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75화 (17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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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승한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단순한 예감만이 아니었다. 승한의 몸속에 있는 성화가, 조금씩 그 불길함을 감지하며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가 뭐지?’

승한은 불길한 이유를 알아내지 위해 주위를 더 꼼꼼히 둘러봤다. 성화가 이렇게까지 흔들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잠시 후, 승한은 불길함의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껏 승한은 단순히 악마들과 천사들의 싸움, 그리고 신수들과 헌터, 마물들의 싸움만을 보고 있었는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하늘이…….”

승한은 하늘을 바라봤다. 먹구름과 구름 한 점 없는 푸름 하늘의 경계가 점차 옮겨지고 있었다.

먹구름이 점점 더 푸른 하늘을 뒤덮었다. 악마들과 마물들을 상징하던 검은 구름이 말이다.

땅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물들과 신수들이 싸우고 있는 땅은 황무지와 푸른 들판의 경계였다. 원래라면 신수들이 마물들을 밀어내고 있는 지금, 황무지가 들판으로 바뀌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하늘과 마찬가지로 들판의 풀들은 썩어 바스라지고, 황무지가 점점 늘어났다.

‘대체 왜?’

8스테이지의 목적은 마물들과 악마들을 쓰러뜨리고 죽은 땅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덩달아 죽은 땅이 되살아나면 하늘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도 사라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 반대였다.

헌터들과 신수들은 힘을 합쳐 마물들을 몰아내고 있다. 하지만 땅과 하늘은 정 반대. 승한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물들이…….’

승한은 먹구름이 늘어나고, 땅이 황폐해져 가는 것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땅과 하늘이 바뀌어 가면 갈수록 마물들이 점점 더 신수들을 상대로 저항을 더욱 거세게 하고 있었다.

구름과 황무지.

이 두 가지 때문이었다. 악마들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마물들은 더욱 강해지고, 신수들은 점점 더 약해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천사들과 악마들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대체 왜?’

까닭을 몰라 승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당장 승세를 잡은 건 천사들과 신수들, 그리고 헌터들이었다. 악마들은 예외로 치더라도 마물들은 확실히 신수들과 헌터들의 공격에 밀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검은 먹구름과 황무지가 늘어나는 걸까?

마물들이 점점 강해지고, 신수들이 약해진다면 기껏 잡은 승세가 역전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이 현상의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악마들 때문인가?’

천사들과 싸우고 있는 악마들. 그들을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마물들보다 더 위에 있는 존재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악마들 때문 만이라고 생각하기는 역시 어려웠다. 그들은 아직 천사들과 싸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른 일을 버릴 틈이 없을 것이다.

‘그럼 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승한은 잠시 고민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당장 머리를 굴린다고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수많은 마물들과 악마들 뿐. 저들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저들을 모두 쓰러뜨리면 나타날 것이다.

‘일단… 악마들부터 잡는다.’

승한은 듀란달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은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천사들을 도와 싸우기에는 충분했다. 마물들은 다른 헌터들에게 맡기면 될 터.

악마들을 모두 잡게 되면 천사들의 손에 여유가 생긴다. 하나 둘씩 악마들을 제거해 나가다 보면 천사들이 합세해 마물들을 잡는 것도 수월할 것이다.

승한은 천사들의 뒤로 향했다. 조금씩 성화의 힘을 일으키며 다가가자 악마들의 시선이 승한에게로 모아졌다. 수십의 악마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승한은 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자신을 지켜주고 있는 천사들을 보고는 다시 힘을 얻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가까이 있던 천사가 승한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다시 악마 하나를 향해 달려갔다. 승한은 성화의 구슬을 여럿 만들어냈다.

“자, 그럼 어디…….”

시작해보자.

**

파스스스스-.

들판의 잎사귀가 바스라지며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수분을 빼앗긴 풀과 꽃 따위로 가득찬 땅은 더 이상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마물들은 점점 더 거세게 날뛰었다. 처음에는 헌터들과 함께 날뛰던 신수들은 점차 마물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헌터들 역시 마물들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어느새 신수들과 마물들이 싸우는 땅은 완전한 황무지로 변했고, 하늘은 시커먼 구름으로 뒤덮어졌다. 신수들은 그런 하늘 아래에서 제대로 된 힘을 쓰지 못했다. 반면 마물들은 자신의 세상을 만났다.

그리고 악마들 역사 마찬가지였다.

콰드드득-.

악마의 손에 천사의 목이 꺾였다. 승한은 천사들을 도와 악마들과 싸웠지만, 악마들과 함께 천사들도 하나 둘 죽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마들도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승한의 합세로 처음에는 천사들이 승기를 잡는 듯이 보였다. 승한의 성화는 악마들에게 충분히 위협적이었고, 천사들은 승한을 보호하며 악마들과 싸웠다. 직접 싸우지 않더라도 승한의 서포터는 천사들의 수적 열세를 메우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악마들이 강해질수록 천사들이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저 하늘과 땅 때문일 것이다. 지형의 이점은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악마들의 마기는 점점 강해졌고, 천사들은 반대로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대체 왜…….”

승한은 점점 더 강해지는 악마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되면 악마들을 모두 잡고, 신수들과 헌터들을 도와 마물들을 토벌하겠다는 처음의 생각조차도 무의미했다. 애초에 천사들이 악마들을 먼저 쓰러뜨리겠다는 생각부터 틀려먹었으니 말이다.

승한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황무지를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멀리 보이는 땅까지, 모두가 악마들의 땅과 하늘이 되어버렸다.

“왜냐고?”

악마 하나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무래도 승한의 중얼거림을 들은 모양이었다.

“당연한 이치를 왜냐고 물어보다니, 멍청하구나, 멍청해. 그런 힘을 가지고 있어도, 인간은 인간인가?”

악마는 승한을 보며 계속해서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이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그 악마를 중심으로 주위에 있던 악마들도 하나 둘 웃음을 흘렸다. 그들은 각자 상대하고 있던 천사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천사들의 기운이 악마들의 기운에 밀렸고, 승한이 퍼뜨려 놓은 성화도 그 힘에 점차 불길이 약해져가고 있었다. 그나마 천사들이 버티고 있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성화 덕분이었다.

“당연하다니? 무슨 소리지?”

승한은 무엇이 당연한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물음에 답한 건 악마가 아닌, 바로 근처에 있던 천사였다.

“지금 저희가 피를 흘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

그 대답에 승한은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다 금방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 거였나?’

천사들과 악마들, 신수들과 마물들. 그리고 헌터. 이들은 각자 땅 위에서 싸우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신수들이 살아가는 땅은 불화와 다툼이 없었다. 가장 처음 승한이 이곳 세상에 발을 담았을 때 에덴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신수들이 살아가는 땅이기 때문에, 그들은 피를 흘리지 않고 불화와 다툼이 없었던 것이다.

반면 마물들은 서로를 잡아먹고 항상 싸우며 살아간다. 지금 당장은 신수라는 적들이 있음으로서 서로를 공격하지 않지만, 그곳에서 피라는 것은 늘 일상적으로 흘리는 것들이었다. 즉, 다툼과 싸움은 마물들에게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인 것이다.

신수들은 마물들과 싸우며 피를 흘렸다. 신수들과 함께 마물들 역시 피를 흘렸다. 그렇게 흘린 피가 땅속으로 스며들었고,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늘과 땅이 변했다. 서로를 물고 뜯고, 싸우고 피를 흘리는 이 싸움은 마물들의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세상은 마물들의 세상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는 것이었다.

생각이 정리가 될 즈음, 방금 전 천사의 목을 부러뜨린 악마가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사들은 승한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려다 기존에 싸우던 악마들에게 당해 피해를 입었다.

승한은 급히 성화를 더 강하게 피우고, [올림포스]를 사용해 악마들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그러자 조금 균형이 맞춰졌는데, 반대로 승한은 더욱 힘을 많이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얼마 못 버틴다.’

아슬아슬하게 천사들과 악마들의 균형을 맞추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승한이 이렇게 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승한의 힘에는 한계가 있었고, 더군다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악마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던 가운데, 승한은 다시금 몸속에 있던 성화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성화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승한이 성화를 통해 무언가 실마리를 잡을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방법이…….’

승한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먹구름은 이미 하늘을 뒤덮은지 오래였다. 승한은 성화가 저 먹구름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혹시…….’

승한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조금만 버텨 주세요.”

“뭐라고요?”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벌어 주십시오.”

승한은 그렇게 말하고는 성화를 거두었다. 승한은 모든 힘을 거두고는 헌터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천사들은 당황했지만, 승한의 지원이 없다고 해서 악마들과의 싸움을 멈출 수는 없었다.

승한은 헌터들 사이로 내려가 주희를 찾았다. 조금 감각을 넓게 퍼뜨려 주희를 찾자, 그녀의 옆에는 에밀리가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은 몇몇 치료가 가능한 헌터들과 함께 다른 헌터들의 부상을 치료하고, 힘을 회복시켜주고 있었다.

“찾았다!”

승한은 서둘러 주희에게 다가갔다. 주희는 악마들과 싸우고 있어야 할 승한이 갑작스레 나타나자 깜짝 놀라며 치료하고 있던 헌터에게서 손을 떼었다.

“오빠, 여기서 뭐 해요?”

“주희야, 에밀리씨.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주희는 승한이 부탁이라고 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과 얽히는 것을 꺼려하는 승한이 먼저 찾아와서 부탁이라고 말할 정도라면 꽤나 급한 일인 모양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저 좀 회복시켜 주십시오. 비슷한 능력이 가능한 헌터들 전부 모아서요.”

“전부요? 그럼 수가 꽤 많을 텐데…….”

“몇 명이든 상관없습니다. 설명할 시간도 없고요. 가능한 많이, 가능한 빨리! 어서요!”

승한의 외침에 주희가 화들짝 놀라 승한에게로 다가왔다. 이미 그녀는 맡고 있던 헌터의 치료를 끝마친 상태였다. 부상을 입은 헌터들이 줄을 서서 있었는데, 그들은 승한을 향해 불만을 늘어놓으려다가 에밀리가 승한의 이름을 밝히며 순서를 양보해 달라고 하자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는 이름값이 편하군.’

만약 다른 헌터가 먼저 순서를 무시하고 치료를 받겠다고 했다면 이렇게 잠잠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 어디서나 새치기는 비판을 받아 마땅한 일이니까.

하지만 에밀리는 승한이 악마들과 싸우면서 힘을 소진했고, 천사들을 돕기 위해서 승한의 회복이 시급하다고 다른 헌터들을 설득시켰다. 동시에 다른 회복이 가능한 능력을 가진 헌터들을 불러모았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모인 헌터가 총 열 명.

회복 능력을 가진 헌터가 많지 않다더니, 수가 적기는 많이 적었다.

“그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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