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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164화 (16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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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그렇게 부담 주지 않아도 됩니다만.”

이미 알고 있었다.

애초에 헌터라는 이들은 신들의 선택을 받은 존재들이었다. 신들의 능력을 얻은 순간부터 그들은 싸워야 할 의무를 가진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모르는 이들은 싸우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승한은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모 아니면 도, 싸우지 않으면 언젠가 세상이 망한다는 것쯤은 피부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승한은 자신의 어깨에 세상이 달려있다느니, 자신이 세상을 구해야 한다느니 하는 소리는 부담이었다. 승한은 스스로를 아직까지 영웅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간단하게 말해서, 악마든 괴물이든 다 죽이면 되는 거다.”

“그렇게 말해 주니 한결 어깨가 가볍네요.”

늘 하던 일이었다. 악마는 한 번밖에 죽이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 번 죽였으면 두 번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같은 수준의 괴물이 나타났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네가 여기 오게 된 이유는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이런 일이 처음입니까?”

“내가 알기로 에덴에 인간이 들어온 사례는 없어. 물론 내가 에덴의 모든 걸 알지는 못하지. 내가 신이 된지는 이제 고작 수백 년밖에 되지 않은 일이니까. 반면 에덴의 역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길고.”

-아주 없었던 일은 아니지.

아롤과 승한의 이야기 사이에 드래곤이 끼어들었다. 승한과 아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멀고 먼 옛날, 노아라라는 인간이 에덴의 땅을 밟았던 적이 있다고 하니까.

“노아?”

-나도 들은 이야기일 뿐이다. 너처럼 그를 직접 본 것도 아니고. 단지 신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다.

익숙한 이름에 승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그가 신이 되었다면 단지 떠도는 이야기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즉, 노아는 신이 되지는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나처럼 에덴의 땅을 밟기는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승한은 어쩌면 노아가 자신과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역사에 기록된 노아의 이야기에 어떤 숨겨진 비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 자세히 아는 게 있나?”

-자세히는 모른다. 알고 있는 신은 아마 몇 없을 것이다.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조차도 말이지.

“그게 뭐야, 헛소문이야?”

-말하지 않았나? 아는 게 많지 않다고. 오히려 아는 건 네가 더 많을 것이다. 너희들의 세상에 살았던 인간이었으니 말이야.

노아가 언제적의 사람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어쩌면 드래곤이 신이 되기 이전의 존재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신이 되지는 않았지만, 방주를 만들어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막아낸 존재였다. 영웅이라고 불리기보다는 구원자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노아라.”

“노아의 이름은 나도 알지. 그런데 그가 에덴의 땅을 밟았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군.”

아롤은 승한과 같은 세상의 존재였다. 지금은 신이 되어 에덴에 속해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그라면 성경에 적혀있는 노아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승한은 노아가 실존하는 인물이었다는 것과, 그가 에덴을 밟았지만 신이 되지는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죽기라도 한 걸까?

아니, 그보다는 그는 어떻게 에덴에 올 수 있었던 걸까? 에덴에서 그는 무엇을 한 것일까?

머릿속이 다시금 복잡해졌다. 승한은 머리를 흔들었다.

“혹시 날 좀 태워줄 수 있나?”

-나에게 하는 말인가?

“그래.”

-왜지?“

“에덴을 한 바퀴 둘러보고 싶어서. 일부라도 말이야.”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승한은 이대로 가만히 있기보다는 에덴을 둘러보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이곳으로 오게 된 데에는 필시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못 들어줄 것도 없지.

드래곤은 승한에게 꽤나 호의적이었다. 다행히 그는 승한의 부탁을 흔쾌히 승낙했다. 승한은 폴짝 뛰어 고개를 아래로 내린 드래곤의 머리에 올라탔다. 아롤은 그런 승한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둘러보고 와라.”

“아롤님은 같이 안 가십니까?”

“내가 네 일행이냐? 난 여기 현지인이야. 널 따라서 경치 구경이나 할 이유가 뭐 있어?”

“그래도…….”

“네가 이곳에서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건 네 일이다. 거기에 내가 도와줄 건 없어.”

승한은 아롤과 헤어져야 한다고 하니 가슴 한쪽이 허전해졌다. 은연중 그에게 의존하고 있던 것이었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사람을 만났다. 그것도 자신과 같은 세계에 몸을 담았던 신이었다. 그는 붉은 천사나 제우스와 같은 신들과는 달리, 승한에게 보다 호의적이었고 인간적이었다. 그것은 아마 그가 신이 된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영영 헤어지는 사람같이 말 할래? 이상한 놈이네. 어차피 난 네가 어디에 있든, 뭘 하든 알 수 있어.”

“……아!”

성검 듀란달. 아롤의 검을 가지고 있는 이상 아롤은 승한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아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승한이 있는 곳으로 올 수도 있었다.

“또 보자고.”

“알겠습니다.”

-이야기는 다 끝났나?

드래곤은 다시금 승한과 아롤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아롤과 승한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쿠구구구구-.

펄럭-.

드래곤의 몸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산과 같은 덩치가 움직이자 그 주위로 거대한 바람이 불었다. 아롤은 눈하나 깜박하지 않고 드래곤이 떠오르는 모습을 아래에서 지켜보았다.

드래곤이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수백여 미터를 날아오르자, 승한은 그 아래로 보이는 에덴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아롤의 모습이 점점 작아졌고, 이내 눈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멀어지며 사라졌다.

‘빠르다!’

한 번 날아오른 드래곤은 순식간에 높아져 하늘 위에서 에덴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승한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이렇게 빠르게 날고 있는데도 말이다.

‘넓다.’

지구는 둥글다. 어느 행성이든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높아 날아오른 드래곤을 통해 본 에덴은 굴곡이 전혀 없었다. 완전한 평지였다.

어쩌면 그것은 이곳 에덴이 너무나도 거대해서 굴곡을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면 애초에 행성이라는 개념을 넘어 완전한 평지로 되어있는 땅이거나.

아래로 보이는 에덴의 땅으로는 몇몇 신기한 존재들이 보였다. 전설상의 동물들과 생전 처음 보는 거인과 같은 존재들, 그리고 작은 점처럼 보이는 인간 모습의 신들까지. 승한은 그들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많긴 많군.’

저들 모두가 신이라니.

새삼 신기해졌다. 신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신이라는 존재가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었다.

-신기한가?

드래곤의 물음에 승한이 화들짝 답했다.

“그, 그래.”

-그래서, 뭔가 알겠나? 날 통해 에덴을 보고자 한 건,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니었나?

“……큰 의미는 없어. 그냥 둘러보고 싶었던 것뿐이야. 보다보면 무언가 알게 되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알게 된 건?

“아직까지는 잘…….”

드문드문 보이는 신들을 제외하면 특별한 게 보이지는 않았다. 평화로운 들판과 숲, 그것이 에덴의 전부였다. 다른 게 있다면 꽃과 나무들이 승한의 세상의 것과는 다르다는 정도였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김이 샐 정도였다. 이래서는 승한이 사는 세상과 딱히 다를 게 없었다.

‘잠깐, 다를 게 없다고?’

승한은 혹시나 싶어 물었다.

“더 높게 올라갈 수 있나?”

-얼마든지.

드래곤은 더더욱 높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 미터를 계속해서 올라갔다. 신기하게도 아무리 높게 올라가도 땅 위와는 달라지는 게 없었다. 승한의 세상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래, 분명 다르다. 다른 게 있었다. 같을 리가 없었다. 이곳은 에덴이었고, 승한이 사는 세상은 에덴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드높은 곳에서 에덴을 내려다 본 승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강과 바다, 들판이 어우러진 푸른 땅.

크기는 분명 달랐다. 승한의 눈에 보이는 에덴의 땅은 단지 작은 일부일 뿐이었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그 아래를 내려다 본 승한은 확신할 수 있었다.

‘닮았어.’

승한이 사는 세상과 에덴은 닮아있었다.

물론 지구라는 행성은 우주의 수많은 행성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곳이 바로 승한이 사는 세상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었다.

우연일까? 우연이라기엔 너무 비슷했다. 많고 많은 행성들 중,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 에덴과 가장 닮아있었다. 승한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하듯, 승한은 에덴의 땅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에덴을 닮은 땅.’

어쩌면 승한의 세상이 만들어진 모티브가 에덴이 아니었을까? 이 넓은 에덴의 땅을 작고 작게 만든 세상이 바로 승한의 세상이 아닐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승한의 세상을 만든 신은, 에덴의 신과 같은 것이 확실했다. 신은 에덴에서 인간을 쫒아내면서도 인간을 위해 에덴을 닮은 땅을 만들어낸 것이다.

‘대체 왜…….’

굳이 에덴에서 인간을 쫒아내면서 에덴과 닮은 땅을 인간에게 준 이유가 뭘까? 승한은 신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러지? 무언가 알 것 같나?

드래곤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에덴을 내려다보고 있는 승한에게 물었다. 그는 하늘을 날 때면 언제나 내려다보던 땅이었지만, 그것을 처음 보는 승한에게는 무언가 감회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드래곤의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깊은 감상에라도 빠져든 것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무언가 알아낸 게…….

높이 날아오르던 드래곤은 이상한 낌새에 펄럭이던 날개를 멈췄다.

-……어디로 갔지?

어느 순간, 드래곤의 머리 위에 있던 승한이 사라지고 없었다.

**

승한은 아직까지 정신이 없었다. 눈앞에는 에덴의 땅과 지구가 겹쳐져 보였다. 혼이 쏙 빠진 것처럼 그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승한의 눈앞에는 아직까지 에덴의 땅이 보여져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의문이 맴돌고 있었다. 대체 신은 왜 자신들의 세상을 에덴과 닮게 만들었을까, 하는.

“어?”

그러다 문득 승한은 눈앞에 있는 땅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분명 드래곤이 날아다니고 있다면 조금씩이라도 땅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야 할 텐데 말이다.

“뭐, 뭐야?”

발아래를 내려다 본 승한은 깜짝 놀랐다. 지금껏 에덴의 땅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정신이 팔려 알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어느새 자신이 밟고 있던 드래곤이 사라지고 없었다.

승한은 능력을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귀신]을 이용해 허공을 밟는다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넋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승한은 허공에 떠 있었다. 하늘 높이 말이다. 아무것도 밟지 않고, 능력도 사용하지 않고 있었는데 저절로 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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