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12화 (11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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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7스테이지

촤악-.

화르르륵-.

승한은 가장 앞에 있는 마물들을 베어내며 성화의 불길을 뿌려댔다. 성화를 사용할 만큼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지만 연거푸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는 조금씩 성화를 담아 상대하는 게 훨씬 수월하게 마물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정도는 무난하네.’

4레벨의 [불굴의 육체]덕분인지 조금씩 성화의 힘을 조절해서 사용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성화의 힘을 주황색까지 끌어다 사용한다면 모를까, 붉은색의 성화는 부담이 극히 적었다.

물론 몇 시간씩이고 성화의 힘을 사용한다면 힘이 들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승한은 그 정도로 오랫동안 성화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마물들이 많기는 하지만 [백검]의 검격을 이용해 싸운다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싸움이었다.

‘아게일, 역시 보는 눈이 있어.’

승한은 마물들을 향해 [백검]의 검격을 날리면서 뒤쪽에서 천족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 아게일을 힐끔 바라봤다.

아게일이 승한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한두 명이면 모를까 서른 명에 달하는 천족들 모두가 마물들과 함께 섞여서 싸우게 되면 승한이 [백검]의 검격을 날릴 범위가 줄어들고, 조심스럽게 싸우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천족들이 싸움에서 빠진 이상 승한은 거칠 것 없이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백검]의 검격을 쉬지 않고 사정하지 않고 휘두르고 그 안에서 성화의 힘을 세밀하게 조절할 필요도 없었다. 닿는대로 베고, 태우면 되는 것이었다.

아게일은 바로 그런 승한의 싸움 방식을 눈치 채고 천족들을 말린 것이다. 이미 그는 승한이 어떻게 싸우는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까지 대부분 파악을 한 상태였다.

촤아아아악-!

마치 분쇄기에 갈려 나가듯 승한을 향해 달려들던 마물들이 갈기갈기 베어졌다. 승한은 멀리 있는 마물들을 향해서 [백검]의 검격을 길게 날렸고, 가까이 다가오는 마물에게는 검격을 잘개 쪼개어 퍼뜨렸다. 그렇게 사정없이 검을 휘두르자 마물들이 낙엽처럼 베어져 쓰러졌다.

키아아아아-!

그 때, 거대한 뱀이 아가리를 벌리며 승한을 위에서 덮쳐왔다. 녀석의 몸에는 수십 개의 자잘한 상처가 나 있었는데, 바로 승한이 발린 [백검]의 검격에 당한 상처였다.

그래도 보통 마물은 아니라는 걸까? 녀석은 성화를 머금은 승한의 [백검]에도 어느 정도 내성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공격을 완전히 방어해 내는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승한이 휘두른 검격에 입은 상처가 꽤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덩치가 워낙 커서 자잘한 상처만으로 숨통을 끊기는 어려워보였다. 승한은 거대한 뱀을 향해 날아가며 성화의 힘을 더욱 키웠다.

화르르륵-.

성화의 색이 황금색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승한은 뱀의 아가리를 향해 그대로 날아들었다.

터업-.

뱀은 승한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뱀은 승한을 집어삼킨 뒤 확실히 숨통을 끊기 위해 송곳니를 움직였다.

콰드드득-.

하지만 뱀의 입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핏물 흐르는 육질의 소리가 아닌,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뱀의 눈가에 주름이 펴지며 동그랗게 떠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콰아아아-!

캬아아아-!

뱀의 입에서 거대한 불길이 터져 나오며 입천장을 가르고 승한이 튀어나왔다. 승한의 방패에는 뱀의 어금니 자국이 나 있었는데, [올림포스]의 힘을 두른 방패는 오히려 뱀의 어금니를 부러뜨렸다.

입 천장이 베어졌다지만 뱀은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쉽게 죽지 않았다. 승한은 싸움을 길게 끌지 않을 생각으로 성화의 힘을 가득 끌어냈다. 승한의 검에 맺힌 성화의 불길이 한 순간 황금색에 더욱 가까워졌다.

성화의 불길을 머금은 승한은 검을 눕히고 뱀의 목 언저리로 움직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화악-!

검을 크게 휘두르며 승한이 [백검]의 검격에 성화의 불길을 머금어 쏘아냈다. 횡으로 크게 뻗어간 검격은 거대한 뱀의 머리를 그대로 통과하는 듯이 보였다.

피이익-.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움직임이 멈췄던 뱀의 머리에 가느다란 혈선이 생겨났다. 덩치가 워낙 커서 가느다랗게 보일 뿐, 실제로는 꽤나 굵직한 붉은 선이었다.

촤아아아악-!

혈선을 따라 뱀의 머리가 베어져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베어진 자리에서는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승한은 솟아오른 피분수를 피해 뱀에게서 멀어졌다. 머리를 잃은 뱀의 몸이 허물어지며 바닥에 처박히며 묵직한 소리를 만들었다.

남아있는 마물들은 몇 되지 않았지만 중심이라고 할 수 있던 뱀이 죽자 화가 났는지 승한을 향해 겁 없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승한은 그런 마물들을 향해 검을 연거푸 휘둘러 남은 마물들을 처리했다.

“후우.”

덩치만 거대했지만 뱀을 처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백검]이라는 능력이 있어서 광범위한 공격이 가능한 승한에게는 손쉬운 상대였다. 달리 생각하면 [백검]이라는 능력이 없었다면 상당히 귀찮았겠지만 말이다.

[파괴한 봉인석 : 2/2]

[처치한 악마의 씨앗 : 2/2]

남아있는 마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승한은 악마의 씨앗과 봉인석의 처리 여부도 확인했다. 모든 봉인석과 악마의 씨앗을 제거했으니 아마 이제 악마의 알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승한은 아게일을 비롯한 천족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승한이 홀로 수많은 마물들을 처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아게일은 이미 예상을 했는지 다른 천족들만큼 놀라지는 않아보였는데, 그래도 감탄 어린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하군.”

“감사합니다.”

“붉은 천사께서 정말 큰 힘을 주셨어. 아니, 그분의 힘뿐만이 아닌가? 자안, 네 능력은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군.”

아게일은 승한이 싸우는 모습에서 그가 성화의 힘 외에 다른 능력들을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검을 휘두르는 족족 검격이 뻗어나가는 것은 그렇다 쳐도, 결정적인 증거가 승한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 방패는 어떻게 한 건가? 저만한 크기의 마물의 어금니를 방어해 낼 만큼 단단한 방패는 아닐 텐데.”

아게일은 승한이 가진 방패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방패의 한 가운데 나 있는 새끼손톱만한 작은 홈은 뱀의 입속에서 어금니를 막아낸 자국이었다.

승한이 들고 있는 방패는 다른 천족들에게 보급된 것과 같은 질 좋은 방패였다. 하지만 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저만한 덩치의 뱀의 어금니를 막아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은 같은 무구를 사용하고 있는 아게일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뭐, 이것도 다 천사님의 축복 덕분이죠.”

승한은 이제 능숙하게 천사의 이름을 팔아먹었다. 사실은 천사가 아닌, [올림포스]의 힘 덕분이었지만 아게일에게는 그것을 확인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어찌 보면 천족인 자안의 입장에서는 천사의 이름을 팔아 누군가를 속인다는 게 불경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적어도 승한은 천사를 신처럼 떠받드는 신도가 아니었고, 그 이름을 파는데 별로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가?”

아게일은 승한이 천사의 이름을 언급하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더 이상 물어보기에는 더 급한 일이 남아있었다.

“그럼 이제 악마의 알이 나오는 건가?”

“아직까지는 별로 달라진 게 없네요.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더…….”

승한은 말을 이어가던 중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게일을 비롯한 다른 천족들 역시 스한이 느낌 불길하고 탁한 기운을 동시에 느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듯, 불길한 어떤 기운이 멀리에서부터 전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승한이나 아게일처럼 탁한 마기를 느끼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진득하고 불길한 마기의 덩어리였다.

“……엄청난 게 나와 버렸군.”

“그러게 말입니다.”

승한은 멀리서 느껴지는 기운에 몸을 잘게 떨었다. 두렵다기보다는 느 탁한 기운에 몸에 소름이 돋은 것이다.

[스테이지 7.1]

달성 조건 : 첫 번째 알을 부숴라.

제한시간 : 24시간

남은시간 : 17 : 48 : 55

보상 7.2스테이지로의 이동

승한은 남은 시간을 확인할 겸 스테이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 중 남은 시간보다 먼저 승한의 눈에 들어온 건 스테이지의 달성 조건이었다.

‘첫 번째 알이라 이거지?’

아무래도 악마의 알은 하나가 아닌 모양이었다. 단순히 ‘악마의 알’이 아니라 ‘첫 번째’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걸 보면 말이다. 생각해 보면 처음 스테이지를 시작했을 때도 아게일은 ‘첫 번째 알을 부숴야 한다.’고 했다. 승한은 또 다른 악마의 알이 있을 것을 염두해 두고 힘을 분배할 생각이었다.

“이번엔 같이 움직이지.”

아게일은 승한에게 다른 천족들과 함께 움직일 것을 제안했다. 어차피 다수와의 싸움이 아니고 알을 파괴하는 일이니 승한이 개인적으로 혼자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하죠.”

승한도 이번엔 다른 천족들과 함께 움직이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물들과 싸울 때는 방해가 되었지만 그거야 비교적 약한 다수와의 싸움의 경우일 뿐, 아군이 많다는 건 절대 단점이 될 수 없었다.

승한은 아게일, 천족들과 함께 악마의 알이 나타난 방향으로 움직였다. 거리가 점차 가까워질수록 승한은 어떤 한 곳에서 느껴지는 마기가 점차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진짜… 지독한데.’

악마의 씨앗이라던 두 마리의 마물에게서 느껴지던 마기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진짜 악마도 아니고, 그 악마가 부화하기도 전인 알에서 이런 느낌이 풍겨온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저기 있군.”

시야에 알의 형체가 드러나자 아게일이 들고 있던 검을 들어 올리며 그것을 가리켰다.

알의 형태는 생각보다 훨씬 평범했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알이 보라색이라는 점이었다. 알의 색을 확인한 승한은 보라색 거미가 떠올라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보라색이 악마와 어떤 연관이 있는 색인가?’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보니 알의 크기는 대략 작은 집채만 했다. 가까이서 보면 고개를 들고 봐야 할 정도로 거대했다.

“이게 첫 번째 알인가?”

아게일은 보라색의 알을 올려다보더니 검끝으로 알을 쿡 눌러보았다. 그러자 알의 표면이 긁혀나가며 기분 나쁜 소리를 만들었다.

“단단하군.”

“못 벨 정도는 아니죠?”

“그런 것 같군.”

승한은 아게일이 자신에게 또 다시 검을 건네려 하자, 자신의 검을 흔들어보이며 거절했다.

“저도 검 있습니다.”

“……그렇군. 하긴, 이걸 베면 안에서 뭐가 나올지 모르는데 함부로 검을 놓을 순 없지. 경솔했다.”

승한은 의외로 아게일이 자신이 잘못했다며 물러나자 머쓱해졌다. 성화의 힘을 보여주고 난 뒤부터 아게일이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천족들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승한을 없는 것처럼 여기던 그들이 지금은 아게일에게 보내는 시선과 같은, 어쩌면 그것보다 더한 동경어린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승한은 이게 말로만 듣던 광신도 집단인가 싶었다.

아게일이 손을 들어 천족들을 뒤로 물렸다. 승한과 아게일의 뒤쪽으로 도열해 있던 천족들은 몇 걸음씩 뒤로 걷더니 아게일이 손을 내리자 걸음을 멈췄다.

“준비해라. 안에서 뭐가 나올지 모른다. 마물이나 마족, 악마와 같은 존재가 나오는 즉시 사살하도록.”

“알겠습니다!”

“단죄의 천사께서 우리의 곁에 있으심을 믿어라. 자안, 시작해라.”

아게일의 말에 승한이 검을 높게 들었다. 아게일이 가볍게 찌른 검에 흠이 날 정도라면 단단하긴 해도 충분히 벨만 했다. 승한은 혹시 몰라 알속에 있는 무언가까지 한꺼번에 베어버릴 생각으로 검에 성화의 힘을 가득 담았다.

“그럼, 베겠습니다.”

화르르륵-.

쐐애애액-!

말이 끝난 직후, 승한의 검이 아래로 떨어졌다. 성화의 불길과 함께 거센 검격이 알을 반으로 쪼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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