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46화 (146/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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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반악마라는 악마에 가까운 존재들 중에서도 특별했다. 시간이 수백 년 만 더 주어졌다면 진짜 악마가 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거 어쩌냐? 너 곧 죽게 생겼는데.”

“아직 입은 잘 살아 있군. 그런데 몸뚱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지만 승한의 몸에는 여기저기 상처들로 가득한 상태였다. 반악마와 싸우면서 그에게서 뿜어진 마기나 주먹에 얻어맞은 충격으로 군데군데 뼈에 금이 가기도 했다.

조금씩이지만 승한이 밀리고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힘에 있어서도 조금씩 밀리지만, 속도에 있어서 밀리다보니 공격을 허용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나마 [올림포스]덕분에 방어력이 뛰어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온 몸의 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입은 어떨지 몰라도 몸은 정직하지. 어때? 네가 언제까지 더 주둥아릴 놀릴 수 있을 것 같나? 오분? 십 분? 킥킥.”

펄럭-.

반악마가 다시금 날개를 펼쳤다. 그는 승한을 향해 달려들며 주먹을 뻗어왔다. 조금씩 힘을 사용하는 법을 깨달은 그는 단숨에 승한의 방패를 부수어버릴 생각이었다.

“이제 죽어 병신아!”

후웅-.

반악마가 주먹을 내지른 순간.

콰앙-!

퍼퍼펑-!

승한이 방패를 옆으로 치우며 마찬가지로 주먹을 휘둘렀다. 둘의 주먹이 부딪히며 황금색의 불똥을 튀었다. 힘과 힘의 대결에서라면 반악마가 이겼을 테지만, 승한의 주먹에는 성화의 불길이 깃들어 있었다.

“크악!”

주먹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기운에 반악마가 뒤로 물러났다. 반악마에게는 조금 뜨거운 정도에 불과했던 성화였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승한의 주먹을 통해 느껴진 성화는 반악마의 주먹을 시커멓게 태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와, 이거 진짜 끝내주네.”

화르르륵-.

승한의 몸이 황금색의 불로 휘감겼다. 따스한 성화의 느낌에 승한이 씩 미소 지었다. 온 몸이 황금색으로 이글거리고, 새하얀 순백의 검신으로 반짝였던 듀란달이 성화를 머금어 황금빛으로 빛났다.

“자, 그럼 이차전 시작하자.”

승한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깃들었다.

**

‘[강신]을 한 번 더 사용해야지.’

아롤이 승한에게 해준 조언이었다.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에 승한은 물었다.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지 않겠냐?’

반악마가 다시 달려들고 있는 게 보였다. 승한은 급히 방패를 들어 막아냈지만 반악마는 큰 손으로 방패의 윗부분을 잡아채더니 그대로 승한을 집어던졌다.

콰앙-!

건물의 벽에 몸이 처박혔다. 아프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반악마와 힘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속이 쓰렸다. 아니, 정확히는 반악마가 가지고 있는 힘을 점점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모 아니면 도지.’

듀란달을 들어 올린 승한이 중얼거렸다.

“젠장. 나도 이제 모르겠다.”

듀란달에 성화를 머금은 승한이 그대로 [백검]을 이용해 검격을 쏘아냈다. 목표는 반악마가 아닌, 그 옆쪽에 있는 검은 인영들을 향해서였다.

하지만 반악마는 승한이 자신을 노리고 공격한 것이라 생각했는지 옆으로 크게 피해내고는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승한은 그대로 공격을 얻어맞을 수만은 없어 다시금 성화의 힘을 크게 끌어냈다.

‘한 번만……!’

한 번만 버티면 된다. 승한은 성화의 힘을 빠르게 뭉쳐 구슬의 형태로 쏘아냈다. 바로 옆에서 달려드는 반악마를 향해 성화의 구슬을 튕겨낸 승한은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콰콰쾅-!

성화의 구슬이 폭발하며 황금빛을 만들었다. 반악마 역시 이번 공격은 꽤나 충격이 있었는지 조금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물론 그나마도 그렇게 큰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지금껏 무식한 육탄전만으로 싸워왔던 반악마는 슬슬 마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그것은 반악마에게 있어서 질긴 생명력의 원천이 되었다.

“……사기군.”

‘뭐 하고 있냐? 구경 났어?’

아롤의 잔소리에 승한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젠 이게 아니면 답이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듀란달을 휘둘러 검은 인영들을 몇 마리 쓰러뜨리자, 승한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타임 포인트에 더해 10만 타임 포인트를 채울 수 있었다.

[100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신’을 사용합니다.]

[‘붉은 천사’의 영혼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능력 - 성화’의 레벨이 일시적으로 1레벨 상승합니다.]

[성화에 대한 친화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승한은 자신의 몸에 또 다른 영혼이 깃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아롤과는 달리 조용하고, 말없이 승한에게 힘을 더해주었다.

‘……이게 진짜 가능하네요.’

‘힘을 빌려올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없지. 네 능력만 충분하다면 말이야.’

승한은 [강신]을 통해 힘을 빌려올 수 있는 한계를 한 명의 신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 이상 신의 힘을 빌려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아롤의 말대로 또 다시 [강신]을 사용해 보니 정말로 붉은 천사의 힘을 빌려와 성화의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더군다나 붉은 천사와 영혼이 하나가 됨으로써 성화에 대한 친화력이 대폭 상승했다.

‘아마 네 한계는 딱 이 정도일 거다. 이 이상은 몸이 못 버티거나, 정신이 못 버티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 말은 즉, 승한의 몸과 정신이 좀 더 강해지면 더 많은 신의 힘을 빌려올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승한은 새삼 조금은 실망했던 [강신]이라는 능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흐흐.”

반악마가 웃고 있었다. 그의 몸에 있던 성화의 자국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을림조차 남지 않은 자신의 몸을 보며 즐거운 모양이었다.

“……좋냐?”

“좋지 않겠나? 이 정도 힘이면, 신과 악마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상대가 없을 것인데.”

승한은 그런 그를 비웃었다. 그가 자신이 있는 것처럼, 승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승한의 몸속에는 또 다른 든든한 신이 들어와 있었다.

‘불태워 버려요.’

붉은악마가 속삭였다. 승한은 반악마를 향해 비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이거 어쩌냐? 너 곧 죽게 생겼는데.”

“아직 입은 잘 살아 있군. 그런데 몸뚱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승한은 그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의 몸속에 다시 한 번 각인된 성화의 힘을 느꼈다. 세상 모든 것을 태울 수 있다는 느낌과 함께, 성화가 자신을 주인으로 받든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이제 죽어 병신아!”

반악마가 승한을 향해 달려든 순간.

승한은 검과 방패를 내리고 주먹을 들었다. 장비를 사용하기보다는 지금 자신의 순수한 육체로 성화의 힘을 어느 정도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고자 함이었다.

콰아앙-!

승한의 자그마한 주먹과 반악마의 주먹이 부딪혔다. 그 순간, 승한의 몸속에 있던 성화의 힘이 폭발했다.

퍼퍼펑-!

“크악!”

반악마가 뜨거운 열기에 밀려 뒤로 물러났다. 이전과는 달리 반악마의 주먹에 있는 그을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붉은 천사의 영혼과 하나가 된 승한의 성화는 단순히 하나의 레벨 차이를 벗어난 상태였다.

“와, 이거 진짜 끝내주네.”

반악마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하지만 승한은 굳이 그의 궁금증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이차전 시작하자.”

쉬익-.

승한의 몸이 사라졌다. 물론 그의 움직임은 반악마에 비해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반악마는 승한이 다가오는 방향을 향해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화르르륵-.

사악-!

황금색의 성화를 머금은 듀란달이 반악마의 주먹을 베었다. 이전에도 승한의 듀란달은 반악마의 몸과 주먹에 상처를 입힐 수 있었지만, 그 때와는 또 다른 상처였다. 훨씬 상처의 깊이가 깊고, 성화의 불길이 거셌다.

“크아아악!”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반악마는 승한을 향해 마기를 뿜어냈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마기가 강해졌다. 그러자 승한의 성화와 반악마의 마기가 허공에서 부딪혔다.

하지만 반악마에게는 안타깝게도 승한의 성화가 더욱 강했다. 힘의 차이는 크게 없을지 몰라도 승한은 힘을 사용하는 능숙함은 승한과 반악마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승한의 성화는 온전하게 승한에게 귀속되어있었고, 반악마는 자신이 가진바 힘을 완전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뜨겁지?”

퍼억-.

승한이 성화를 머금은 방패를 휘둘러 반악마의 얼굴을 후려쳤다. 얼굴에 방패 자국을 닮은 화상을 입으며 반악마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럴 거야. 그런 불이거든.”

콰득-.

그 순간, 승한의 팔을 반악마가 붙잡았다. 온 몸에 성화를 갑옷처럼 두르고 있던 승한이었다. 팔을 잡는 순간 성화의 열기가 느껴졌을 텐데도 반악마는 거리낌 없이 승한의 팔을 잡아 쥐었다.

우드드득-.

“끄아아아악!”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승한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무리 성화로 몸을 두르고, [올림포스]의 힘을 통해 단단해진 몸이라도 반악마의 악력에는 어찌할 바가 없었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고통이 팔 전체에서 느껴졌다.

“큭큭큭. 아픈 건 너도 마찬가지인 모양인데?”

“이런 빌이먹을…….”

사악-.

승한은 자신의 왼 팔을 움켜쥐고 있는 반악마의 오른팔을 검으로 베었다. 반악마의 팔이 반쯤 베어지며 피가 튀었다. 상처 사이로 성화의 불길이 스며들어가 그의 몸속을 뜨겁게 달궜다.

“크읍…….”

“안 놓으면 몸이 통구이가 될 텐데?”

“그 전에 네 팔이 먼저 으스러지겠지.”

우드드드득-.

팔이 부러졌다. 승한은 이를 악물었다. 비명을 지르는 짧은 순간마저도 아까웠다.

피잉, 피피핑-.

반악마의 주위로 성화의 불빛이 떠올랐다. 작은 구슬, 혹은 반딧불이같은 그 작은 구슬들은 반악마의 몸 주위에 수십, 수백 개가 생겨나 그를 포위했다.

“펑.”

콰콰콰콰쾅-!

성화의 구슬이 폭발하며 일대를 뒤덮었다. 승한은 순식간에 눈앞이 황금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는 눈이 부셔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벌인 일이었지만 힘이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었다.

‘이만큼 힘을 쓰고도 별로 힘이 들지 않는 걸 보면… 어지간도하군.’

아롤의 힘을 빌려온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붉은 천사의 영혼을 [강신]을 통해 불러들인 편이 더욱 효과가 좋았다. 하긴, [강신]을 통해 성화의 레벨이 3레벨에서 4레벨로 올라갔을뿐더러 성화에 대한 친화력이 대폭 올라가기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왼 팔을 잡고 있던 반악마의 힘이 풀어졌다. 아무래도 성화의 폭발에 휩쓸린 모양이었다.

‘어떻게 됐지?’

성화의 폭발에 승한은 별 충격이 없었다. 애초에 자신을 겨냥하고 노린 불길도 아니었고, 성화에 대한 친화력으로 조금의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성화가 폭발하며 생긴 불빛까지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퍼억-.

“커……읍.”

승한은 배 한 가운데를 두드리는 둔탁한 충격에 입을 벌렸다. 내장이 터져 나갈 듯한 충격이 온 몸에 짜릿하게 전해졌다. [올림포스]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음에도 이 정도 충격이었다.

일격에 산사태라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주먹이었다. 승한의 몸이 붕 하늘로 날아갔다. 그대로 땅에 처박힐 뻔한 승한은 겨우 중심을 잡고 [귀신]을 이용해 꼴사납게 바닥에 떨어지는 걸 면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승한은 몸을 휘청거리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가슴에서 통증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갈비뼈 하나쯤은 나간 것 같았다.

‘왼 팔에 갈비뼈에… 성한 데가 없군.’

얼마 되지 않는 사이에 부상이 심해졌다. 이대로 싸움을 오래 지속하는 건 무리였다.

‘그 녀석은…….’

승한은 성화의 불길이 걷히고 드러난 반악마의 모습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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