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5 / 0223 ----------------------------------------------
23. 죽은자
승한은 반악마의 몸에 박힌 검을 빼내려 힘을 주었다. 다행히 검은 그리 어렵지 않게 뽑혔다. 상처되었던 부위가 다시금 검이 뽑히며 베어졌다.
부웅-.
그와 동시에 반악마의 주먹이 승한을 향해 날아왔다. 승한은 급히 방패를 들어올렸다. 휘두른 방패와 반악마의 주먹이 부딪혔다.
꽈앙-!
두 힘은 서로 엇비슷했다. 방패에 두른 성화의 힘과 [올림포스]의 힘, 그리고 승한이 지닌 순수한 육체의 힘. 그리고 반악마가 지닌 마기와 근력. 둘의 힘은 쉽게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울 만큼 비슷했다.
“너 정말 인간 맞아?”
반악마의 물음에 승한은 대답 대신 재차 검을 휘둘렀다.
사악-.
피이익-.
반악마의 허리가 길게 베어졌다. 듀란달이 베고 지나간 자리가 쓰라려 반악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건방지게…….”
“싸울 때 아가리 무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사악, 사악-.
촤아아악-!
듀란달이 반악마의 몸에 계속해서 상처를 남겼다. 검을 휘두르는 속도와 날아오는 검격의 궤적은 반악마가 쉽게 반응하지 못할 만큼 복잡했다.
정작 검을 휘두르는 승한 역시 자신이 어떻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평소처럼 무작정 검을 휘두르면 어느새 반악마의 몸에 선명한 검흔이 남겨져 있었다. 승한의 검은 공간을 격하고, 성검 듀란달의 힘을 그 어느 때보다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이렇게…….’
아롤이 승한의 몸속에 들어와 있었다. 그의 영혼과 하나가 된 승한은 그의 검술을 그대로 따라할 수 있었다.
‘뒤로 물러나면서, 찔러.’
슈욱-.
반악마와 거리를 벌리던 승한이 듀란달을 앞으로 빠르게 찔렀다. 분명 듀란달과 반악마의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의 가슴 한 가운데에는 선명한 검흔과 함께 피가 흘렀다.
“……무슨 재주를 부리는 거냐?”
꾸르르르륵-.
다시금 반악마의 몸에 생겨난 상처가 재생되었다. 승한은 계속해서 상처를 입혀도 재생하자 기운이 쭉 빠졌다. 얼마나 베어내야 더 이상 재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쫄지 마. 악마도 아니고, 반악마 주제에 불사신일 리는 없으니까.’
아롤의 말에 승한은 조금 자신감을 찾았다. 적어도 악마에 대해서는 승한보다는 아롤이 훨씬 아는 게 많을 것이다. 다시금 듀란달을 들어올리는 승한을 보며 반악마가 다시금 물었다.
“물었다. 무슨 재주를 부리는 것이냐?”
“……재주로 보이냐? 실력이지.”
“인간이 부리는 검술이라고 보기 어렵다만. 분명 무슨 능력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검술이야. 이 멍청아.”
‘나도 믿기 어렵지만.’
정작 검을 휘두르고 있는 승한도 믿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승한의 몸과 머릿속에 직접 각인되어 있는 [백검]을 비롯한 몇 가지의 검술을 제외하고 승한이 휘두르고 있는 검의 궤적과 기술들은 아롤의 영혼이 직접 알려주고 휘두르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승한은 그렇게 검을 휘두르면서도 스스로 종종 놀라곤 했다. 힘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어떻게 이런 검술이 가능할까 싶을 때가 많았다. 아롤은 단순히 힘만 강한 검사가 아니라, 스스로의 검술에서도 이미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였다.
‘이제 내가 좀 존경스럽나?’
또 다시 이어진 아롤의 목소리. 승한은 그가 조금만 겸손했다면 더 멋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존경스럽기는 했다.
‘더 알려주실 것 없습니까?’
‘뭘 더 알려줘야 하는데?’
‘저 녀석을 한 방에 보내버릴 수 있는 필살기 같은 거요. 있을 것 아닙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있어도 네가 못 써. 내가 네 몸을 직접 사용하면 모를까,’
아무래도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있었다면 아롤이 알려주지 않았을 이유도 없었다. [강신]을 사용한 이후로 승한은 아롤의 기술을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고 있었으니, 그런 기술이 있었으면 아마 진작 반악마를 쓰러뜨렸을 것이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검술도 놀랍군. 대단해. 인간이라고 믿기 어려워. 킥킥. 힘을 얻고 나서 처음 죽일 수 있는 인간이 너라서 다행이군. 그것들이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가둬둔 이유가 있었어.”
“……한이 맺혔나 보군.”
“네가 수백 년일지, 수천 년일지 모를 만큼 무수히 오랜 시간 동안 시커먼 어둠 속에서 잠들어 있어 보면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지독한 일인지. 힘을 얻는 대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힘든 시간이었지. 그러고도 완전한 악마가 되지 못하더군.”
반악마는 날개를 활짝 펼치며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오금이 저릴 만큼의 원한이 깃들이 있었다.
“널 죽이고, 다 죽일 것이다. 내 이 화가 풀릴 때까지, 눈앞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다 죽일 것이다.”
“널 그렇게 만든 것들을 죽이지 그래?”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해서 말이지.”
“겁쟁이군.”
“그건 네가 그들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진짜 악마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아나?”
“몰라. 알 게 뭐야.”
“모르면서 그런 소리를 지껄이지 마라. 그들을 죽일 수 있는 존재는 완전한 신뿐이야.”
반악마는 악마라는 존재를 증오하고 있었다. 평범한 마족이었던 그를 악마에 가까운 존재로 만든 이들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반악마는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무수히 오랜 세월동안 그는 힘을 얻으며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그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화풀이 상대로 인간을 택한 건가?”
“화풀이라… 맞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난 지금 미쳐버릴 것 같거든. 그래도 너 같은 녀석이 상대라서 다행이다. 너무 쉽게 죽어버리면 화풀이 거리도 안 되거든.”
‘막아!’
쉬익-.
쾅-!
승한은 방패 위를 두드린 충격에 멀리 날아갔다. 적잖은 충격이 휘청거린 승한은 순간적으로 반악마의 움직임을 놓쳤다는 사실에 놀랐다.
순간적으로 방패를 들어올릴 수 있었던 이유도 아롤의 외침 덕분이었다. 승한은 반악마의 움직임에 반응한 게 아니라 아롤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었다.
‘집중 안 하냐?’
‘……죄송합니다.’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반악마는 빨랐다. 적어도 움직임은 승한보다 반악마가 월등히 빨랐다. 승한은 가능하면 [귀신]의 레벨도 올려둘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집중해야 한다. 한 번 움직임을 놓친 반악마는 하늘을 날아 승한의 위를 부유하고 있었다. 원을 그리며 날아다니던 반악마가 고개를 살짝 숙여 승한을 향해 두 개의 뿔을 들이받아왔다.
콰앙-!
승한은 방패를 들어 두 개의 뿔을 막아냈다. 단순한 주먹과는 달리 두 개의 뿔은 훨씬 더 단단하고, 위력이 있었다.
쩌저적-.
딛고 서 있는 발아래 땅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바닥이 벗겨졌다. 승한은 듀란달을 높게 들어 아래로 내려쳤다.
꽈앙-!
어깨를 내려치자 마지 강철을 후려친 것 같은 충격이 손아귀를 타고 전해졌다. 아니, 강철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단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3레벨의 [성검]과 승한의 능력이라면 강철이라 하더라도 베어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반악마의 몸은 강철보다도 단단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베어졌던 몸뚱이가 베어지지 않았다.
‘뭐야 이거?’
그렇게 당황한 잠깐 사이.
우드드득-.
“커억!”
반악마의 주먹이 승한의 배를 강타했다. 승한의 얼굴보다도 큰 주먹이, 배 한가운데를 강타하자 승한은 뱃속의 내장이 터져나가는 고통을 받았다.
쾅-!
승한의 몸이 그대로 위로 떠올랐다. 반악마의 몸이 사라진 순간, 승한은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으며 방패를 들고 몸을 웅크렸다.
쾅, 쾅쾅,-, 쿵-!
사방에서 반악마가 승한의 방패 위와 몸 위를 두드렸다. [올림포스]로 몸을 보호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조금 몸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을 뿐, 반악마의 주먹과 마기로부터 몸을 완전히 보호할 수는 없었다.
‘정신 안 차릴래? 집중 하라고!’
아롤의 잔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하지만 집중을 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몸 위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머릿속을 계속해서 흔들어 놓았다.
‘뒤에서 온다. 찔러!’
그 순간, 웅크리고 있던 승한이 듀란달을 뒤로 찔렀다.
푸욱-.
반악마가 주먹을 뻗어오던 힘과 승한의 찌르는 힘이 만나 주먹에 검이 박혀들었다. 동시에 승한은 듀란달에 성화의 힘을 불태우며 왼 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퍼억-!
얼굴을 얻어맞은 반악마가 충격을 받고 뒤로 주춤 물러났다. 잠시 둘의 거리가 벌어지고,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승한은 어질어질한 머리와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반악마가 아니네. 거의 악마급에 가까운 녀석인데? 하긴, 그러니 날개를 가지고 있는 거겠지.’
악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징표는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뿔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날개였다.
하지만 이 중 뿔은 꼭 악마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악마와 닮은 힘을 가진 존재들, 마족이나 마물과 같은 악마의 종속들 역시 뿔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었고 그 때문에 악마의 상징이 뿔이 아니게 되어버린지는 오래 되었다. 물론 흔하게 볼 수 있는 만큼 인간들에게는 악마의 상징이 뿔로 알려져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뿔도 그렇고, 날개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반악마가 그만큼 악마에 더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당장은 반악마가 가지고 있는 힘을 온전하게 다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요?’
‘시간 끌면 네가 불리해. 저 녀석, 아까도 지입으로 말했지만 수백 수천년 만에 마족에서 반악마로 변한 탓에 제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어. 방금 전에 듀란달이 먹히지 않았지? 조금씩 자기 힘에 익숙해지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어떻게 하냐고요.’
‘어떻게 하긴.’
아롤은 승한에게 방법을 알려주었다. 승한은 그 말을 듣고 혀를 내둘렀다.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지 않겠냐?’
그러는 사이, 반악마가 다시금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다가온 반악마는 거대한 손을 펼쳐 승한의 방패를 움켜쥐었다.
휘익-.
콰앙-!
방패를 움켜쥔 반악마가 승한을 그대로 멀리 집어던졌다. 건물 벽에 처박힌 승한은 큰 충격은 없었다. 직접 주먹에 얻어맞은 것도 아니고, 단순히 던져진 것뿐이었다.
“……젠장. 나도 이제 모르겠다.”
쉬이이익-!
승한은 듀란달을 무작정 휘둘렀다. [백검]의 검격이 성화를 머금고 반악마를 향해 뻗어갔다.
성화를 머금은 검격은 반악마라고 해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하지 못할 만큼 검격이 빠른 것도 아니었다. 반악마는 승한이 휘두르는 검격을 이리저리 피해내서 다시금 승한을 향해 다가왔다.
티잉-.
콰아아아-!
“크윽.”
승한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반악마는 승한이 쏘아낸 성화의 구슬에 얻어맞았다. 황금색의 성화의 구슬은 제법 위력적이었다.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성화의 구슬에 반악마가 잠시 휘청거렸다.
타들어간 상처가 조금씩 치료되었다. 성화의 힘이 아무리 악마나 마족과 같은 존재들에게 치명적이라 해도, 반악마가 가진 마기와 회복력은 승한이 가진 성화의 힘을 웃돌고 있었다.
“흐흐, 끝내주는데.”
반악마는 자신의 힘에 취해 웃음을 흘렸다. 그는 한낱 마족이었던 자신이 이만한 힘을 가지게 된 것에 희열을 느꼈다. 반악마가 가진 힘은 분명 평범한 마족이 가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좋냐?”
“좋지 않겠나? 이 정도 힘이면, 신과 악마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상대가 없을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