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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134화 (13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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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역동

아레스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느긋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꽤나 기분이 올라가 있었다. 신들끼리는 싸울 수 없다는 제우스의 명에 한동안 싸운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아레스는 전투를 좋아하는 신이었다. 항상 검과 방패를 들고 다니고, 황금 갑주와 투구를 쓰고 다니는 것은 이미 까마득한 오래 전부터 들여온 습관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으로 인해 그리스 신화에는 그를 전쟁의 신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해야했어?”

옆 자리에 있던 아테나의 물음에 아레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방패를 보였다.

“이거 봐라.”

“뭔데?”

아레스가 보여준 방패를 확인한 아테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거긴.”

쩌저적-.

아레스는 금이 가고 있는 자신의 방패를 보며 씩 웃었다.

“아롤 같은 녀석이 또 나타난 거지.”

**

신들은 흩어졌다. 구경거리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원래대로 다 제각기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혹은 평소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았다.

승한은 제우스와 둘이 남았다. 그는 다른 신들을 밖으로 보내고, 궁전 안에 승한과 둘만 남기를 원했다.

“잘 했다.”

짤막한 칭찬.

승한은 그의 말에 뻣뻣이 고개를 들었다. 인정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자신을 가운데 두고 이런저런 불쾌한 일들을 벌인 이상 제우스를 꼭 좋게 볼 수만은 없었다.

“다 끝난 겁니까?”

“그래. 끝났다.”

“그럼 이제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일인 건지?”

승한의 물음에 제우스가 처음으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작게 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피고 승한을 바라봤다. 승한은 그가 처음으로 얼굴에 표정을 짓자, 왜 웃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아롤은 잘 있나?”

다시 한 번 아롤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아무래도 제우스가 웃은 이유가 바로 아롤 때문인 모양이었다. 승한은 왜 그의 이름이 계속해서 신들의 입에서 언급되는지 궁금해졌다.

“대체 아롤님이 뭘 하셨기에 신들이 그렇게 자꾸 이름을 말하는 겁니까?”

“만나긴 만났나 보군.”

제우스는 승한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승한은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약속을 어기는 겁니까?”

“약속은 지킨다. 내가 한 말은 언약이니까.”

“그럼 대답해 주십시오. 아롤님이 대체 뭘 하셨는지. 그리고 당신들이 저를 가지고 뭘 하고 싶어 하시는 건지도 말이죠.”

승한은 이번 기회에 자신이 품고 있는 모든 비밀들을 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이곳까지 직접 찾아왔고, 전쟁의 신으로 알려진 아레스와 싸우는 고생까지 겪었다.

제우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대답해 주도록 하지.”

“약속이라면, 누구와 한 약속입니까?”

“미안하지만 그건 대답해주기 어렵군. 그대보다 먼저 한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신도 선약이 먼저입니까? 그럴 거면 저와 그런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죠?”

“미안하군. 신도 입장이라는 게 있어. 하지만 또 다른 약속을 어기지 않는 한에서 말해주도록 하지.”

승한은 버럭 화를 내려다가 참았다. 화를 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게 뻔했고, 그래도 물어볼 수 있다는 게 어딘가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후우… 그럼 다른 걸 묻죠. 아롤님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너와 닮은 인간이었지.”

“저와 닮다니요?”

“말 그대로다. 하는 일은 같았지. 너희가 괴물이라 말하는 존재들과 싸우고, 악마와 싸웠다. 그리고 승리했지.”

승한은 아롤이 악마 듀리안을 죽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로인해 죽고 다시 태어난 듀리안은 아롤의 검인 듀란달을 가진 승한에게 다시금 죽어 없어졌다.

‘아롤도?’

승한은 아롤이 자신과 같은 일을 했다는 게 놀랍게 느껴졌다. 그러는 한 편 의문도 들었다.

“과거에 괴물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데요?”

“이 세계에서 한 일은 아니니까.”

“그럼 어디에서……?”

“그건 말 해줘봤자 네가 알 수 없을 거다.”

그렇긴 했다. 어느 세상에서 한 일이라고 말해 준다고 해도, 승한은 자신이 사는 세상 외에는 딱히 아는 곳이 없었다. 말해 줘도 모른다는 제우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승리했다는 건 어떤 승리를 말하는 겁니까?”

“지켜냈다고 해야겠지. 그 세상을. 그 정도는 되어야 영웅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것 아니겠나? 지금은 영웅이 아닌 신이 되었지만.

“신……?”

“우리와 같은 태곳적부터의 신과는 다르지만, 그는 분명 신이 되었다. 인간으로서 신이 된 경우는 드물지만, 아예 없었던 일은 아니지.”

제우스의 말에 승한은 아롤의 모습을 떠올렸다. 천사와 함께 나란히 있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확실히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 하기는 어려웠다. 하긴, 평범한 사람이 지금까지 계속 살아있을 리가 없긴 했다.

“더 물어볼 건?”

“승리라는 건, 누구에게 승리했다는 겁니까?”

“네가 싸우고 있는 것들을 보내는 존재겠지.”

“악마입니까?”

“거기에 대한 확신은 이미 네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직 확실히 대답해 줄 수는 없어.”

여전히 두루뭉술하게 대답하긴 했지만 승한은 제우스의 대답에서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알게 된 승한이 궁금한 건 이제 하나뿐이었다.

“당신들은 저로 하여금 이 세상을 지키려는 겁니까? 악마들에게서?”

“글쎄. 비슷하다고 대답할 수 있지.”

“……비슷하다면, 조금은 다르다는 거 아닙니까?”

“아롤이나 천사에게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나?”

“천사가 말하기를 꺼려하더군요.”

“그렇다면 나 역시 말을 할 수 없겠군. 이해해라.”

결국 제대로 들은 대답은 얼마 없었다. 승한이 답답함을 호소하려던 순간, 제우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히 말해줄 수 있는 건 네가 지금 아주 잘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만 해라. 물론, 앞으로는 더 힘들어 질테지만 말이야.”

“……지금처럼이면, 계속 싸우라는 겁니까?”

“싸우고, 이겨야겠지.”

“간단하군요.”

“하지만 쉽지 않을 거다. 속 시원히 대답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군.”

의외로 제우스는 승한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사과까지 했다. 처음 본 인상은 오만하고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신이었는데, 한 번 인정을 받고 보니 그래도 신경을 써 주는 것 같기는 했다.

“대신 선물을 하나 주지.”

“선물?”

“기대하겠다. 부디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군.”

쿠우우우-.

궁전이 흔들렸다. 승한은 잠시 몸을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았다.

‘산이… 흔들린다.’

승한은 궁전뿐만이 아니라 궁전이 있는 거대한 [올림포스]산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고스란히 승한에게 전해졌다.

산은 잠시 흔들리다 점차 떨림을 멈췄다. 하지만 반대로 승한의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하데스가 처음 승한의 몸을 짓눌렀던 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아니, 달라.’

그 힘은 승한을 해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승한의 몸속에 있는 또 다른 [올림포스]의 힘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승한의 몸속에 있는 힘과 [올림포스]산의 힘이 부딪혔다.

[‘올림포스’의 힘이 공명합니다.]

[‘능력 - 올림포스’의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특정한 힘이 개입해 다음 레벨에 요구되는 타임 포인트가 상승하지 않습니다.]

승한은 성화의 레벨이 올랐을 때와 비슷한 메시지가 머릿속에 울리자 깜짝 놀랐다. 약속과는 달리 또 다른 약속을 핑계로 제대로 대답을 해 주지 않아 짜증이 나 있던 차였는데, 이런 보상이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마음에 드는가?”

제우스의 물음에 승한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올림포스]의 레벨을 하나쯤 더 올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물이라며 이렇게 힘을 주니 꽤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오른 능력의 레벨은 다음 레벨에 필요한 타임 포인트의 수치가 상승하지 않았다. 성화 역시 이런 이유로 벌써 3레벨까지 레벨을 올릴 수 있지 않았던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하긴, 그대가 강해지는 건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니. 그리고… 알려줄 게 하나 더 생겼군.”

“알려줄 거라니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알려줄 거라니, 승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는 물어봐도 대답을 회피하던 제우스가 처음으로 승한에게 먼저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다음으로 이어진 제우스의 말은 지금까지 그가 해온 말 중 승한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였다.

“너희가 괴물이라 부르는 것들이 지금 이 순간,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

“하암-. 졸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난 승아는 크게 하품하며 거실로 나왔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미 거실로 나와서 일찍부터 아침상을 차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 엄마.”

“일어났니?”

“응. 승한이는?”

승아는 자기 전까지 승한이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고는 물었다. 어머니는 잠시 찌개를 끓이던 손을 멈추고는 고개를 저었다.

“가출이라도 했나?”

“글쎄, 모르지.”

“괜찮겠지, 뭐. 설마 누가 납치라도 했겠어? 명색이 헌터 나으리신데.”

어머니와는 달리 승아는 승한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괴물들과 싸우던 중에 연락이 없는 것이라면 걱정했겠지만 지금은 괴물이 나타나는 때가 아니었다. 길가다 납치를 당할 일도 없을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 안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니. 전화도 안 되고…….”

“괜찮아,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 나르샤는?”

“아직 자는 것 같은데?”

나르샤는 승아, 어머니와 함께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세 명이서 쓰기에는 비좁은 방이었지만 이미 승한의 어머니는 이사할 집을 알아둔 상태였다. 당장 다음 주면 입주 계획이 잡혀있으니 그 때까지만 불편을 감수하면 될 일이었다.

“저… 일어났어요.”

“아, 나르샤 일어났어?”

승아는 붙임성 좋은 성격답게 나르샤에게 싹싹하게 대했다. 나르샤는 처음에는 그런 승아가 불편했지만 한 방을 쓰고 며칠 같이 지내다 보니 이제는 적응을 한 상태였다.

“어서 밥 먹고 준비하렴. 오늘 일찍 나가야 한다며?”

“그러게. 어휴. 무슨 토요일도 출근이야. 이놈의 회사 때려 치던가 해야지.”

“취직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때려치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승아는 그렇게 말하며 식탁에 앉았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를 바라보던 승아가 나르샤에게 손짓했다.

“나르샤도 여기 앉아. 같이 밥 먹자.”

“승아씨.”

나르샤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오늘은… 어디 나가지 마세요.”

“응? 나가지 말라니?”

“어머니도 마찬가지에요. 가능하면 두 분 다 집에 계세요. 승한씨가 돌아올 때까지요.”

나르샤의 말에 승아와 어머니는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나르샤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건데?”

“저도 확신은 못 하겠어요. 하지만…….”

나르샤는 그렇게 말하더니 거실에 붙어있는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 문을 열고 밖을 확인한 나르샤가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왜, 왜 그래?”

탁-.

나르샤가 황급히 베란다의 문을 닫았다. 승아와 어머니가 나르샤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베란다 문을 살짝 열었다.

“저길 보세요.”

나르샤가 승아와 어머니에게 살짝 열린 베란다 문 사이로 보이는 집 밖의 모습을 확인시켰다. 두 모녀는 베란다 문 사이로 보인 거리의 모습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 저게 다 뭐야?”

승아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머니는 승아처럼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거리에는 여러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뼈밖에 없는 괴물과 도마뱀을 닮은 괴물, 시커멓고 거대한 거미까지. 그것들은 지금까지 세상에 나타났던 괴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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