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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180화 (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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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승한의 시선과 천사의 시선이 동시에 마주쳤다. 천사 역시 흔들린 땅을 느꼈는지 깜짝 놀란 상태였다.

“눈치 채셨습니까?”

“네. 조금이긴 하지만…….”

승한의 물음에 천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땅 아래의 흔들림은 그간 천사들이 우려하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깨어나려는 것 같습니다.”

“젠장.”

승한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악마들은 꽤 많이 쓰러뜨렸고, 마물들 역시 절반가량 정리가 되었다. 이제 마물들과 악마들을 모두 쓰러뜨리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껏 우려하던 황무지 아래의 어떤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그 크기가 거대하면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였다.

“결국… 막지 못했군요.”

“벌써 포기하는 겁니까?”

“당신도 느끼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아래에 있는 존재가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지. 그 마기를 느끼고 있다면, 저희들만으로 막아낼 수 없음을 아실 텐데요.”

현실적인 말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냉정한 말이기도 했다.

쿠구구구-,

다시 한 번 땅이 흔들렸다. 방금 전보다 더 큰 흔들림. 기감이 예민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 있는 승한과 천사들이 그 흔들림을 알아챌 정도라면 저 아래에서 싸우고 있는 신수들과 마물들, 헌터들은 진작에 이 흔들림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조금씩 깨어나고 있었다. 오랜 시간 봉인되어 잠들어 있던 어떤 존재가. 황무지의 모래를 조금씩 뒤집으며 기지개를 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덩치는 점점 더 거대해졌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땅 아래에서 느껴지는 마기의 크기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느껴졌다. 하나의 거대한 산조차 어린아이 대할 것만 같은 크기였다.

“끝났습니다.”

비관적인 천사의 말에 승한이 뿌득 이를 갈았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승한은 그렇게 말하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지금 중요한 건 악마와의 싸움이 아니었다. 승한은 헌터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마물들과 한창 싸우고 있던 헌터들은 땅 아래에서 느껴지는 마기와 땅의 흔들림을 느끼고는 당황하고 있었다.

“승한아!”

거대한 레드 드래곤이 아래로 내려왔다. 높은 곳에서 브레스를 뿜으며 마물들을 공격하던 레드 드래곤은 윤재를 태운 채로 승한에게로 다가왔다.

레드 드래곤은 기다란 목을 아래로 내려 승한의 앞에 윤재를 내려주었다. 악마들과 싸우느라 만나지 못하고 있던 윤재를 보며 승한이 반갑게 소리쳤다.

“형!”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아까부터 땅에서…….”

“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알지 못한다. 그거야 이제부터 알아볼 일이었다.

“그래도… 준비하고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엄청난 게 나올 것 같으니.”

쿵, 쿵-.

땅은 이제 흔들리는 것으로 모자라 요동치기까지 했다. 그 충격에 신수들과 헌터들은 움직임을 멈췄고, 마물들은 오히려 더욱 거세게 날뛰기 시작했다.

승한은 알 수 있었다. 이 아래에 있는 어떤 존재가 이제 곧 깨어날 것이라고. 마물들이 날뛰기 시작한 이유도 바로 그 영향을 받은 까닭이었다.

“어쩔 거냐?”

“잡아야죠. 다른 선택지가 있어요?”

“어떻게?”

“……어떻게든지요.”

방법은 둘째 치고,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스테이지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승한이 사는 세상의 신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즉, 남아있는 스테이지도 얼마 되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번 스테이지를 실패하면 그 다음 스테이지도 없다. 괴물들을 막을 수 있을 만한 힘도 갖지 못하게 된다. 승한은 아래에서 느껴지는 흔들림이 더욱 거세지자 다시 위로 뛰어 올랐다.

“형! 다른 헌터들을 부탁해요!”

“뭐? 어떻게?”

“가능한 땅에서 멀어지라고, 비행 능력이 있는 헌터들에게 말해 줘요. 혹시 그렇지 않은 헌터들은 형이 좀 어떻게 해 줘요!”

땅 위에 서 있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신수들과 마물들 역시 비행이 가능한 종들은 어느새 날개를 펼치거나 위로 떠올라 땅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들 역시 땅 아래의 존재로부터 위험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그것은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 역시 하나 둘 땅에서 멀어져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비행 능력이 없는 헌터들이 꽤 있었는데, 승한은 윤재에게 그런 이들을 부탁했다.

“……그래. 알았다.”

윤재의 레드 드래곤이면 꽤나 많은 수의 헌터들이 올라 탈 수 있을 것이다. 레드 드래곤의 레벨이 오른 덕분에 레드 드래곤의 등은 어지간한 축구 경기장과 비슷할 정도로 넓었다. 아마 레드 드래곤의 위에만 수천 명은 올라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밖에 다른 소환수를 부릴 수 있는 헌터들이 꽤 많았다. 그들과 함께라면 모든 헌터들이 땅에서 멀어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쿵, 쿵-.

“서둘러요!”

승한의 외침이 헌터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승한의 반응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땅 아래의 어떤 존재가 있음을 눈치 채고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신수들과 마물들, 그리고 헌터들.

다행히 헌터들은 금세 피신했다. 승한의 외침도 있었고, 일찍부터 낌새를 눈치 챈 그들은 서로를 도와 땅에서 멀어졌다. 땅의 흔들림은 점점 더 거세졌지만, 땅 아래의 존재는 그렇게 금방 깨어나지는 않았다.

헌터들은 땅에서 떨어진 채 잔뜩 얼어붙어 땅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승한 역시 힘을 가득 끌어올려 듀란달에 성화를 머금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어떠한 적이 언제 나오든 바로 공격할 수 있게끔 말이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쩍, 쩌저저적-.

쏴아아아아아-.

땅이 갈라지고, 황폐해진 사막의 모래들이 갈라진 지면 아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지면이 아래로 푹 꺼지기도 했고, 반대로 작은 산처럼 올라오기도 했다.

갈라진 지면 아래가 계속해서 떨렸다. 땅 아래에 남아있던 신수들과 마물들은 갈라진 지면 아래로 떨어졌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던 신수들은 계속되는 지진 속에서 결국 아래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이 거대한 황무지 일대에서 벌어졌다. 갈라지지 않은 땅은 멀리 보이는 작은 들판뿐이었다.

‘나온다.’

땅 아래에서 마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마기는 하늘을 부유하던 헌터들의 심장을 옭죄는 것만 같았다. 이토록 거대한 마기는 생전 처음 느껴보았다.

그리고 이어진 광경은 그들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터져나오게 만들었다.

“미친…….”

“저게… 뭐야?”

우드드드드득-.

쿠웅-.

거대한 팔 하나가 땅 아래에서 솟아올랐다. 아니, 그것은 단순히 ‘거대하다’라는 표현으로 어찌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뻗어나온 손 하나가 산과 같은 크기였다. 무너져가는 황무지의 땅을 움켜잡은 손은 점점 더 위로 올라오더니 기다란 팔을 꺼내었다.

지금껏 승한을 비롯한 헌터들이 보아온 악마들은 피부가 없이 뼈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몸을 이루고 있는 마기를 피부가 견디지 못하고 부식되어 녹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하급 악마들은 악마라는 이름에 어울릴 만큼 강력한 마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 어울리는 육체를 가지지는 못했다.

반면 땅 아래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팔은 하급 악마들과는 달리 조금이나마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마기 때문인지 피부가 녹아내리고 뼈가 조금씩 드러나 있었지만, 그 모습에서 오히려 더 공포심이 들었다.

손바닥 하나가 산을 가릴 정도였다. 헌터들은 감히 먼저 공격을 감행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덩치와 어마어마한 크기의 마기에 얼어붙은 것이다.

“저걸… 어떻게 하라는 거야?”

거대한 악마가 갈라진 땅을 비집고 나왔다. 녀석을 보니 하급 악마들은 악마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였다. 같은 악마라고 부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땅 아래에 있던 악마는 비교가 불가능했다.

승한 역시 다른 헌터들과 크게 반응이 다르지 않았다. 온 몸으로 느껴지는 거대한 마기는 둘째 치고,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거대한 덩치에서부터 압도되었다.

‘미치겠군.’

저런 녀석을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승한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바로 방금 전에 헌터들에게 몸을 치유받았음에도 온 몸이 덜덜 떨렸다.

천사들과 악마들은 잠시 싸움을 멈추었다. 천사들은 새로이 나타난 악마를 보며 덜덜 떨었고, 악마들은 경건한 모습으로 거대한 악마를 향해 목례를 하고 있었다. 거대 악마는 천사들에게는 재앙이요, 악마들에게는 왕의 귀환이었다.

“뭘 멍하니 있습니까!”

승한이 천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는 듀란달에 머금은 성화를 악마들을 향해 쏘아내며 악마들의 틈으로 파고들었다.

천사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남아있는 악마들의 수는 처음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반면 천사들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땅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던 거대 악마는 올라오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았다. 땅을 비집고 나온 건 손뿐이지, 다른 몸뚱이는 아직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 전까지.

승한은 가능한 빨리 남아있는 악마들을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아무리 거대 악마가 강하다 해도 수십 명의 천사들과 수만의 헌터들이 힘을 합친다면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승한의 의도를 알아 차렸는지 천사들도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악마들은 천사들과 승한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들 역시 마찬가지로 공격을 감행했다.

“의미 없는 발버둥이로구나! 크하하하하!”

악마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천사들에게 밀리고 있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들은 천사들과는 다른 의미로 거대 악마가 부활했으니 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르르르륵-.

승한은 그런 악마의 외침을 무시했다. 아예 귀를 닫아버렸다. 그들이 무어라 떠들건, 남아있는 악마들을 잡는데 집중했다.

악마 하나가 승한의 성화에 까맣게 타들어갔다. 녀석은 마기를 일으켜 저항했지만 승한의 성화는 하급 악마의 마기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결국 악마는 타들어가며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저분이 우리 같은 줄 아느냐? 너희는 이제 다…….”

서걱-.

악마의 목이 아래로 떨어졌다. 더 들어줄 수 없어 승한은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우린 안 죽어.”

쿠구구구구구-.

거대 악마는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왔다.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니 손뿐만 아니라 팔 전체가 위로 올라와있었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손과 팔을 뒤덮고 있던 피부였다. 뼈를 뒤덮고 있던 녹아내린 살점이 어느새 깨끗해져 있었다. 마치 상처가 재생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덩달아 마기도 점점 더 짙어졌다.

‘회복하고 있는 건가?’

빠득-.

절로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천사들은 수적 우위로 악마들을 몰아붙이고 있었지만, 그들과 힘을 합쳐도 저것을 어찌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크르르르르-.

이윽고 거대 악마가 땅 속에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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