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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98화 (9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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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르샤

승한은 나르샤를 데리고 우선 자신의 집에 데려다 놓았다. 마땅히 그녀를 보호할 만한 장소가 생각나지 않았고, 어차피 승한의 집이 있는 구역을 담당하는 헌터가 승한과 윤재였기에 나르샤가 다른 헌터들에게 위협을 받을 일도 없는 것이다.

승한은 막 나르샤를 집에 데려다 놓고는 강동훈 소령에게 연락을 취했다. 원래대로라면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연락을 했어야 하는 건데, 나르샤 때문에 늦어지고 말았다.

“비산동과 안양동, 호계동 정리 끝났습니다. 석수동 지원 완료되었고, 구로구까지 지원 끝마쳤습니다.”

-……그 많은 지역을 전부 말입니까?

승한의 보고에 강동훈 소령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긴,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장 승한과 윤재가 맡은 구역만 하더라도 말도 안 될 만큼 넓은 구역이었다. 비산동과 안양동, 호계동 전 지역만 하더라도 고작 두 명의 헌터가 맡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지역이었다. 물론 비산동은 전체가 아닌, 비산1동과 2동 정도였지만 그래도 넓기는 넓었다.

그런데 석수동과 구로구까지 지원을 갔다? 기가 찰 만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윤재가 가진 능력을 통해 빠른 이동 수단을 확보했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속도는 분명했다.

“아 참, 그리고 보스를 잡은 수당은 따로 챙겨 주신다고 했지요?”

-네, 그렇습니다.

“석수동에 나타난 보스와 노량진에서 나타나 구로구로 내려온 보스, 두 마리의 보스 모두 제가 잡았습니다. 자세한 건 영상구를 통해 확인해 보시면 되겠지만요.”

연달이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강동훈 소령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역시 승한이 대단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제가 보고받은 바로는 이번에 나타난 보스는 두 마리 뿐이라고 하던데… 아닙니까?

“맞습니다.”

-석수동에 나타난 보스를 승한씨가 잡았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로구는…….

“노량진에 처음 나타난 보스가 구로구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마침 노량진으로 가고 있던 저와 윤재형은 함께 힘을 합쳐서 보스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 구로구에 계신 헌터 분들에게는 죄송하게 됐네요.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저희가 그분들의 사냥감을 빼앗은 게 되었으니까요.”

승한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사냥감을 빼앗는다?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한 번 마주했을 뿐이지만 승한은 연동현을 비롯한 구로구를 담당하고 있는 헌터들의 수준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의 수준은 잘 쳐줘도 개개인이 윤재나 차재훈에게 미치지 못했다. 그런 이들이 셋이라면 석수동에 나타난 외뿔 마족 하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베이모를 상대로는 어림도 없었다.

승한은 쓸데없는 희생을 막고도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여 그렇게 말했다. 대놓고 ‘어차피 그들은 보스를 잡지 못했을 것이라’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일단 바로 영상구를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추가적으로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요?”

-네.

뒤로 이어진 강동훈 소령의 대답은 승한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말이었다.

-타국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

승한은 그 길로 윤재와 함께 곧장 호계동에 있는 강동훈 소령을 만났다. 강동훈 소령은 안양 지역에 있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헌터들에게서 영상구를 받고 있었다.

승한과 윤재는 각각 가슴에 달고 있던 영상구를 강동훈 소령에게로 건넸다. 강동훈 소령은 두 사람이 건넨 영상구를 받아 헌터들의 이름이 적힌 작은 박스에 넣고는 말했다.

“확인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 끝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네. 전부 끝난 건 아니죠. 아직 괴물들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니까요.”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고 한들, 모든 괴물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한국은 그래도 헌터들의 수준이 꽤 높고, 국토의 면적 대비 헌터들의 수가 많은 편이라 문제가 없었지만 아직 타국은 괴물들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원 요청이 들어온 곳이 어디입니까?”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외 동남아 지역입니다.”

“동남아요? 그쪽이라면 근처에 인도가 있지 않습니까?”

헌터 강국의 기준은 국가의 면적 대비 인구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 괴물들이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 많이 나타나긴 하지만, 동시에 헌터들의 수 역시 인구가 많을수록 더 많은 수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인구에 비해 헌터들의 수가 많고, 수준이 높아 새롭게 헌터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와 같은 차원이 다른 인구 밀도를 자랑하는 국가에 비하면 헌터의 수 자체는 그렇게 많다고 볼 수 없었다.

동남아 지역이라면 인구밀도가 그렇게 낮은 지역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근방에는 인도라는 10억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나라도 있었는데, 인도는 특히나 중궁과 더불어 헌터의 수가 가장 많은 국가였다.

“아무래도 인도 정부와의 교섭이 마땅치 않은 모양입니다. 인도 쪽 헌터들은 서아시아 외 아메리카 지역으로 뻗어갈 계획으로 추정됩니다.”

자세한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그런 거라면 아무래도 인도가 다른 동남아 지역의 국가들을 도와줄 거라 보기는 힘들었다. 당장 자국의 헌터들만으로 괴물들을 처리하기에는 시간을 오래 끌수록 피해는 커질 것이다.

“말레이시아 및 동남아 지역에서 원하는 헌터는 보통 헌터가 아닙니다.”

“그럼요?”

“네 개의 뿔을 가진 괴물과 보스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은 헌터. 즉, 가능한 정예로 보내 달라고 합니다.”

“정예라…….”

확실히 승한이나 윤재 정도면 정예라고 할만 했다. 인구 대비 헌터들의 수준이 뛰어나다는 한국 내에서도 알아주는 헌터들이었으니 말이다.

“언제 가면 됩니까?”

“가능한 빨리 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뭡니까?”

“승한씨와 윤재씨가 가 주셔야 할 곳은 말레이시아 남부 지역으로, 그곳에서 사냥한 괴물의 사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강동훈 소령도 위쪽에서 지시를 받은 모양이었다. 괴물의 사체 하나하나가 새로운 에너지원의 재료가 된다면 그 사체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건 필수적인 일이었다.

또한 지원을 해 주는 대가로 그곳에서 잡은 괴물의 사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국의 헌터들을 밖으로 돌리면서까지 지원을 해 주었는데, 그곳에서 잡은 괴물의 사체에 대해서까지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 말레이시아 정부도 염치가 없을 것이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이미 말레이시아 정부와는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이니 아마 큰 마찰은 없을 겁니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시겠습니까?”

“지금 바로요?”

“네. 이미 군용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진행에 승한은 집에 두고 온 나르샤가 신경 쓰였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고, 혹시라도 어머니와 승아가 집으로 들어가 나르샤를 만나게 되면 일이 꼬이게 되니 말이다.

“……잠시만 집에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집에는 무슨 볼일이십니까? 승한씨 가족 분들은 여기 호계체육관에 있습니다.”

“다른 볼 일이 있습니다. 삼십분이면 됩니다.”

승한의 요청에 강동훈 소령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한시가 급한 일이다 보니 삼십분이라는 시간이 그리 짧게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삼십분을 넘기시면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승한은 강동훈 소령의 허락을 받고는 옆에 있는 윤재를 돌아봤다. 윤재는 승한이 왜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는지 이유를 알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무슨 이동 셔틀이냐?”

“좀 부탁할게요, 형. 뛰어가는 것보다는 빠르잖아요.”

“뛰어가도 네 발이면 5분이면 도착할 걸?”

“그래도 주작이 더 빠르잖아요?”

잠시 투덜거리던 윤재는 곧 주작을 불러내 승한을 태웠다. 거대한 주작이 나타나자 강동훈 소령을 비롯한 군인들이 깜짝 놀랐지만, 곧 주작에게서 떨어진 불똥에서 어떤 열기도 느껴지지 않자 안심했다.

“……어마어마하군.”

강동훈 소령은 날개를 펼치는 거대한 주작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헌터들의 능력이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는 것쯤은 군 내부에서 헌터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매번 괴물들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능력’이라는 힘이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전투보다 당장 눈에 드러나 보이는 주작의 거대한 위용은 절로 입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저런 걸 데리고 싸우면 대체 어떻게 싸우는 거지?”

강동훈 소령은 문득 박스에 담아놓은 승한과 윤재의 영상구가 궁금해졌다.

그들이 싸우는 모습은 이미 지난번 영상구를 통해 보긴 했었다. 그 중에는 주작을 불러내 이동하는 윤재의 능력도 담겨 있었는데, 지금 나타난 윤재의 주작은 그 당시의 주작보다 훨씬 거대해져 있었다.

아마 주작이라는 능력뿐만 아니라 그 외의 다른 능력들도 훨씬 강해져 있을 터. 윤재의 능력을 처음 바로 앞에서 마주한 강동훈 소령은 그들의 능력과 헌터라는 존재들에 대한 경외심이 더욱 커졌다.

**

승한의 집은 비산1동에 있는 작은 주택가에 있었다. 호계동에서 비산1동까지 거리가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주작을 타고 이동하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승한은 주작이 자신의 집 근처에 도착하자 그대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윤재는 주작을 아래로 내려 승한보다 한 발 늦게 뒤를 따라갔다.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는 한가로웠다. 아직까지 사람들은 대피소에 남아있었고, 비산동을 담당하고 있는 헌터는 승한과 윤재였다. 이 시간에 비산동에 승한과 윤재 외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승한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르샤는 승한의 방 안에 있는 침대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승한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폴짝 일어났다.

“오셨어요?”

“일이 조금 꼬였습니다.”

“네?”

“원래는 일이 다 끝났어야 하는데…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아요.”

“자리를 비워요?”

나르샤의 얼굴색이 하얗게 질렸다.

이곳에서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승한뿐이었다. 그런 승한이 갑작스럽게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건 아무래도 그녀에게 좋지 못한 소식이었다.

“얼마나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 멀리 가는 거라서요. 이런 일로 자리를 비우는 것도 처음이고…….”

“여긴 승한씨 집이라면서요? 가족들은요?”

“아마도 여기로 오겠죠. 그래서 제가 나르샤님에게 다시 온 겁니다. 가족들과 나르샤님을 저 없이 만나게 하기가 껄끄러워서요.”

아무리 다른 괴물들과는 다르다 해도 나르샤는 겉으로 보기에는 영락없이 다른 괴물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승한은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 나르샤를 그냥 두고 가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혹시라도 자신이 없을 때 나르샤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충분히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다. 남아있는 괴물들 중 하나라고 오해하고 다른 군인들이 들이닥칠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럼……?”

“저와 함께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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