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99화 (9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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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르샤

“승한씨와요?”

나르샤가 깜짝 놀라 물었다. 윤재 역시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설마하니 승한이 나르샤와 함께 가려고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괜찮겠냐?”

걱정스러운 마음에 윤재가 물었다. 승한이야 나르샤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다른 헌터들도 그렇게 볼지는 의문이었다.

“괜찮을 거예요. 오히려 제가 옆에 없는 게 나르샤님은 더 위험해요.”

“아니, 내가 걱정하는 건 너야. 괴물과 함께 다닌다고 손가락질 안 받을까?”

“뭐, 아무래도 상관있나요? 애초에 괴물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들끼리 부르는 명칭일 뿐이잖아요? 나르샤님을 비롯해 이번에 나타난 괴물들의 진짜 정체는 마족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종족이에요.”

“마족? 혹시 악마?”

“악마와는 달라요. 애초에 나르샤님이 그렇게 됐던 것도 악마 때문이니까요.”

승한은 윤재에게 나르샤가 최면에 걸렸던 것에 대해 설명하려다 말았다. 강동훈 소령이 말한 30분이라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던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이야기 할게요.”

“뭐, 알았어. 설마 무슨 일이야 나겠냐.”

승한은 윤재와 대화를 끝내고 나르샤를 바라봤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이 가요. 어차피 전… 지금 당장 갈 데도 없으니까요.”

나르샤는 승한과 윤재의 뒤를 따라왔다. 윤재는 집 앞에 도착하고부터 계속해서 주작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승한은 나르샤와 윤재를 데리고 풀쩍 뛰어올라 다시 주작의 위로 올라탔다.

나르샤를 데리고 승한은 다시 호계동으로 이동했다. 왔다갔다 이동시간까지 더해도 거의 20분 안쪽으로 승한이 볼일을 다 끝내고 다녀오자 강동훈 소령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일찍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네. 바로 출발하죠.”

“그렇게 하…….”

그 때, 강동훈 소령이 승한의 뒤쪽에 있는 나르샤를 발견했다.

“괴, 괴물이…….”

“괴물이 아닙니다.”

“뿔을 가진 붉은 피부의 인간! 괴물이 아니면…….”

말을 잇던 강동훈 소령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붉은색 피부?”

이번에 나타난 괴물들은 본래는 마족이었지만 무슨 까닭인지 검은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나르샤 역시도 그것은 다르지 않았는데, 무슨 일인지 마화와 함께 몸 안에 지니고 있던 성화의 힘이 사라지고부터는 피부가 점점 붉은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시간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음에도 점차 붉은색으로 변하던 피부는 예전 나르샤의 모습과 완전히 닮아있었다. 연동현을 비롯한 헌터들을 만났을 때에만 하더라도 나르샤는 검은색에 가까운 피부였지만, 이제는 붉은색에 더욱 가까웠다.

“……설명이 필요하겠습니다, 승한씨.”

“위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제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인간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괴물들과 조금 다르다고는 하지만… 붉은색의 피부나 머리에 있는 두 개의 뿔은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그녀는 확실히 인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해치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만일 무슨 일이 생기게 되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 말, 정말입니까?”

승한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조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네. 그리고 그녀는 저희에게 갑자기 괴물이 나타난 이유에 대한 단서를 가져다 줄 열쇠입니다.”

그 말에 강동훈 소령의 눈이 크게 떠졌다. 승한의 말은 괴물이 처음 등장하고부터 지금까지 현대 사회의 가장 큰 관심사로 집중되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자세한 건 다녀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승한의 강경한 태도에 강동훈 소령은 더 이상 무언가 말을 할 수 없었다. 승한의 존재는 이미 일개 소령인 그가 어떻게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군용기는 어디 있습니까?”

“52사단 내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따라오시죠.”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는, 윤재 형을 통해서 움직이는 게 훨씬 빠를 텐데요?”

승한의 말에 강동훈 소령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비산동과 호계동을 20분도 되지 않아서 왕복한 주작의 기동성을 생각해 보면 자동차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김윤재씨.”

결국 윤재는 이번에도 주작을 불러내 이동 수단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 모르게 주작의 레벨을 올려 남 좋은 일만 시킨다고 생각하는 윤재였다.

**

호계동에서 안양에 있는 52사단까지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윤재의 주작을 타고 이동하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승한과 윤재, 나르샤는 강동훈 소령의 안내를 받아 작은 군용기에 탑승했다. 군용기를 조종하는 비행사가 한 명 있었고, 정말 도착해서 군용기에 탑승하자마자 비행사는 군용기를 띄웠다.

“급하긴 급한가 보네.”

“괴물이 다 정리가 되지 않았으면 지금 이 시간에도 시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을 테니까요. 마족들이라면 군인들이 총을 쏴서 맞추기도 쉽지 않을 테고요.”

“하긴, 그것들이 보통 빨라야지. 헌터들도 눈으로 쫒기 어려울 정돈데, 보통 사람들 눈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 이 없지.”

비록 거미들에 비해 덩치는 작을지 몰라도 마족들은 거미들보다 훨씬 위협적인 괴물이었다. 차라리 덩치라도 컸으면 거미들처럼 총으로 쏴서 쓰러뜨릴 수 있을 텐데, 마족들은 덩치도 보통 사람과 비슷한데다 움직임도 재빨랐다.

더군다나 몸도 단단하고 생명력도 질겨서 총을 몇 발정도 맞춘다고 해서 죽지도 않았다. 고통도 모르고 움직이며 공격해 대는 통에 군인들만으로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군인들이 총화기를 들고 활동할 수 있다고 해도 헌터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더군다나 세 개 이상의 뿔을 가진 마족들은 더더욱 총만으로 잡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잡으려고 한다면 잡지 못할 건 없었다. 군인들의 피해를 감수하고 계속해서 총을 난사하거나 마족들이 대거 나타난 지역을 미사일로 폭격하는 등의 행동을 취하면 어떻게든 마족들을 다 정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사일을 떨어뜨려 그 지역을 초토화 시키는 것이나 수백, 수천 명의 군인들의 인명 피해를 감수하는 것보다는 헌터들을 고용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는가?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후진국이 타국의 헌터들을 원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죠?”

“응. 군용기가 빠르긴 빠르네. 동남아가 가깝긴 해도, 한 시간씩 걸릴 곳은 아닌데. 비행기보다 빠른데?”

“뭐, 대신 탈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없잖아요.”

거기까지 말한 승한은 옆에 가만히 앉아있는 나르샤를 돌아봤다. 마족들이 입는 붉은색 옷을 입고 있던 그녀는 강동훈 소령에게 특별히 부탁해 얻은 여군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로 머리에 있는 뿔을 가리고, 눈에 띄는 복장을 바꾸자 그럭저럭 보통 사람과 비슷하게 보였다.

물론 붉은색 피부만 제외하면 말이다. 현대 화장 기술을 이용한다면 피부색을 바꾸는 정도야 어렵지 않았지만, 그런 것까지 할 시간은 당장 없었다. 지금은 뿔을 가리고 옷을 바꾼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것이다.

“저희는 어딜 가고 있는 건가요?”

나르샤의 물음에 승한이 대답했다.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입니다.”

“말레이시아요?”

“네. 이곳 세상은 나라가 백 개가 넘게 분리가 되어 있어서요. 저희는 그 중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나라로 이동하고 있는 겁니다.”

“신기하네요. 한 땅 아래에서 같은 종족이 여러 개의 나라를 이루고 살아간다는 게. 저희와는 많이 달라요.”

나르샤는 군용기를 타고 난 뒤부터 내내 동그랗게 떠진 눈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하늘을 나는 군용기가 꽤나 신기한 모양이었다.

“이곳 세상은 참 신기해요. 성 같은 건물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것도 그렇고, 어떠한 힘도 느껴지지 않는 물건들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나르샤의 눈에 지구라는 세상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녀가 있는 세상은 황무지와 마을, 작고 큰 도시들로 이루어져 있는 세상이었다. 마족들과 마수들,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들 외에는 살아가는 생명체가 없었다.

하지만 승한과 윤재가 살고 있는 윤재는 나르샤가 살고 있던 세상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복잡했다.

성처럼 거대한 건물들, 생명체도 아닌데 저절로 움직이는 자동차나 비행기, 무전기 등등, 짧은 순간 동안 그녀가 보아온 여러 기기들과 건축물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틀을 모두 부수기에 충분했다.

“그건 저희도 마찬가집니다. 여기 있는 인간들 역시 나르샤님과 같은 마족이나 그곳에 있는 마수들이 실제로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런가요?”

“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죠. 나르샤님도 그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인간이라는 종족이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들이 어떤 문명을 가지고 있는지도. 하지만 이곳 인간들의 문명은 제가 알고 있던 문명과는 많이 다르네요.”

하긴, 생각해 보면 나르샤는 승한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확실히 그녀의 반응은 처음부터 인간을 알고 있었던 반응이었다.

‘옛날 사람을 알고 있던 건가? 아니면 또 다른 세상에 있는 인간을?’

어느 쪽이든 가능성은 있었다. 만약 인간이라는 종족이 살고 있는 세상이 지구뿐이라면 먼 옛날의 인간을 만났던 것일 테고,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세상에 있는 인간을 만난 것일 터였다.

“인간이 그쪽 세상에 나타났던 적이 또 있었습니까?”

“네. 그 때는 승한씨처럼 직접 연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냥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보기만 했었어요. 그 때 전 너무 어렸거든요.”

“그렇군요. 그 때 외에 다른 때는요?”

“인간들은 종종 저희 세상에 나타나곤 했어요. 마족들 중에서도 인간들의 세상에 다녀왔다는 마족이 없지 않았고요. 생각보다 인간들의 세상과 저희 세상의 경계가 단단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세상의 경계. 그 단어가 승한의 관심을 끌었다. 어찌 보면 이 세상에 갑작스럽게 괴물들이 나타나게 된 이유가 바로 그 경계가 허물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르샤님이 이곳에 오신 것도 그 경계가 단단하지 않아서 입니까?”

“아뇨. 그건 조금 달라요.”

“……어떻게 여기에 오실 수 있었던 건지 기억하고 있으신 모양이군요.”

“네. 안타깝게도… 전 다 잊고 싶은데 잊혀 지질 않네요.”

나르샤의 대답은 그녀에게는 안쓰러운 일이지만 승한과 윤재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그녀가 어떻게 해서 이곳으로 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면, 괴물들이 어떤 방법으로 이곳으로 오고 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일단 이곳 상황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나르샤님을 비롯한 마족들이 갑작스럽게 저희들 세상에 나타나긴 했지만,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닙니다.”

“처음이… 아니라고요?”

“네. 정확히 네 번째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마족들과 같이 다른 세상에서 나타난 존재들을 임의로 ‘괴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괴물이라…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네요.”

나르샤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마족들 사이에서는 성화를 간직한 성스러운 존재로 받아들여지던 그녀가, 이곳 세상에서는 한낱 괴물이 된 것이다.

“그냥 통칭해서 부르는 단어일 뿐입니다. 이런 현상은 불과 한 달 전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일입니다. 저희 세상은 이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대체 왜 괴물들이 나타나는 건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 괴물이라고 말씀하셨죠?”

“네. 듣기 거북하다면 단어를 바꾸겠습니다.”

“괜찮아요.”

나르샤는 생각보다 덤덤히 대답했다.

“궁금하다면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저희가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되었는지.”

============================ 작품 후기 ============================

다시 2연재로 돌아왔습니다.

앞으로도 쭉... 아마..

그러고보니 벌써 100편이군요. 전작을 연재할때는 어중간하게 99편 연재 후 101편까지 연재하는바람에 100편을 못했었죠.

이런 기념적인 편에는 추천이 팍팍 눌렸으면 좋겠네요. 하하하..

(1000개쯤 받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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