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87화 (187/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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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저거 왜 저래?”

“뭐 잘못 된 거 아니야?”

바알의 웃음소리에 헌터들이 수군거렸다. 그들은 움직임이 없다가 갑작스럽게 하늘을 뒤집어질 만큼 크게 웃는 바알을 보며 불안해했다.

바알의 웃음소리는 보통 사람의 고막을 찢어놓을 만큼 거대했다.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헌터들까지도 귀를 틀어막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긴, 바알 자체가 하나의 작은 섬처럼 거대했으니 웃음소리가 거대한 것은 당연했다.

“다 끝났습니다.”

천사가 중얼거렸다. 가까이 있던 윤재는 그 목소리를 듣고는 시선을 돌렸다. 바알의 등장 이후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들이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역시나 승한이 실패했구나 싶어 천사를 바라봤는데, 의외로 그들은 웃고 있었다.

“끝났다니요?”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천사는 그렇게 말하며 윤재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윤재는 그들의 표정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불안감을 가실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어느새 바알은 끝없이 이어지던 웃음을 그친 상태였다. 변화는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색이…….”

바알의 몸체를 이루고 있던 색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검보라 빛을 띄고 있던 피부가 점점 맑아지더니 점차 밝은 하늘색으로 변화했다.

살짝 벌어진 바알의 이빨 사이로 무언가가 나오고 있는 게 보였다. 바알의 덩치가 커서 워낙 작아 보일 뿐이지, 그것은 분명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좋았어!”

승한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한 윤재가 환호성을 질렀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승한이 무언가를 해냈다는 것은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바알의 난동이 멈추었고, 그의 몸에서 느껴지던 불길한 기운이 사라졌다. 검보라 빛의 피부가 맑게 변했다.

바알은 달라졌다. 헌터들은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수들도 더 이상 겁을 먹지 않았고, 천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구구구구-.

바알은 고개를 움직여 승한을 바라봤다. 거대한 두 개의 눈동자는 붉은색의 광기가 사라지고 하얗게 변해있었다. 승한은 그의 눈동자를 보고는 완전히 확신할 수 있었다.

‘달라졌다.’

그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가진바 마기를 전부 지워내지는 못했지만 그 약간의 마기를 가지고 바알이 악마가 되지는 않는다. 그의 몸을 이루고 있는 신들의 힘이 있는 이상, 이 정도 마기로는 그를 악마로 만들 수 없었다.

-고맙군.

승한은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바알의 몸속에서, 마기로 이루어져 있던 그의 분신들에게 들었던 목소리와 같았다. 물론 말투는 훨씬 더 부드럽게 누그러들어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바알은 승한과 단 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은 모양이었다. 승한의 목소리야 다른 천사들이나 헌터들과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들리지 않겠지만, 바알은 작은 목소리마저도 저들에게 웅장하게 들릴 것이다. 바알이 승한의 머릿속으로 직접 말을 전한 까닭은 그 때문이었다.

“별 말씀을.”

-참으로 이상할 따름이지. 나는 신도 되고, 악마도 된다. 악마로 변했던 나는 너에게 고마움을 전했지. 악마로서 의식을 가지게 해 주었다면서. 하지만 지금, 옛 신으로서 돌아온 나 역시 너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정 반대의 의미로 말이야.

바알의 말은 모순이었다. 그는 신이든, 악마든 될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어느 쪽이든 그것이 옳고 그것이 바르다 생각하는 존재였다.

승한은 짧은 사이 광기에 미쳐 날뛰는 악마가 되어버린 바알과, 냉정한 사고를 가진 악마 바알,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현명하고 웅장한 옛 거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각각의 모습에서 바알은 자기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자신의 가치가 정당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만 해도 그렇다. 방금 전까지는 악마로서의 자신에게 만족하고 그 모습을 지키기 위해 승한과 싸웠으면서 이제는 방금 전까지 자신과 격렬하게 싸운 승한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말하자면 모순 덩어리였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의 본래 모습이 아닙니까?”

바알은 애초에 신이었던 존재. 그는 다른 신들과는 달리 악마를 품고 있을 뿐, 최초의 모습이 신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때문에 승한은 바알의 지금 모습이 그의 올바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바알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머릿속으로 전해진 그의 음성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그 잣대는 옳지 않다. 어느 쪽이든 바로 나 바알이라는 점에는 다름이 없으니. 나는 신이지만 동시에 악마이기도 한 존재. 지금 이 순간에는 선이 옳고 악이 그르다 생각하고 있지만 이 또한 언제 뒤바뀔지 모르는 일이지.

“악이 옳고 선이 그르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겁니까?”

-최소한 악마가 되었을 때… 난 선을 증오했고, 악에 환호했다. 지금은 예전과 같은 신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그 기억은 변함이 없다.

“이제… 어찌 하실 생각입니까?”

-다시 땅에 묻힐 생각이다. 더욱 더 깊숙한 곳으로 말이지. 나는 모순이다. 신도 될 수 있고, 악마도 될 수 있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서 살아갈 바에는 두 얼굴 모두를 지워버리는 편이 나을 테지. 나는 선과 악, 둘 중 어디에도 속할 자격이 없다.

악마로서 모든 것을 부수고 파괴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신으로서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관찰했고, 이전과 같이 한결같은 결정을 내렸다. 스스로가 세상에 모순이 되는 존재라고 말이다.

승한은 어딘지 그가 안쓰러웠다. 전혀 상반되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영생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 바알은 그 어느 면의 얼굴도 자기 자신이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 두 가지 얼굴 모두를 가리고, 스스로의 얼굴을 땅에 묻을 것을 결심한 것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마. 정말 고맙구나. 내가 다시 땅에 묻힐 수 있게 해 주어서. 악마로서의 나는 스스로를 땅에 묻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나를 구했다.

“감사의 인사는 붉은 천사에게 하십시오. 전 그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입니다.”

-그녀는 단지 힘을 빌려주었을 뿐. 행한 것은 너다. 또한 네가 나를 위해 힘쓴 바는 틀림이 없지.

무안한 마음에 공을 붉은 천사에게로 돌리려던 승한은 결국 끝끝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 바알의 얼굴을 외면했다. 그래도 한 세상을 주관하는 고위 신이라는 존재에게 이렇게까지 인사를 받으니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그 답례로 작은 선물을 하도록 하마.

“선물… 말입니까?”

승한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마냥 고맙다는 인사보다는 솔깃한 이야기였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은 붉은 천사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어렵게 돌아왔는데 보상이 없으면 섭섭할 뻔했다.

-네 뒤에는 이미 나에 비해 부족하지 않은 신들이 함께하고 있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구나.

쿠구구구구-.

바알의 손이 승한을 향해 다가왔다. 눈앞에서 거대한 산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지만, 맑은 하늘색으로 변한 바알의 손은 딱히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다른 헌터들은 승한을 향해 손을 뻗는 바알의 모습에 기겁했지만 승한은 그를 경계하지 않고 그 손을 받아들였다. 곧 바알의 손이 그를 덮어 쥐었다.

승한의 시야가 어둡게 물들었다. 주위를 밝히던 빛이 차단되었으니 당연했다. 그렇다고 해서 바알이 승한을 눌러 죽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의 손은 승한을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능력 -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특수한 조건에 의해 다음 레벨에 요구되는 타임 포인트가 상승하지 않습니다.]

[‘능력 -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특수한 조건에 의해 다음 레벨에 요구되는 타임 포인트가 상승하지 않습니다.]

[바알의 축복을 받습니다. 영구적으로 근력과 맷집이 대폭 상승합니다. 그는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당신의 행보를 지켜 볼 것입니다.]

승한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보며 눈을 번쩍 떴다. 생각 이상으로 호화로운 보상이었다.

‘레벨이… 두 개?’

하나도 아니고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무려 두 개씩이나 올랐다. 더군다나 다음 레벨에 필요한 타임 포인트도 덩달아 오르지 않았다.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었다. 성화와 [올림포스]가 이와 비슷한 이유로 레벨이 올랐던 적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헌터가 직접 타임 포인트를 소모해서 능력의 레벨을 올리는 게 아니라면 이런 효과가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보상을 받았군.’

[불굴의 육체]는 엄연히 말해 모든 능력의 뿌리가 된다고 할 수 있었다. 강인한 몸에서 더 큰 힘이 나오는 것처럼, [불굴의 육체]가 뒷받침 되어야 비로소 능력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강림]의 지속시간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었다. 소모하는 타임 포인트에 비해 [강림]의 지속시간이 과하게 짧다고 느꼈는데, 어쩌면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올라간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모른다.

‘바알의 축복이라…….’

‘바알의 축복’은 어찌 보면 또 하나의 [불굴의 육체]와 같다고 볼 수 있었다. [불굴의 육체]는 기본적으로 헌터의 몸을 단단하게 만들고 근력을 강화시켜주었다. 어쨌거나 근력과 맷집의 ‘대폭’ 상승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만큼 생존률이 올라간다는 말이니까.

그그그그-.

승한에게 힘을 전해준 바알은 그를 감싸고 있던 손을 치웠다. 승한은 너무 크게 변화한 자신의 몸을 느꼈다. 단번에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두 단계가 상승한 덕분이었다.

-마음에 드나?

“과분할 정도로요.”

승한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적잖이 큰일을 해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의 보상을 바랬던 것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이전과 같이 능력의 한 단계 상승 정도를 기대했을 뿐이었다.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

바알은 승한을 인정했다. 다시금 자신을 치켜세우는 말에 승한은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이제 다시 땅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그래. 하지만 네 속에서 난 너를 지켜 볼 것이다. 너를 축복한 이유는 그 때문이니.

바알의 축복. 그것은 어찌 보면 바알의 눈이나 마찬가지였다. 바알은 그것을 통해 승한에게 힘을 전해주는 한편, 자신의 축복을 받은 인간을 멀고 먼 곳에서 지켜볼 셈이었다.

누군가가 멀리서 자신을 지켜본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지만 승한은 애써 잊어버렸다. 어차피 바알은 땅 속에 묻힐 존재. 그는 지켜볼 뿐, 승한에게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구구구구구구-.

바알의 몸이 땅 속으로 묻히기 시작했다. 점차 땅 아래로 묻혀가는 바알을 보며 승한은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편히 잠드십시오.”

-기대하겠다. 많은 이들이 너를 통해 이루려는 바를, 나에게 보여주길 바란다.

바알은 땅 속으로 머리를 묻기 전,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세상 밑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승한을 비롯한 헌터들의 몸이 뿌옇게 변했다.

“이제 끝난 건가?”

승한의 머릿속으로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8스테이지를 완료하였습니다.]

[모든 능력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 - 불굴의 육체’ 10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능력 - 불굴의 육체’가 ‘능력 - ’영생‘으로 변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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