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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125화 (12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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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가치

조심스러운 말투에 승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별하다는 말을 붙일 만한 사람이 딱히 떠오르지 않은 것이다.

“누굽니까?”

“가서 만나 뵈면 알 겁니다. 승한씨가 연락을 주셨다고 말씀을 드리자 바로 안양으로 오셨습니다.”

안양으로 왔다는 걸 보면 적어도 안양 사람은 아니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것도 아닐 테니, 아마도 서울 쪽 정치인 중 한 명이거나 군부대 고위 관계자일 확률이 컸다.

‘누구지?’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떠오르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그 중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승한은 강동훈 소령과 함께 시청 근처로 향했다. 그리고는 승한이 말한 시청 근처의 작은 커피숍에 차를 세웠다.

승한은 차에서 내려 강동훈 소령과 함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강동훈 소령은 급히 전화를 하고 오겠다고 말하고는 커피를 주문한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통화를 끝낸 강동훈 소령이 돌아왔다. 커피숍 안에는 사람이 없고 한산했다. 원래도 그리 넓은 자리는 아니었지만, 어디선가 군인들이 나타나 하나 둘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일을 하던 알바생은 갑작스럽게 군인들이 몰려오자 당황한 듯이 보였다. 승한은 군인들 사이에 앉아 혼자 커피를 마시는 게 껄끄러웠는데, 강동훈 소령이 돌아와 그의 앞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괜찮습니다. 혹시 통화하고 오신 분이 기다리신다는 분인가요?”

“그 분도 있고, 시장께도 전화를 드렸습니다. 시장님께서는 안타깝지만 다음에 만나야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렇다면 강동훈 소령이 말한 그 사람은 이제 곧 여기로 올 것이라는 소리였다. 사실 승한은 시장이나 그 사람이나 반드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다. 그래봤자 군인이나 정치인이었고, 승한은 그런 쪽에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만나고 싶다니… 만나긴 해야겠지.’

승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들어올렸다.

“그래서, 연락하셨던 이유는 뭡니까? 가능한 빨리 연락 해 달라고 하셨잖아요?”

“그게… 사실은 괴물의 사체와 김승한 헌터의 보상에 관한 문제입니다.”

“괴물의 사체에 관한 문제는 대충 알겠는데, 제 보상 문제는 왜……?”

“근래 들어 승한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다른 헌터들과 비교해 이뤄낸 성과가 훨씬 많고, 보스를 잡을 수 있는 헌터라는 점에서 보상을 높여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말입니다.”

보스를 잡을 수 있는 헌터란 의미는 그 앞에 ‘혼자서’라는 전제가 뒤따랐다. 그리고 승한은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보스를 홀로 잡은 경험이 있는 헌터였다. 그것도 네 마리나 말이다.

타국의 경우 보스를 잡는데 헌터를 여럿 동원했다. 그 결과 보스와의 싸움에서 사상자가 나오거나, 보스 하나를 잡자고 소형 미사일을 사용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한국 정부는 어쩌면 승한이 없었다면 자신들 역시 그런 경우가 생겨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 이번에 나타난 보스로 인해 몇 명의 헌터가 죽었다. 하지만 승한은 그들을 별다른 피해 없이 멋지게 쓰러뜨렸고, 심지어 말레이시아에 나타난 보스까지 사냥했다.

“……제 보상이 얼마인지는 아십니까?”

“대략적으로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승한씨, 그거 아십니까? 승한씨는 자신의 가치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괴물들이 출몰하는 현 상황에서 승한씨가 가진 힘이나 가치는 돈 몇 억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대답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강동훈 소령은 승한이 받은 보상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은 아는 눈치였다. 승한도 대놓고 앞에서 말하는 강동훈 소령이 썩 싫지는 않았다.

“그래서 보상을 더 높여 주겠다는 겁니까?”

“이야기는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헌터들 간에도 실력 차이가 있고, 특히 보스를 잡을 정도로 실력을 가진 헌터는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큽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승한은 그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타국에서 접근하는 헌터들이 많죠?”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먼저 나서서 보상을 높일 필요가 없겠죠., 아닙니까?”

승한의 물음에 강동훈 소령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었다.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근래 들어 타국으로 헌터들이 빠져나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헌터들을 잡아놓기 위해서라도 더 좋은 보상을 마련하는 게 필요했습니다.”

“주희가 미국으로 간 건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당장 안양 지역 내에 있는 헌터들 중, 이주희 헌터를 비롯해 총 두 명의 헌터가 타국으로 옮겨갔습니다.”

주희는 승한, 윤재와 함께 강동훈 소령과 인연이 있었다. 강동훈 역시 주희가 미국에 더 좋은 대우를 받고 가버린 것을 보고받은 상태였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 타국에서 헌터들에게 접근하는 걸 최대한 막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고, 최선의 선택은 역시 헌터들의 보상을 올리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좋은 생각이군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에도 돈이 필요합니다. 예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괴물의 사체에 대한 권한을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승한의 목소리가 가라앉자 강동훈 소령이 급히 말을 정정했다.

“헌터 연합의 입장은 헌터 분들과의 개개인적인 연계로 괴물의 사체에 대한 소유권을 획득하고 그 괴물의 사체를 직접적으로 보상을 하고 사들이겠다는 겁니다. 간단하게 괴물의 사체를 헌터 분들에게 구매하는 직거래 형식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부의 입장은 그 직거래를 막고, 중간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겁니까?”

“그겁니다. 헌터 분들에게 괴물의 사체에 대한 작은 보상을 하고, 괴물의 사체에서 추출한 에너지원을 시장으로 풀어놓은 권한을 가져야 헌터 분들에게 더 큰 보상을 약속드릴 여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헌터 연맹이라는 단체가 가장 큰 걸림돌이고 말입니다.”

승한은 강동훈 소령의 말에서 안석환이 헌터 연맹을 만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정부를 거치지 않고 헌터들에게서 바로 괴물의 사체를 구하겠다는 속셈. 어찌 보면 정부를 배제하고 헌터들이 시장에 직접 괴물의 사체를 처분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다. 물론 정부에게는 고역일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칫 악순환의 시작이 될 수 있었다. 정부의 예산이 메마르고, 정부와 헌터들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건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돈 때문에 정부가 겨우 구축해 놓은 헌터 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그렇다고 헌터 연맹을 부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이미 헌터 연맹은 체계가 잡혀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헌터 연맹과 꾸준히 협상을 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지지부진하게 이야기가 진행될 뿐,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그건 이 뒤에 오시는 분께서 말씀해 주실 겁니다.”

강동훈 소령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몸을 돌려 커피숍 입구를 향해 경계했다.

승한 역시 커피숍 안으로 누군가 들어온 것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얼굴의 아저씨가 정장을 빼입고 들어오고 있었다.

‘누구지?’

정장을 입고 있는 걸 보면 적어도 군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부 측 정치인일 확률이 높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강동훈 소령의 인사를 받고는 승한의 맞은편에 앉았다. 원래는 강동훈 소령이 앉아있던 자리였지만 그는 자리를 비켜 그 옆자리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김승한 헌터.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 국무총리 박원영이라고 합니다.”

“국무총리……?”

승한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거물에 눈을 크게 떴다. 강동훈 소령이 왜 그렇게 상대에게 깍듯하게 대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소령이든 대령이든… 국무총리 앞에서는 그게 그거지.’

국가 원수인 대통령 다음가는 권력을 거머쥔 자. 그가 바로 국무총리 박원영이었다. 승한은 그가 자신을 보고자 안양까지 직접 찾아왔다는 게 놀라웠다.

“반갑습니다. 김승한이라고 합니다.”

승한은 잔뜩 얼어붙어서 인사했다. 아무리 승한이 헌터들 중 최고로 잘 나간다고는 하지만 승한은 헌터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까지 자신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하고 높은 자리인지 알지 못했고, 반면 국무총리라는 이름은 승한이 어릴 때부터 항상 들어온 드높은 정치인의 자리였다.

“이전부터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니 반갑군요.”

“저를 보고 싶으셨다고요?”

“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번 괴물들의 출현에서 활약이 대단했다고요.”

박원영은 승한을 보자마자 그를 띄워 올렸다. 이미 많이 들어온 이야기긴 했지만 승한은 국무총리씩이나 되는 그가 자신을 칭찬하자 머쓱해졌다.

“승한씨만이 아니라 대체로 안양지역 내에 있는 헌터들의 수준이 높습니다. 승한씨는 그 중에서 최고, 어쩌면 한국, 세계에서 최고일지도 모르죠. 승한씨는 저희 한국의 자랑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잡담을 나누려고 저와 만나려고 하신 건 아니실 것 같은데… 무슨 일이십니까?”

박원영과의 자리가 불편한 승한은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와 딱히 나눌 이야기도 없었다. 승한은 정치를 잘 몰라서 그와 깊게 나눌 이야기도 없었다.

그나마 나눌 이야기라면 방금 전 강동훈 소령이 말한 헌터 연맹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헌터 연맹에 관한 이야기입니까?”

“비슷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헌터 연합에 가입되어 있는 헌터 분들과 정부의 관계를 다시 개선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승한씨와도 관계도 다시 개선해야겠지요.”

정부의 입장에서 헌터 연맹은 헌터들과 정부 사이에 끼어든 골칫거리였다. 원래대로라면 헌터들이 쓰러뜨린 괴물들의 사체를 정부와 타협해서 가격을 측정하고 적절한 보상을 하면 끝날 일을 헌터 연합의 개입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헌터 연맹의 개입으로 인한 헌터와 정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했다. 박원영은 바로 그 일을 언급하고 있었다.

“어떻게 말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기본적으로 괴물의 사체에 대한 적절한 가격 측정은 물론, 거기에 동의한 헌터 분들에게 국가에 공헌한 업적을 인정하는 훈장과 함께 혜택을 드릴 생각입니다. 세금 감면을 비롯해 승한씨의 자손들이 추후 학교에 진학할 때 입학사정관 제도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추진 중입니다. 아마 조만간 헌터 분들에게도 전체적으로 연락이 도착할 겁니다.”

훈장, 세금 감면, 자손에 대한 여러 혜택들.

명예를 바란다면, 그리고 자손들을 생각한다면 분명 매력적인 제안이긴 했다. 어차피 헌터들은 이미 충분히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조금 손해를 입더라도 여러 혜택들과 함께 훈장을 비롯한 명예를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긴 했다.

물론 명예보다는 더더욱 많은 돈을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 혜택으로 헌터들 중 절반만 헌터 연맹에서 떨어뜨려 놓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박원영의 말을 듣던 승한은 한 가지 사례가 떠올랐다.

“……그 약속, 지켜지긴 하는 겁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십니까?”

“6.25참전 용사들만 해도 제대로 된 복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저희 동네 할아버지만 해도 6.25참전 용사신데, 길에서 폐지 주우시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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