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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아롤
반대로 루시퍼의 얼굴을 조금 구겨졌다. 용의 얼굴에 주름이 잡히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살아있나?
승한은 휘청거리며 루시퍼를 향해 다가왔다. 완전히 막아내는데는 실패했지만 죽을 정도의 타격은 아니었다. [올림포스]의 힘으로 몸을 보호한데다가 4레벨의 [불굴의 육체]로 강화된 힘 덕분에 승한은 웬만한 공격에는 쉽게 죽지 않았다.
승한 역시 몸이 성치 않았지만 그건 루시퍼도 마찬가지였다. 듀란달에 이마를 꿰뚫리고, 듀란달을 통해 성화의 힘이 온 몸에 퍼졌다. 더군다나 방금 전 승한을 죽이고자 온 힘을 쏟아 부은 탓에 루시퍼는 힘의 대부분을 쏟아 부은 상태였다.
“공격해라!”
그 순간, 아게일이 가장 먼저 루시퍼를 향해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도약한 아게일은 루시퍼의 날개 위로 타올랐다. 승한에게 집중하고 있던 루시퍼는 아게일이 날개 위로 달라붙자 파리를 떨쳐내듯 날개를 휘둘렀다.
후우웅-.
파악-.
아게일은 검을 날개 윗부분에 꽂아 넣었다. 검이 조금 틀어박히며 아게일이 검을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버텼다. 확실히 루시퍼의 날개짓은 이전에 비해 힘이 많이 빠져있었다.
아게일을 선두로 다른 천족들 역시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한이 죽지 않았고, 아게일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좌절했던 천족들은 승한이 무사하다는 사실과 아게일이 선두로 나섰다는 사실에 다시 사기를 얻었다.
-이 날파리 같은 것들이…….
천족들은 루시퍼의 몸 위로 하나 둘 올라타기 시작했다. 승한에게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천족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물론 루시퍼에 비하면 초라하겠지만 그렇다고 몸 위로 올라와 검을 휘두르는 천족들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었다.
화르르륵-!
막 루시퍼가 몸을 흔들어 천족들을 떼어내려 할 때, 그를 향해 성화의 불길이 쏘아졌다. 붉은색에 불과한 불길이었지만 제법 불길의 규모가 커서 루시퍼의 온 몸을 뒤덮었다.
성화의 불은 루시퍼의 몸에 타고 있는 천족들을 태우지 않았다. 애초에 승한이 목표를 루시퍼에게로 한정했고, 성화의 불길은 천족들에게 치명적인 힘도 아니었다. 천족들은 성화가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루시퍼의 몸 위를 검을 푹푹 찌르고 베기 시작했다.
-귀찮은 것들!
쉬이이이익-.
루시퍼는 성화로 이글거리를 몸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천족들은 루시퍼가 갑자기 아래로 하강하자 그의 몸을 꽉 붙잡거나 아예 몸에서 떨어져 뛰어내렸다.
콰앙-!
루시퍼의 몸체가 바닥에 떨어지며 땅 아래를 부쉈다. 루시퍼의 몸에 붙어 있던 천족들이 사방으로 튕겨져 나가고, 몇몇 천족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몸체에 깔리기도 했다.
루시퍼는 천족들을 깔아뭉개며 크게 웃었다.
-건방지게 굴어댄…….
콰직-.
그 순간, 다시 한 번 그의 머리 위로 한 자루의 검이 찔러 들어왔다. 넝마가 된 갑옷을 입고 비틀거리며 듀란달을 찔러온 승한은 성화를 검으로 흘려보내며 물었다.
“건방지게 뭐?”
-네 이노옴…….
“넌 대사가 다 그게 그거란 말이야. 알속에 오래 처박혀 있어서 그런가? 말재주가 없어.”
콰드드득-.
듀란달이 루시퍼의 두개골을 쪼개고 그의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승한은 루시퍼가 반격하기도 전에 그를 향해 다시금 듀란달을 크게 휘둘렀다.
서억-.
루시퍼의 머리가 절반가량 베어졌다. 용으로 변한 루시퍼가 다시금 길게 고통에 젖은 비명을 토해냈다.
루시퍼가 머리를 크게 흔들며 다시금 비상하기 시작했다.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동시에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승한은 몸을 크게 휘청거리다 베어진 두개골을 잡으며 버텼다.
촤악, 사아아악-.
그러면서도 승한은 듀란달을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며 [백검]을 뿌려댔다. 루시퍼의 몸에 작고 큰 상처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며 그 상처 사이로 성화의 불길이 흐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냄새나. 입 닫아.”
뻐억-!
승한은 다리에 [올림포스]의 힘을 담아 루시퍼의 입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그러자 크게 벌어졌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콰앙-!
그러자 루시퍼의 입속에서 뿜어져 나오던 마기의 브레스가 입속에서 폭발했다. 승한은 다 베어진 두개골을 발로 밟고 크게 도약해 루시퍼의 몸 위로 올라갔다.
“흐읍!”
승한이 듀란달을 높게 들어올렸다. 일도양단의 기세를 품은 듀란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성화의 힘을 가득 머금었다. 황금색의 성화가 감돌며 [증폭]의 힘이 점점 더 성화의 불길을 거세게 피웠다.
‘단번에 베어야 한다.’
승한은 더 이상 기회가 많지 않았다.
방금 전 루시퍼에게 브레스를 얻어맞고 온 몸이 만신창이였다. 루시퍼의 마기는 승한의 온 몸을 부식시키고 썩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몸속으로 들어와 승한의 뼈를 부수고 내장을 태웠다.
힘이 남아있는 건 고사하고 몸이 더 이상 버티질 못했다.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4레벨의 [불굴의 육체]가 가진 강인함 때문이었지, 금방 쓰러지더라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승한은 이번 한 번에 완전히 힘을 전부 끌어다 쓸 생각이었다.
우우우우웅-.
듀란달의 위로 성화와 함께 [올림포스]의 힘이 덧씌워졌다. 산과 같은 무게가 듀란달을 덮었고, 그 무게는 고스란히 승한의 팔을 통해 느껴졌다.
마치 산 하나를 두 손으로 떠받들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승한은 그 무게를 두 손으로 떠받들며 성화의 힘을 가득 모았다.
-내 몸에서 떨어져라!
루시퍼가 몸을 크게 흔들었다. 바닥에 몸을 처박기도 하고, 날개를 크게 펄럭이기도 했다. 승한은 몇 번이고 몸을 휘청거렸지만 결코 떨어지지는 않았다.
화르르륵-.
성화의 힘이 듀란달을 가득 채웠다. 새하얀 검신은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승한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전부 쏟아부었다. 성화와 [올림포스], 그리고 [증폭]. 성검 듀란달에 승한의 능력 모두가 들어와 그 안에서 승한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듀란달이 일도양단의 기세를 품었다. 아롤이 생전에 처음 산을 베었던 검격이 승한의 검끝에서 펼쳐졌다. 산을 베는 기세가 아닌, 산을 짓누르는 기세로 말이다.
콰아아앙-!
-크아아아아악!
검이 떨어졌다고 믿기 어려운 소리가 루시퍼의 등 위에서 펼쳐졌다. 루시퍼는 마치 등 뒤에서 작은 검이 아닌, 산 하나가 떨어진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올림포스]의 힘이 검에 가득 모여들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성화의 힘 역시 루시퍼의 몸을 태우기 시작했다. 땅에 잠시 떨어졌다 비상하던 루시퍼는 승한의 일검에 등이 크게 베어지며 아래로 떨어졌다.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힘에 의해 허공에서 추락한 루시퍼는 몸을 휘청거리다 못해 고통에 몸부림쳤다.
콰득, 콰드드득-.
승한의 검은 루시퍼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등을 베어낸 검은 등가죽을 베어가며 점차 오른쪽의 날개로 향했다. 성화를 두른 검은 단단한 날개에서 막혀들었다가 [올림포스]의 힘을 더해 그것을 베어냈다.
촤아아악-.
-카아아아악! 네 노오오옴!
한쪽 날개가 떨어지자 그 자리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 나왔다. 분수처럼 솟아오른 검붉은 피가 승한의 몸 위를 비처럼 덮었다. 하지만 승한은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검을 위로 올려 들었다.
후웅-.
콰앙-!
다시금 승한의 검이 아래로 떨어졌다. 루시퍼의 몸이 크게 뒤로 꺾였다. 날카롭기도 날카로웠고 승한의 검은 산과 같은 무게가 있어 루시퍼의 몸 전체에 충격을 줄 정도였다.
우드드드득-.
그 순간, 용으로 변한 루시퍼의 몸이 다시 작아지기 시작했다. 몸을 크게 흔들며 덩치가 작아진 루시퍼는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쪽 날게가 베어지고, 온 몸 가득 수많은 상처를 입은 타락천사의 모습으로 말이다.
“대체… 넌 뭐 하는 녀석이지?”
“기껏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서 한다는 말이 그거냐?”
여유롭게 말하고는 있지만 승한의 몰골도 루시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날개가 잘리고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루시퍼나, 온 몸을 검게 그을리고 갈비뼈가 부러져 휘청거리고 있는 승한이나 조금만 툭 건드려도 쓰러질 것 같은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단 하나 다른 점이 있었다. 루시퍼와는 달리, 승한에게는 아직 아군이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안타깝게도 루시퍼는 듀리안처럼 마물들을 부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별 해괴한 짓들을 다 하는군. 이제는 천족 나부랭이 하나를 가지고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지? 설마 제2의 아롤을 만들 셈인가?”
“……말 참 많군. 이만 죽지 그래?”
승한은 손을 들어 성화를 루시퍼에게 쏘아냈다. 루시퍼는 한쪽 남은 날개를 가볍게 휘둘러 승한이 쏘아낸 성화를 쳐냈다. 그러자 승한과 루시퍼 둘이 동시에 몸을 휘청거렸다.
승한의 뒤로 한 명의 천족이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반면 다른 천족들과 아게일은 루시퍼를 빙그르 둘러쌌다. 아게일을 비롯해 살아남은 천족은 모두 일곱 명뿐이었다.
“날 죽일 셈인가?”
루시퍼가 아게일을 바라보며 물었다. 승한을 바라볼 때와는 달리 분노에 차 있지 않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아게일은 그런 루시퍼를 빤히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그래야 하겠습니다.”
“넌 저기 있는 건방진 녀석과는 다르군.”
“당신이 저희를 낳았음에는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저희를 등지고 죽이려 했다고는 하나, 그 사실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도 날 죽일 생각은 변함이 없나 보군.”
“저희를 보살피시는 천사님들은 당신을 배덕하고, 반드시 죽여야 할 악마로 말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어떤 존재라 할지라도 저는 그 말씀을 따를 뿐입니다. 이해하십시오.”
아게일이 검을 높게 들었다. 그의 검끝은 루시퍼의 목으로 향해있었다. 지금은 다른 천사들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생전에 천사였던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한 악마였다.
“이해라… 나를 죽이려는 것을 이해하라니, 어처구니없는 말이군. 심지어 그 상대가 내가 만든 자식들임에야.”
“거 진짜 말 많네. 아게일 님, 안 베실 겁니까?”
승한의 물음에 아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더 이상 루시퍼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부디 저를 원망치 마십시오.”
“어차피 날 죽여봤자 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것을 알아라, 내가 버린 아이들아. 나는 반드시…….”
사악-.
푸욱-.
아게일의 검이 루시퍼의 목을 베었다. 그는 다시 죽는 순간까지도 유언, 혹은 저주와 같은 말을 남겼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긴 선물은 승한을 비롯한 다른 천족들을 경악케 만들었다.
콰득, 콰득-.
떨어진 머리가 아게일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아게일은 얼굴을 파랗게 질린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가 옆으로 쓰러지자, 루시퍼의 머리도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네놈의 목덜미를 물어뜯지 못한…….”
퍼엉-!
승한은 머리가 잘려서까지도 입을 여는 루시퍼의 머리를 성화로 태워버렸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그의 머리를 태운 승한이 짜증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