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36화 (136/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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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역동

콰아앙-!

으득, 으드드득-.

위에서 내려찍은 발이 마지막 남아있던 마족의 머리를 부서뜨리는 것으로 창고에 들어오려던 괴물들은 모두 정리되었다. 차재훈은 괴물들을 모두 빠르게 쓰러뜨리고는 몸을 돌려 승아와 승한의 어머니를 살폈다.

“끝났습니다.”

괴물들의 수는 그리 적지 않았다. 근방에 있던 괴물들이 다 몰려온 것인지 족히 오십 마리는 되었다. 하지만 마족들 외에도 거미들이나 리자드맨, 스컬레톤과 같은 괴물들이 섞여있었는데, 그런 괴물들은 차재훈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마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재훈은 7스테이지를 통과한 헌터였다. 더군다나 애초부터 그는 안양시 내에서도 승한과 안석환 다음가는 실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뛰어난 헌터였다. 윤재와 비교해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승한이 그에게 부탁한 것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연락을 할 수는 없더라도 ‘전음구’를 통해 연락을 할 수는 있으니 말이다.

“가, 감사합니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네, 없어요. 저희보다는 나르샤가…….”

승아는 마족에게 가슴이 꿰뚫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르샤를 바라봤다.

그녀의 가슴에서는 아직까지도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숨도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헐떡거렸는데, 겉으로 보이는 입장에서는 가슴 한 가운데가 뚫리고 이렇게 살아있는 게 신기해 보일 정도였다.

“……승한씨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가족 분들과 함께 마족 여성이 함께 있을 테니, 그분도 같이 지켜 달라고요. 그런데 막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러분이 계시지 않더군요.”

“승한이에게 연락이 왔다고요?”

“네. 전화로는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태라 저희 헌터들이 사용하는 전음구라는 물건으로 연락을 해 오셨더라고요. 저야 승한씨에게 신세 진 것도 있고, 지켜야 할 가족도 없고 해서 여러분을 챙기기 위해 왔습니다.”

차재훈은 그렇게 말하고는 나르샤를 바라봤다. 그녀는 가슴의 상처를 손으로 누르며 간헐적으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무래도 늦은 것 같지만요.”

“승한이는 어디 있나요?”

“조금 멀리 갔던 모양입니다. 소식을 듣고 지금 바로 오고 있는 중이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승아와 어머니는 그래도 승한의 부탁으로 다른 헌터가 자신들을 지키러 왔다는 것에 안도했다. 자신들의 안전과 더불어 늦게 도착한다 하더라도 승한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일요일도 아닌데 갑작스럽게 괴물들이 나타나다니…….”

“사실 저희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집니다. 괴물들이 나타난 시기도 그렇고, 지금까지 나타났던 괴물들이 한꺼번에 나타난 것도 그렇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현상입니다.”

헌터들 역시 토요일에 괴물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정부에서는 군인들을 항시 대비시켜놓고 있긴 했지만 그들만으로는 피해 없이 괴물들을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대피소가 아닌 원래 살던 도시에 머물러 있었다. 지켜야 할 범위가 늘어나다 보니 군인들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고, 그것은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단 정부에서는 사람들을 대피소로 모으려 하는 모양입니다. 군인들이 나서서 시민들을 대피소로 대피시킬 모양이고요.”

“그, 그럼 이제 안전해 지는 건가요?”

“아뇨. 군인들만으로 괴물들을 막는 건 무리입니다.”

거미들까지는 몰라도 마족들까지 군인들이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들의 움직임은 보통 사람이 눈으로 쫒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검은 거미들처럼 덩치가 아주 크지도 않았다.

어지간한 저격수도 총기류로 그들을 맞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뿔이 세 개나 네 개씩 있는 마족들은 미사일이라도 쏘지 않는 이상 잡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그들을 잡을 수 있는 건 헌터밖에는 없었다.

‘정말 이게 끝일까?’

차재훈은 밀려드는 불안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괴물들이 한꺼번에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이라는 다른 때와는 다른 시기에 말이다.

차재훈은 어쩌면 이게 끝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괴물들은 단지 시작일 뿐, 다른게 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승한씨.’

승한을 기다리고 있는 건 가족들만이 아니었다.

차재훈을 비롯한, 그를 아는 모두가 승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

악마들이 한데 모였다.

모든 악마들이 모인 건 아니었다. 악마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같은 악마들조차 다 알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이 자리에 모인 악마들은 지구라는 세상에 관심이 있는 악마들뿐이었다.

그런데 그 수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족히 수십 명의 악마들이 모였는데, 그들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흐릿하게 가려져 있었다.

악마들이 모인 중앙으로는 푸른색의 알록달록한 행성이 떠 있었다.

“너무 빠르지 않나?”

한 악마의 발언에 몇몇 악마들이 동조했다. 확실히 다른 때에 비해서 이번 일은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감이 없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나?”

“일러. 너무 일러. 당장 지난번에 마족들을 보낸 것도 너무 빠른 것 아니었나?”

“이곳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곳 아니었나? 다들 알지 않나?”

한 악마의 말에 다른 악마들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지구라는 세상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벌써 보내겠다고? 그건 그들과 한 약속과 다르지 않나?”

“듀리안과 루시퍼가 죽었다.”

동문서답. 하지만 그 말은 자리에 모인 악마들 모두가 술렁거리기에 충분했다.

“루시퍼가?”

“그러고 보니 그 두 녀석이 부활할 때가 되긴 했었지. 그런데 죽다니, 누구에게?”

듀리안은 몰라도 루시퍼는 악마들 사이에서도 제법 잘 알려져 있는 악마였다. 그는 악마들 중 최상급에 속하는 악마였고, 그런 만큼 그의 부활은 모든 악마들이 기대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런데 죽다니. 악마들은 그것이 천사의 소행일 것이라 생각했다. 생전의 루시퍼를 죽였던 자가 바로 네 명의 천사들 중 하나인 ‘단죄의 천사’였으니 말이다.

“인간이다.”

“……인간? 인간이 루시퍼를 죽였다고? 어떻게?”

“이제 막 알에서 부화한 상태면 약할 만도 하지. 그래도 인간에게 당했다는 건 의외군.”

악마들은 승한이 악마의 알이 부화하기도 전에 알을 깨뜨렸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라도 루시퍼가 당했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인간을 무시하지 마라. 지금 여기까지 온 것만 봐도 인간들은 그리 약하지 않으니. 무엇보다 너희들 역시 아롤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인간 영웅 아롤. 그의 이름은 천사들과 신들을 비롯해 악마들에게까지 알려져 있었다. 아롤의 이름이 언급되자 악마들 사이에서는 인간들 무시하는 발언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루시퍼를 죽인 인간이 여기에 있다.”

“그런가?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가는군.”

루시퍼를 죽인 인간이 있는 곳. 그런 곳이라면 이해가 갔다. 악마들은 루시퍼를 죽인 인간이라는 말에서 ‘아롤’을 떠올렸다.

“제2의 아롤이 나타날지도 모르겠군.”

“싹은 미리 밟아 버려야겠지.”

**

헌터들은 이례가 없을 만큼 분주하게 움직였다. 거리에 나타난 괴물들을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이제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까지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느리게 움직이는 순간 사람들이 한 명씩 더 죽어갈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헌터들은 더욱 급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군인들 역시 총기류를 들고 거리에 있는 괴물들을 잡으러 돌아다녔다.

“젠장. 수가 끝도 없군.”

강동훈 소령은 군인들을 지휘하며 괴물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길에 있는 괴물들의 수는 지금껏 등장한 괴물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많았다. 하긴, 모든 괴물들이 종류별로 출현했으니 그 수가 몇 배나 되는 건 당연했다.

안양동에는 헌터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 지역을 담당하고 있던 헌터인 승한과 윤재가 없기 때문이었다. 강동훈 소령은 군인들을 지휘하며 사람들을 대피소로 대피시켰지만 그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손이 부족하다. 아니, 정확히는 헌터가 필요했다. 다른 괴물들도 문제였지만 마족들을 상대하기엔 군인들로는 역부족이었다.

두두두두두-.

군인들이 괴물들을 향해 총을 쏘아내며 전진했다. 거미들 중 붉은 거미와 주황 거미들은 총에 맞으면서 군인들을 향해 다가왔고, 몇 마리의 마족들은 이리저리 몸을 피했다.

퍼억-.

“카악!”

군인 한 명이 마족에게 목을 잡혔다. 강동훈 소령이 급히 총구를 겨누었는데, 마족의 앞에 있는 군인 때문에 쉽게 방아쇄를 당길 수가 없었다.

“이런…….”

그러는 사이 거미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거미들은 덩치도 덩치지만 점점 색이 보라색에 가까운 것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잡아먹으며 강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헌터들은 아직입니까?”

“이대로 가면 다 죽습니다!”

군인들의 절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총소리를 들은 괴물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군인들 중에서는 벌써부터 사망자가 생겨나고 있었고, 총에 쓰러지는 괴물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대로는…….’

콰앙-!

그 순간, 강동훈 소령을 비롯한 군인들 사이로 한 인영이 떨어졌다. 흙먼지가 날리며 땅이 쩍쩍 갈라지고, 강동훈 소령은 급히 뒤로 몸을 피하며 총을 쏘았다.

두두두두두두-.

티티티티티팅-.

총이 부딪히는 자리로 마치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세 먼지가 가라앉고 강동훈 소령은 위에서 떨어진 인영의 정체를 확인했다.

“……이런.”

하나의 뿔을 가진 마족. 녀석은 강동훈 소령을 비롯한 군인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몇몇 군인들이 녀석을 향해 총을 쏘고 있었지만 작은 생채기도 입지 않았다.

‘끝이다.’

강동훈 소령은 군인들만으로는 지금 나타난 마족을 어떻게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총이 통하지 않는 괴물이었다. 미사일이라도 쏘아서 쓰러뜨린다면 모를까, 그것도 나중 일이었다. 당장은 이 자리에 있는 군인들과 자신까지, 모든 이들이 죽을 것이다.

저벅-.

외뿔 마족이 강동훈 소령을 향해 걸어왔다. 강동훈 소령이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에 다시금 총을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

콰앙-!

하늘에서 새하얀 불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불길은 순식간에 도시를 덮쳤다. 사람들과 괴물들 가릴 것 없이 퍼지기 시작한 뜨거운 불길에 괴물들이 비명을 질렀다.

“부, 불이야!”

“시민들은?”

“어서 피해야…….”

그 불길에 당황한 군인들은 곧 그 하얀 불길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하얀 백염은 오직 괴물들만을 태우고 있었다.

“이건…….”

강동훈 소령은 이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헌터밖에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돈 순간이었다.

쉬이익-.

외뿔 마족이 강동훈 소령을 향해 손을 뻗어왔다. 강동훈 소령은 한눈을 팔고 있었고, 무엇보다 평범한 사람인 그가 외뿔 마족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피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푸욱-.

그 순간, 외뿔 마족의 머리 위로 새하얀 검이 박혀들었다. 강동훈 소령은 멍한 눈으로 외뿔 마족의 머리 위로 검을 박아놓은 사람을 바라봤다.

그의 앞에는 그토록 기다리던,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승한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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