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11화 (1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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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7스테이지

‘응?’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 메시지에 승한은 눈을 깜박였다. 봉인석과 악마의 씨앗이라는 단어가 어딘가 모르게 친숙하게 느껴진 것이다.

‘봉인석은… 그 구슬인가? 악마의 씨앗은 그 마물이고?’

승한은 누가 알려주지 않고도 저절로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봉인석과 악마의 씨앗이 무엇인지, 그리고 악마의 알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까지도 말이다.

‘두 개의 봉인석을 부수고, 악마의 씨앗을 모두 제거하라. 그렇게 되면 악마의 알이 나타날 것이다.’

마치 누군가가 머릿속에 직접 이야기를 전해준 것처럼 자연스럽게 알게 된 정보였다. 그것은 모든 마물들을 죽이고, 봉인석이라는 구슬이 완전히 깨어진 순간 승한이 저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마도 이것 역시 스테이지의 내용 중 일부로 이 스테이지를 진행시킨 누군가가 승한의 머릿속에 직접 전해진 메시지일 것이다. 덕분에 승한은 지금껏 뿌옇게 칠해져 있던 안개 속을 어떻게 해쳐가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이겁니다.”

“뭐?”

“저 구조물에 있는 구슬 두 개를 모두 부수면, 악마의 알이 나타날 겁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그냥… 그냥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합니다.”

승한의 대답에 아게일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무작정 의심할 수도 없는 것이, 이미 승한은 충분히 뛰어난 실력과 성화라는 천사의 상징을 보인 후였다.

그가 하는 말에 대한 무게는 이미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가 천사에게 선택을 받은 만큼 천사의 말을 대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좋아. 그럼 이야기가 달라지겠군. 알이 아니라, 이 거대한 악마의 손을 찾아다녀야겠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악마의 알을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이미 한 번 보았던 구조물과 같은 구조물을 찾아다니는 게 더 빠를 것이다. 더군다나 구슬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이미 한 번 겪어보았던 만큼 두 번째부터는 찾는 게 더욱 수월할 것이다.

“다시 출발한다! 행군 속도를 높인다. 자안의 말대로 저것과 같은 구조물에서 구슬을 찾아 파괴한다!”

아게일의 말에 토를 다는 천족은 없었다. 승한을 보는 시선도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그가 천사의 선택을 받은 것보다 천사의 힘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달라진 시선이었다.

승한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힘을 사용할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말이다.

마물들의 시체를 밟고 천족들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방향을 알 수 없으니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고, 수많은 마물들이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이 있는데 천족들의 수를 나눌 수도 없었다. 어차피 승한이 대부분의 마물들을 죽이고 그들을 성화로 약하게 만들어서 천족들의 피해는 거의 없는 터라 행군은 바로 이어졌다.

‘여긴 마물들을 베어도 주는 게 없으니…….’

승한은 마물들을 그렇게 많이 베었는데도 돌아오는 보상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하나하나가 웬만한 마족보다 더 강했고, 심지어 마지막에 벤 마물은 베이모 정도는 아니더라도 외뿔 마족과는 비교할만 한 수준의 마물이었는데 타임 포인트를 1점도 주지 않았다.

물론 스테이지 속에서는 어떤 행동을 취해도 타임 포인트를 획득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물들이 워낙 현실에 나오는 괴물들과 느낌이 비슷했고, 단순한 미션이 아니라 현실과 같은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상 잘만 하면 타임 포인트를 기대해 볼 수도 있었다.

“자안, 대체 언제부터 힘을 얻은 거야?”

그 때, 자안의 옆에서 행군하던 크롬이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승한은 이번에도 크롬이 부담스러웠지만 어차피 다 까발려진 마당에 이번엔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얼마 전부터.”

“그러니까 언제?”

“자세한 건 나도 기억 안 나. 하지만 오래 되지는 않았어.”

정확한 시기는 승한도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테이지가 시작된 직후, 고작해야 몇 시간 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천족들 중에서는 자안과 가장 친하다 할 수 있는 천족이 바로 크롬이었다. 그는 자신과 친한 천족인 자안이 붉은 천사의 계시로 그녀의 힘을 얻었다는 게 무척 신기한 모양이었다.

“신기하다. 내 친구 중에서 천사님의 계시와 함께 힘을 얻은 천족이 있다니…….”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냐?”

“그럼. 성서에만 해도 천사님의 힘을 직접 손에 넣은 천족은 백오십 년 전 이후로 네가 처음일 걸? 다들 놀란 눈치인 거 안 보여?”

“……글세, 난 모르겠는데.”

“실감이 안 나서 그럴 거야. 하지만 진짜 대단한, 아니 역사적인 일이야. 자안, 네 이름은 이제 성서의 한 구절에 남게 될 거니까.”

호들갑을 떠는 크롬의 말에 승한은 멋쩍은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대단한 일이었나, 이게?’

승한은 성화의 힘을 그렇게 대단히 여기지 않고 있었다. 나르샤의 일로 특별한 힘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천족들의 반응을 보니 마족들보다 성화를 더욱 드높게 여기는 듯했다.

하긴, 마족들에게 있어서 성화가 자신들을 멸하는 특별한 힘이라고 한다면 천족들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이 모시는 신과 같은 천사의 힘이었다. 말 그대로 신성한, 신처럼 떠받들어야 하는 힘인 것이다.

자안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승한은 자안의 기억과 지식을 ‘알고’있을 뿐, 그 감정과 천사에 대한 경외감까지 얻지는 못했다. 그런 만큼 자안이 성화라는 힘과 붉은 천사를 어떻게 여기는지 머리로는 알지만 와닿는 건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말도 안 되는 힘을 얻었나 보군.’

승한은 성화라는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랐다. 생각보다 성화에 대한 천족들의 존경심이 강한 모양이었다.

‘[올림포스]는 대체 어떤 힘인 거지?’

승한은 성화보다는 이제 [올림포스]라는 힘에 더 관심이 갔다. 성화가 어떤 힘인지에 대해서는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갔지만, [올림포스]라는 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실제로 승한이 사는 세상에도 올림포스라는 산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승한은 가능하면 시간이 날 때 올림포스 산에 가 볼 생각이었다.

“저쪽이군.”

아게일은 방금 전 구조물의 구슬, 봉인석에서 느껴졌던 힘을 다시 발견했다. 기운은 꽤 멀리서 느껴졌는데, 방향을 잡은 아게일은 행군 속도를 높혔다.

“시간이 많지 않다. 속도를 높힌다.”

“여기서 더요?”

“힘든가?”

“아닙니다!”

천족들은 이제 거의 반쯤 뛰다시피 움직였다. 그래도 체력적으로 제법 탄탄한 이들뿐이라 아무리 오래 행군해도 지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삼십 분 정도 빠르게 행군하자 다시금 악마의 손을 닮은 구조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게일은 구조물을 발견한 즉시 주위를 살폈다. 천족들이 열 명씩 한 조를 이루어 주위를 수색했다.

“……마물은 없군.”

신기하게도 봉인석 근처에는 마물들이 없었다. 그건 승한이 느끼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며 멀리까지 나가봐도 느껴지는 마물의 기척은 고작 열 마리 안팎 정도에 불과했다.

‘봉인석을 깨는 순간 소환되기라도 하는 건가?’

처음 봉인석을 깨뜨린 순간, 승한은 직후 마물들이 주위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생각해 보면 그 기운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었다.

“아무래도 구슬이 깨진 뒤에나 마물들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건가?”

“네. 방금 전에도 구슬이 깨진 뒤에 마물들이 나타났으니까요.”

“차라리 마물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군.”

아게일은 마물들이 차라리 나타나지 않았으면 했지만 승한은 절대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승한이 받은 미션은 단순히 봉인석을 깨라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밖에도 악마의 씨앗을 제거하라는, 어떤 특정한 마물을 제거하라는 미션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물은 반드시 나타난다.’

마물들이 없음을 확인한 천족들은 다시금 악마의 손 모양의 구조물 위로 올라갔다. 아게일은 검을 뽑고 구슬 위로 섰다가 승한에게 검을 건넸다.

“네가 부숴라.”

“제가요?”

“그래. 그분이 힘을 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아무래도 이 일은 나보다는 네가 해야 할 일 같군.”

승한은 부담이 됐지만 그 말이 틀리진 않았다. 승한이 생각하기에도 지금 이 자리는 자신을 위해 준비된 무대나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이 자리는 승한이 천사의 안배를 받아들일 자격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승한은 아게일이 건네는 검을 받아 역수로 검을 쥐었다. 그리곤 구슬 위를 향해 있는 힘껏 내리찍었다.

콰직-!

구슬 위로 승한이 내리친 아게일의 검이 박혀들었다. 다시금 탁한 기운이 퍼져나왔고, 천족들은 그 기분 나쁜 기운에 몸을 움츠렸다.

‘온다!’

그리고 승한은 마물들이 몰려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몰려든다기보다는 어디선가 갑자기 생겨났다. 직접 눈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마물들의 기척이 갑작스럽게 나타날 리는 없었다.

“……이번엔 조금 거추장스러운 녀석이로군.”

그 중 승한은 ‘악마의 씨앗’의 존재가 어떤 녀석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기운도 역시 마기의 불꽃처럼 되어있는 마물이었지만, 무엇보다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한 형체가 인상적이었다.

“아포피스의 축소판인가? 덩치 한 번 거대하네.”

승한은 멀리서 보이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뱀 형태의 마물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얼마나 거대한 건지 거리가 꽤 떨어져 있으면서도 덩치를 알아볼 수 있었다.

녀석에 비하면 승한과 천족들이 올라와 있는 10미터 높이의 악마의 손이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어지간한 고층 건물이라도 녀석에 비하면 작게 느껴질 것이다.

보통 뱀이라기보다는 코브라처럼 얼굴에 가까운 몸통이 두꺼웠는데, 마치 녀석이 수많은 마물들을 이끌고 오는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저런 녀석이 최종 보스가 아니면… 대체 다음엔 뭐가 나오려는 거지?”

두 개의 봉인석을 부쉈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악마의 씨앗을 제거하는 것뿐. 녀석을 죽이게 되면 악마의 알이 나타날 것이다.

물론 악마의 알을 그냥 부술 수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악마의 씨앗은 악마의 알을 지키는 일종의 문지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악마의 알을 또 다른 문지기가 마물의 형태를 빌려 지키고 있을 것이다.

“……엄청난 녀석이 나왔군.”

“저 녀석은 제가 잡죠.”

“네가 아니면 잡을 녀석도 없겠어.”

“겸손 떨지 마시고요. 아게일님도 충분히 저 녀석 정도는 잡을 수 있지 않습니까?”

승한은 아게일의 실력을 높게 샀다. 그의 실력은 베이모나 쌍둥이 마족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성화나 마화가 없는 순수한 실력뿐이라는 점에서 그들보다 더 강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악마의 씨앗이 아무리 강해도 아게일이라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승한처럼 손쉽게 상대할 수 있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아게일님은 다른 천족들을 최대한 보호해 주십시오. 저 녀석을 잡으면, 드디어 진짜가 나타날 거니까요.”

“악마의 알을 말하는 건가?”

“네.”

“이거 어쩌다 보니 내가 명령을 받는 입장이 됐군.”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승한은 아게일에게 말을 남기고는 [귀신]을 이용해 몸을 날렸다. 다른 천족들이 승한의 뒤를 따라가려 했지만, 아게일이 그런 천족들을 말렸다.

“따라가지 마라.”

“하지만 아게일 님…….”

“자안이 알아서 할 거다.”

아게일은 빠르게 멀어져가는 승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참으로 우습게도 얼마 전, 아니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별 볼일 없는 한 명의 천족으로 보였던 그의 뒷모습이 그 어느 누구보다도 든든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우리 도움이 필요했다면 먼저 뛰쳐나가지도 않았겠지.”

“그러다 자안이 잘못 되기라도 하면…….”

“잘못 될 것 같나?”

아게일의 물음에 천족들이 입을 다물었다. 분명 그들이 본 승한의 능력은 그들이 생각하는 강함의 기준을 한참 넘어서 있었다.

“지켜보자고. 그분께서 선택하진 새로운 영웅의 활약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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