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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말레이시아
“잠깐. 그럼… 정말 스테이지 속 세상이 현실이란 말이야? 또 다른 세상의?”
그 때, 승한과 나르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윤재가 물었다. 그는 지금껏 승한과 나르샤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황당한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었다.
바로 스테이지 속 세상이 현실이라는 것. 지금껏 생생한 꿈, 또는 능력을 얻기 위한 미션 정도로 스테이지를 여겼던 윤재에게 그것은 제법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네. 저희는 절대로 꿈속의 존재가 아니에요. 승한씨나 당신이 겪었다는 일들은 모두 현실이에요.”
“저, 정말입니까?”
“네. 승한씨가 겪은 스테이지라는 세상이 바로 저와 자칼, 가렝이 있던 세상이에요. 전 절대로 꿈속의 존재 같은 게 아니에요.”
당연히 그래 보였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대화하고 있는 나르샤를 어떻게 꿈속의 존재로 치부할 수 있을까? 단지 너무 믿기 어려운 이야기라 놀라 물었을 뿐이었다.
“그게… 전부 현실이었다니.”
윤재는 잠시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가 겪은 스테이지 속 세상도 승한 못지않게 생생하고, 놀라운 세계의 연속이었다. 어쩌면 윤재는 마족이 아닌 또 다른 종족과 만나 대화하고, 싸웠을지도 모른다.
승한은 윤재가 왜 이렇게 놀라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도 스테이지 속 존재라고 생각했던 나르샤가 눈앞에 나타나서 얼마나 놀랐던가? 비록 승한과 같이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간접적으로나마 스테이지가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그 충격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너무 엄청난 이야기들을 들어 버렸네. 이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세계라… 지구 밖에 있는 또 다른 행성 속의 세상인 건가?”
“그런 것까지는 모르죠. 어쩌면 이야이속에서나 나오던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일 수도 있고요.”
“어느 쪽이든 현실감 없는 이야기네.”
“뭐, 그래도 이게 현실이니까요.”
“악마라는 것들은 뭐야? 그 많은 괴물들을 자신의 종으로 만들 정도면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의 괴물인 거야?”
윤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세계 각지에 나타난 괴물들을 한꺼번에 종으로 부릴 정도의 힘을 가진 악마에게 두려움을 느낀 모양이었다.
“게다가 아포피스라면 신화속에 나오는 태양신과 싸운다던 대악마 아니야?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한 악마로 태양신을 쓰러뜨려 일식을 일으킨다는.”
“봉인된 상태긴 하지만 아포피스를 보긴 했어요. 근데 태양을 가릴 만큼 거대하진 않아요.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하긴 했지만요.”
“그럼 대충 우리 세상에 있는 신화 속 악마와 비슷하긴 하네? 태양을 가릴 만큼 거대하다는 거야 실제로 태양만 하지는 않더라도 하늘을 가릴 정도면 충분할 테고.”
“그런가요?”
윤재의 말은 제법 그럴 듯 했다. 사실 승한도 아포피스의 신화에 대해서는 얼핏 주워들은 바가 있었다. 태양신 라가 나오는 신화로, 그 대적 악마인 아포피스가 태양신을 쓰러뜨리면 일식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포피스라는 악마가 이곳 세상에서 이름이 전해진 이유가 뭐지?’
승한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르샤에게 물었다.
“악마는 총 몇 명이나 됩니까? 마족들을 조종한 악마와 아포피스를 비롯해서요.”
“저도 그건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뇨?”
“악마가 하나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모든 악마들의 이름이 알려져 있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악마들의 이름과 그들의 정체는 각 일족들 사이에서도 소수에게만 전해지죠. 이곳 인간들이 여러 개의 나라로 나누어져 있듯이, 저희 마족들도 수많은 일족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일족들 사이에서 악마의 이름과 그의 두려움이 전해져 내려와요. 그 중 저희 일족에게 전해진 악마의 이름이 바로 아포피스고요.”
나르샤가 있는 일족은 대대로 아포피스의 봉인을 깨우지 않기 위해 힘을 써왔다. 나르샤를 비롯해 그녀의 일족 가운데는 성화의 조각을 가진 마족들이 하나씩 태어났고, 그들을 중심으로 아포피스의 봉인을 지켜왔다.
그리고 그런 일족이 있는가 하면, 다른 일족에서는 또 다른 악마를 경계해왔다. 인간들과는 달리 마족들은 서로에게 손을 잘 대지 않고 교류가 없는 편이기에 정보의 공유고 극히 드물었다.
“제가 아는 악마의 이름은 아포피스뿐이에요. 자신을 저희의 부모라 말한 악마도 저는 처음 보는 악마였어요.”
“……그렇군요. 그럼 어떤 악마가 있는지, 악마의 수가 몇이나 되는지는 모른다는 거죠?”
고개를 끄덕이는 나르샤를 보며 승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악마가 최소 둘은 된다는 것쯤은 알겠는데, 그 이상으로 몇이나 더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나르샤님이 사는 세상에 인간들이 나타난 적이 얼마나 있습니까?”
승한은 나르샤가 자신을 처음 봤을 때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더군다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물론 나르샤가 사용하는 언어와 승한이 사용하는 언어는 전혀 달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르샤의 언어는 처음 듣는 말임에도 곧바로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승한의 말 역시 마찬가지로 나르샤가 바로 알아듣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르샤가 인간이라는 종족을 처음 본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스테이지 속에서 승한을 처음 본 나르샤는 그렇게 놀란 눈치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인간이 저희 세상에 등장하는 건 그렇게 드물지 않은 일이에요.”
“정말입니까?”
“네. 당장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 번 본 적이 있었거든요.”
승한의 세상에 만약 마족과 같은 존재가 한 명이라도 나타났다면 순식간에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마족들이 있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존재가 그렇게 놀랄 정도까지는 아닌 모양이었다.
“물론 아주 흔한 일은 아니에요. 마족들도 인간을 흔히 볼 수 있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족이 있고, 그들이 우리와 비슷하게 생겼고 종종 우리 세상에 등장하는 이상, 여러분이 괴물이라는 존재를 보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는 거죠.”
나르샤의 대답에 승한과 윤재는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해냈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겠지?”
“아마도요.”
승한과 윤재의 대화에 나르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요?”
“사실 아포피스라는 악마에 대한 이야기는 마족들만이 아닌, 이곳 세상의 인간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태양신과 대적한 거대한 뱀 형상의 악마로요.”
승한의 설명에 나르샤가 깜짝 놀랐다. 마족들 사이에서도 나르샤의 일족을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악마인 아포피스에 대해 전혀 다른 세상의 인간들이 알고 있다는 소리가 의외였던 것이다.
“저희 일족에 전해지는 이야기와 거의 비슷한데요?”
“아무래도 이곳 세상의 인간이 나르샤님이 있는 세상으로 넘어가 그 이야기를 듣거나 아포피스라는 악마를 만나고 그 이야기를 이곳에서 신화와 같은 이야기로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정도로 비슷한 악마의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는 않네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인간이 마족들의 세상에 나타나는 경우는 종종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타난 인간들이 꼭 마족들이 있는 세상에서 죽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족들의 세상으로 넘어갔고, 그들이 있는 세상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다시 원래의 세상에서 퍼뜨렸다. 그리고 그 결과, 허황되기 이를 데 없는 신화와 같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럼 혹시…….”
“왜요, 형?”
“승한이 너도 그 게임 아냐? 우리 어렸을 때 많이 하던 악마 이름을 모티브로 한 게임.”
윤재의 설명에 승한은 하나의 게임을 바로 기억해냈다. 짧은 설명만으로도 바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유명한 게임이었다.
“기억나요.”
“어쩌면 거기 나오는 악마들도…….”
“……설마요. 그렇게 생각하면 신화로 전해지는 악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포피스 악마 신화도 진짜라고 판명된 것이나 마찬가진데, 다른 것들이라고 다를까? 이건 진짜고, 저건 가짜라고 확신할 수 있어?”
윤재의 물음에 승한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악마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대체 몇이나 된다는 말인가?
승한이 있는 지구라는 세상에서 악마라고 전해지는 존재는 수도 없이 많았다. 아포피스가 아니더라도 그 외에 수많은 악마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었다. 신화 속 이야기로 전해지던 그 존재들은 어느새 소설 속에 나오기도, 게임 속 몬스터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포피스라는 존재 하나가 진짜로 밝혀지자 다른 이름들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 많은 악마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악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착륙 준비합니다. 착륙 준비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에 가까웠는지 군용기를 조종하던 군인이 방송을 해왔다. 윤재는 안전바를 꽉 잡았고, 승한은 한 손으로는 나르샤가 다치지 않게 잡아주었다.
곧 승한과 윤재, 나르샤가 타고 있는 군용기가 빠르게 지상으로 내려와 말레이시아 남쪽 지방에 있는 군부대 안에 착륙했다. 잠시 후, 입구가 열리며 군용기를 운전하고 있던 군인이 경례했다.
“충! 도착했습니다. 내리시면 됩니다.”
군용기를 운전한 이지훈 대위의 안내에 승한과 윤재, 나르샤는 군용기에서 내렸다. 군용기 밖으로 나오자 여러 개의 막사가 쳐져 있는 구식 군부대가 보이고, 군용기 뒤쪽으로 말레이시아 군인 병사들이 행열을 맞춰 도열해 있는 게 보였다.
그 중 승한은 가장 앞에 있는 멀끔한 인상의 짧은 갈색머리 중년 군인이 가장 높은 사람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승한은 가까이 다가오는 말레이시아 군인 장교를 보며 그와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
그 때, 이지훈 대위가 장교에게 다가가 알 수 없는 언어로 말을 걸었다. 영어도 아니고 생전 처음 듣는 언어였는데, 아무래도 말레이시아 언어인 모양이었다.
말레이시아 장교와 몇 마디를 나누던 이지훈 대위는 그에게 작은 함에서 꺼낸 구슬을 건넸다. 그것은 승한과 윤재도 익히 아는 물건이었다.
이지훈 대위가 옆으로 절도 있게 비키며 승한과 장교 사이의 길을 터주었다. 장교는 다시 승한에게로 다가와 손을 건넸다.
“반갑습니다, 김승한 헌터, 김윤재 헌터. 저는 모하드 페이루즈 소장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모하드 소장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승한은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모하드 소장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의 목소리가 말레이시아의 언어가 아닌, 완벽한 한국어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전음구에 이런 기능도 있었나?’
이지훈 대위가 모하드 소장에게 건네준 물건은 바로 헌터들이 사용하는 전음구였다. 그것은 보통 헌터들이 먼 거리에 있는 상대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할 때 사용하는 물건이었는데, 상대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승한은 당연하게도 그것이 서로간의 언어가 같을 때에나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하드 소장이 한국어를 토종 한국인처럼 유창하게 하는 게 아니라면 전음구에는 언어 통역 기능이 포함되어 있는 게 분명했다.
‘하긴, 어차피 목소리라기보다는 생각을 통해서 의사를 전달하는 물건이니까.’
승한은 적어도 언어를 통한 문제점은 없다는 점에서 안도했다. 모하드 소장의 이름과 얼굴을 알게 된 승한은 마찬가지로 주머니에서 전음구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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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에 있는 파일과 노트북에 있는 파일을 헷갈려서 잘못 덮어쓰기 하는바람에 하루치 분량을 날렸습니다. 원래라면 오늘 3연재도 할수 있었는데...
멘탈이 와사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