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35화 (13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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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역동

“괴, 괴물들이 왜 지금… 혹시 우리가 요일을 착각 한 거니?”

“엄마, 아니야. 지금 분명 토요일 맞는데… 정부에서 이야기도 없었잖아?”

“그렇긴 한데…….”

승아와 어머니는 나르샤가 왜 나가지 말라고 했는지를 깨달았다. 밖을 돌아다니는 괴물들은 소리 없이 조용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까지는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어서인지 누군가를 공격하지도 않았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승아가 당황해서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꺄아아아아악-!

어디선가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창밖을 확인하지 않고 집을 나왔다가 괴물들을 본 모양이었다.

“어, 어떻게 해 이제?”

승아가 나르샤를 바라봤다. 나르샤 역시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오늘 괴물들이 나타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일단… 승한씨가 오실 때까지 여기 있어야겠죠.”

“승한이는 언제 오는데?”

“그건 저도 잘…….”

까앙-!

그 순간, 승한의 방 쪽에서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승아와 어머니가 소리가 들려온 승한의 방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나르샤의 뒤에 숨은 두 모녀는 긴장한 채 승한의 방문을 바라봤다.

“스, 승한인가?”

쓸데없는 희망이었다. 승한이라면 창문을 깨고 집으로 들어온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두 모녀와 나르샤는 승한의 방문을 빤히 바라보며 긴장했다.

콰직-.

잠시 후, 승한의 방문을 뚫고 사람의 팔이 나타났다. 검은 피부를 가진 괴물, 나르샤와 같은 마족이었다.

**

윤재는 승한이 사라진 후 계속해서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올림포스]산의 정상에서 스마트폰이 제대로 터질 리도 없었고,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윤재는 산 정상에서 보이는 절경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이 녀석은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승한이 돌아오지 않자 윤재가 투덜거렸다. 벌써 승한이 사라지고 세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오고 있지 않은 걸 보면 꽤나 복잡한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위험한 일은 아니겠지?”

자신보다 훨씬 강한 승한이었지만 윤재는 승한이 적잖이 걱정되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없는 걸 보면 필시 무언가 일이 있긴 할 테니 말이다.

“혀어어어엉-!”

그 때, 승한이 사라졌던 숲속에서 승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재는 승한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바위에 붙어있던 엉덩이를 떼고는 일어났다.

쐐애애액-.

잠시 후, 승한이 쏜살같이 달려와 윤재의 앞에 나타났다. 얼마나 빠르게 움직였던지 목소리가 들려오고 윤재가 일어난 직후 바로 도착했다.

“왜 그렇게 급해?”

“크, 큰일 났어요.”

“큰일? 무슨 일 있었냐?”

윤재는 승한이 숲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걱정되어 물었다. 이렇게까지 다급한 승한의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괴, 괴물이 나타났데요?”

“괴물이? 그게 무슨 소리야?”

“설명은 조금 이따가… 빨리 레드 드래곤부터 불러 주세요. 늦으면 큰일 나요.”

반응을 보니 장난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차피 자세한 이야기는 돌아가는 길에 하면 될 일이었다.

윤재는 승한의 말대로 다시금 레드 드래곤을 불러냈다. 허공에 새빨간 화염이 생겨나고, 주위의 눈을 녹였다. 이윽고 거대한 덩치의 레드 드래곤이 승한과 윤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승한은 윤재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의 팔을 잡고는 뛰어올라 레드 드래곤의 등 위에 올라탔다. 급해도 보통 급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추, 출발해라.”

윤재는 레드 드래곤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자 레드 드래곤이 윤재의 의지를 따라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냐? 괴물이 나타났다니?”

“말 그대로에요. 형, 오늘 토요일 맞죠?”

“맞아. 한국은 아마 토요일 아침 쯤 됐을 걸?”

[올림포스]가 있는 그리스는 이제 막 새벽 무렵에 접어들고 있었다. 한국과 그리스의 시간 차이가 있으니 아마 한국은 슬슬 아침 해가 뜬 후일 것이다.

“이상해요. 괴물이 나타났어요. 아직 일요일도 아닌데…….”

“그게 정말이야?”

“그럴 거예요. 저도 들은 이야기긴 하지만, 그들이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요.”

“그들?”

승한은 윤재에게 [올림포스]의 신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곳에서 겪은 일과, 그들에게 들은 이야기, 그리고 그 보상과 함께 제우스가 괴물들이 나타난 사실을 알려준 것까지 모두 말했다.

“……그러니까 신들을 만났다는 거 맞지? 그리고 네가 그들에게 선택되었고?”

“형, 말 했잖아요? 신이라는 작자들의 선택을 받은 건 저 뿐만이 아니에요.”

“알아. 들었어. 신이라는 작자는 한둘이 아니고, 우리에게 능력을 준 작자들 모두가 신일지도 모른다는 말. 그래도 그리스 신들은 우리가 좀 많이 알고 있던 신들이라 그런지 느낌이 다르긴 하네.”

거기까지 말한 윤재의 표정도 근심으로 물들었다.

“신들이라는 자들이 네게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을 테니… 그럼 괴물이 나타났다는 것도 진짜겠군.”

“형, 최대한 빨리 가야 되요.”

“알아. 알았어.”

윤재도 가족들이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요일이라면 모를까, 한국은 지금 토요일이었다. 대피소로의 이동은 일요일 아침부터 이루어지니 사람들은 괴물들이 나타났음에도 대피소가 아닌, 각자의 집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승한이나 윤재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가족들이 괴물들에게 잘못 될 확률은 높아진다.

윤재의 드래곤은 승한의 재촉대로 빠르게 한국으로 향했다.

**

두두두두두-.

으아아아아악-!

총소리와 비명소리. 그리고 조금씩 들리는 괴물들의 울음소리. 도시에서 들리는 소리는 그것뿐이었다.

평소처럼 자동차를 몰고 다니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물들로 인해 혼란에 빠졌다. 다시 되돌아가려 해도 거리에는 괴물들이 깔려있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군인들은 괴물들을 막으려했다.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부터 군인들은 소대 단위로 도시 곳곳을 순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도시에 나타난 괴물들을 전부 막는 건 불가능했다.

“여기는… 그래도 한동안 안전할 거예요.”

승한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창고. 오래 전 망한 식당이 창고로 사용되던 곳으로서, 창고 근처에 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나르샤와 승아, 승한의 어머니는 그곳에 숨어있었다. 괴물들을 피해 최대한 사람들이 없고, 괴물이 쳐들어온 집을 피해 나온 것이었다.

“그, 그래도 밖에는 아직 괴물들이 있지 않아?”

“괴물들은 사람들을 공격해요. 저희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밖에도 많아요. 굳이 승아씨와 어머니를 죽이겠다고 이곳을 찾아오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

“네. 죽일 사람들이야 밖에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나르샤의 대답에 승아와 어머니는 순간 오싹해졌다. 하지만 나르샤의 말대로 그들이 미끼가 되어 자신들이 사는 것은 사실이었다.

“고마워, 나르샤. 덕분에… 살았어.”

“뭘요.”

나르샤는 작게 미소 지었다. 즐거움이나 기쁨에 짓는 미소가 아니었다. 나르샤 스스로도 자신이 어떤 감정으로 웃고 있는 건지 모르고 있었다.

나르샤는 손에 묻은 피를 벽에 닦아냈다. 그녀의 손에 묻은 피는 다름 아닌 동족이라고 할 수 있는 마족의 피였다. 악마에게 조종당해 자아를 잃어버린, 동족 말이었다.

‘어떻게 된 걸까.’

마족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 나르샤는 승아와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자신을 도와준 승한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었고, 그래야만 승한이 돌아왔을 때 그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것과는 별계로 승아와 어머니가 그녀에게 대해준 모습들이 비록 짧은 시간이었다지만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것도 있었다. 그녀는 보통 사람들이 괴물이라 부르는 자신을 한 지붕 아래에서 잠시나마 가족처럼 대해준 승아와 어머니를 존경하고 좋아했다.

그래서 나르샤는 자신의 동족인 마족을 죽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몸이 움직였고, 그녀의 손은 마족의 가슴을 꿰뚫었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화의 힘이 사라진 후로 그녀가 원래의 힘을 되찾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 역시 마족이었고, 성화라는 힘을 몸에 봉인시키고 있을 정도로 본래는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 힘으로 승아와 어머니를 데리고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오는 도중 괴물들을 마주치긴 했다. 하지만 거미나 리자드맨과 같은 괴물들 정도는 나르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승한씨는 어디 간다는 이야기 없었나요?”

“응. 없었어. 그냥 약속이 있다고만…….”

“그 뒤로 안 들어온 거예요?”

“응.”

승한은 집을 나올 때 어디를 간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르샤는 승한이 어디로 갔는지 대충 예상이 갔다.

‘[올림포스]라는 산으로 갔겠지.’

승한은 나르샤에게 자신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올림포스]라는 산이 이 세계에 있으며, 언제고 시간이 날 때 한 번 가 봐야겠다고 말했었다.

‘돌아오려면… 멀었을까?’

나르샤는 승한을 기다렸다. 아직까지 그녀의 힘은 완전하지 않았다. 성화가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몸은 이제 막 서서히 회복하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혼자서 많은 괴물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두 모녀는, 나르샤는 승한이 필요했다. 괴물들로부터 자신들을 든든히 보호해 줄 수 있는 승한이 말이다.

으아아아악-!

다시금 들려온 비명소리. 앞에서 총소리도 들린 걸 보면 아무래도 또 다시 군인이 괴물들에게 당한 모양이었다.

“그, 근처에 괴물이 있나 봐요.”

승한의 어머니가 몸을 덜덜 떨었다. 나르샤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고의 입구로 다가갔다. 혹시라도 괴물이 들어올 경우 가장 먼저 그녀가 나서야 하니 말이다.

승아와 어머니는 창고의 구석에 몸을 묻었고, 나르샤는 입구 앞에 섰다. 하지만 잠시 기다려도 창고로 괴물들이 들이닥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행이에요. 지나간 것 같아요.”

나르샤의 말에 승아와 어머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간 떨어질 뻔…….”

콰앙-!

그 때, 창고의 벽면이 부수어지며 먼지가 튀었다. 승아와 어머니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르샤가 황급히 움직였다.

푸욱-.

부수어진 창고의 벽면으로 팔이 튀어나왔다. 뾰족한 손톱이 피륙을 뚫어내는 소리와 함께 피분수를 뿜어냈다. 깜짝 놀란 승아는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아무런 일이 없자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괜찮으세요?”

“아…….”

고개를 들어 올린 승아는 눈앞에 나타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바로 한치 앞에 나르샤가 가슴 중앙이 꿰뚫린 채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뒤쪽으로는 몇 마리의 마족과 괴물들이 창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거대한 거미들과 리자드맨, 뼈 스컬레톤 등, 수많은 종류의 괴물들이 말이다.

“도망쳐요…….”

콰드득-.

나르샤가 가슴을 뚫고 나온 마족의 손을 부러뜨렸다. 그녀는 큰 상처를 입은 와중에도 팔을 휘둘러 마족을 몸에서 떨어뜨리고는 승아와 어머니를 등졌다.

하지만 그녀는 승한처럼 강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나르샤의 가슴을 꿰뚫은 마족은 무려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었다. 아무리 나르샤라고 해도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을 상대로, 그것도 큰 부상까지 입은 상태로 이길 수는 없었다.

승아도, 어머니도 알고 있었다.

도망칠 곳은 없다는 걸.

그리고 그렇게 절망하는 순간이었다.

콰드득-.

쾅-!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의 머리를 발로 걷어차며 한 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동시에 그는 몸을 빙그르 돌려 다른 마족들을 주먹으로 후려쳐 나르샤에게서 마족들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마족 아가씨 멋지네. 반하겠어.”

그는 승아와 승한의 어머니를 보며 입을 열었다.

“승한씨 부탁으로 왔습니다. 승한씨 가족 분들 맞으시죠?”

그는 바로 승한의 부탁으로 승한의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온 차재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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