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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108화 (10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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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7스테이지

마물들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천족들은 바닥을 신경 쓰면서 계속해서 나아갔고, 잊을만 하면 마물들의 공격을 받았다.

마물들은 보통 10마리에서 많으면 20마리까지 무리를 지어 움직였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마물은 처음 보았던 두더지와 고양이가 섞인 듯한 모습의 마물이었다. 녀석들은 고양이처럼 민첩하게 움직이고,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해 공격해왔다. 두더지처럼 생겨서인지 땅속을 긁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게 특징이었다.

천족들의 수준은 역시 높았다. 승한이 모든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천족들은 승한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었다. 승한은 마족들에 비해 천족들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베이모나 쌍둥이 마족 같은 녀석들만 모아 놓은 건가?’

천족들 하나하나를 살피던 승한은 절로 혀를 내둘렀다. 이만한 천족들이 모여 있는 거라면 스테이지의 완료가 너무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천족들 중 부상자는 이제 고작 둘이었다. 그 중 한 명은 가장 처음 마물이 땅속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 당했던 천족 하나였고, 두 번째는 골렘과 같이 거대한 마물을 상대로 정면으로 맞섰던 천족이었다.

벌써 마물들과 싸움을 시작하고 세 시간이나 지났다. 그런데도 이제 고작 부상자는 둘이었고, 그 둘의 부상도 빠르게 회복이 되고 있었다. 천족들의 능력은 스스로의 상처를 치료하는데도 꽤나 일가견이 있었다.

승한은 천족들의 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들었다.

‘대체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얼마나 높을지…….’

승한 스스로가 강한 것을 떠나, 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천족들의 수준이 이렇게까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스테이지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꽤 잘 싸운다?”

그 때, 승한의 옆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크롬이 물었다. 앉을 데가 없어서 시커먼 맨바닥에 앉아있던 그는 묵묵히 방패를 깔고 앉아있는 승한에게 자주 말을 걸곤 했다.

“그러냐?”

“언제 그렇게 실력이 늘었냐?”

“방금.”

“말하기 싫어? 뭐 비밀리에 수련이라도 하셨나 봐?”

“그런가 보지.”

승한은 크롬과 길게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쌀쌀맞게 대답했다. 크롬은 승한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너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그럼 내가 어떤 성격이었는데?”

“글쎄… 원래도 그렇게 싹싹한 녀석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 마음에 안 드냐?”

크롬의 물음에 승한이 피식 웃었다. 곱상하게 생긴 얼굴이나 싹싹한 성격, 진심으로 자안을 걱정하는 표정, 어떤 점에서도 크롬은 미워할 수 있는 친구였다.

그럼에도 승한이 이렇게 크롬에게 쌀쌀맞게 구는 이유는 하나였다.

‘난 자안이 아니니까.’

비록 자신이 자안이라는 천족의 몸을 빌려 움직이고 있다지만 승한은 자신이 자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마법인지는 몰라도 자안의 몸을 빌리고 그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왔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자안이 될 수는 없었다.

승한은 자안의 친구인 크롬이 불편했다. 자안의 몸이지만 자안이 아닌 자신이 크롬과 친분을 나눌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와 편하게 이야기 하는 데에 죄책감이 들었다. 마치 타인의 생을 자신이 빼앗은 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크롬에게 이렇게 자꾸 쌀쌀맞게 굴 수는 없었다. 승한은 크롬이 오해하지 않도록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냥… 기분이 별로라 그런다.”

“기분이 별로야? 왜?”

“그럼, 이런 곳에서 기분이 좋을 것 같냐?”

승한의 물음에 크롬이 주위를 둘러봤다.

무언가로 가려져 있는 시커먼 지붕과 마물들의 사체에서 뿜어지는 악취, 그리고 그들의 몸과 어딘가에 있을 악마의 알에서 풍기는 칙칙한 기운까지. 이곳은 승한의 말대로 결코 기분이 좋을 곳은 아니었다.

“하긴, 네 말도 맞네.”

“그만 떠돌고 나 좀 그만 내버려 둬라. 좀 쉬고 싶으니까.”

사실 별로 지치진 않았다. 마물들과의 싸움은 매우 손쉬웠다. 승한이 가진 실력은 천족들 사이에서도 아게일을 제외하면 적수가 없을 정도였고, 다른 천족들 역시도 실력이 무척 뛰어났으니 말이다. 윤재와 함께 자주 괴물들과 싸우곤 했던 승한이었지만 이번엔 실력 있는 동료들이 여럿 있다는 느낌에 든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크롬은 진심으로 승한이 기분이 별로고, 지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아는 자안이라는 천족은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천족들에 비해 실력이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참 부족한 정도였다.

비밀리에 수련을 했거나 하더라도 이만큼 선전했다면 지칠 법도 했다. 크롬은 승한이 까칠하게 구는 이유를 몸과 정신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 쉬어둬라. 혹시 힘들면 말 하고.”

“……그래.”

끝까지 계속되는 호의에 승한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는 계속되는 크롬의 호의가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불편하게 느껴졌다.

‘성화와 [올림포스]를 사용하지 않으니 불편하네.’

승한은 지금껏 성화와 [올림포스]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자안의 실력에 비해 지나치게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이 이상으로 눈에 띄어봤자 당장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뭐라 설명할 방법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승한은 [증폭]과 함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만 [백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4레벨의 [불굴의 육체]와 2레벨의 [귀신]과 어우러져 아게일과 비교할 만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물론, 그에 비하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언제까지도 힘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천족들 중 위험한 이들이 생길 때가 된다면 힘을 사용할 생각이 있었다. [올림포스]는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성화의 힘은 애초에 천족들과 함께 자안을 이곳으로 부른 천사의 힘. 자안을 이곳으로 보낸 신탁과 승한의 성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만큼, 의심은 받지 않을 것이다.

“다시 움직인다.”

아게일의 말에 천족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물과의 전투가 시작되고 세 시간만에 주어진 달콤한 휴식이 끝났음에도 누구 하나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이가 없었다.

[스테이지 7.1]

달성 조건 : 첫 번째 알을 부숴라.

제한시간 : 24시간

남은시간 : 20 : 24 : 01

보상 7.2스테이지로의 이동

승한은 남아있는 시간을 확인했다. 제한시간 24시간 중에서 남아있는 시간은 꽤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유롭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거지?’

악마의 알을 파괴하라는 미션이었지만 정작 악마의 알이 어디에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이 거대한 공간이 얼마나 넓은지도 마찬가지로 미궁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하루가 아니라 사흘, 나흘, 일주일씩 걸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4레벨의 [불굴의 육체]덕분인지 승한은 아무리 움직여도 지치지 않았다. 성화와 [올림포스]의 힘을 쓰지 않고 단순하게 검과 방패를 휘두르는 싸움은 사흘 밤낮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천족들은 그게 아닌 듯, 세 시간에 걸친 행군과 마물과의 전투 이후 휴식을 취했다. 승한은 깨알같은 그 조금의 시간조차 아까웠다.

“아게일님.”

결국 참다못한 승한이 입을 열었다. 평소 조용한 편이었던 자안이 입을 열자, 다른 천족들과 함께 아게일의 시선이 모아졌다.

“무슨 일이지?”

“목적지까지는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혹시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자안은 신탁에 의해 뒤늦게 합류한 천족이었다. 그 때문인지 다른 천족들에 비해 아는 바가 적었다.

승한은 천족들을 지휘하고 있는 아게일이라면 무언가 아는 바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모른다. 다만, 오늘 안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만이 신탁의 계시다.”

“방향은 맞는 겁니까?”

“그것도 모른다. 다만 탁한 기운이 강해지는 곳으로 가고 있을 뿐이다. 자안, 네놈은 이 기운도 느껴지지 않나?”

확실히 탁한 기운이 점차 강해지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주 미세한 차이라 자세히 느끼지 않고는 알 수 없었다.

아게일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탁한 기운뿐만 아니라 멀리서 느껴지는 더 강한 탁기를 느끼고 그 길을 따라 천족들을 이끌고 있었다. 확실히 아무런 단서도 없다면 느껴지는 기운을 따라 가는 게 정답이었다.

‘말을 꼭 저런 식으로 해야 하나?’

승한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했다. 자안이라는 천족이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천족들 사이에서 평판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신탁이 없었다면 대놓고 불만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천족들도 인간과 다를 게 없긴 하군. 하긴, 낙하산 타고 들어온 놈을 누가 좋아하겠어.’

아무리 천사의 계시라 해도 엄연히 자안은 자격이 없었던 천족. 그간 뼈를 깎는 노력과 함께 실력을 입증해 보였던 자신들과는 근본부터 다르리라 여겼을 것이다.

‘뭐, 알아서들 잘하겠지. 나랑 평생 볼 사이도 아니고…….’

승한은 애써 자안에게 가진 저들의 감정을 무시하려 했다. 어차피 자신은 자안이 아니었고, 자안에 대한 저들의 감정도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모든 천족들이 자안에게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그중 몇몇은 자안이, 아니 승한이 활약해 쓰러뜨린 마물들로 인해 불쾌한 감정을 털어버린 상태였다.

“그나저나 큰일이군. 오늘 안에 알을 부숴야 하는데…….”

조급하기는 아게일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는 조금씩 걸음을 빠르게 옮기기 시작했다.

“속도를 높인다. 휴식은 앞으로 세 시간 뒤. 마물과의 전투가 있더라도 그건 변함이 없다.”

“알겠습니다!”

아게일의 보폭에 따라 천족들의 움직임도 덩달아 빨라졌다. 승한의 말에 투덜거리며 대답하긴 했지만 아게일도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저기 뭐가 있을까?’

아게일과 마찬가지로 승한도 점점 탁한 기운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화에 섞여있던 마의 기운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다른, 더더욱 탁한 기운이었다.

아마 방향 자체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 기운이 흘러 나오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운을 둘러 싸고 있는 마물들이 얼마나 되는가였다.

‘어차피 어중간한 수준의 마물은 몇 마리든 상관 없지만.’

성화와 [올림포스]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백검]의 힘도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끔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이 모든 힘을 완전하게 사용하게 된다면 방금까지 나타난 마물 정도는 수가 몇이든 문제가 없었다.

‘물론 그보다 더 한게 나오긴 하겠지만.’

고작 이 정도에서 끝날 리가 없었다. 이 정도 마물들만 나오는 미션이라면 차라리 6스테이지가 훨씬 어렵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렇게 천족들은 한 시간이 넘게 어떤 마물도 만나지 않고 걸었다. 하늘을 가린 새까만 천장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정지.”

그 때, 무언가를 발견한 아게일이 중얼거렸다.

“……저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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