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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142화 (14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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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죽은자

화륵, 화르르륵-.

검은 인영이 하나 둘씩 재가 되었다. 승한의 성화는 점점 더 뜨겁고, 황금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윤재는 이 정도까지 황금색에 가까운 성화를 본 적이 없었다. 레드 드래곤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윤재는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조금 전, 승한이 전음구를 통해 윤재에게 전해온 말 때문이었다.

-공격하지 마세요, 형.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윤재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레드 드래곤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려 승한과 검은 인영들의 싸움을 지켜보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승한에게 불타 죽는 검은 인영들의 마지막은 행복한 미소였다. 처음에는 괴물로 보였던 그들이, 성화에 불타 피부가 재가 되자 마지막 순간에는 사람처럼 변했다. 윤재는 승한이 검은 인영들을 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도 저렇게 성화를 남발하다가는…….’

승한의 성화는 3레벨이었다. 레벨이 높은 만큼 보다 강한 힘을 낼 수도 있었고, 조금 힘을 약하게 사용하면 큰 부담 없이 성화를 사용할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승한의 [불굴의 육체]는 무려 4레벨이었다.

그럼에도 승한이 사용하는 성화는 너무 무리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듀란달에 성화를 두르고 휘두르거나, 주위를 향해 성화의 구슬을 마구 쏘아내기도 했다.

아무리 승한이 [불굴의 육체]를 4레벨까지 올리고, 성화의 축복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무작정 성화를 사용하는 건 무리였다. 벌써 승한은 삼십 분이 넘게 성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또?”

레드 드래곤을 타고 하늘에 떠 있는 윤재는 여기저기서 승한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는 검은 인영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겨우 승한이 다른 검은 인영들을 처리해 가던 참에 또 다시 검은 인영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승한은 꽤 지쳐보였다. 쉬지 않고 성화를 사용해 대니 그럴 만도 했다. 보다 못한 윤재는 그가 걱정되어 막 능력을 사용하려고 했다.

그러던 순간, 윤재는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지금 승한이 잡은 괴물의 수가 몇이더라?’

바닥에 쓰러져 있는 괴물의 수를 세던 윤재는 아차 싶었다.

승한은 단순히 검은 인영들을 상대로 성화를 이용해 자선사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을 정화시키고 하나하나 처리해 나갈 때마다 ‘타임 포인트’라는 수치를 얻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에 6250타임 포인트라는 높은 수치를. 윤재 역시 처음에 능력을 이용해 많은 수의 검은 인영들을 죽여서 알고 있었다. 검은 인영 하나하나가 적지 않은 타임 포인트를 준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순간부터 승한은 다시 검은 인영들을 상대로 성화를 사용하는데 부담이 없어보였다.

“……저 대단한 자식.”

윤재는 검은 인영을 하나하나 성화를 통해 정화시켜가는 승한을 보며 씩 웃었다.

**

화아아악-!

성화의 불길이 파도가 되어 눈앞에 있는 검은 인영들을 덮쳐갔다. 순식간에 다섯 마리의 검은 인영이 성화의 파도에 덮쳐져 타들어가고 쓰러졌다.

[625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6250…….]

또 다시 울리는 타임 포인트 획득 메시지. 이제는 익숙해서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승한은 다시금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에서 다가오는 검은 인영들을 향해 검을 뻗었다.

사방에서 덮쳐오는 검은 인영들이 이제는 좀비처럼 느껴졌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달려들었고, 덩치가 점점 더 커지기까지 했다. 자신의 몸을 어떻게든 한 입 물어뜯어 보겠다고 다가오는 그들이었지만, 그럼에도 가엾게 느껴졌다.

“나도 참 성인군자지.”

머리에는 땀이 흥건하게 흘러나오고 힘이 떨어졌지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자신이 검을 휘두름으로써 검은 인영들이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어느 정도 여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1024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우드드득-.

몸 안의 혈관들이 요동쳤다. 마치 한 단계 위의 생물로 진화하기라도 하듯, 승한의 몸속에 있는 힘들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이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물을 먹었던 솜 같던 몸이었다. 그런데 그 물이 빠져 나가기라도 한 듯, 다시 몸이 가벼워졌다.

“자, 다시 시작해 볼까?”

승한이 아무런 이유 없이 검은 인영들을 상대로 성화를 무작정 사용한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 이런 경우를 생각해 두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검은 인영들의 처지가 가엾다 했어도 무작정 성화를 이용해 그들을 정화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승한씨! 안양 시 내에 있는 괴물들이 승한씨가 있는 방향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정보가 확인되었습니다. 그 쪽 상황은 지금 어떻습니까?

안석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뒤늦은 보고에 승한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빨리도 알려 주는군.’

이미 검은 인영들이 안양 시 곳곳에서 모여들기 시작하고 삼십 분이 넘게 흘렀다. 아무래도 안석환 역시 자신이 맡은 바 구역에 있는 검은 인영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서야 연락을 취한 모양이었다.

승한은 주머니에서 전음구를 꺼내 재빨리 입술 사이에 물었다. 싸우던 중이라 전음구를 손에 쥐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지금 여기 상황은…….”

퍼퍼펑-!

승한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검은 인영들을 향해 성화를 쏘아내며 대답했다.

“썩 할 만합니다.”

입술 사이에 전음구를 물고 있느라 발음이 어눌하긴 했지만 승한의 말은 안석환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다.

-할 만하다고요? 역시 지금도 싸우고 계신 겁니까?

“여긴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다른 곳은 어떻습니까?”

-다른 지역은 대부분 정리가 된 상태입니다. 대부분의 괴물들이 원래 지역을 벗어나 한 곳으로 모여드는 바람에… 저희도 괴물들과 싸우느라 확인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위성을 통해 관측해서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렇군요. 맞습니다. 여기로 계속해서 괴물들이 몰려 오고 있습니다.”

-역시! 그럼 어서 지원을…….

“괜찮습니다. 내버려 두십시오. 그보다 다른 지역이나 지원을 가 주세요. 힘든 곳이 많을 겁니다.”

승한은 아직까지 그리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량공세가 빗발치고는 있지만 성화를 사용하면 어렵지 않게 정화해서 태워버릴 수도 있었다.

‘가능한 타임 포인트를 많이 확보해 둔다.’

승한은 다른 헌터들에게 이 자리에 있는 검은 인영들을 빼앗길 생각이 없었다.

승한의 눈에 검은 인영들 하나하나는 타임 포인트나 다름 없었다. 그들을 처리함으로서 승한은 더 많은 타임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었고, 그를 통해 능력의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 승한에게 6250타임 포인트는 그리 높은 수치가 아니었다. [성검]의 레벨만 하더라도 2레벨로 올리기 위해서는 400만이 넘는 타임 포인트가 필요했고, [올림포스] 역시 200만 타임 포인트가, [성화]는 100만 타임 포인트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타임 포인트를 모으다 보면, 하나라도 능력의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승한의 경험상 10레벨을 달성하고 각성한 능력의 레벨 하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 능력의 레벨 하나 차이가 저 거대한 균열에서 나오게 될 어떤 존재와의 싸움을 판가름할지도 모른다.

‘이 녀석들은 다른 헌터들에게 빼앗길 수는 없지.’

윤재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것은 윤재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이 자리에서 승한이 저 거대한 균열에서 나오는 존재를 어찌 하지 못한다면, 윤재도 승한과 함께 죽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그럼 지원이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까?

“네. 가능하면 다른 곳으로 가 주십시오. 전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승한은 아예 안석환이 다른 말을 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버렸다.

안석환에게 자신의 의견을 정한 승한은 여전히 전음구를 입에 문 채 다른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떠올렸다. 바로 윤재였다.

“형, 가능하면 안석환을 통해서 다른 지역으로 지원을 가 주세요.”

-나까지?

“네. 여긴 저 혼자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아직 저 거대한 균열은 남아 있잖아? 저 안에서 언제, 어떤 녀석이 나올지 모르는데…….

“그 때 힘들다 싶으면 형에게 연락 할게요. 어차피 레드 드래곤을 타고 있으면 몇 분 사이 어디서든 올 수 있잖아요?”

승한의 말은 틀리지 않았아. 어차피 이 자리에서 승한이 모든 검은 인영들을 상대하고 있는 상태에서 윤재가 손 놓고 있다는 건 명백한 인력 낭비였다. 그것도 현존하는 헌터들 중 화력과 괴물들을 상대하는 대량살상 면에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윤재가 말이다.

“제가 그 몇 분 사이에 죽을 정도로 약골은 아니잖아요? 걱정 마요.”

-……알았다. 그럼 꼭 연락해야 한다.

“그럼요.”

하늘에 떠 있던 거대한 드래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윤재는 레드 드래곤을 타고 서울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서울 지역에는 검은 인영들을 다 처리하지 못한 곳이 많이 남아있었다.

“자, 그럼… 니들이 마지막 맞지?”

승한은 주위에 남아있는 검은 인영들을 둘러봤다.

안석환에게 연락이 온 것을 보면 이 자리에 있는 검은 인영들이 바로 안양시에 남아있는 검은 인영들의 전부인 모양이었다. 워낙 멀리서부터 모여온 터라 지금까지 죽인 수도 만만치 않았음에도 그 수가 엄청났다.

시내 한복판에 서 있는 승한으로서는 그 수가 몇이나 될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땅속과 땅 위, 허공, 그리고 건물의 벽까지. 곳곳에 붙어 있는 검은 인영들은 마치 하나의 군대를 보는 것 같았다.

“……천 마리는 되려나?”

그만큼 많다는 의미에서 농으로 중얼거렸지만 어쩌면 정말 천 마리는 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클라이막스 시작인가?”

화르르륵-.

성화의 불길이 사방에서 솟아올랐다. 승한의 주변에 가장 가까이 있던 검은 인영들은 순식간에 타버려 바닥에 떨어졌다.

승한의 몸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검과 방패, 심지어 몸 전체에 이르기까지. 3레벨의 성화와 5레벨에 달한 [불굴의 육체], 그리고 성화의 축복 덕분에 이렇게까지 성화를 다루는 게 가능한 것이었다.

웅, 우웅-.

성화의 구슬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반딧불이처럼 작고 작은 황금색 구슬이 날아가 검은 인영들 사이사이로 퍼져나갔다.

검은 인영들은 성화에 이끌려 그 구슬들을 향해 모여들었다. 적게는 몇 마리, 많게는 수십 마리씩 그 구슬을 중심으로 모여든 검은 인영들을 보며 승한이 작게 중얼거렸다.

“퍼엉.”

콰콰콰콰쾅-!

사방에서 황금색의 폭발이 일어났다. 성화의 힘이 뭉쳐져 만들어진 황금색의 구슬이 폭발하며 검은 인영들의 몸을 불태웠다. 검은 인영들의 수에 비해서 힘이 부족해서 전부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 불길은 분명 큰 피해를 입혔다.

“후우-. 빡센거.”

가악, 아아아아아-.

승한은 몸에 불을 붙이고 절규하고 있는 검은 인영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한 번의 공격으로 꽤나 많은 힘을 소모했다. 예전 같았으면 성화의 구슬 하나를 만드는 것만 해도 꽤나 힘이 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성화가 3레벨에 도달했고, 성화의 축복과 함께 [불굴의 육체]를 5레벨까지 올릴 수 있기에 이 정도에 그칠 수 있었다.

‘남은 게 절반.’

승한은 남아있는 검은 인영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많이도 남았군.”

대부분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들인 힘에 비해서 많이 죽은 편은 아니었다.

구구구구구-.

파즈즉-.

그 순간, 다시금 검은 인영들을 공격하려던 승한이 움직임을 멈췄다.

움직임을 멈춘 건 승한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주위에 있는 검은 인영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왕을 경배하는 하인들처럼 그들은 고개를 조아렸다.

“……드디어 납시는가.”

승한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 보았다.

지금껏 미동도 하지 않던 거대한 균열이, 조금씩 기류를 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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