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28화 (12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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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올림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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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한은 안석환의 제안을 일부 승낙했다. 그의 말대로 자신을 무대로 한 쇼를 만드는 대신, 시간을 오래 잡아먹지 않고 예능 프로그램과 같은 복잡한 프로그램은 제외시켰다.

“그리고 다음번에도 또 제 얼굴을 마음대로 팔거나 허락 없이 저를 가지고 일을 진행시키면 안석환씨와는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을 겁니다. 물론 화안 그룹과도 끝이고요.”

안석환과 화안 그룹은 승한의 매니지먼트가 되는 것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더욱 끌어 올리고자 했다. 화안 그룹을 등에 입은 승한을 수면 위로 올리는 한편, 화안 그룹에는 세계 최고의 헌터가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승한에게도 썩 나쁘지 않은 제안이긴 했다. 하지만 승한은 자신을 가지고 그들이 아무런 동의도 얻지 않고 일을 진행했다는 게 기분이 나빴다. 이미 인터넷에는 승한이 싸우는 모습이 영상으로 퍼져 나간 상태였던 것이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안석환을 만나고 돌아가던 길, 승한은 답답함에 머리를 감쌌다. 문득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괴물의 등장, 헌터의 등장, 그리고 그에 맞춰 톱니바퀴 맞물리듯 세상이 돌아간다. 하지만 승한은 이 세상이 언제 틀어질지 모를 만큼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안석환은 헌터들이 연예인처럼 방송에 나오고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게 사회에도 공헌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승한은 그 말에 공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뭐, 알아서들 하겠지.’

승한은 안석환과 화안 그룹의 일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일을 시작했다지만 승한이 할 일은 딱히 없었다. 조만간 화안 그룹에서 연락이 올 것이고,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방송 주제에 맞게 방송을 녹화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안석환과의 자리를 끝내고 나오자 슬슬 저녁때가 가까워져 있었다. 승한은 윤재를 불러냈다.

-무슨 일이냐?

“그냥,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부탁할 것도 있고.”

-부탁? 뭐, 나도 아직 저녁 전이니까 만나자.

“내가 형 집 근처로 갈게.”

안석환과 함께 양주를 두 병이나 비웠지만 승한은 조금도 취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불굴의 육체]가 술의 알코올을 모두 해독해 버린 모양이었다.

취한 맛으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기분이 나쁠 것이다. 하지만 승한은 애초에 술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더욱이 취한 느낌은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취하지 않았다는 게 훨씬 기분이 좋았다.

승한은 윤재를 만나 집 근처에 있는 고기 집으로 향했다. 저녁 시간에 가까운 식당은 꽤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얼마 전에만 해도 여기 사람 한 명 없었는데 말이야.”

“뭐, 우리라나는 괴물에게 피해를 거의 입지 않는 나라잖아요? 슬슬 사람들도 안심할 만도 하죠.”

처음 막 괴물들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집밖으로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었다. 몇몇 사람들은 비상식량과 물 등을 가지고 집에 틀어박혀 문을 잠그거나, 다른 나라의 소식을 알지 못하고 해외로 도망가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처음 헌터들이 구역을 맡아 괴물들을 정리하고 시민들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물론 조금의 불안감은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전처럼 세상의 종말을 외칠 정도는 아니었다.

치이이익-.

잠시 후, 승한과 윤재가 시킨 소고기가 나와 불판 위에 올려졌다. 승한에게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먹는 한우였다.

“기껏 돈 벌어서 처음 하는 짓이 소고기 사먹는 거라니. 진짜 나도 돈 쓸 줄 모르네.”

“뭐, 한우 꽃등심 정도면 충분히 사치 아니에요? 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겹살 한 번 먹으면 지갑이 가벼워졌는데 말이죠.”

“그거야 나도 같지만. 아, 그러고 보니 넌 뭐 할 거냐? 보스도 다 네가 잡았잖아? 보상 장난이 아닐 텐데.”

“일단 이사부터 하려고요. 와 보셔서 알잖아요? 저희집 그렇게 좋은 집 아닌 거. 엄마랑 누나, 저까지. 성인 세 명이서 살기엔 좁죠.”

“하긴. 이참에 번쩍번쩍한 궁전 같은 데서 살아봐. 생각해 보면 너나 인생 폈다.”

“뭐, 그것도 앞으로 세상이 멀쩡할 때 이야기지만요.”

승한은 그렇게 말하며 집게를 들었다. 그러자 윤재가 승한이 들어올린 집게를 손에서 빼앗았다.

“줘. 내가 구울게.”

“형. 이런 건 아랫것들이 하는 거예요.”

“아랫것은 무슨. 됐어. 그리고 소는 그래도 먹어본 사람이 잘 구워. 잘못 구워서 아까운 소 버리지 말고 내가 구울게.”

윤재는 그렇게 승한을 설득하고는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승한은 자신보다 형인 윤재가 고기를 굽는 모습을 보며 미안함에 입맛을 다셨다.

“그냥 삼겹살이나 먹을 걸 그랬네요.”

“네가 고기 굽겠다고 삼겹살을 먹겠다고? 차라리 그게 더 나한테 미안할 일이지.”

“그런가요?”

“됐어. 나 고기 굽는 거 좋아해. 그래서 부탁하려던 일이 뭔데? 그거 때문에 만나자고 한 거 아니야?”

“형은 제가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으로 보여요?”

“그건 아니지만.”

윤재가 살짝 익어 핏물이 나오기 시작한 고기를 승한에게 내밀었다. 승한은 고기를 살짝 소금에 찍어 한 점을 먹고는 말했다.

“그냥 저 좀 어디 데려다 달라는 거예요.”

“데려다 달라고? 어딜?”

“그리스?”

승한의 대답에 막 고기를 입 안으로 가져가던 윤재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스? 갑자기 거긴 왜?”

“그냥 볼 일이 있어서요.”

“너 그리스 사람 인맥이라도 있냐?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소리야?”

윤재의 물음에 승한은 [올림포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성화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던 윤재였지만 [올림포스]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던 윤재는 승한이 능력을 각성하면서 그리스에 있는 [올림포스]라는 산을 봤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능력을 각성하면서 [올림포스] 산을 봤다고?”

“네. 아무래도 그 산과 제 능력이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요. 한 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더라고요. 당장 급하게 할 일도 없고요.”

“……진짜 특이하긴 하네. 왜 너한테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나도 그렇고, 다른 헌터들도 그런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글쎄요. 저도 아직 그건 모르죠.”

‘아직은 말이지.’

승한은 붉은 천사와 아롤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들, 정확히는 붉은 천사는 승한을 통해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승한에게 모든 진실을 말해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쩌면 승한 말고도 이런 일을 겪은 헌터가 더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장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헌터들을 모두 모아놓고 보면 말이다.

‘헌터들에게 힘을 주는 존재는 하나가 아니니까.’

어쩌면 헌터들이 가진 능력 전부가 붉은 천사나 아롤과 같은 존재들의 힘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헌터들에게 힘을 준 존재가 한둘은 아닐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왜 저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그리스에 가야죠.”

“그런 거냐?”

“네. 도와주실 거죠?”

“근데 왜 그걸 나한테 부탁해? 강동훈 소령에게 부탁하거나, 비행기 타고 가면 될 텐데? 돈이 없는 것도 아닐 테고…….”

“알다시피 정부에서 저희를 많이 신경 쓰잖아요. 혹시라도 타국으로 넘어가면 어쩌나, 하고요. 그리스가 한국에 있는 헌터들을 빼돌릴 만큼 국력이 강한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이럴 때 해외로 간다는 걸 정부에 보여지고 싶지는 않아서요.”

“그래서 주작을 타고 얼른 다녀 오겠다?”

“주작 정도면 하루면 다녀올 수 있지 않겠어요? 레벨이 올라서 그런지 웬만한 비행기 뺨치던데요?”

윤재의 주작은 5스테이지의 능력이었다. 윤재는 승한과 함께 괴물들을 잡으러 다니며 꽤나 많은 타임 포인트를 획득해서 주작의 레벨을 꽤나 올린 상태였다. 그 덕분에 주작은 기동력은 물론, 자체적으로 괴물들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전투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승한과 윤재가 거둔 성과의 반 이상이 주작의 기동력 덕분이었다. 괴물들을 모으기 위해 천천히 움직여서 그렇지 주작이 마음먹고 움직이면 여객선도 따라잡을 정도였다.

“넌 내가 승용차로 보이나 보다. 알았어. 바로 먹고 출발하자.”

“바로요?”

“그럼, 내일까지 질질 끌 것 있어? 후딱 다녀오자.”

윤재는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어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이제 주작 아니야. 10레벨 달성했다.”

“벌써요?”

“벌써는 무슨. 넌 옛날에 해 놓고는. 그리고 난 아직 백염도 10레벨 못 찍었어. 9레벨에서 10레벨로 올리는 게 포인트가 너무 많이 들어.”

“그래도 그 정도면 빠른 거죠.”

“하긴, 사실은 내가 느린 게 아니라 네가 비정상적으로 빠른 거지.”

승한은 윤재가 주작을 10레벨까지 달성하고 그 능력이 어떤 능력으로 각성했을지 궁금했다. 윤재의 능력 중 승한이 가장 많이 덕을 보는 능력이 바로 주작이었다.

“다 먹고 어디 빈 학교 운동장 같은 데라도 가서 출발하자.”

“운동장이요? 그렇게 넓은 데가 필요해요?”

“응. 아마 보면 깜짝 놀랄 걸?”

윤재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어지간히도 주작이 변화한 능력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승한은 윤재의 능력이 보고 싶어 급하게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윤재가 다 됐다고 말하기도 전에 고개를 자르고, 몇 번 씹지도 않고 고기를 목구멍으로 넣었다. 윤재는 ‘너처럼 소고기를 무식하게 먹는 놈은 처음 본다.’며 승한을 타박했다.

“잘 먹었다, 승한아.”

둘이서 총 5인분의 고기를 먹어치우고 윤재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윤재의 말은 즉, 계산은 승한에게 맡기겠다는 뜻이었다.

“형도 돈 잘 벌면서 이러기에요?”

“네가 훨씬 많이 벌었을 거 아니야? 그리고 부탁하는 처지에 밥까지 사달라는 건 아니지?”

“끙. 그건 그렇네요.”

결국 부탁하는 입장인 승한이 카드를 긁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기 힘든 고기값을 계산한 승한은 윤재와 함께 근처에 있는 운동장으로 향했다.

윤재의 집 근처에 있는 중학교는 해가 저문 저녁 시간에도 학생들이 꽤 있었다. 중,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은 농구를 하거나 각각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아직 사람들이 남아있자 승한이 껄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출발하게요?”

“그럼 어디서 출발하게?”

“그래도 사람들이…….”

“우리가 무슨 정체를 들키면 안 되는 정의의 히어로냐? 뭘 꺼려? 어차피 두 번 볼 사이도 아니고.”

“그렇긴 한데…….”

“사람 없는 산 속에라도 들어가자는 건 아니지? 됐다. 그냥 부른다.”

“형, 잠깐만…….”

꺼림직한 기분에 승한이 윤재를 만류하려던 순간이었다. 윤재는 이미 능력을 사용해 무언가를 불러내고 있었다.

화아악-.

따뜻한 열기가 승한의 얼굴 가득 느껴졌다. 성화와 닮은 듯하면서도 조금 다른 불이었다. 주작의 불과도 달랐다. 백염에 의해 하얀색으로 이글거리던 주작과는 달리, 윤재가 만들어낸 불은 새빨간 붉은색이었다.

‘확실히 주작은 아니군.’

승한은 어느새 윤재가 만들어낸 불을 지켜보고 있었다. 점차 덩치가 커져가는 아름다운 불꽃은 승한의 시선을 빼앗았다.

승한뿐만이 아니었다. 그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승한과 윤재, 정확히는 윤재가 만들어낸 불꽃으로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불꽃놀이인 줄로 착각하던 그들은 불이 점차 거대해지자 헌터가 나타났다며 소리치고 있었다.

꾸드드득-.

불은 한데 뭉치더니 점차 형체를 갖추었다. 어느 정도 불이 거대해졌을 때, 승한은 그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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