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95화 (9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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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르샤

‘이것 봐라?’

승한은 나르샤의 몸속에 있는 힘에 더욱 성화의 힘을 거세게 불어넣었다. 비록 크기는 작다고 할지 몰라도 힘의 농도는 베이모의 것보다 훨씬 짙었다.

무엇보다 승한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자칫 의지를 잘못 불어넣어 나르샤에게 조금이라고 피해를 주는 순간, 나르샤는 그대로 성화의 불길로 산화해 버릴 것이다.

다시금 승한의 성화와 마의 기운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성화를 통해 승한의 머릿속으로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득키득-.

‘웃어?’

분명한 웃음소리였다. 그것은 승한의 머리를 통해 똑똑히 전해졌다.

‘하긴, 불가능할 것도 없지.’

어차피 성화라는 힘은 보통 불이 아니었다. 자아를 가진 신성한 불꽃이자, 그 주인의 의지를 반영하는 불꽃이었다. 그 힘이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웃고 떠든다고 해도 영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어디 계속 웃을 수 있나 해 보자고.’

나르샤는 이미 승한의 성화에 겁에 질려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성화의 불길에 나르샤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승한이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궁금증을 동시에 떠안았다.

“아, 아아아!”

그러던 중, 나르샤는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통증에 조금씩 비명을 질렀다. 성화와 마화가 부딪히며 생기는 근본적인 열기가 머릿속을 휘저었기 때문이었다.

턱-.

승한이 나르샤의 어깨를 잡았다. 성화의 힘이 나르샤의 몸에 해를 끼친 건 절대 아니었다. 나르샤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다만 마화와 성화의 충돌 때문에 일어나는 열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고통은 감수해야 한다.

“조그만 참으십시오.”

“아, 아파요.”

“참으셔야 됩니다.”

나르샤의 눈빛이 점차 초점을 잃으며 흐려졌다. 승한은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손으로 어깨를 잡고 꾹 눌렀다.

키득, 키키키키-.

마화는 계속해서 웃었다. 마치 네깟 녀석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겠냐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승한은 성화를 통해 마화가 가진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녀석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승한의 성화에 정화되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고, 승한에게 집어삼켜 지는 것을 말이다. 즉, 마화의 웃음은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한 허세에 가까웠다.

그런 걸 보면 참 사람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허세를 떤다? 아무리 자아를 가지고 있는 불이라 해도, 이런 것까지 가능할 줄은 승한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 처 웃고, 좀 사라져라!’

화악=.

승한의 손에서 뿜어진 성화의 불길이 나르샤의 몸속에 고르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힘은 순식간에 사방에서 옭죄이듯 마화의 힘을 감쌌다.

그리고 그 순간.

“아아아아악-!”

‘어, 어?’

나르샤의 비명과 함께 승한은 무엇인가 잘못 됐음을 알 수 있었다. 승한은 분명 마화를 정화시키고자 힘을 사용한 것인데, 나르샤는 그 힘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마화의 힘은 성화에 정화되고 있었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나르샤가 가진 성화의 조각에 비해 그 힘을 더럽히고 있던 마(魔)의 힘은 그리 크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힘의 성질을 바꾸기보다는 나르샤를 세뇌하는데 목적을 두었던 힘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힘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나르샤의 몸에 이상이 생기고 말았다. 그것은 승한의 실수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성화와 성화가 만나는데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승한은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승한은 단지 나르샤가 가지고 있던 마화의 힘을 어떻게 해서든 정화시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화의 힘을 사용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화르르르륵-.

마화의 힘이 산화하여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던 힘처럼, 나르샤의 몸과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워졌다. 그것은 베이모의 마화를 정화시켰을 때와 분명 같은 느낌이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승한은 나르샤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몸속에 있는 성화의 힘이 단번에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뜨, 뜨거워요.”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세요!”

승한은 어떻게 해서든 나르샤가 가진 성화의 힘을 떨쳐버리려 했다. 이 힘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나르샤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떨쳐내선 안 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나르샤가 가진 성화의 힘을 떨쳐버리면 그녀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승한과는 달리, 나르샤는 성화의 힘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녀가 가진 힘은 처음 태어날 때부터 가진 힘이었지만 마족이 성화를 다룬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 하지만 승한은 성화를 몸에 받아들이고, 능력이라는 형태로 그 힘을 다룰 수 있었다.

‘내가 해야 돼.’

승한은 다시금 나르샤의 몸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마화의 힘은 이미 정화되어 사라져 버렸다. 승한의 성화에 반응해 나르샤의 성화가 크게 일어나며 그 거대한 힘에 버티지 못하고 타버린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과제가 생겨났다. 이대로 나르샤를 성화에 휩쓸려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나르샤의 성화를 갖는다.’

승한은 온 힘을 끌어올려 자신의 성화를 나르샤의 몸에 집어넣었다. 나르샤가 가진 성화의 조각은 결코 작지 않았지만, 승한 역시 만만치 않았다.

모든 힘을 끌어 올린 승한의 성화는 붉은색보다는 황금색에 조금 더 가까워진 주황빛이었다. 반면, 승한이 맞선 나르샤의 성화는…….

‘황금색?’

승한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나르샤의 성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단 한 번, 승한이 보았던 황금색의 성화는 바로 아포피스를 봉인한 성화였다. 그것조차도 다 꺼져가던 상태의 붉은색 성화를 승한이 살려놓아 다시 황금색이 된 것이었지, 그 전까지는 황금색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르샤의 성화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황금색에 가까웠다. 그건 그만큼 나르샤가 가진 성화의 조각이 크다는 뜻이었다.

‘말도 안 돼.’

가지고 있던 성화의 힘에 자신이 있던 승한은 나르샤의 성화가 생각보다 크자 당황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걸 포기하게 되면 나르샤는 죽는다. 또한, 성화의 조각은 그대로 날아가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화륵, 화르르륵-.

나르샤가 가진 성화의 힘이 멋대로 날뛰었다. 그것은 나르샤의 의지도, 승한의 의지도 아니었다. 오로지 성화의 조각이 가진 스스로의 의지 하나만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승한의 성화와 쉽게 섞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승한은 어떻게 해서든 나르샤가 가진 성화의 힘에 손을 뻗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승한의 성화와 나르샤의 성화가 충돌하던 중.

‘됐다!’

승한은 드디어 나르샤의 성화를 손에 잡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성화와 나르샤의 성화가 서로 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크읍.”

그 순간, 승한의 몸속으로 나르샤의 성화가 가진 열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따로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던 성화의 힘은 보이는 모든 것을 태우는 힘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힘은 나르샤는 물론이고, 이제는 하나로 섞이기 시작한 승한의 성화를 타고 승한에게까지 열기를 전해왔다. 승한은 그 힘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기 위해 힘을 더욱 사용했다.

‘그만 날뛰어라.’

[증폭]의 힘을 사용해 성화의 힘을 더욱 키워도 나르샤의 성화를 누르기는 힘들었다. 승한의 성화보다 더욱 황금색에 가까운 나르샤의 성화는 승한이 어떻게 누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나르샤의 성화는 금방이라도 승한을 태울 것 같았다. 승한은 몸속이 불길로 타들어가는 느낌에 이를 악물었다. 나르샤를 구하려다 자칫 자신도 함께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그 순간, 승한의 몸속에서 성화가 아닌 다른 힘이 꿈틀거렸다.

승한의 눈이 번쩍이는 순간이었다.

‘혹시라도…….’

승한은 성화에 이어, 또 다른 힘을 꺼냈다. 승한의 성화와 나르샤의 성화가 싸우던 도중, 거기에 또 다른 힘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구구구구-.

화륵-.

거대한 힘이 나르샤의 성화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거센 불길에 찬물이 뿌려지기라도 한듯, 나르샤가 가지고 있던 성화의 불길이 약해졌다.

승한의 또 다른 힘, [올림포스]였다. [올림포스]는 단순히 사물을 짓누르는 힘이 아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사물을 비롯한 어떤 힘이라도 강제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전능한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은 성화라는 신성한 힘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덕분에 나르샤의 성화는 불길이 훨씬 약해졌고, 승한의 성화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승한과 나르샤의 몸을 괴롭히던 열기가 사라졌다. 승한의 성화와 나르샤가 가지고 있던 성화가 동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됐다!’

승한은 하나로 합쳐진 성화를 가진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나르샤의 성화는 잠시간 저항했으나, 곧 승한의 힘으로 동화되어 끌려오기 시작했다.

나르샤의 몸을 관조하던 승한은 나르샤의 몸속에 남은 성화의 힘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자칫 성화의 힘이 어중간하게 남아있어서 나르샤의 목숨을 갉아먹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으음…….”

승한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성화의 힘이 만만치 않았다. 그 힘이 승한을 공격하지는 않아서 이전처럼 뜨겁진 않았지만, 몸이 버티기 힘들 만큼 갑작스럽게 많은 힘이 흘러 들어왔다.

‘죽겠군.’

[올림포스]의 힘으로 간신히 성화를 누르고 있긴 하지만 그 힘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는 없었다. 승한은 자신의 몸속으로 받아들인 성화의 힘과 그 조각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한 번 동화시킨 성화를 몸속으로 받아들여 그 힘을 흡수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애초에 성화라는 힘 자체가 같은 성질을 가진 힘이어서 한 번 동화되기만 하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화륵-.

승한의 몸속에서 성화의 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발버둥이라기보다는 성화의 힘이 갑작스럽게 커지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어마어마하군.’

승한은 나르샤에게서 받아들인 조각의 크기를 가늠하고는 깜짝 놀랐다. 조금씩 [올림포스]의 힘이 풀어지면서 성화의 본모습이 드러났는데, 그 힘의 크기는 승한이 본래 가지고 있던 성화의 힘보다도 컸다.

‘이런 힘을 품고 있었던 건가? 마족이?’

마족에게 치명적인 성화의 힘. 그것도 이만한 크기의 성화를 평생 안고 있었다니 놀랄 따름이었다.

승한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르샤를 잠시 바라보다 곧 성화의 힘을 모두 흡수했다. 온 몸 가득 성화의 힘이 번지며, 따뜻한 느낌이 전신을 감쌌다. 나르샤의 몸에는 더 이상 성화의 힘이 남아있지 않았고, 반대로 승한의 몸에 있던 성화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성화’의 힘이 당신의 몸에 녹아듭니다.]

[‘능력 - 성화’의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특정한 힘이 개입해 다음 레벨에 요구되는 타임 포인트가 상승하지 않습니다.]

익숙한 메시지였다. 의도했던 일이긴 하지만 승한은 절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그 정도로 값어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어?”

승한은 또 다시 붉은 천사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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