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62화 (16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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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착각?”

-넌 나만을 만난 게 아니다. 이곳에 있는 다른 신들 모두를 만나게 된 거지.

신들?

승한은 주위를 둘러봤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다른 존재들을 보는 승한의 눈동자가 점점 확대되었다.

설마 저들이 모두 신이란 말인가? 단순히 전설상에 나오는 동물들이 아니라?

-이곳은 신들의 세상 에덴이다. 인간이여, 너는 어찌해서 신이 되지 못한 몸으로 이곳에 발을 담근 것이냐?

신들의 세상.

승한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죄를 지은 태초의 인간이 추방되었다는 이곳이, 신들의 세상이 되어있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이곳은 인간의 땅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신들의 세상이라고?’

신들이 발을 담고 사는 세상에 자신이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에 놀랍고 설레기보다는, 자신이 왜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곳에 사는 존재들이 모두 신이라는 말인가?”

-그래. 나를 비롯해 신이 된 존재들은 필연적으로 이곳에 모여든다. 물론 자신의 의지대로 에덴 밖으로 나간 신들도 있지만 말이지.

그리스의 열두 신들. 그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에덴이 아닌, 지국의 거대한 고산인 [올림포스]에 발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의 말대로라면 그들 역시 처음에는 이곳에 발을 담았을 것이다. 어떤 존재든 신이 되었다면 이곳을 거쳐갈 수밖에 없다니 말이다.

“여기는 얼마나 넓지? 신은 얼마나 많고?”

-무의미한 질문이다. 그걸 알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수억 개의 차원에서, 수십억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신이 된 존재가 얼마나 많을 것 같나? 그리고 그 수많은 신들이 발담을 수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을 것 같나?

수억 개의 차원과 수십억 년의 시간. 그 많은 세상을 만들어낸 신과, 그 많은 시간 동안 탄생한 신들의 수는 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이 살아가는 이곳 에덴은 감히 넓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다는 소리였다.

“……결국 여길 다 뒤져보는 건 불가능하다는 소리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거다. 이곳에서 까마득히 오래 살았지만, 아직까지 끝을 본 적이 없으니.

윤재의 레드 드래곤은 하루에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을 정도로 빨랐다. 더군다나 눈앞에 있는 레드 드래곤은 그보다 훨씬 거대했다. 일부 힘을 빌려 소환한 레드 드래곤과는 달리, 지금 승한의 눈앞에 있는 드래곤은 훨씬 더 거대했다. 아마 윤재의 힘을 빌려 소환한 레드 드래곤보다 몇 배는 빠를 것이다.

-너는 누구를 찾고 있는 것이냐?

“날 여기로 부른 존재.”

-누가 널 여기로 불렀지?

“그걸 모르니 문제지.”

-어렵군. 이곳에 있는 신은 한둘이 아니다. 그 많은 신들 중 누가 너를 불렀는지를 어떻게 찾을 셈이지?

그 말 대로였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신들만 하더라도 세 자릿수는 되어보였다. 레드 드래곤의 말대로라면 가도 가도 끝이 없을 만큼 넓다고 하니, 이 중 승한의 신이 누구인지 찾아보는 건 불가능했다.

‘어라? 잠깐…….’

문득 위화감을 느낀 승한은 조금 더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왜 사람처럼 생긴 신은 없지?”

-태초의 신은 사람을 자신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신일 뿐, 모든 신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신들은 나와 같이 인간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

“애초에 넌 인간이 아니지 않았나?”

-고위 신들은 인간이 아니었어도 인간의 모습을 갖출 능력이 있다.

“왜 하필 인간이지?”

-그 모습이 가장 신에 가까운 모습이기 때문이지.

“……이해가 안 되는군. 이미 신이라면서, 신에 가까운 모습을 추구한다? 게다가 네 말대로라면 고위 신이 아닌 다른 신들은 신의 모습을 갖추지도 못한다는 것 아닌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너희가 오해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신은 완벽하지 않아. 신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나누는 기준은 전지전능(全知全能)이 아닌, 육신의 영생(永生)이니 말이야.

흔히 사람들은 신(神)이라는 존재가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지혜로우며,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로 그들을 묘사한다.

하지만 드래곤의 말대로라면 신의 기준은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것이었다.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 바로 신이 될 자격을 얻는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신이 됨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잠깐, 그럼 인간이 신이 되면? 고위 신은 인간의 모습을 갖출 능력이 있다고 했는데… 인간도 영원히 살 수만 있다면 누구나 고위 신이 되는 건가?”

-그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인간은 애초에 신이 되기가 어려운 존재들이니까.

“왜지?”

“인간이 진정한 의미에서 신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니까. 신이 되었다 한들, 인간의 모습을 갖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영생의 육신을 가지지 못한 존재가 영생을 손에 넣어 신이 되기 위해서는 그럴만한 자격을 갖추어야만하지.

“그 자격이라는 것이 그럼…….

-고위 신과 같은 육신과 힘. 그리고 그런 자격. 그것이 갖추어졌을 때, 인간은 영생을 얻고 신이 될 수 있다. 신이 된 인간이 극히 드문 이유도 이 때문이지. 하지만 신이 될 수만 있다면, 그 존재는 신들 중에서도 하나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고위 신이 된다.

승한은 문득 아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말은 즉, 이미 아롤은 신이 되기 이전부터 어지간한 신보다 더 뛰어난 힘을 갖추고 있었다는 뜻이 아닌가?

‘하긴, 이미 신이 되기 전부터 악마를 잡았다고 했으니…….’

그가 어떻게 악마를 쓰러뜨릴 수 있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아롤은 신들 중에서도 세상을 창조할 수 있을 정도의 존재들과 어깨를 나한히 하고 있었다. 그는 드래곤이 말한 그 어렵다는 인간의 모습으로 신이 된 존재였다.

“그럼 이 에덴의 주인은 누구지? 모든 세상에는 그 세상을 만든 신이 있는 것 아닌가?”

신들이 사는 땅. 누구의 땅인지는 몰라도 이곳의 주인은 결코 보통 신은 아닐 것이다. 승한은 어쩌면 자신을 이곳으로 부른 게 바로 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꽤나 먼 옛날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겠군.

“옛날이야기?

-세상이 수억 개로 나누어지고 태초에 하나의 신이 존재했을 때. 인간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선악과의 이야기였다. 승한은 ‘하나의 신’이라는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애초에 신은 하나였나?”

-먼 옛날, 세상은 하나였다. 바로 이곳, 신들이 사는 에덴이라는 곳이었지. 어찌 보면 우리를 신이라 말하는 것도 우습군. 세상이 수억 개로 나누어지기 전, 이곳 에덴의 인간과 생명, 심지어 풀 한포기조차도 영생을 가진 존재들이었으니.

선악과를 먹음으로서 죄악이 시작되었고, 모든 생명에는 시작과 함께 끝이 생겨났다. 그것이 바로 에덴의 비화였다.

-영생이 사라지고 죽음이 탄생하자 두려움이 생겨났다. 아니, 죄악의 시작과 함께 부정적인 감정들은 이미 뿌리를 내린 상태였다. 절대적인 선(善)으로 가득하던 세상에 악(惡)이 탄생했다.

드래곤은 승한에게 이 세상의 시작을 알려주었다. 그는 붉은 천사나 아롤과는 달랐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그는 승한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선과 악이 나누어지자, 신이라는 존재에 이어 태초의 악마가 탄생했다. 하나의 세상에서 새로이 영생을 허락받은 존재는 신이 되었고, 그렇게 신이 된 존재가 다시 새로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진 신과 생명은 또 다시 악마를 만들었지.

“거미줄 같군.”

-그래. 이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또 다시 만들어진 세상에서 다시 신이 생겨났고, 악마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존재는 또 다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었지. 자신의 세상에 욕심이 없는 존재는 에덴으로 돌아왔다.

길고 긴 이야기였다. 먼 옛날, 세상의 시작과 함께 탄생한 신과 악마의 이야기. 승한은 드래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럼… 악마는? 악마는 어디에 있지?”

드래곤의 말대로라면 신과 마찬가지로 악마의 존재들 역시 수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신들이 머무는 땅인 에덴과는 달리, 악마들이 머무는 땅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지 않았다.

-악마들의 땅에 대해서는 나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듣기로는 에덴의 반대편, 그들의 땅이 있다고는 하더군.

“에덴의 반대편에? 거기가 어딘데?”

-그것까지는 나 역시 모른다. 알고 있는 신이 있는지조차 모르겠군. 에덴은 차원과는 격리된 태초의 땅, 수많은 세상과는 격리되어 있는 땅이다. 이곳의 위치조차 설명할 수 없는데, 악마들의 땅이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신이 자기가 서 있는 땅의 위치도 모른다는 건가?”

-말하지 않았나? 신이라고 해서 전지전능하지는 않다고. 피조물보다 지혜롭고,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신은 단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겠군.

태초에 에덴의 땅을 만들어낸 존재. 그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진정으로 영생과 더불어 전지전능의 힘을 가진 존재였다.

“그럼 사탄은? 혹시 너도 사탄이라는 악마에 대해 알고 있나?”

승한은 드래곤이 말한 최초의 악마가 바로 사탄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드래곤의 이야기는 성경과 닮아있었는데, 성경에 나온 최초의 악마가 바로 사탄이었다.

-네 생각은 알겠다. 하지만 사탄이 최초의 악마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왜지?”

-단순한 이야기다. 너희들의 세상에 존재하는 신이 에덴의 신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에덴의 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너희들의 신이 에덴의 신이라면, 그가 만들어낸 세상의 어두운 부분인 최초의 악마가 그곳에 다시 나타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야.

결국 가능성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신들이 승한의 세상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에덴의 신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것은 너희들의 신 역시 마찬가지였지. 우리들 신들은, 너희들의 신이 에덴의 신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악마들 역시 마찬가지지.

“그래서 악마들이 우리를 노리는 건가? 어떻게든 그 악마를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

-그래. 너희들의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악마들은 알고 있다. 에덴의 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들의 사이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악마가 개입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악마들이 직접 나서지 않는 건, 자신들이 움직임으로서 에덴의 신이 다시 움직이는 걸 경계하기 때문이다.

“이미 악마는 개입했다. 너도 알 텐데?”

-그 존재는 예외다. 녀석은 약속을 어기지 않았어. 인간들의 부정적인 감정이 커지고, 죽은자들을 이용해 껍데기에 영혼을 부여했다. 그 덕분에 너희들의 세상에 육신과 영혼을 강림시킬 수 있었던 것이지.

“그런 건 용납이 되나?”

-말했다시피 신이든 악마든 전능하지는 않다. 절대적인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들 역시 에덴을 비롯한 세상의 규칙에 얽매여있지. 그 약속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라면, 직접적으로 힘을 쓰는 것 역시 가능하다.

악마가 승한의 세상에 직접 힘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인 모양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구태여 번거롭게 죽은자들을 흡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강림했으면 될 일이었다. 껍데기를 소환하고, 그 뒤에 죽은자들을 제물로 완전히 강림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그 약속이라는 제약이 있기 때문이었던 모양이었다.

“그 약속이란 것만 지키면, 뭐든 상관없다는 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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