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92화 (9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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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르샤

‘성화의 반대… 마화(魔火)라고 해야 하나? 이거 귀찮아 졌는데…….’

승한은 올림포스의 힘을 방패에 실었다. 그리곤 급한 대로 가지고 있는 타임 포인트를 당장에 사용했다.

[256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귀신’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2레벨로 올린 [귀신]의 능력 덕분일까? 승한은 다리를 비롯한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지금 승한에게 가장 필요한 건 베에모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는 빠른 움직임이었다.

외뿔 마족만 하더라도 승한보다 조금 더 빠른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화를 몸에 심은 베에모는 얼마나 더 빠른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2레벨의 [귀신]을 가지게 된 승한은 외뿔 마족의 움직임 정도는 가볍게 따라잡을 자신이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베에모 역시 승한을 쉽게 보지는 않는 듯,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먼저 움직인 쪽은 베에모였다.

쉬익-.

베에모가 손을 뻗어오며 승한에게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역시나 외뿔 마족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이었는데, 승한의 눈에는 베에모의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승한이 더 빠른 건 아니었다. 승한은 베에모의 움직임에 간신히 반응해 검을 휘둘렀다. [백검]의 검격이 정면에서 달려드는 베에모에게로 향했고, 베에모의 손과 피부에 작은 생채기가 생겨났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 정도 작은 생채기는 전투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고작해야 피 몇 방울이 나오는 정도였다.

결국 베에모는 승한이 있는 곳까지 손쉽게 도달해 승한의 방패 위를 두드렸다.

그 순간, 승한은 방패에 [올림포스]의 힘을 더했다.

꾸웅-!

승한의 방패는 어떤 흠집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승한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마 [수호신]이었던 상태에서 베에모의 공격을 받아냈다면 방패에 큰 홈이 생겨났을 것이다.

화르륵-.

승한의 검에 성화의 불이 맺혔다. 하지만 이전과 비교해 그리 불길이 강하지는 않았다. [올림포스]의 힘도 방패를 강화하는데 사용할 뿐, 그 외에 다른데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힘 조절. 승한에게 지금 필요한 과정이었다. 높은 레벨의 [불굴의 육체]로 인해 능력을 많이 사용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올림포스]를 모든 마족들에게 사용해 버린 탓에 힘을 조금씩 아껴가며 싸울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불길이라고는 하나 성화는 성화였다. 더군다나 [증폭]의 힘으로 인해 작은 불길이 더욱 커져 위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또한 승한의 검에 실려있는 본래의 힘도 그리 약한 편이 아니었다.

아무리 베에모가 마화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승한의 성화는 분명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쩌엉-!

승한의 검과 베에모의 주먹이 부딪혔다. 승한은 크게 흔들리는 검 끝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장난 아닌데.’

베에모의 주먹에 옅은 검은 불길이 둘러져 있었다. 성화와 닮아있는 그 힘은 바로 마화의 힘이 성화처럼 밖으로 구현된 것이었다.

‘성화에서 괴물들과 같은 기운이 느껴질 줄이야… 상상도 못한 일이군.’

마족들의 신이라는 악마가 저지른 짓일까? 아포피스를 봉인하고 있던 성화를 조금 떼어내 그 힘을 검게 물들이고, 베에모의 몸에 이식했다. 그 덕분에 베에모는 점차적으로 몸이 부식되고 있었지만, 한 순간에 몇 배나 되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화를 몸에 심은 덕분에 베에모는 성화로부터의 면역력을 얻었다. 만약 마화가 몸에 심어져 있지 않았다면 승한의 성화에 이렇듯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짜증나게…….”

쿠웅-.

승한의 손이 베에모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 베에모의 몸 위로 거대한 산 모양의 반투명한 물체가 나타났다. 그 힘은 베에모의 힘을 순식간에 찍어 눌러 상체를 숙이게 만들었다.

“그래, 그렇게…….”

쉬익-.

“숙여!”

쩡-!

피익-.

내리친 검이 베에모의 등을 길게 베었다. 단숨에 몸을 양단시킬 생각으로 성화의 힘을 담아서 휘둘렀는데, 조금 깊은 상처를 입히는 정도에서 그쳤다.

‘이거 진짜 귀찮네.’

베에모의 등 뒤를 마화의 힘이 감쌌다. 원래라면 성화의 힘과 닿아서 바로 베어진 몸뚱이였지만, 마화의 힘이 성화의 힘을 상쇄시키면서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이다.

승한은 급한 대로 방패를 크게 들어 베에모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올림포스]의 힘을 담은 방패는 거대한 산이 위에서 내려치는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꽈앙-!

베에모의 몸이 땅 아래에 처박혔다. 성화의 힘은 제대로 통하지 않지만 [올림포스]의 힘은 확실하게 먹히고 있었다. 그래도 [올림포스]는 어디까지나 상대의 움직임을 구속하거나 스스로의 몸을 지키는 힘일 뿐, 공격이 주 용도는 아니었다.

파악-.

그리 큰 충격은 아니었는지 베에모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한은 녀석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검을 아래로 내려쳤는데, 베에모는 손을 들어 승한의 검을 잡아냈다.

역시나 베에모의 손에는 마화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승한은 계속해서 막혀가는 검에 눈살을 지푸렸다.

‘확실한 한 방이 필요한데.’

마화의 힘이 있는 이상 베에모에게 큰 한 방을 먹이는 것은 힘들었다. 필요한 건 지금보다 더 큰 성화의 힘을 사용하거나 베에모가 가진 마화의 힘을 상쇄시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당장 성화의 힘을 더 크게 이끌어 내기란 불가능했다. 방금 전 베에모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던 것도 어디까지나 [올림포스]의 힘이 있기에 무방비한 상태에서 공격을 할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만약 [올림포스]의 힘이 없었다면 그런 공격 기회를 잡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승한의 시선이 나르샤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승한과 베에모의 싸움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승한이 기억하는 나르샤는 다른 마족들에 비해 몸이 약해서 제대로 싸울 수 없었는데, 굳이 왜 직접 이곳으로 왔는지 모를 까닭이었다.

‘신경 쓰여.’

사실 승한은 눈앞에 있는 베에모보다 나르샤가 더 신경 쓰였다. 베에모야 어떻게든 쓰러뜨리면 그만이라지만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다른 마족들처럼 베어야 하는 것일까?

승한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정신을 차린 베에모가 다시금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화악-.

마화의 불길이 베에모의 주먹을 타고 승한을 덮쳐왔다. 승한은 성화를 머금은 검을 휘둘러 마화의 불길을 베어냈다.

쩡-!

다시금 승한의 검과 베에모의 주먹이 부딪혔다. 베에모의 힘은 승한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이지만 승한을 압도하는 느낌이 있었다.

승한은 잠시 거리를 벌려 [백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전방에 있는 공간이 베어져 나가며 성화의 힘이 공간을 잠식해 나갔다. 조금이지만 성화의 힘을 더욱 끌어낸 것이었다.

하지만 승한에게 성화가 있다면 베에모에게는 마화의 힘이 있었다. 베에모는 마화의 불길을 온 몸에 머금으며 다시금 달려들었다. 하지만 성화를 머금은 [백검]의 검격은 베에모의 몸에 자잘한 상처를 수도 없이 만들었다.

베에모 역시 무리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죽더라도, 승한을 죽이고 말겠노라는. 하지만 승한은 베에모와 함께 죽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콰앙-!

승한은 방패에 [올림포스]의 힘을 두르고 그대로 돌진했다. 산과 같은 방패에 부딪힌 베에모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승한은 그대로 검을 높게 들어 베에모의 머리를 향해 내려쳤다.

쩡-!

높게 들어 올린 베에모의 손과 검이 부딪혔다. 그 순간, 베에모의 무릎이 꺾였다.

“크윽.”

베에모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승한의 검에서 느겨찌는 힘과 무게가 절로 그의 몸을 숙이게 만들었다.

승한은 [올림포스]의 힘을 베에모가 아닌, 자신의 검에 부여했다. [수호신]은 누군가를 지키고자 할 때에만 검에 힘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올림포스]는 그런 제약이 없었다. 성화와 함께 [올림포스]의 힘을 머금은 승한의 검은 산과 같은 묵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은 아무리 마화의 힘을 가지고 있는 베에모라고 해도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베에모의 마하는 성화의 힘을 상쇄시킬 뿐, [올림포스]의 힘까지 없는 것으로 하지는 못했다.

베에모는 두 손으로 간신히 승한의 검을 잡고 버텼다. 조금씩 베에모의 손에 피가 흘러 나왔다. 베에모는 승한을 올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이놈…….”

“네가 가진 성화 말이야.”

승한은 방패를 거두고 손을 뻗어 베에모의 팔을 잡았다. 승한이 검뿐만 아니라 손에도 성화의 힘을 두르자, 성화의 힘과 마화의 힘이 만나 서로 더욱 크게 불타기 시작했다.

“내 것과 네 것, 어느 게 진짜일까?”

“무슨 소리를…….”

“당연히 내 거겠지. 네 건 악마 놈의 불순한 기운이 들어난 성화… 아니, 성화라고 부를 수도 없겠군. 성화는 그 무엇보다도 깨끗한 불이니까.”

성화는 애초에 불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기운이었다. 무언가를 태워서 얻은 불과는 달리, 성화는 무(無)에 가까운 깨끗한 기운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 마(魔)와 악(惡)이라는 불순한 기운이 들어간 이상, 그것은 더 이상 성화가 아니었다. 성화라는 힘조차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승한은 마화를 손으로 잡는 순간, 그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나르샤는 어떨지 몰라도, 난 성화에 대해 꽤 자세히 알고 있거든. 그 힘이 누구의 힘인지, 어떤 힘인지, 그리고… 그 힘에 다른 힘이 섞이면 어떻게 되는지 까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닥치고 찌그러져 있어 봐. 지금 집중 하고 있으니까.”

쿠웅-.

“크윽.”

[올림포스]의 힘이 베에모의 몸을 다시 한 번 찍어 눌렀다. 과도하게 힘을 사용한 탓에 승한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불과 불이 섞이면 어떻게 될까? 하나로 합쳐져 더 큰 불을 만들 뿐이지. 성화라고 해서 다를 것 없어. 애초에 성화는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힘. 그 힘이 부딪히게 되면…….”

베에모의 마화와 성화가 만난 순간, 승한은 성화라는 힘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것과는 달리, 그 힘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깨달은 것이었다.

승한의 손에 맺혀 있던 성화의 불길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점차적으로 붉은색이었던 불길이 황금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하나가 되려고 할 테지.”

화악-!

“으아아아악!”

마화와 성화가 동시에 번쩍이며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베에모는 참을 수 없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성화의 힘이 드디어 베에모의 몸을 까맣게 태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승한은 자신과 베에모의 손 위에서 섞이기 시작한 성화와 마화를 보며 씩 웃었다.

이기는 쪽이 모든 것을 갖는다. 지금부터는 승한과 베에모가 아닌, 성화와 마화의 싸움이었다. 과연 어느 불이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마화가 성화에게 먹힐지 성화가 마화에게 먹힐지, 그것이 바로 승한과 베에모의 싸움을 결정지을 것이다.

“네 불과 내 불 중, 누구의 불이 더 뜨거운지 궁금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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