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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올림포스
승한은 방금 전까지 아레스를 상대하면서 검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왼손에 들고 있는 방패에 너무 쉽게 얻어맞고 말았다.
아레스는 기본적으로 압도적으로 빠르지는 않았다. 그는 직선적인 공격으로 모든 것을 찍어 눌렀다. 그는 충분한 속도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양 손 모두 신경 써야 한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당장 검 하나만 해도 막는 것만 해도 벅찼다. 그런데 방패까지 신경 쓰면서 둘 모두를 막아내기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그럼…….’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애초에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답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쉬익-.
승한의 몸이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아레스는 승한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 웃었다.
“그래, 그래야지!”
쩌엉-!
승한이 휘두른 검이 아레스의 방패 위를 두드렸다. 아레스가 휘두른 검이 승한의 방패를 두드렸을 때와는 달리 방패는 멀쩡했다. 하지만 승한은 그런 것 가지도 낙담하지 않았다. 어차피 예상했던 바였다.
쿠구구구-.
승한의 검에 [올림포스]의 힘이 더해졌다. 그 거대한 무게가 아레스의 방패 위를 짓눌렀다. 힘과 함께 산과 같은 무게가 더해지자, 아레스는 그 힘에 적잖이 놀랐다.
“괜찮은… 데!”
말과 함께 아레스가 검을 휘둘렀다. 승한은 몸을 숙여 아레스의 검을 피해내고는 방패 위를 검으로 긁어 움직였다. 순식간에 승한의 검이 방패 사이를 뚫고 아레스의 품으로 찔러갔다.
쩌엉-!
두 자루의 검이 다시 한 번 부딪혔다. 그래도 자세가 불안정해서인지 아레스의 검은 그렇게까지 무겁지 않았다. 승한은 아레스에게 공격을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생각에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검을 멈출 순 없었다.
승한은 아직까지 [올림포스]의 힘을 완전히 자유자재로 다루지는 못했다. 검에 [올림포스]의 무게를 실어 휘두르기 위해서는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려쳐야만했다.
승한은 부족한 힘을 [올림포스]의 힘을 검에 싣는 것으로 메울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아레스의 힘에 정면으로 맞서서 검을 나눴고, 몇 합을 더 겨루었다.
“너 진짜 인간 맞아? 응?”
쩡-!
아레스가 승한의 검을 크게 쳐내고는 몸을 위로 떠올렸다. 그의 얼굴에는 진득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승한과 검을 나누며 싸우는 게 꽤나 재미있어진 모양이었다.
승한은 아레스를 따라 위로 떠올랐다. [귀신]을 이용해 허공을 밟은 승한은 아레스보다 더 높은 곳으로 떠올라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꽈앙-!
성화와 함께 [올림포스]의 산과 같은 무게가 아레스를 위에서 짓눌렀다. 황금색의 성화는 듀란달을 타고 아레스의 검으로, 그리고 그의 몸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화의 불꽃은 아레스에게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승한의 성화가 뜨겁다 해도 상대는 신이었다. 더군다나 그가 입고 있는 황금의 갑옷은 승한이 뿜어낸 성화의 열기쯤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결국 승한은 성화보다는 검으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듀란달이라는 검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평범한 검이었다면 진작 아레스와 검을 나누면서 부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하하하하하! 진짜 나와 백 번을 겨룰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거 진짜 재미있는 놈이었네!”
아레스의 검이 더욱 빨라졌다. 승한은 아레스가 휘두르는 검을 겨우겨우 하나씩 막아냈다. 처음에는 한 번 검을 받아내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 힘도 익숙해지고 나니 조금씩 적응이 되고 있었다.
치이익-.
승한의 손아귀가 찢어졌다. 승한은 아레스의 검을 받아내며 절대 검을 놓치 않았다. 하지만 아레스의 힘은 승한과 비할 바가 아니라 검을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손아귀에 점점 더 통증이 심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듀란달의 은색 손잡이 위로 붉은색 피가 묻어 흘렀다. 손아귀의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질수록 승한의 검에 들어가는 힘도 조금씩 빠져갔다.
빠악-!
“커억!”
승한의 머리를 아레스의 방패가 위에서 내려찍었다. 둔탁한 충격에 승한은 중심을 잃고 아래로 빠르게 내동댕이쳐졌다.
콰앙-!
승한의 몸이 궁전의 바닥에 떨어졌다.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몰라도 궁전의 바닥은 조금 흠이 있을 뿐 부서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바닥에 떨어진 승한의 충격은 더욱 컸다.
정신없이 휘둘러오는 검을 보느라 다시금 방패를 신경 쓰지 못한 것이다. 승한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는 조금 흐려진 시야로 앞을 바라봤다. 어느새 아레스가 다가와 검을 찔러오는 모습이 보였다.
콰직-.
쩌저저적-.
검을 휘둘러 막을 수 없다 판단한 승한은 급하게 들어 올린 방패로 아레스의 검을 막아냈다. 그런데 역시나 평범한 방패로는 아레스의 검을 막아내기가 힘든지 가운데 금이 점점 벌어지며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젠장!’
승한은 방패가 완전히 박살나기 전에 서둘러 검을 휘둘렀다. 방패에 박혀 있는 아레스의 검을 그대로 두고, 아레스의 배를 향해 검을 찔러갔다.
째앵-!
하지만 안타깝게도 방패를 가지고 있는 건 승한뿐만이 아니었다. 아레스 역시 승한과 마찬가지로 방패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승한의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한 방패를 말이다.
빠악-!
승한의 검을 막아낸 아레스의 방패는 그대로 승한의 얼굴을 후려쳤다. 아직까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있던 승한은 다시금 얼굴을 얻어맞자 어질어질한 상태로 뒤로 물러났다.
흐려진 눈앞으로 아레스가 검을 찔러오는 게 보였다. 서둘러 검을 휘둘러 반격하려 했지만 마음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승한은 반격하기보다는 급히 몸을 틀어 검을 피해내려 했다.
사악-.
승한의 어깨가 조금 베어졌다. 아레스와의 싸움에서 처음 입은 상처였다. 하지만 한 번 상처가 생기기 시작하자 멈추지 않았다.
사악, 사악-.
촤악-!
승한의 몸에 작고 큰 상처들이 여럿 생겨났다. 승한은 급소를 찔러오거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큰 공격에만 반응했다. 아니, 그런 공격 외에 자잘한 공격에까지 반응할 정신이 없었다.
승한의 몸에 수십 개의 상처가 생겨났다. 그렇게 온 몸에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던 승한의 눈이 번쩍였다.
쩌엉-!
“어?”
승한의 검이 찔러오던 아레스의 검을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눌렀다. 갑작스러운 반격에 아레스는 왼쪽에서 승한의 방패가 다가오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빠악-!
콰자자작-.
“큭.”
승한이 휘두른 방패에는 [올림포스]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아레스는 승한이 휘두른 방패에 맞고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아레스는 머리에 쓰고 있는 투구 덕분에 승한처럼 어지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반면, 아레스의 얼굴을 후려친 승한의 방패는 산산이 조각나 사방으로 뿌려졌다.
하지만 어승한은 어차피 더 이상 방패에 미련이 없었다. 이 이후부터는 아레스의 공격을 막을 일이 있게 되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쩌정, 쩌저정-!
화르르륵-.
승한의 몸에서 성화의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듀란달뿐만 아니라 온 몸으로 흩날리는 성화의 불길은 아레스를 집어삼킬 듯 매서웠다. 동시에 승한은 온 힘을 담아 아레스를 향해 무작정 검을 퍼부었다.
콰과과과과-.
쐐애애애액-!
승한의 검격이 [백검]을 통해 아레스를 향해 뿌려졌다. 승한의 [백검]은 아레스의 몸을 금방이라도 난도질 할 것처럼 매서웠다.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성화의 힘을 아레스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아레스는 검과 방패를 들어 자신의 앞으로 가져와 그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승한이 휘두르는 검격의 파도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막아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대로는 안 돼.’
방패를 든 아레스의 위로 아무리 검격을 퍼부어도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승한은 이대로 시간이 흘러봤자 아레스에게 작은 상처하나 입힐 수 없다고 생각했다.
‘힘을 흘리지 않고, 한 점으로…….’
승한의 검이 점점 느려졌다. 아레스는 몸 위로 퍼부어지던 검격이 점차 줄어들자 승한이 힘이 빠졌다고 생각했다. 하긴, 이만한 힘이 담긴 검격에 성화까지 이만큼 퍼부어대고 있으니 힘이 빠질 만도 했다.
하지만 그런 아레스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잠시 후, 아레스는 승한의 검격이 약해지고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정정해야했다.
승한의 검격은 느려지지만, 반대로 강해지고 있었다.
‘검격을 모은다.’
승한이 날리는 검격이 점차 좁아졌다. 대신 한 점에 집중시킨 검격은 점점 더 강해지고, 성화의 불길도 더욱 뜨거워졌다.
‘부순다!’
승한은 아예 아레스의 방패를 부숴버릴 생각이었다. 검도 문제지만 저 방패가 있는 이상 아레스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승한은 모든 힘을 쏟아 붓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저 방패를 부술 생각이었다.
“진짜 이거 물건이긴 하네.”
그 순간, 아레스가 몸을 보호하고 있던 방패를 떨쳐냈다. 동시에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이 위로 향하며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졌다.
촤악-!
쩡-!
아래로 떨어진 아레스의 검은 승한의 검격을 모두 떨쳐버렸다. 그와 동시에 쉼 없이 움직이던 승한의 검을 쳐내며 승한의 팔과 함께 위로 들춰냈다.
서걱-.
“……어?”
승한은 가슴에 그어진 기다란 혈선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처는 승한이 검에 베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난 후에 벌어졌다.
촤아아아악-!
지금까지 입은 상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상처였다. 승한은 가슴에서 터져 나온 핏물을 보며 몸을 휘청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까지 입은 상처들이 적지 않았는데, 거기에 가슴부터 배 아래까지 이어지는 상처를 입으니 몸에 힘이 풀어졌다.
“허억, 허억.”
승한은 가슴에 벌어진 상처를 왼 손으로 움켜쥐었다. 다행히 내장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다만 검상이 길어서 그만큼 출혈량이 많을 뿐이었다.
“와, 진짜 대단한 녀석이네.”
저벅-.
승한의 앞으로 아레스가 다가왔다. 아레스는 검과 방패를 아래로 늘어뜨린 채 승한을 내려다보았다. 승한은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이 상처가 더 벌어지지 않게 움켜쥐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차원이 달라.’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부터는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아레스는 승한과 비교할 수 없을 만한 강자였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족이나 천족과 같은 종족도 아니었다. 그는 모든 인간들의 위에서 그들을 다스린다고 알려져 있는 신(神)이라는 드높은 존재였다.
애초에 알량한 힘을 가지고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승한은 처음부터 중간까지, 마지막 일격을 제외하고는 아레스가 가진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마지막 순간 그가 날린 일격은 이전까지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졌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고. 그럼, 이길 줄 알았나?”
승한의 말에 아레스는 비웃음을 흘렸다. 그 말이 다시금 비수가 되어 승한의 가슴을 후벼 팠다.
승한은 고개를 들어 제우스를 바라봤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지만, 패하고 나니 속이 쓰렸다. 그리고 이후에 이어질 제우스의 벼락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은 순간이었다.
“아레스,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우스의 입이 열렸다. 승한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바로 벼락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아레스의 반응은 승한의 생각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신들의 인정을 받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