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66화 (166/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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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세상을 구하다.

그 말이 승한의 가슴속에 들어와 박혔다. 그의 귓가에 아롤이 했던 말이 맴도는 것 같았다.

‘네가 사는 세상, 네가 구해야 한다.’

아롤은 승한에게 세상을 구하라 했다. 바로 자신처럼, 노아처럼 말이다.

“설마…….”

승한은 최악의 가정을 떠올렸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절망적인 가정이었다. 승한은 덜덜 떨리는 입을 한참 후에나 열 수 있었다.

“당신이… 그러신 겁니까?”

“그래.”

덤덤한 대답이었다. 어렵게 질문한데 비해, 너무나도 쉽게 대답해서 맥이 빠질 만큼.

“세상을 다시 갈아엎을 때가 되었지.”

“대홍수처럼 말입니까?”

“시험이라 하였다. 노아와 같은 자가 있다면, 이번에도 살아남겠지.”

“대체 왜……!”

“왜냐고 물어보지 말거라. 넌 이미 알고 있으니.”

그의 대답에서 승한은 자신의 생각이 맞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세상을 다시없던 것으로 돌리거나, 세상을 뒤집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악행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그는 자연히 세상을 다시 돌리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러는 한 편, 노아에게 계시를 내려 세상을 다시 되살린 것처럼 인간들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그 기회가 바로 헌터라는 존재들이었다.

“당신은… 신이 아닙니까?”

“에덴의 백성들은 나의 자식들이지. 그들을 신이라 부른다면, 나는 너희가 말하는 신이 아니라 말해야겠구나.”

그야말로 그는 신들의 신이었다. 승한은 그를 다른 신들과 같은 범주에 두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세상은 그의 손 위에서 움직인다. 악마들이 승한의 세상을 멸하고 사탄을 부활시키려 하는 것도, 신들이 인간들에게 능력을 주어 악마들에게 맞설 힘을 준 것도. 모두 그의 계획과 시험 아래에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당신이 저를 부르신 게 맞습니까?”

“그래.”

“이유가 뭡니까?”

승한은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는 사람들을 시험한다면서 승한을 따로 만났다. 인간을 에덴의 땅으로 부르면서까지 말이다.

“자격을 갖췄기 때문이지.”

“자격?”

“말하지 않았느냐? 이것은 시험이라고. 그리고 너는 그 시험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가지고 있다.”

우수한 성적. 타임 포인트와 능력의 레벨을 뜻하는 것이었다. 악마들과의 싸움을 위해 신들이 만들어낸 장치가 바로 그가 만든 시험의 일부였다.

그리고 승한은 헌터들 중 가장 많은 타임 포인트를 획득했다. 보통 괴물들 역시 다른 헌터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잡았고, 보스까지 단신으로 쓰러뜨리곤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험은 언제 끝나는 것입니까?”

“멀지 않았다.”

“설마 시험이 끝나게 되면…….”

사람들은 타락했다. 그는 타락한 인간들을 두고 볼 수 없어 세상을 멸하고자 했다. 그 옛날 대홍수로 사람들을 땅에서 지웠던 것처럼 말이다.

그 중에서 인간의 씨앗이 사라지지 않게 방주를 만든 존재가 바로 노아였다. 하지만 승한은 자신이 노아와 같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의미는 자신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는 뜻이니까.

“네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겠다.”

“그럼…….”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악마가 사람을 가려 죽이진 않을 테니. 죽더라도 모두가 죽겠지.”

소름이 돋는 말이었다. 그는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살아남았던 것과 같은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악마라는 존재를 막지 못한다면, 승한을 비롯한 모두가 죽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당신이 악마를 움직인 겁니까?”

“어찌 내가 생명의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그들의 생각이고 의지다.”

“하지만 당신이 그들의 뒤에 있음은 사실이지요?”

“너희의 악한 마음이 너희 세상의 악마를 다시 깨우게 만들었다. 다른 세상의 악마들은 그것을 노린 것이지. 결국 너희가 자초한 일이다.”

루이즈의 말이 떠올랐다. 사탄을 비롯한 악마는 인간의 악한 감정, 부정적인 감정을 양분삼아 강해진다고 했다. 결국 사탄을 깨우게 만든 건 모든 인간들의 죄였다.

“하지만 사탄은 당신의 어두운 이면 아닙니까?”

승한의 말 뜻은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인간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간접적인 시위였다.

“어두운 이면이라… 정확히는 내가 어둡게 만든 것이지. 인간을 내쫒고, 사탄에게는 선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형벌을 내렸지. 인간과 함께 에덴의 밖으로 추방하자, 그곳에서 인간의 악한 감정을 먹고 자라더구나. 그렇게 녀석은 악마가 되었지.”

“처음부터… 악마였던 게 아니었던 겁니까?”

“그래. 너희가 만든 것이지. 아니, 정확히는 선악과를 먹음으로서 생긴 너희의 욕심이 만든 것이라고 해야 하겠군. 녀석이 너희에게 선악과를 먹인 이유가 그 때문이었던 모양이야.”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탄은 참으로 교활했다. 악을 알게 된 인간이 신에게서 버림받고 더더욱 악해질 것을 알고 그들을 혀로 구슬렸으니 말이다.

“내가 한 일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사탄을 잠재우는 것이었지. 하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일이었다. 그대로 두게 되면, 다시 악을 먹고 자란 사탄이 깨어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으니.”

“그래서…….”

“그래. 인간을 세상에서 지운 까닭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완전한 해결은 되지 못하더구나. 결국 인간은 다시 악해졌다. 점점 더 그것이 너희의 본성이 되어가고 있는 까닭이겠지.”

“그건 아닙니다.”

승한은 그의 말을 부정했다. 승한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을 절대 수긍할 수 없었다.

“제 본성이 악하다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또한 선한 사람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악한 사람도 많지만, 선한 사람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세상은 엉망진창이지만… 당신은 말은 틀렸습니다.”

“거 참 당돌하게도 말하는구나.”

어찌 보면 한낱 인간인 승한이 그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주제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승한은 그만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네 말도 맞다. 하지만 결국에는 점점 더 악해질 것임도 사실이다. 그러니 기회를 주는 것이지.”

“그 기회라는 것이, 저희들 힘으로 악마를 막으라는 겁니까?”

“단순히 그것만은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지.”

“그럼……!”

답답한 마음에 승한은 언성을 높였다.

“그럼… 제가 뭘 해야 합니까?”

승한은 갈피를 잡지 못해 직접 물었다.

신은 이것을 시험이라 말했다. 하지만 도무지 승한은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는 대체 이 일에 무슨 의도를 가지고 행하고 있단 말인가?

“부디 네가 날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다른 소리 하지 마시고, 제가 뭘 해야…….”

재차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물어보던 승한은 말문이 턱 막히자 눈을 부릅떴다. 이상하게도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눈앞이 서서히 흐려졌다. 승한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겨우 손을 뻗은 순간, 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거라.”

**

뿌옇게 변한 시야 사이로 누군가의 얼굴이 나타났다. 흐려져 있던 시야가 돌아오면서 승한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자꾸만 승한의 이름을 외치는 목소리였는데, 그 목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승한아! 승한아!”

“어, 어?”

윤재의 얼굴이 보이자 승한이 얼떨떨해하며 눈을 깜박였다. 승한은 바닥에 쓰러져있었고, 윤재는 계속해서 승한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넌 또 왜 쓰러지냐?”

“……형, 저 얼마나 쓰러져 있었어요?”

승한은 바로 몸을 일으킬 생각도 못하고 물었다. 바닥에 등을 붙이고 고개를 살짝 올려 윤재를 바라보는 승한은 살짝 넋이 나간 듯이 보였다.

“너 왜 그러냐? 혹시 아직 회복이 덜 된 건…….”

“얼마나 쓰러져 있었어요?”

무미건조한 물음에 윤재가 얼떨떨해하며 대답했다.

“한… 두 시간 정도?”

“두 시간…….”

에덴에 있던 시간과 거의 비슷했다. 아무래도 다른 때와는 달리 에덴에서의 시간과 이곳의 시간은 동일하게 흘러가는 모양이었다.

‘진짜 비슷하긴 비슷하군.’

생긴 모습뿐만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까지 비슷하다니. 아예 에덴을 통째로 복사해서 가지고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승한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면서 생각했다.

‘대체 그 말의 뜻은 뭐지?’

자신과 나눈 대화를 기억하라고 했던가? 분명 마지막에 했던 말은 그것일 것이다. 기껏 자신을 에덴까지 불러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것이라니.

아니, 그 한 마디 뿐은 아니었다. 승한은 덕분에 악마를 비롯한 신들과 지금까지의 역사, 그리고 악마들이 자신들의 세상을 공격하는 내막을 알게 되었다. 지금껏 몰라서 답답해하던 것을 알게 되기는 했다.

‘알게만 되었다는 게 문제지.’

승한은 모든 일의 전말을 알게 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사탄에 관련된 이야기를 알게 되고, 자신이 어떻게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막상 모든 것을 알게 되니, 도무지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신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이 일을 벌였다고 하니 더더욱 절망적이었다.

‘대체 뭘 어쩌란 거야.’

승한은 노아가 아니었다. 아니, 그전에 지금 승한의 세상을 덮친 재앙은 홍수 따위가 아니었다. 차라리 홍수라면 다행이었다. 그 옛날의 노아처럼 힘겹게 방주를 만들 필요도 없이, 첨단 과학기술이 도입된 거대한 항공모함도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승한에게는 악마를 막을만한 힘이 없었다. 그가 가진 힘은 이미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었지만, 신과 악마를 넘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승한은 이제 겨우 하급 악마 하나를 쓰러뜨릴 정도밖에 되지 못했다.

승한은 신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고 되짚었다. 그와 나눈 한 마디 한 마디를 잊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가 했던 말에서 어떤 심오한 의미가 있는지를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승한은 그의 의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답답함만 더욱 가증되었다.

“이거 몇 개게?”

윤재는 승한의 눈앞에 손가락 세 개를 펼쳐보이며 물었다.

“세 개요.”

“다행히 눈은 멀쩡한 것 같고…….”

이번엔 또 뭘 하려는 건지 윤재가 승한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승한은 그 손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저 괜찮아요.”

“그, 그래?”

승한은 윤재에게 에덴의 이야기를 해 줄까 하다가 말았다.

드래곤과 아롤, 그리고 신이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던 것은 어떠한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승한은 신이 아니었고, 굳이 그들의 약속을 지킬 필요는 없었지만 덥석 말해버리기에는 꺼림직했다.

승한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벌써 두 시간이나 시간을 허비했다. 승한은 처음 능력을 올렸을 때 이곳에서의 시간은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헌데, 생각 외로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렸다.

‘바쁘겠군.’

슬슬 아침도 지나가고 있었다. 윤재의 말대로라면 타국에서는 아직까지 검은 인영들이 남아있다고 했으니, 그곳을 도와야 할 것이다.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들을 돕는 게 백 배는 나은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능력이…….’

승한은 새로 각성한 능력을 떠올렸다. 에덴에서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터라 잊고 있었는데, 어쨌거나 능력의 효과는 승한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강신]이 10레벨이 되어 각성한 능력, [강림].

그것의 효과를 확인한 승한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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