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20화 (120/223)

0120 / 0223 ----------------------------------------------

19. 아롤

콰드득, 우드드득-.

온 몸의 뼈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뒤틀린 뼈는 점차 덩치를 불려가더니 검은 털들을 온 몸에서 뽑아냈다.

승한은 변해가는 루시퍼를 그대로 두고 보지 않았다. 재빨리 검을 휘두르며 성화의 힘을 뿌려냈다.

성화와 듀란달의 검격이 루시퍼의 몸에 조금씩 상처를 만들어냈다. 인간이나 천족과 같은 붉은 피가 흘렀다. 하지만 루시퍼는 승한이 검을 휘두르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빠르게 몸을 불려갔다.

천족이나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던 루시퍼는 곧 거대한 새의 모습으로 변했다. 거대한 까마귀와 같은 모습이었는데, 덩치가 수십 미터에 달하다 보니 새가 아니라 용처럼 보였다.

“……미친.”

검을 휘두르던 승한은 거대한 용의 모습으로 변한 루시퍼를 보며 검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루시퍼는 몸에 생긴 자잘한 상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여전히 온 몸의 뼈를 비틀며 덩치를 불리고, 한 쌍의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승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보이느냐?

루시퍼의 목소리는 마치 아포피스의 목소리처럼 승한의 머릿속을 쩌렁쩌렁 울렸다. 승한은 그의 물음에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스레 대답했다.

“그럼, 그렇게 거대한 몸집이 안 보일까?”

-아직도 그 건방진 말투는 변함이 없구나. 그런 점은 오히려 천족이라기보다는 인간인 아롤을 꼭 빼어 닮았어.

루시퍼의 말에 승한은 내심 찔렸다. 그의 말처럼 승한은 천족이 아니라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루시퍼라고 해도 승한이 천족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승한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분명 천족인 자안이었고 인간의 영혼이 천족의 몸에 들어와 있을 것이라고 어떻게 생각이나 할까? 더군다나 통상적으로 인간은 천족보다 훨씬 약한 종족이었다.

“덩치가 커지면, 더 강해지기라도 하나?”

-그거야 직접 몸으로 느껴보면 알 것이다.

루시퍼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거리며 승한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그의 행동에 승한은 깜짝 놀라 급히 방패를 들어올렸다.

콰아아아아-!

입안에서 뿜어진 연기, 정확히는 마기의 덩어리가 승한을 덮쳐왔다. 승한은 급하게 [올림포스]의 힘을 방패에 휘감고 그 마기를 막아냈다.

‘뭐 이리 강해?’

거대한 용의 모습을 한 루시퍼의 입에서 뿜어진 마기의 브레스는 [올림포스]를 두른 방패를 뚫고 승한의 몸을 멀리 밀어냈다. 듀란달의 힘까지 겨우 동원해 막아내긴 했지만 승한은 그 힘에 결국 밀려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콰앙-!

마기의 힘에 밀려난 승한이 바닥에 꽂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게일과 천족들은 거대한 용으로 변한 루시퍼를 보며 기가 질렸다.

“……그래도 한 때는 천사였던 분이 그 모습은 무엇인가? 진정 악마로 변한 것인가?”

아게일은 루시퍼의 모습을 보고 한탄했다. 그의 모습은 한 때 천사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악마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아게일은 그런 루시퍼의 모습에서 자신이 존경해 마다않던 천사가 타락했다는 슬픔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저, 저런 악마를 어떻게 죽이라는 겁니까?”

“불가능합니다!”

“도망쳐야…….”

천족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루시퍼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도 절대 천족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집채보다 훨씬 거대한 용은 입에서 브레스를 뿜었고, 다른 천족들보다 훨씬 강한 천족 자안을 한번에 날려버렸다.

아게일은 물론, 천족들 역시 기세가 꺾인 건 마찬가지였다. 듀리안을 비롯한 수백 마리의 마물들보다 루시퍼 한 존재가 훨씬 더 두려웠다. 그의 입김 한 번이면 이 자리에 있는 천족들 모두가 목숨을 잃고 흩어질 것이다.

“제대로 된 힘도 가지지 못하고 허세가 심한 거 아닌가?”

화아악-.

퍼퍼펑-.

그 때, 어디선가 날아온 황금빛 성화가 루시퍼의 몸 위를 두드렸다. 아무리 용의 모습으로 변했다 해도 루시퍼 역시 성화의 힘은 무시할 수 없었는지 날개로 성화를 막아냈는데, 조금이지만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 살아 있었나?

“그럼 그거에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나?”

승한은 새까맣게 몸을 그을린 상태로 [귀신]을 이용해 날아왔다. 루시퍼는 호박색의 노란 눈동자로 승한을 다시금 노려봤다. 승한은 루시퍼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온 몸이 저린 느낌을 받았다.

‘젠장. 진짜 엄청나네.’

차라리 듀리안 같은 악마 서넛을 동시에 상대하는 게 훨씬 쉬울 것 같았다. 용으로 변한 루시퍼는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저런 녀석을 상대하라고 덥석 스테이지를 내놓은 ‘그’라는 존재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아무리 [올림포스]로 방패를 들어 막아냈다고는 하지만 루시퍼가 쏘아낸 브레스를 정면으로 맞고 멀쩡할 수는 없었다. [수호신]과 [올림포스]라는 능력을 얻고 난 이래로 승한은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삭신이 쑤시고, 갈비뼈 하나가 부러진 듯 오른쪽 가슴이 특히 더 아팠다.

-그걸 맞고 살아있는 게 더 이상한 일이군. 그 힘은 뭐지? 성화도 아니고, 듀란달의 힘도 아닌데? 그 방패가 특별한 건가?

“듀리안 녀석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악마라는 것들은 원래 그렇게 남들에게 관심이 많나?”

-관심이 갈 수밖에 없군. 그만큼 못 보던 힘이니까. 어디 보자… 오호라, 그건…….

“시끄럽고, 그 주둥아리 그만 놀리고 이거나 처먹어!”

승한은 듀란달을 창처럼 앞으로 내세우고 달려들었다. 단번에 루시퍼의 머리 위로 검을 꽂아놓을 생각이었다.

동시에 승한은 루시퍼의 온 몸에 걸쳐 [올림포스]의 힘을 넓게 펼쳤다. 이 정도 범위에 [올림포스]의 힘을 한꺼번에 가한 건 수백 마리의 마족들을 동시에 짓눌렀을 때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범위가 넓고, 힘의 크기가 큰 만큼 루시퍼 역시 승한이 가한 힘에 꽤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루시퍼는 승한의 힘에 조금 주춤거리며 날개를 펄럭이던 것을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올림포스]의 힘에 몸을 기울이던 루시퍼는 승한을 향해 날개를 크게 펄럭였다. 그러자 거센 바람과 함께 마기가 칼날이 되어 승한에게로 쇄도했다.

승한은 온 몸에 성화를 둘렀다. 동시에 [올림포스]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방패 속으로 몸을 웅크렸다. 덕분에 마기의 칼날 속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승한이 루시퍼를 향해 돌진했다.

콰직-.

키아아아아아-.

황금빛의 성화를 두른 승한의 검이 용의 모습을 한 루시퍼의 이마에 박혀들었다. 용의 입이 벌어지며 비명이 터져 나오고, 승한은 검이 박힌 자리로 성화의 불꽃을 깊숙이 흘려보냈다.

-네 이노옴!

루시퍼의 본체와 그의 목소리는 다른 방향에서 들려왔다. 루시퍼의 목소리는 마치 아포피스처럼 쩌렁쩌렁 울렸고, 고통에 찬 비명은 용의 모습은 한 루시퍼의 입에서 들려왔다.

루시퍼는 승한을 떨쳐내기 위해 거세게 저항했다. 계속해서 머리를 흔들며, 입 안에서 브레스를 뿜어냈다. 그 격렬한 저항에 승한은 결국 루시퍼의 머리에 박아놓았던 검을 뽑아내 뒤로 멀찍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효과가 있다!’

다행히 승한의 검은 루시퍼에게 박혀들었다. 날개가 워낙 단단해서 혹시라도 검이 제대로 박히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역시나 성화를 두른 듀란달을 막아낼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다.

처음으로 공격을 제대로 성공한 것이었지만 효과는 탁월했다. 루시퍼의 머리에 박힌 검을 타고 그의 몸속으로 성화의 힘을 꽤나 많이 흘려 보냈다. 더군다나 승한의 검은 보통 검이 아닌, 영웅 아롤의 힘이 내재되어 있는 성검 듀란달이었다.

천사 루시퍼였다면 모를까, 이제는 완전히 악마가 되어버린 루시퍼에게 있어서 듀란달과 성화의 조합은 제법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승한의 검이 떨어진 지금 이 순간에도 루시퍼는 몸속으로 들어온 성화의 힘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전부 죽어버려라!

루시퍼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승한을 비롯한 천족들 모두를 향해 브레스를 쏘고자 입을 크게 벌렸다. 승한은 루시퍼가 화가 나서 작정하고 모두를 죽일 생각을 했음을 눈치 챘다.

“피해요!”

승한은 천족들을 향해 미리 경고했다. 가능한 막아주고 싶지만 저 공격을 막다가는 승한도 뼈를 못 추릴 판이었다. 승한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브레스로부터 몸을 피했다.

천족들 역시 승한의 경고와 루시퍼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신속히 움직였다. 잠시 후, 루시퍼의 입에서 마기의 덩어리가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아-.

뜨거운 열기를 가진 마기의 덩어리가 승한이 있던 자리를 태우기 시작했다. 루시퍼는 마기를 뿜어내며 승한이 있는 자리를 계속해서 쫒았다.

승한은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루시퍼가 뿜어내는 마기를 피했다. 하지만 루시퍼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승한을 쫒았다.

‘언제까지 쏠 생각이지?’

아예 작정을 한 듯, 루시퍼는 뿜어내던 마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승한은 미처 다 피해내지 못하고 몸을 돌려 방패를 들고 [올림포스]의 힘을 온 몸에 둘렀다.

쿠우우우우-.

“아아아아악-!”

승한이 방패로 몸을 웅크리고 브레스를 온 몸으로 받아냈다. 방패와 함께 승한의 몸을 짓누르는 브레스는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루시퍼는 아예 자신이 몸속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토해낼 기세였다.

쩍, 쩌적-.

방패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버텨 주면 좋으련만, 승한의 방패는 루시퍼의 마기를 계속해서 받아낼 만큼 단단하지 않았다. [올림포스]의 힘이 충격을 대부분 상쇄시켜 준다고는 하지만 방패를 무적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조금만 더…….’

쩍-.

방패를 응원하던 승한은 마지막 순간, 반으로 갈라지는 방패를 보며 중얼거렸다.

“오, 시발.”

콰아아아-!

방패를 반으로 부수며 루시퍼의 브레스가 승한의 몸을 덮쳤다. [올림포스]의 힘을 몸에 두르며 최대한 보호한다고 보호했지만 승한은 결국 공격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야 말았다.

그렇게 루시퍼가 브레스를 쥐어짜 승한을 공격하리를 몇 분, 루시퍼는 입을 닫으며 땅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 역시도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마기를 쥐어짜 브레스를 쏘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건방진 자식.

루시퍼의 거대한 몸체가 비틀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듀란달이 머리에 박히고, 듀란달을 통해 성화의 힘이 흘러 들어와 온 몸에 퍼져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몸을 안정시켜야 할 마기를 몇 분 동안 쉬지 않고 쏟아냈으니 몸이 멀쩡할 리 없었다.

하지만 루시퍼는 그래도 승한을 제거했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만큼 승한은 루시퍼에게 있어서 눈엣 가시 같은 존재였다. 성화를 다루고, 듀란달이라는 검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악마가 된 루시퍼에게는 거슬렸다. 더군다나 자신의 몸에 손을 대고, 완전한 부활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잃어버린 마기는 다시 되찾으면 그만. 시간이 너무 이르게 부활하는 바람에 원래의 힘의 일부밖에 되지 않았지만 남은 힘은 차차 회복하면 될 일이었다.

-이제 너희만 남았구나, 불쌍한 아이들아.

루시퍼는 힘겹게 비틀거리며 아게일을 비롯한 천족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천족들은 거대한 용이 자신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자신들을 부르자 덜덜 떨었다.

아무리 힘이 다 빠졌다고는 하지만 천족들은 루시퍼를 감히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온전한 악마나 다를 게 없어보였다. 아게일 역시 그 점은 다르지 않게 생각했다.

승한이 쓰러진 지금, 천족들은 완전히 사기가 꺾였다. 오직 아게일 혼자서만이 루시퍼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갈 뿐이었다.

-호오. 그래도 용기가 있는 녀석이 하나 있군. 다른 녀석들은 목숨이 그리 아깝나 보지?

루시퍼의 도발에도 천족들은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아게일 역시 루시퍼를 바로 앞에서 마주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뭣들 해요? 저거 다 죽어가는 거 안 보입니까?”

그 때, 반가운 목소리에 천족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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