스른 안석환의 대답에 승한은 그의 인생이 참 기구하다 싶었다. 또는 한 편으로는 그가 이 정도로 삐뚤어진 게 참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한 평생 자신을 버려둔 아버지다. 얼굴도 모른다지만 자신의 친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다. 삐뚤어져도 한참 삐뚤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승한씨.”

끼이이익-.

대로 한복판에서 차가 멈췄다.

“네?”

“부탁이 있습니다.”

승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시간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흘러갔다. 세상은 정지한 듯 보이지만, 굼뜨게 움직였다. 대피소에 틀어박혀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오곤 했기 때문이었다.

개인 가게를 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정치판에 발을 담근 사람들이나 큰 기업이나 방송국 관계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특히 방송국 자체가 대피소로 지정된 곳이 있어서 지상파 방송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지치고 있었다. 대피소가 크다고 한들, 그곳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수는 무수히 많았다. 결국 대시포의 수를 늘려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만큼 지켜야 할 장소도 많아졌다.

승한의 가족들은 여전히 호계 체육관에 대피해 있었다. 승아는 지루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체육관 가장자리에 기대어 있었다.

“으, 심심해.”

승아는 베터리가 다해 절전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아끼고 아껴서 썼는데도 결국 결국 보조 베터리까지 모두 사용하고 말았다.

가만히 대피소에 앉아서는 할 게 없었다. 체육관 위쪽에 걸려있는 TV에서는 지루한 뉴스만 나오고 있었다. 간혹 다큐멘터리나 예능이 나오곤 했지만, 대부분이 뉴스였다. 그것도 절망적인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는.

승아의 옆에서는 어머니가 잠들어 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다. 할 게 없고, 무기력했다. 잠을 청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었다. 밖으로 나갈 수야 있지만 나가기를 두려워했다.

승아는 체육관 내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아직 아침이니 조금 늦잠을 잘 수야 있다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었다.

‘뭐야. 다들 곧 죽을 사람들처럼.’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정작 승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할 게 없었다. 스마트폰이라도 있었다면 친구들과 간간이 연락이라도 하며 시간을 때우겠지만 이젠 그것도 하지 못한다.

승아는 결국 지루한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보면 볼수록 왜 굳이 저런 소식을 보도하나 싶었다. 보면 볼수록 안 좋은 소식밖에 없었다.

“어?”

그 때, 승아가 눈을 깜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이라도 더 뉴스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였다.

“엄마, 엄마!”

갑작스레 승아가 호들갑을 떨며 옆에 누워있던 어머니를 깨웠다. 승아의 어머니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왜 그러니?”

“얼른 일어나 봐!”

“그러니까 왜?”

“뉴스에서…….”

어머니는 승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TV속 뉴스로 시선을 옮겼다. 뉴스에서는 세계 헌터 연맹이 구축 예정이라는 소식을 보도하고 있었다.

“세계 헌터 연맹……? 저게 생기면 뭐 달라지는 게 있는 거니?”

“아니, 그게 아니라…….”

승아는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이미 그녀가 호들갑을 떨었던 보도 내용은 지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승아가 원하는 이야기가 뉴스에서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아, 저거야 저거!”

“……세상에.”

어머니 역시 반응이 다르지 않았다. 입을 살짝 벌리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을 지었다.

-세계 헌터 연맹의 대표자는 한국의 헌터 김승한으로 각국의 헌터들이 최고로 인정한 실력자로 밝혀졌습니다. 세계 헌터 연맹의 결성을 주도한 관계자는 안석환 헌터로서…….

뉴스에는 승한의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세계 제일의 헌터이자, 세계 헌터 연맹의 대표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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