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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7스테이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승한의 바로 옆에 있던 크롬은 승한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뻗어나가는 성화의 검격을 보며 놀랐다.
어느새 승한의 검에서 뻗어진 검격에 수십 마리의 마물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마물들은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는지 검격에 당하든 말든 돌진하기 시작했다.
“당황하지 말고 준비해라!”
당황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아게일이 말하는 당황의 의미는 마물들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승한이 휘두른 검격에 죽어가는 마물들 때문에 다른 천족들이 우왕좌왕 할 것을 걱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아게일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로 승한이 보여준 신위는 대단한 것이었다.
‘자안이 어떻게 저런…….’
승한은 검격을 몇 번 더 흩뿌리더니 [귀신]을 이용해 위로 올라갔다. 다른 천족들 역시 허공에 잠시 머무를 정도의 능력을 있었지만, 승한은 아예 허공을 밟으며 이동해 위로 올라가버렸다.
“저, 저건…….”
계속되는 놀라움에 아게일은 마물들을 신경쓰지도 못하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귀신]을 이용해 높게 올라간 승한은 성화의 힘을 [백검]에 가득 담아 마물들의 위로 흩뿌렸다.
화아아악-!
주황빛의 화염에 마물들의 위로 덮어졌다. 검격의 형태로 뿌려진 성화는 마물들 전체를 감싸며 그들의 살결을 태웠다. 워낙 범위가 넓게 퍼져서 바로 베어내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검격 자체보다 성화가 가진 힘이 워낙 강했다.
크어어어어-!
마물들이 비명을 질렀다. 마물들의 살결이 타들어가며 썩은 탄내가 진동했다. 천족들은 마물들이 성화에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검과 창을 휘둘러 마물들을 죽여나갔다.
승한은 그런 천족들 틈으로 몸을 섞어들어 검을 휘둘렀다. [귀신]을 이용해 빠르게 움직이며 검을 한 번씩 휘두르자, 성화의 힘이 마물들의 몸을 태우며 그들의 목을 빠르게 베었다.
‘그 녀석은 어디 있지?’
승한은 마물들 중 마기의 불길을 가진 마물을 찾았다. 마물들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녀석은 예상과는 달리 마물이라기엔 멀쩡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마족?’
마물이라기보다는 마족에 가까운 모습. 하지만 마족과도 또 달랐다. 머리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는 점이 말이다.
‘마족의 샴 쌍둥이 버전인가? 마물보다 더 징그러운데.’
더군다나 마족과는 달리 피부가 검다는 점도 다른 점이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승한의 세계에 나타난 마족들은 모두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지금 승한의 눈앞에 있는 마물처럼 말이다.
캬악-!
마족을 닮은 마물은 두 개의 머리에서 괴성을 지르며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녀석의 손에는 시커먼 불길이 흩어져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승한이 느낀 새로운 힘의 정체였다.
승한은 그 힘이 어떤 것인지 시험해 보기 위해 검에 성화의 힘을 담아 휘둘렀다. 이윽고 마물의 손과 승한의 검이 부딪히고, 두 개의 서로 다른 색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캬아아악-!
마물은 승한의 검에 손이 베어져 괴성을 질렀다. 다른 마물들 같으면 순식간에 손과 함께 몸이 양단되었을 텐데, 제법 단단하기도 단단했다.
하지만 베이모나 쌍둥이 마족과 같은 힘은 없었다. 지능도 한참 떨어져보였다. 승한은 녀석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녀석이 가진 새로운 불꽃에 대해 생각했다.
‘마화에서 성화의 불길을 뽑아낸 것 같군. 애초에 성화의 힘과는 전혀 다른 힘이야.’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별 것 아니잖아?”
느낌이 탁하고 마화보다는 마기에 더욱 가까운 터라 불길한 느낌은 강했지만 막상 싸워보니 마화가 훨씬 더 까다로웠다. 성화에 대한 내성도 거의 없다시피 했고, 위력도 별로였다.
물론 승한이 베이모와 싸울 때보다 훨씬 강해진 것도 한몫 했다. 하지만 승한은 그 점을 염두해 두고서도 눈앞에 있는 마물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베이모와 쌍둥이 마족은 성화에 대한 내성이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마물은 성화에 대한 내성이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크르르르르-.
그 때, 주위에 있던 마물들이 몸을 돌려 승한을 덮쳐왔다. 천족들이 몸을 돌린 마물들을 공격했지만, 마물들은 등이 베어져도 상관하지 않고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기의 불을 가진 마물을 공격하려던 승한은 다른 마물들이 자신을 노리자 어쩔 수 없이 몸을 보호하고자 반대 방향으로 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승한을 공격해오던 마물들의 목이 베어지고, 승한이 마기의 불을 가진 마물에게서 멀어졌다.
“저 놈이 네놈들 대빵이라 이거냐?”
승한은 마기의 불을 가진 마물을 힐끗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런 네놈들부터 다 죽이고 저 놈을 죽이면 되지.”
승한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물들 정도는 굳이 성화의 힘이 없다고 해도 [백검]의 검격만으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백검]을 이용한 검격이 수십, 수백 번에 나누어져 마물들에게로 날아갔다. 그 와중에도 승한은 다른 천족들이 말려들지 않도록 검격을 세밀하게 조절했다. 천족들은 자신이 상대하던 마물이 승한이 날린 [백검]의 검격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수백 마리의 마물들이 승한의 손에 정리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승한은 남아있는 한 마리의 마물을 향해 검끝을 겨눴다.
“자, 그럼 너만 남았군.”
캬아아아오-!
마기의 불을 가진 마물은 승한을 향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승한은 다시금 검 끝에 성화의 불을 피웠다.
구구구구-.
마물의 다리가 휘청거리며 두 개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승한이 가진 [올림포스]의 힘이 그의 몸을 짓누른 것이다.
“역시… 베이모 보다는 훨씬 약해.”
베이모는 [올림포스]의 힘에도 저항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제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눈앞에 있는 마물처럼 무릎을 꿇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마물은 [올림포스]의 힘에 무릎을 꿇고,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점에서라도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마물은 베이모나 쌍둥이 마족에 비해 한참 떨어졌다.
“뭐, 일단 약한 놈이니 다행인가?”
서걱-.
승한은 검을 높게 들어올려 마물의 몸을 반으로 베어냈다. 두 개의 머리 사이로 몸이 반으로 베어지고, 승한은 확인사살 겸 두 개의 머리를 또 다시 몸에서 분리시켰다. 이 정도 수준의 마물이라면 굳이 승한이 아니라 아게일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었다.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마물을 베어낸 승한은 주위를 둘러봤다. 몇 마리 남아있던 마물들은 다른 천족들이 이미 거의 정리를 한 상태였고, 천족들은 승한을 향해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역시, 이런 반응인가?’
당연한 일이지만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스테이지가 끝난 후, 이 일로 인해 자안이 어떻게 될지가 걱정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자안.”
아게일이 승한을 향해 다가왔다. 승한은 한숨을 푹 내쉬며 그에게로 몸을 돌렸다.
“부르셨습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아게일은 그렇게 말하고는 마물들의 시체를 둘러봤다. 아직까지도 마물들의 피부에서 풍기는 썩은 탄내는 진동을 하고 있었고, 그 모든 일을 해낸 장본인이 바로 승한이었다.
“물론 너에게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 하는 게 순서겠지. 네가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있는 천족들 중 반 이상이, 어쩌면 전멸을 면치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냥 아무 말 없이 넘어가기에는 네가 보여준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군.”
아게일의 말은 당연했다. 아무리 승한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애초에 자안이라는 천족은 이렇게까지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힘을 얻은 이상, 그에 대한 해명을 하지 않고서는 다른 천족들의 의구심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승한은 결국 고민하다가 내내 생각해 왔던 변명거리를 늘어놓았다.
“아게일님도 신탁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겠죠?”
“……너를 이 자리로 데리고 오라는 신탁 말인가? 그거라면 알고 있다. 천사께서 직접적으로 신탁을 내리신 건 거의 십 년 만의 일이니까.”
“저에게도 따로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이 자리에서 악마의 새로운 탄생을 막으라고요.”
“너에게 따로 말인가?”
“네. 그리고 저에게 힘을 내려주셨습니다. 악마의 알을 지키고 있는 마물들을 멸할 수 있는 힘을 말이죠. 그 힘이 바로 이것입니다.”
승한은 검을 들어 검신에 성화의 불길을 뿜어 보여주었다. 보여주기 용으로 힘을 많이 끌어 올리지 않아서인지 붉은색에 불과했지만 그 힘만으로도 아게일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이 힘이…….”
“성화라는 겁니다.”
“성화라… 들어본 적이 있다. 천사님들 중, 붉은 천사께서 사용하시는 힘으로 대악마 아포피스를 봉인했던 힘이라고 했지. 자안, 네가 그 힘을 얻었다는 건가?”
‘천사님들?’
승한은 아게일의 말에서 천사가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식하지 않고 있어서 모르고 있었는데, 자안도 역시 천사의 존재가 한 명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붉은 천사, 수호의 천사, 단죄의 천사, 자비의 천사.’
천사의 수는 한 명이 아니었다. 총 네 명의 천사로, 그 중 승한이 만난 천사는 붉은 천사였다.
붉은 천사는 천족들 사이에서 알려진 천사들 중 가장 전투적인 성향의 천사였다. 단죄의 천사 역시 만만치 않았지만 붉은 천사야말로 가장 많은 악마들을 쓰러뜨린 천사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용하는 힘이 바로 성화. 승한이 가지고 있는 힘이었다.
“그분께서 왜 너에게 그 힘을…….”
“그건 알 수 없죠. 하지만 덕분에 전 마물들을 쓰러뜨릴 힘을 얻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시면서도 믿지 못하시겠습니까?”
“으음… 그렇긴 하군. 확실히 이 불꽃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그분의 것과 닮아있으니…….”
아게일은 아무래도 붉은 천사와 조금의 연이 있는 듯 성화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정확히 알아차렸다. 승한은 혹시라도 아게일이 믿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보였다.
“성화의 힘을 얻으면서, 다른 능력들도 함께 늘어난 건가?”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기하군.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너에게 그런 힘을 주시다니. 하긴, 그분의 뜻을 나 같은 녀석이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지.”
천사를 향한 아게일의 존경심은 확실했다. 붉은 천사와 성화의 이름을 팔자 아게일은 모든 것을 인정하는 눈치였다.
다른 천족들 역시 승한과 아게일의 대화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성화를 보였고, 아게일이 인정했다. 무엇보다 승한이 사용하는 성화의 힘은 천족들의 가슴 깊숙한 곳까지 따뜻하게 정화시키는 어떤 힘이 있었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나저나 대체 아게일님이 깨트린 게 뭐였습니까? 마물들은 그게 깨지면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승한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적절하게 꺼낸 말에 아게일은 고개를 돌려 악마의 손처럼 생긴 구조물을 바라봤다.
“글세, 잘 모르겠군. 대체 저게 뭐 하는 물건인지…….”
아게일도 자신이 깨뜨린 구슬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단지 불길한 기운을 풍기고 있어 베고 본 것뿐이었다.
말을 돌리기 위함이었지만 승한도 의뭉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런 게 설치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의문이 깊어질 무렵, 승한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파괴한 봉인석 : 1/2]
[처치한 악마의 씨앗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