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72화 (17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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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어차피 이 상태로는 천사들에게 큰 도움을 주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이 자리에서 [강림]을 사용하기에는 타임 포인트가 아까웠다.

‘[강림]은 조금 더 두고 본다.’

승한은 결국 보유하고 있던 타임 포인트를 당장 능력을 올리는데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필리핀 전역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검은 인영들을 쓰러뜨린 덕분에 승한의 타임 포인트는 꽤나 늘어나 있었다.

[보유 타임 포인트 : 20473685p]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었다. 이미 승한이 올리고자 하던 능력은 정해져 있었다.

[2048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성화’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성화에 대한 친화력이 상승합니다.]

[2048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올림포스’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두 개의 능력의 레벨이 높아졌다. 가능하다면 [성검]의 레벨도 높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다른 두 개의 능력과는 달리 [성검]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800만이 넘는 타임 포인트가 필요했다.

이것으로 남은 타임 포인트는 대략 1600만. 이 정도면 [강림]을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포인트였다.

‘성화의 친화력이 높아진 건 의외인데?’

다른 능력들과는 달리 [성화]의 레벨은 유독 높은 편이었다. 성화의 레벨은 유일하게 5레벨에 달했던 능력인 [불굴의 육체]와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되었다. 두 번에 이어진 능력의 상승이 성화의 레벨을 다른 능력들보다 훨씬 더 높일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 주었다.

다른 능력들 또한 레벨이 높아지면 이런 변화가 있을까 싶었는데, 당장에 [올림포스]와 [성검]의 레벨을 성화처럼 높이기는 어려웠다. 승한은 타임 포인트가 있어도 쉽게 사용할 수 없었다. [강림]을 사용하기 위해서 남겨 두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가능한 여기서 마무리 짓는다.’

이전에 비해 부족하긴 하지만 성화의 레벨이 5레벨까지 달한 이상 어느 정도 이전과 얼추 비슷한 수준을 될 것이다. 특히나 성화라는 힘의 특성과 천사들의 지원이 더해진다면 악마들에게 꽤나 위협이 되리라.

타닥-.

승한은 [올림포스]로 몸을 보호한 채 천사들의 옆으로 날아갔다. 다른 헌터들과는 달리 승한이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천사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올림포스]의 레벨이 하나 더 올라서 그런지 승한은 천사들과 악마들의 기 싸움에 조금은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었다.

“돕겠습니다.”

“뜻은 알겠습니다만, 가능하면 마물들을 먼저 정리해 주십시오. 악마들은 그 다음에…….”

천사들은 승한의 도움을 거절하려다 그가 손에 성화를 피우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5레벨에 달한 성화는 이제 완전한 황금색을 띄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천사들은 천족이 신이 된 이들이었다. 비록 하급 신이라지만 그들은 한때 자신들의 신으로 붉은 천사들 비롯한 천사들을 신으로 모셨다. 그런 그들이 승한이 가진 힘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성화…….”

“이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분의 사람이었군요. 이거 알아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5레벨의 성화라면 악마에게 피해를 주기에도 충분했다.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뿐더러, 광범위한 공격을 할 수만 있다면 악마의 힘으로부터 저항하기에도 충분한 힘이었다.

힘의 크기를 떠나, 승한이 가진 성화의 힘은 질적으로 하급 악마나 하급 신인 천사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힘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승한이 천사나 악마들보다 더 강하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시끄럽게 떠들고 있을 여유가 없을 것 같은데요?”

승한은 악마들이 움직이기 시작함을 알고는 [올림포스]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대를 뒤덮는 압력이 퍼져나가며 주위를 승한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승한은 손을 꽉 쥐며 멀리 떨어져 있는 악마들을 위에서 짓눌렀다.

퍼져 나오던 마기가 흔들렸다. 마기는 승한이 만들어낸 강렬한 압력 속에서 힘을 온전히 유지할 수 없었다. 승한은 [올림포스]의 힘이 단숨에 강해진 것을 확인하고는 적잖이 놀랐다.

‘이거 꽤 쓸 만한데?’

성화의 경우에는 이미 5레벨의 효과를 몸으로 확인한 터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3레벨의 [올림포스]는 기대했던 것보다 힘이 더 강했다. 물론 성화보다 훨씬 더 힘의 소모가 크다는 것이 직접 느껴져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성화와는 달리 [올림포스]는 친화력과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힘의 소모량도 성화보다 더 큰 편이었다. 위력만 놓고 보자면 성화나 [성검]에 비해 더욱 컸지만, 효율적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남용은 자제해야겠군.’

승한이 악마들의 마기를 억누르자 천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한은 앞장서 나서기보다는 천사들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싸울 것을 생각했다.

승한은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냉정히 말해 지금의 승한은 일전에 악마들과 싸울 때에 비해서 부족했다. 아무리 성화와 [올림포스]의 레벨을 올렸다 해도, [강신]을 통해 성화의 친화력이 대폭 오르고 [성검]의 레벨이 3레벨까지 오른데다가 아롤의 검술까지 터득할 수 있었던 그 때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승한이 내세울 수 있는 게 두 가지 있었다.

바로 이전과 같이 5레벨에 이른 성화의 능력과 이전보다 더 강해진 [올림포스]의 힘이었다.

‘이전엔 [올림포스]의 힘이 부족했지.’

하급 악마와 싸울 때 승한의 [올림포스]는 2레벨에 불과했다. 그것만 하더라도 다른 헌터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고, 오히려 능력의 수준은 훨씬 높은 편이었지만 하급 악마에게 통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앞서 [올림포스]의 힘을 전력으로 끌어낸 결과, 승한은 확신할 수 있었다.

움직임을 봉쇄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3레벨의 [올림포스]는 악마에게 통했다. 게다가 그들이 뿌려내는 마기를 억제할 수도 있었다.

[올림포스]와 성화.

이 두 가지 능력으로 천사들을 지원하면서 악마들을 공격하는 한편, 움직임을 억제시킨다. 그것이 바로 승한이 생각한 싸움의 방법이었다.

“자, 그럼 어디 싸워 보자고.”

승한은 가까워지는 천사들과 악마의 싸움에 한 발을 걸쳤다.

**

크르르르르르-.

신수들과 마물들의 싸움 가운데 거대한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밖에도 신수도, 마물도 아닌 또 다른 짐승들이 여럿 나타났다. 소환 능력을 가진 헌터들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해 마물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환 계열의 능력은 대체로 다른 능력에 비해 효율이 뛰어난 편이었다. 비록 일부에 불과할지라도 소환 능력은 자신에게 힘을 빌려준 신을 강림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소환된 신은 헌터의 의지에 따라 적을 공격했는데, 애초에 신이 된 존재이기 때문인지 능력의 레벨에 비해 높은 효율을 발휘했다.

때문에 소환 계열의 능력을 가진 헌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버프 계열의 능력을 가진 헌터의 수가 적은 것처럼 소환 계열의 능력을 가진 헌터도 극히 드물었다. 그 중에서도 윤재의 레드 드래곤은 소환된 신들 중에서도 가히 압도적이었다.

콰드득-.

화르르르르륵-.

거대한 레드 드래곤은 마물들을 발로 짓밟으며 불을 뿜었다. 달라붙는 마물들은 날개를 흔들어 떼어내며, 거대한 덩치를 이용해 마물들을 잡고 날아올라 다른 마물들을 향해 집어 던지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많은 거야?”

레드 드래곤의 등 위에 올라가 있는 윤재는 높은 곳에서 마물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꽤나 높이까지 올라와서 멀리 바라보고 있음에도 도무지 마물들이 얼마나 많은지 끝이 보이질 않았다.

수천, 수만? 어림도 없었다. 끝도 없이 멀고 먼 황무지를 온통 시커멓게 가릴 정도로 마물들은 우글우글했다. 도무지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물들과 마찬가지로 신수들 역시 들판을 전부 가릴 정도로 많았다. 높이서 보자 마치 하얗고 검은 두 거대한 해일이 부딪힌 듯이 보였다.

파스스스스스-.

크르르르르르-.

그 때, 레드 드래곤이 고통스러운 울음을 흘렸다. 어디선가 흘러 들어온 검은 기운이 레드 드래곤의 몸을 감싸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다행히 큰 충격은 아니었지만, 레드 드래곤은 날개짓을 하기가 힘든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응? 저건…….”

윤재는 그 기운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또 다른 곳에서 검고 흰 존재들이 싸우고 있었다. 신수들이나 마물들에 비해 수는 극히 적었지만 존재감만큼은 그들을 모두 더한 것에 뒤지지 않았다.

천사들과 악마들.

그들 사이로 승한이 성화를 뿌리고 있는 게 보였다.

**

화르르르륵-.

치이이이이이익-.

성화의 불길과 마기가 부딪혀 소멸했다. 승한은 아낌없이 성화를 뿌렸다. 어차피 승한의 성화는 천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붉은 천사들을 신으로 모셨던 그들은 성화를 등에 업고 더욱 힘을 과시했다.

반면 악마들은 승한이 퍼뜨린 성화가 신경 쓰여 그것을 계속해서 견제할 수밖에 없었다. 힘을 한 점에 집중하지 않고 넓게 퍼뜨린 탓에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성화의 힘에 계속해서 영향을 받았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귀찮은 녀석이…….”

악마들은 승한이 뿌린 성화를 저지하고자 마기를 넓게 뿌렸다. 승한의 성화가 아무리 악마들의 상극이 되는 힘이라 해도 그 많은 악마들을 모두 어찌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악마들이 신경 써야 하는 건 승한 한 명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치익-.

쾅-!

정면에서 쏘아진 벼락에 악마의 몸이 튕겨져 날아갔다. 적잖은 충격을 받은 악마는 급히 날개를 펼쳐 허공에 멈춰 섰다. 천사 하나가 그에게 날아들어 창대를 후려친 것이었다.

“네놈…….”

“어디에 한눈을 파는 것이냐?”

천사는 한 손으로 창을 빙그르르 돌리며 반대쪽 손에 벼락을 만들어 움켜쥐었다. 게다가 다시금 넓게 퍼진 성화가 악마의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몇몇 악마들이 승한을 먼저 제거하고자 움직였다. 천사들의 공격보다도 귀찮고 까다로운 게 바로 승한의 성화였다. 당장에는 위협이 되지 않을지 몰라도 그 힘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다 보면 결국에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성화를 밀어내고자 힘을 쓰면 그 사이로 천사들이 날아들었다. 승한의 성화는 어느 한 명의 악마를 상대하기보다는 힘을 넓게 퍼뜨려 모든 악마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통한다.’

승한은 아예 듀란달을 집어놓고 등에 방패를 걸어둔 채 양 손으로 성화를 조종하고 있었다. 천사들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으니 마음 놓고 성화를 부릴 수 있었다.

일전에 하급 악마와의 싸움 때에는 다른 헌터들이 악마를 상대할 능력이 없었다. 유일하게 루이즈만이 한 순간씩 하급 악마를 막아낼 능력이 있었는데, 승한은 그 때마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하급 악마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루이즈보다 더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줄 천사들이 즐비했다. 승한이 직접 검과 방패를 들고 싸우지 않더라도 그들은 말하지 않더라도 승한을 지키며 싸우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승한의 능력이 악마들과의 싸움에 중요한 핵심이 될 것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내 분야는 아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지.’

승한은 검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근접 전투를 지향하고 있었다. 성화를 검에 두르고, 듀란달의 힘과 함께 성화를 검격의 형태로 바꾸어 날려 보내는 식의 싸움. 그것이 바로 승한이 지금껏 해왔던 싸움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승한이 나서서 싸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 나서서 싸웠다가는 악마들의 집중 공격을 받을 위험만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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