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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188화 (18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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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승한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자연스럽게 들어온 시야에는 창밖에서 들어온 아침 햇살이 보였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무언가 큰일을 겪은 것 같은데, 당황스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머릿속이 차분해졌다.

‘[영생]… 이라고?’

승한은 마지막 순간 떠오른 메시지를 기억해냈다. 이것이 8스테이지의 보상이 아닐까 싶었는데, [불굴의 육체]의 능력이 변화했다는 것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이상했다. 당황스러울 법도 하건만 그렇진 않았다. 침착한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승한은 손을 뻗어 머리맡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확인해 시간을 확인했다.

화요일의 이른 아침. 승한이 잠든 시간과 똑같았다. 그 속에서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것만 같았는데, 이곳에서의 시간은 찰나와 같이 흘러간 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난 승한은 몸이 한층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스테이지 속에서는 몸을 계속해서 혹사시킨 탓에 조금 피로한 감이 있었는데, 그게 완전히 사라졌다.

바알 덕분에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두 단계 오르고, 그의 축복을 받아 육체가 단단해졌다. 보상을 받기 전 승한의 [불굴의 육체]는 7레벨이었다. 바알의 보상으로 2단계의 레벨이 오르고, 마지막 보상으로 레벨이 하나 더 올랐다. 그렇게 [불굴의 육체]는 10레벨이 되었다.

‘……그 때문인가?’

10레벨.

처음 획득한 능력은 두 자리 수의 레벨을 달성하며 능력이 변화한다. 헌터들은 이것을 능력의 ‘각성’이라고 불렀다. 보다 상위의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껏 그 누구도 각성 상태의 능력을 10레벨까지 달성한 헌터는 없었다. 각성한 능력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타임 포인트가 소모되었으니 말이다. [불굴의 육체]만 하더라도 승한이 알기로 가장 레벨이 높은 헌터가 루이즈였는데, 그의 [불굴의 육체]레벨이 7레벨이었다.

몇몇 헌터들은 각성한 능력의 윗 단계가 있지 않겠냐고 말하곤 했다. 처음 획득한 능력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능력이 있다면 또 다시 그 위의 능력이 있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부정하는 사람도, 긍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 정도 수준의 헌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밝힐 수 있는 비밀이었다.

헌데, 바알의 보상과 8스테이지의 보상을 통해 얼떨결에 승한은 [불굴의 육체]를 10레벨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영생(永生).

영원한 삶을 허락한다는, 신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신의 자격을 능력이라는 형태로 얻게 된 것이 우스울 따름이었지만, 이미 [불굴의 육체]만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가질 수 없는 육신을 손에 넣는 능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간을 벗어난 몸을 [불굴의 육체]라고 한다면, [영생]은 신의 몸을 허락하게 되는 능력이었다.

“신이라…….”

깜짝 놀랄 일이었다. 환호성을 지르던, 당황하던 해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승한은 이상하리만치 침착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른다. 심장과 뇌수가 얼어붙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뭐가 달라진 건지.’

바알을 통해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올랐을 때는 몸이 완전히 뒤바뀐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단단해지고 강인해진 몸. 그 차이를 확실하게 인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불굴의 육체]보다 한 단계 더 위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영생]을 얻었음에도 무엇이 변화했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맑아진 건지 아니면 텅 빈 건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차차 알게 되겠지.’

간단하게 넘길 문제가 아님에도 별 일 아닌 것처럼 여겨져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다른 능력과는 달리 [영생]은 몸이 변화한 것뿐이다. 몸의 변화는 시간이 지나 새로운 몸에 익숙해질수록 차차 알아가게 될 것이다.

그 대신, 승한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돌렸다. 8스테이지의 새로운 보상이었다.

‘모든 능력의 레벨 상승이라…….’

과연 이것을 반겨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를 일이었다. 언제나처럼 또 다른 하나의 능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스테이지 1 - 영생]

* 등급 : 神

* 분류 : 고유 지속

* 레벨 : -

[스테이지2 - 귀신]

* 등급 : 上

* 분류 : 고유 지속

* 레벨 : 5

* 요구 타임 포인트 : 2048000p

[스테이지 3 - 증폭]

* 등급 : 上

* 분류 : 엑티브

* 레벨 : 2

* 요구 타임 포인트 : 512000p

[스테이지 4 - 성화]

* 등급 : 上

* 분류 : 엑티브

* 레벨 : 7

* 요구 타임 포인트 : 4096000

[스테이지 5 - 올림포스]

* 등급 : 上

* 분류 : 엑티브

* 레벨 : 4

* 요구 타임 포인트 : 4096000

[스테이지 6 - 성검]

* 등급 : 上

* 분류 : 엑티브

* 레벨 : 3

* 요구 타임 포인트 : 8192000

[스테이지 7 - 강림]

* 등급 : 上

* 분류 : 패시브

* 레벨 : -

* 소모 타임 포인트 : 5000000

승한은 새삼스럽게 능력의 레벨을 모두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다음 레벨에 필요한 타임 포인트가 워낙 많아서 언제 레벨을 올리나 싶었던 능력들이 이제는 제법 레벨이 높아져 있었다.

[영생]의 등급은 上에서 신(神)으로 변해있었다. 하긴, 신의 자격이 바로 영생이라는 육신이라고 했으니 등급이 이렇게 표시가 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영생]은 더 이상 다음 레벨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헌터로서 타임 포인트를 소모해 레벨을 높일 수 있는 한계가 바로 능력의 각성 후 10레벨까지인 모양이었다.

오히려 승한의 시선이 사로잡은 능력은 따로 있었다.

‘[증폭]이 가장 걸리는군.’

다른 능력과는 달리 승한은 지금껏 [증폭]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증폭]에 소모되는 타임 포인트를 다른 능력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성화의 탓이 컸다. 승한이 다른 능력을 제쳐두고 유독 성화에 많은 타임 포인트를 투자한 이유는 소모하는 타임 포인트에 비해 효율이 높기 때문이었다. 적은 타임 포인트를 소모하고 높은 효율을 얻을 수 있으니, 다른 능력에 눈길이 덜 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강림]을 사용하고 난 후로 승한은 다른 능력들보다 먼저 [증폭]에 눈길이 갔다.

어차피 성화나 [올림포스], [성검]과 같은 능력의 레벨을 올린다 한들 [강림]을 사용하게 되면 그 신의 힘을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증폭]의 레벨을 높여 [강림]상태에서의 능력을 높이는 것에 치중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헌터들도 다 같은 보상을 받은 건가?’

만약 그렇다면 추가적인 능력은 얻지 못해도 헌터들 대다수가 꽤 많이 강해졌을 것이다. 능력의 레벨 하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승한은 보상의 형태가 달라진 점의 의뭉스러웠다. 스테이지의 형태도 그렇고, 보상도 그렇고. 지금까지 괴물이 나타나는 시기나 보스의 수는 달라져도 스테이지의 보상 자체가 달라진 적은 없었다.

징조가 좋지 않았다. 승한은 스테이지의 변화가 불길하게 느껴졌다. 그러는 한 편으로는 슬슬 끝이 오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승한은 완전히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시간 자체는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몸이 개운했다. 아무래도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오른 덕분인 모양이었다.

승한은 거실에 있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시원한 물이 들어가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뭘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멀뚱히 서 있을 때였다.

띠리리리리리-.

방에 두고 나왔던 스마트폰이 울렸다.

**

오후가 되자 대피소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는 대피소에 남을 의사가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시민들에게 대피소 밖으로 나갈 수 있게끔 허용했다. 남아있던 괴물들을 모두 정리한 덕분이었다.

대피소는 이제 항시 열려있었다. 매 주 일요일에만 괴물들이 나올 때와는 달리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정부는 헌터들로 하여금 괴물들의 등장에 대비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사회가 마비되지 않고, 최소한으로 안전을 도모한다. 그것이 정부의 목적이었다. 대피소에 남고 그렇지 않고는 사람들 개인의 선택이었다.

사람들은 고민하다 하나 둘 대피소를 나가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 일이 없는 백수들은 모두 대피소에 남았다. 아니, 사실상 대피소를 나온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했다.

겁이 없거나 꼭 해야 할 일이 남은 사람들. 혹은 운이 좋게 괴물과 마주치지 못해서 괴물의 존재를 크게 의식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사회는 마비되었다. 괴물에 의해 겁을 집어먹은 사람들은 대부분 대피소에 남는 것을 택했다. 이미 일요일이 아닌 다른 날에도 괴물이 나타난 이상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괴물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한산하군.’

서울 시내 한복판을 걷던 승한은 듬성듬성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강남역 인근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리곤 했는데, 지금은 지하철도 운행이 중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돌아다니는 사람들 역시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었다. 당장 승한만 하더라도 지하철도 운행하지 않고, 택시도 없어서 발로 뛰어서 왔으니 말이다.

‘하긴, 당연한가?’

사실 승한의 눈에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그 몇몇 사람들조차도 신기하게 보일 따름이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대피소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아마 이들은 바뀌어가는 세상을 기회로 삼아 무언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모험을 하기 위해 대피소를 나왔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웅크려 있는 지금, 남들과는 달리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값진 일이었다. 남들보다 몇 발자국 앞서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위험이 있지만 말이다.

‘혹은 헌터이거나.’

승한은 주인 없이 텅 비어있는 카페 가운데에 앉아있는 중년인을 바라봤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얼굴에 그늘이 적었다. 그는 한가로이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정부의 부탁으로 강남역 인근 일대의 안전을 부탁받은 헌터였다.

그는 지나가는 승한을 알아보지 못했다. 8스테이지를 겪었다면 승한의 얼굴을 알고 있을 법도 한데, 그 정도로 뛰어난 헌터는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한국에서 8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군.’

이렇게 썰렁한 시내의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거리가 사람들로 복작거린다면 더 어색하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이젠 이런 것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런 것에 익숙해지는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세상은 변화했고, 그 변화의 방향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

승한은 시내 한복판의 분수대 앞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워낙 없어서 그런지 약속한 사람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바로 안석환이었다. 그는 시내 한복판까지 자신의 애마를 끌고 왔다.

안석환은 승한이 자신의 차를 바라보자 머쓱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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